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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혁명투쟁시기 민족적전통을 고수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에 대한 몇가지 연구 

 (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항일혁명선렬들과 인민들은 다음으로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책동을 짓부시고 우리 민족의 찬란한 민족문화전통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모든 과학, 교육, 문화기관들을 독점하고 그것을 리용하여 조선인민의 민족적전통, 민족어, 민족적자각과 긍지를 말살하려 하였던것입니다. 그들은 과학과 기술을 보급할 대신에 몽매와 미신을 퍼뜨리고 독립사상을 억압하며 노예사상을 강제로 주입시킴으로써 조선민족의 고귀한 문화유산을 매장해버리며 반만년의 유구한 문화전통을 가진 조선사람들을 무지하고 미개한 민족으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책동을 짓부시고 민족문화전통을 지키기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은 우선 조선말과 글을 고수하기 위한 투쟁을 통하여 전개되였다.

민족어는 민족의 문화유산가운데서 민족의 징표로 되는 가장 중요한 유산이다. 민족의 징표가운데서 피줄의 공통성과 함께 언어의 공통성이 중요한 요소로 된다는것은 공인된 진리이다.

더우기 단일민족으로서 오랜 세월 고유한 자기 말을 써온 우리 민족이 일제에게 민족어를 빼앗기면 조선민족의 얼과 넋을 빼앗기는것으로 되며 민족이기를 그만두는것이나 다름없었다.

일제가 우리 말과 글을 없애치우는것을 민족문화말살책동에서 선결문제의 하나로 내세우고 1920년대에 형식적으로나마 허용하던 조선어교육을 1930년대에는 완전히 금지시키고 1940년대에는 전조선적범위에서 일본말사용을 강행하여 우리 인민의 언어생활전반을 《일본화》하려고 한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투쟁시기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인민들속에서 일제의 간악한 조선어말살책동에 굴하지 않고 우리 말과 글을 배우고 끝까지 지키도록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일찌기 초기혁명활동시기에 카륜과 오가자일대에서 학교와 야학을 내오시고 광범한 인민대중에게 우리 말과 글을 배워주도록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이 우리 말과 글을 배우기 위한 투쟁에 앞장서도록 하시였다. 이 나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에게 늘 우리는 조선사람으로서 앞으로 조선혁명을 할 사람들인데 제 나라 글을 모르고서야 어떻게 혁명을 수행하겠는가고 하시면서 대원들을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6(1937)년 11월 마당거우밀영에서 군정학습을 진행할 때 몸소 우리 글 공부를 잘하지 않는 신입대원에게 총만 가지고서는 적을 쳐이길수 없다고 하시면서 지금까지 우리 글 공부를 부담으로만 여기고 게을리하던 그의 잘못을 깨우쳐주시였다. 그리고 어떤 대원에게는 몸소 우리 글로 편지를 써주시고 그가 그것을 읽지 못하고 되돌아왔을 때에는 그에게 자 보라, 무식하다보니 사령관의 명령도 집행하지 못했다, 동무가 적구에 나가 사업할 때 내가 편지로 어떤 명령을 떨구었다고 생각해보라, 그러면 어떻게 되였겠는가고 하시면서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학습은 첫째가는 임무라고, 언제 어디서나 꾸준히 학습해야 한다고 일깨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대원들의 학습장도 매여주시고 친히 이름과 《가갸표》까지 써주시며 우리 글 공부를 친어버이사랑으로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렇듯 극진한 보살핌속에서 대원들은 우리 말과 글을 배우기 위한 투쟁이 곧 조선혁명을 잘하기 위한 중대한 사업이며 일제의 민족어말살책동을 짓부시고 모국어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는것을 깊이 자각하고 군정훈련의 나날은 물론 전투와 전투사이, 행군과 행군사이에도 우리 글을 익혔으며 우등불가에서 잠간 쉬는 동안에도 심지어 전투를 앞둔 긴장한 시각에도 우리 글을 익힘으로써 조선의 진정한 혁명가로 자라날수 있었으며 우리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서 자기의 본분을 훌륭히 수행할수 있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뿐 아니라 유격구안의 어린이들과 광범한 인민들속에서도 우리 말과 글을 배우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30년대전반기 유격구에 세워진 인민혁명정부가 민주주의적시책을 실시하도록 하시여 민족어를 지키고 널리 배울수 있는 넓은 길을 열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조치에 의하여 왕청지구에는 마촌, 십리평, 가야허, 요영구, 대북구, 소북구, 다홍왜, 금창, 영창동, 연길지구에는 북동, 남동, 왕우구, 신성동, 부암동, 삼도만, 훈춘과 화룡지구에는 대황구, 소황구, 리수구, 우복동, 어랑촌 등지에 아동단학교가 서게 되였으며 조선어교육이 힘차게 진행되였다.

이 시기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드시고 연길현 부암동에서 아동단사업을 지도하시면서 아동단원들에게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는 사업에 온갖 정력을 다 기울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때로는 아동단원들의 손을 잡으시고 《가갸거겨》하며 글을 써주기도 하시고 몸소 학습장과 연필까지 마련해주시며 그들의 학습을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광범한 군중들속에서 문맹퇴치사업을 힘있게 벌려 모두가 우리 말과 글을 쓸수 있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유격구들에서는 성인학교와 야학이 곳곳에 조직되여 군중적운동으로 문맹퇴치사업이 활발히 벌어지게 되였으며 모두가 글을 읽고 쓸수 있게 되였다.

