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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 민족주의자들과의 단합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이룩하신 불멸의 업적

 

제국주의침략세력을 반대하고 나라와 민족의 독립을 이룩하는 가장 정확하고 빠른 길은 바로 민족의 모든 반제애국력량을 민족해방투쟁에 총궐기, 총동원하는것이다. 민족적단합과 공동항일이야말로 반일민족해방혁명승리의 확고한 담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시기에 벌써 전체 조선민족을 반일의 기치아래 하나로 굳게 결속하여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할데 대한 사상을 천명하시고 항일혁명투쟁의 전 기간 민족의 단결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하시였으며 이 과정에 민족주의자들과의 단합을 빛나게 실현하는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민족주의자들과도 손을 잡아야 한다는것은 우리가 <ㅌ. ㄷ>를 무을 때부터 내세운 립장이였다.》

일제는 조선을 강점한 첫날부터 우리 인민의 반일적요소에 대하여 무자비한 탄압을 가하였으며 특히는 각계층 반일애국력량의 단합을 음으로양으로 방해하였다.

민족주의운동은 일제의 조선강점을 전후한 시기 왜멸복국의 구호밑에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을 주도하였다.

1919년 3.1인민봉기를 통하여 부르죠아민족주의가 더는 민족해방투쟁의 기치로 될수 없다는것을 뼈저리게 절감한 선각자들속에서는 로씨야에서 승리한 사회주의10월혁명의 영향밑에 공산주의를 동경하고 지향하는 기운이 급속히 자라났으며 우리 나라에서는 맑스-레닌주의가 빠른 속도로 전파되였다.

민족해방투쟁무대에 부르죠아민족주의를 대신하여 새로운 공산주의사조가 대두하면서 민족주의진영에서도 많은 선진분자들이 공산주의운동에로 방향전환을 하였다.

그러나 적지 않은 민족주의자들은 의연히 공산주의자들과 대치하고있었다.

결국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무대에는 공산주의와 민족주의 두 세력이 존재하면서 서로 반목대립되여있었다.

그것은 일제의 악랄하고 집요한 반공선전과 반일애국력량을 분렬악화시키기 위한 리간책동에 중요한 원인이 있었지만 다른편으로는 행세식맑스주의자들의 교조주의적이고 사대주의적인 좌경적망동과 고루한 민족주의자들의 편견에도 기인되였다.

당시 일부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주의자들을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사람들이라고 단정하면서 그들을 경원시하거나 배척하고있었다. 이들은 마치도 공산주의는 민족적리념과 상반되는 사상인것처럼 여기면서 공산주의자들은 협소한 민족적리념에서 벗어나 철저히 계급적원칙과 국제주의적립장을 고수해야만 로동계급과 전 인류를 착취와 압박에서 해방할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민족주의자들은 공산주의자들을 민족도 조국도 안중에 없이 오직 계급투쟁만을 웨치는 인간들이라고 외면하고있었다. 심지어 그들속에서는 공산주의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가지고있은데로부터 공산주의자들을 타매하며 적대시하는 현상까지 심하게 나타나고있었다.

민족주의운동의 상층은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민족주의좌파인물들에 대하여 일제경찰에 밀고하거나 암살해버리는가 하면 심지어 공산주의자들을 살해하는 반역행위까지도 서슴지 않고 감행하였다.

1929년 가을 흥경현 왕청문에서 국민부우두머리들에 의하여 감행된 최봉을 비롯한 청년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학살만행은 그 대표적실례였다.

이처럼 우리 나라 민족해방운동선상에서는 서로 힘을 합치고 함께 일제를 반대하여 싸워야 할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이 서로 분렬대립되여 반목질시함으로써 반일애국력량은 분렬약화되고 반일민족해방투쟁의 발전은 심히 억제되고있었다. 애국애족에 뜻을 두고 반일애국력량의 단합을 바라던 사람들은 1920년대중엽부터 공산주의와 민족주의 두 진영의 합작을 이룩하기 위한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리였다.

만주의 반일독립운동지도자들은 1926년에 국내에서 온 천도교혁신파대표와 형평사대표, 연해주에서 온 대표들과 함께 련석회의를 열고 고려혁명당을 결성하였다.

한편 1927년 2월 서울에서는 민족해방과 민족자주권의 실현에 같은 리해관계를 가지고있던 공산주의운동과 민족주의운동 두 지도자들의 공동의 노력에 의하여 통일전선조직으로 신간회가 창립되였다.

신간회운동은 민족의 정치적경제적각성을 촉진하고 민족적단결을 공고히 하며 일체 기회주의를 부인한 강령의 내용도 혁신적이고 혁명적이였으며 회원들의 직업별구성도 다양하고 광폭적이였다. 신간회에는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 3만 7 000여명이 참가하였으며 지방에 이르기까지 자기의 조직체계를 가지고있었다.

