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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투사 김책

 

김책동지는 일편단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우리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모시고 항일무장투쟁과 해방후 새 조국건설의 초행길도 함께 헤치였으며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도 수령님을 받들어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충실하였던 위대한 수령님의 가장 가까운 혁명전우, 혁명동지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통일단결의 중심, 령도의 중심으로 높이 받들어모시고 전진하는 조선혁명의 새로운 격류속에서 혁명의 참된 진리를 체득하고 주체16(1927)년부터 혁명에 참가한 김책동지는 반일지하단체에서 투쟁하다가 1927년 가을 일제경찰에 체포되여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여러해동안 감옥생활을 하였다. 그후에도 적들에게 체포되여 중국의 길림 등지에서 여러번 감옥생활을 하였으나 그때마다 혁명적절개를 지켜 굴함없이 싸웠다. 주체21(1932)년에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한 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전략전술적방침을 높이 받들고 중국 동북지방의 넓은 지역에서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벌려 인민들에게 혁명의 진리를 심어주며 항일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을 확대해나갔다.

특히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25(1936)년 5월 조국광복회를 창건하신 감격적인 소식에 접한 후 북만땅에서 조국광복회의 기치아래 광범한 대중을 묶어세우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였다. 한편 령활한 군사행동으로 일제침략자들에게 련속 심대한 타격을 안기고 조선인민혁명군의 필승불패의 위력을 시위하였다.

해방직후 함경남도에 파견되여 사업하던 시기 종파분자들이 《서울중앙》이요 뭐요하면서 날뛰자 조선혁명가들과 전체 인민들의 한결같은 지향을 담은 충성의 구호 《우리 민족의 영명한 령도자 김일성장군 만세!》를 함흥시안의 곳곳에 크게 내붙이고 종파분자들의 책동을 준렬히 폭로단죄하면서 당원들과 인민들을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워나갔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새 조국건설로선을 받들고 당, 국가, 군대건설사업에 몸바쳐나섰으며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도 적극 벌리였다.

그는 평양학원 초대원장으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와 북조선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된 후에는 내각부수상 겸 산업상으로 일하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전사는 수령님의 교시를 한치의 드팀도 없이 무조건 제때에 철저히 관철하여야 한다는것을 실천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관철하는 사업에서 매우 엄격하고 원칙성이 강하면서도 혁명동지들과 인민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품성으로 하여 인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조국해방전쟁시기 군사위원회 위원 및 전선사령관으로서 위대한 수령님의 독창적인 전략전술적방침을 높이 받들고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적극 투쟁하였다.

참으로 김책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 무한히 충직한 혁명투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책동지의 서거에 못내 가슴아파하시면서 전쟁의 나날에는 원쑤들이 그의 시신에 못된짓을 하지 못하도록 특별대책도 취해주시였으며 해방후 공화국창건을 기념하여 그와 함께 찍으시였던 사진을 평생토록 자신의 금고속에 소중히 보관해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은정에 의하여 김책시, 김책제철련합기업소, 김책공업종합대학 등으로 도시와 공장, 인민군부대와 학교명칭을 그의 이름을 달아 부르게 되였으며 주체57(1968)년에는 그에게 공화국영웅칭호가 수여되고 김책시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주체79(1990)년 8월에 조국통일상이 수여되였으며 조선로동당창건 30돐을 맞으며 혁명렬사릉에 그의 반신상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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