쌓아올리신 불멸의 업적 (1)
1. 서론
오늘 우리 인민은 반만년 민족사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인민의 정권을 세우시고 우리 나라를 자주, 자립, 자위의 사회주의국가로 전변시켜주신
《나라가 해방되자 인민의 창의에 의하여 도처에서 인민위원회들이 수립되고있습니다. 인민위원회는 우리 인민들자신이 선택하였으며 우리 나라 실정에 부합되고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인민대중의 리익을 대표할수 있는 새 형태의 정권기관입니다.》
2. 본론
2.1. 새 형태의 정권기관 - 인민위원회의 수립
새 형태의 인민정권기관을 창설하는 문제는 해방직후 우리 혁명발전의 절박한 요구였다.
해방직후 새 조국건설의 길에 들어선 전체 조선인민은 조국의 륭성발전을 이룩하며 행복한 생활을 보장하여줄수 있는 진정한 인민의 정권기관을 수립할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당시 좌우경기회주의자들은 조선혁명의 성격과 임무, 인민대중의 지향과 요구를 무시하고 반인민적인 정권기관을 세우려고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인민공화국》수립구호를 들고 소수 특권계급을 위한 반인민적인 부르죠아정권의 수립을 주장해나선 우경기회주의자들은 지방정권기관건설문제를 반인민적으로 해결하려고 책동하였다. 프로레타리아독재정권의 즉시수립을 주장하던 좌경기회주의자들 역시 지방정권문제해결에서 인민대중의 준비정도와 그들의 민주주의적요구를 무시하고 우리 혁명과 지방의 구체적실정에 맞지 않는 주장을 들고나왔다.
장기간 일제의 식민지통치에서 신음하다가 해방을 맞이한 우리 인민은 자기의 정권을 세우려는 열의는 높았으나 제국주의자들과 그 앞잡이들, 좌우경기회주의자들의 책동으로 말미암아 지방정권기관을 어떤 형태로 어떻게 세워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있었다.
해방직후 우리 나라에는 인민의 요구에 전적으로 부합되며 우리 조국의 민주주의적발전에 가장 적합한 정권기관, 각계각층의 광범한 근로인민대중의 리익을 대표할수 있는 새 형태의 정권기관을 수립하는 문제가 중요한 요구로 나섰다.
인민대회를 소집하는것은 지방인민정권기관을 근로인민자신의 정권기관으로 되게 하기 위한 중요한 요구로 나섰다.
인민대회의 소집은 인민대중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고 그들의 건국열의를 더욱 높여주는 중요한 계기로 되였으며 각급 지방인민정권기관을 인민의 진정한 대표들로 수립할수 있게 하는 합리적인 방도로 되였다.
해방직후 우리 인민은
인민대중의 창의에 의하여 각 지방에 수립된 지방인민위원회는 그 누구의 지시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민들자신의 지향과 요구에 따라 그들자신이 자기 손으로 자발적으로 조직한 자주적인 정권기관이였으며 각 정당, 사회단체, 각계각층의 광범한 인민대중의 참가밑에 인민의 총의에 의한 민주주의적선거의 방법으로 조직된 민주주의적인 정권기관이였다.
당시 인민대중의 창의에 의하여 여러 지방에 지방인민위원회들이 조직되기는 하였으나 아직 지방인민위원회가 조직되지 못한 일부 지역들도 있었다. 더우기 엄중한것은 이미 조직된 정권기관내에 친일파, 민족반역자, 불순이색분자들이 적지 않게 들어가있는것이였으며 기구도 정비되지 못하고 사업체계와 질서도 서있지 못하고있는것이였다.
지방인민위원회들을 조직하기 위한 사업은 인민들의 높아진 혁명적열의속에서 전국적범위에서 조직화되고 적극 추진되여 짧은 기간에 북조선의 모든 지역들에서 지방인민위원회들이 조직되는 력사적사변이 일어났다.
각급 지방인민위원회는 로동자, 농민을 비롯하여 지식인, 수공업자, 상인, 중소기업가 등 각계각층의 광범한 애국적인 인민의 대표들로 구성되였다.
당시 황해도 각급 지방인민위원회들의 구성만 보아도 로동자, 농민이 83%, 사무원이 7%, 수공업자, 상인이 9%, 중소기업가와 기타가 1%를 차지하였다. 이것은 각급 지방인민위원회들이 로동자, 농민을 비롯하여 사무원, 수공업자, 상인, 중소기업가 등 각계각층의 광범한 인민의 대표들로 구성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새 조선에 창설하려는 지방인민정권기관은 과거 일제시대의 도청이나 군청과 근본적으로 다른 인민대중의 리익을 위하여 복무하는 진정한 인민의 정권기관인것만큼 여기에는 당과 혁명에 무한히 충실하고 인민대중속에서 신망이 있으며 인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할수 있는 인민의 충복들이 들어가야 하였다.
당시 지방인민위원회 일군들의 실태를 놓고보면 적지 않은 일군들이 혁명적세계관이 서지 못하고 지금까지 보아온것이란 일제시기의 관료배들의 통치방법밖에 없었던데로부터 인민들에게 호령하고 욕설하며 관료행세를 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