일제의 민족어말살책동을 짓부시고 우리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서 애국적지식인들의 투쟁은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있다.

애국적지식인들은 일제의 민족어말살책동으로부터 우리 글을 지키기 위하여 조선어학회를 조직하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파견하신 정치공작원과 련계를 가지면서 일제의 동화정책에 맞서 견결히 싸웠다. 그들은 일제의 탄압이 극심하고 모든것이 부족한 형편에서도 우리 민족의 언어자원을 종합하고 집대성하여 조선어사전을 편찬하기로 결심하고 방대한 사전편찬작업을 본격적으로 밀고나갔다.

뿐만아니라 애국적지식인들은 일제의 책동으로 조선말로 된 문학작품과 가요창작이 금지되여있었으나 갖은 박해를 무릅쓰고 우리 글과 말로 소설과 시, 가요를 창작하여 일제의 《황국신민화》정책에 결사적으로 항거해나섰다. 한편 조선어학회에 망라된 지식인들은 비밀리에 대외활동도 적극적으로 벌려 1935년 영국에서 열린 국제음성학회와 이듬해 단마르크에서 열린 세계언어학대회에도 참가하였으며 일제가 조선어를 어떻게 말살하고있는가를 세계의 면전에서 낱낱이 고발하였다. 그리하여 일제의 민족어말살책동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책동을 짓부시고 민족적전통을 고수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은 또한 일제의 《창씨개명》을 반대하고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통해서도 힘있게 진행되였다.

일반적으로 매개 민족은 자기의 고유한 성과 이름을 가지고있다. 민족성원들의 성과 이름에는 그 민족의 정서와 지향 등이 반영되는것으로 하여 민족심리를 간직하도록 하는데서 커다란 역할을 한다.

이로부터 일제는 우리 민족의 문화전통을 말살하기 위한 책동의 일환으로서 《창씨개명》을 법률화하여 공포하고 그를 강압적으로 실시하였다. 일제는 《창씨개명》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녀들의 학교진학을 금지시키고 모든 사무와 일자리채용에서 차별을 두는 등 창씨를 하지 않고서는 지낼수 없도록 간악한 제재까지 가하였다.

그러나 우리 인민들은 일제의 이 모진 학정밑에서도 민족적지조를 굽히지 않았으며 강도적인 《창씨개명》을 반대하는 각종 형태의 투쟁을 벌리였다.

평양일대의 인민들은 《조선사람은 결코 고유한 조선민족의 성을 바꾸지 않는다!》, 《조선성을 일본성으로 바꾸라는것은 조선민족을 멸족시키는 흉악한 책동이다!》라고 웨치면서 일제에게 집단적인 항의를 들이댔으며 놈들의 위협과 기만책동을 물리치고 끝까지 조상전래의 조선성씨를 고수하기 위하여 떨쳐나섰다.

평양인민들의 이러한 투쟁의 앞장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조부모님들과 삼촌을 비롯한 만경대일가분들이 서있었다.

김형록선생님께서는 일제순사놈들이 《오늘부터 너는 김형록이 아니다. 네 이름이 뭐냐?》라고 물을 때마다 김형록이다라고 한 한마디 대답때문에 모진 학대와 고문을 받으셨지만 끝까지 민족적지조를 지켜 일제의 《창씨개명》에 항거하는 조선사람의 기개를 유감없이 보여주시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의 할아버님이신 김보현선생님께서는 김형록선생님에게 이름을 일본말로 고치지 않은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지금 성주가 왜놈들과 싸우고있는데 네가 이름을 일본말로 고치면 되겠느냐, 맞아죽으면 맞아죽었지 절대로 이름을 일본말로 고쳐서는 안된다고 고무해주시였다.

《창씨개명》을 반대하는 투쟁은 평양뿐 아니라 전국의 방방곡곡에서 힘있게 벌어졌다. 이처럼 애국적지식인들과 인민들은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을 고수하기 위한 투쟁을 과감히 벌림으로써 민족의 넋을 지키고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책동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항일혁명투쟁시기 우리 인민들은 이밖에도 조선의 력사와 문화유적을 지키기 위한 투쟁도 적극 전개하였다.

일제는 저들의 식민지통치시기 《황국신민화》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조선력사를 외곡하고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우리 인민이 창조한 귀중한 문화유적과 유물들을 수없이 파괴략탈하였다.

우리 인민들은 일제의 력사외곡책동과 문화유적파괴행위를 민족의 정통성과 얼에 대한 란폭한 유린으로 락인하고 그를 반대하여 완강한 투쟁을 벌리였다.

당시 애국적지식인들은 일제의 탄압이 극심한 속에서도 《조선장고사》와 《조선장고문화사》, 《조선사회경제사》를 집필하여 민족사를 더욱더 풍부히 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애국적인민들은 일제의 악랄한 방해책동을 짓부시고 문화유적들을 보존수축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였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항일혁명투쟁시기 민족적전통을 고수하기 위한 장기간의 투쟁을 통하여 우리 인민은 조선민족이 제국주의침략자들에게 자기의 민족적전통이 침해당하는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 민족성이 남달리 강한 민족이라는것을 시위하였으며 민족자주정신을 지니고 민족자체의 힘으로 일제와 싸워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빛나게 성취할수 있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진행된 항일혁명투쟁시기 민족적전통을 고수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은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사와 더불어 길이 빛날것이다.

 

사회과학원 홍 철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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