주의주장과 리념의 차이로 하여 대립되였던 공산주의운동자들과 민족주의운동자들이 통일단합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공동전선이 실현된것은 민중의 념원과 시대적요구에 부합되는 의의있는 사변이였다.

신간회는 민족력량의 총집결을 지향하였다.

민족해방투쟁무대에서의 공산주의와 민족주의 두 세력의 대립과 갈등에 불만을 느끼고있던 인민대중은 신간회가 창립되자 이를 열렬히 환영하였으며 이 단체에 대한 기대와 신뢰도 컸다. 그러나 좌우합작으로 민족의 총력을 하나로 집결시키려고 한 훌륭한 취지와 목적에도 불구하고 신간회는 1931년 5월에 자기의 존재를 끝마치였다.

신간회가 해산된 원인은 조선민족의 반일항쟁력량이 하나로 단합되는것을 제일 두려워한 일제가 그 내부에 쐐기를 박아 분렬를 꾀하고 개량주의적상층을 매수한데 있었다. 적들의 암해책동과 파괴작용을 막고 이 운동을 옳게 이끌어나갈만한 지도부와 핵심력량의 결여는 신간회가 해산되게 된 다른 하나의 주요한 원인이였다.

이 시기 녀성운동권에서도 민족주의운동계와 공산주의운동계의 화합과 단결을 모색하였다.

1927년 5월 서울에서 무국화벗들의 모임이라는 근우회가 조직되였다.

애국의 뜻을 품고 계몽사업과 반일운동을 해오던 조선녀성들의 총의에 의하여 결성된 근우회도 일제의 탄압책동과 조직자체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여 1931년 해체되고말았다.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발전에서 절박하고 필수적인 요구로 제기되였던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과의 단합문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빛나게 해결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 민족주의자들과의 단합을 위한 투쟁에서 이룩하신 업적에서 중요한것은 무엇보다도 민족주의자들과의 단합을 실현할수 있는 사상리론적대강을 마련하신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주의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가져야 민족주의자들과의 단합을 이룩할수 있고 민족의 리익을 옹호고수할수 있으며 민족의 운명개척에 적극 이바지할수 있다고 보시고 우리 나라에서의 민족주의발생과 그 변천과정에 대하여 깊이 연구분석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주의에 대한 견해와 관점도 다른 나라의 경험이나 선행한 리론에 구애되지 않으시고 철저히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과 우리 인민의 요구와 리해관계에 립각하여 새롭고 독창적으로 확립하시였다.

민족주의는 민족이 형성되고 발전하는데 따라 민족의 리익을 옹호하는 진보적인 사상으로 발생하였다.

조선봉건왕조정치의 심연속에서 내우외환이 거듭되고 외래침략자들의 강요에 의한 개국의 진통으로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하였을 때인 19세기중엽이후 《자주독립》, 《보국안민》, 《척양척왜》의 반제자주적인 구호를 내들고 력사무대에 등장한것이 바로 우리 나라 민족주의였다.

봉건적질곡과 신분적예속을 반대하여 자유, 평등, 박애의 구호밑에 전개된 부르죠아민족운동시기에는 인민대중의 리익과 신흥부르죠아지의 리익이 기본적으로 일치하였으며 따라서 신흥부르죠아지가 든 민족주의의 기치는 민족공동의 리익을 반영하는것으로 되였다. 그후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부르죠아지가 반동적지배계급으로 되면서 민족주의는 자본가계급의 리익을 옹호하는 사상적도구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흥부르죠아지들이 민족주의기치를 들고 민족운동의 선두에 섰다고 하여 민족주의가 처음부터 자본가계급의 리익만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반동적인 사상이였다고 보는것은 잘못된 견해라고 우리 나라의 실정과 결부하여 밝히시였다.

참다운 민족주의는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우수성과 리익을 귀중히 여기며 민족의 륭성번영을 지향하는 민족성원들의 공통된 사상감정과 심리를 반영한것이다. 다시말하여 민족주의는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리익을 옹호하는 사상이다. 사람들이 민족국가를 단위로 하여 살며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조건에서 진정한 민족주의는 곧 애국주의로 된다.

혁명이 민족국가단위로 진행되는 새로운 력사적조건하에서 식민지나라들에서의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사이에는 사실상 넘지 못할 심연이 있는것이 아니다.

민족주의에서 민족성에 대하여 강조하였다면 공산주의에서는 계급성에 대하여 강조하였을따름이지 외세를 반대하고 나라와 민족의 리익을 위하는 애국애족의 사상감정에 기초하고있다는 측면에서는 공산주의나 민족주의나 다 같은것이였다.

《프로레타리아트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맑스의 명제를 교조적으로 받아들이고 절대화하면서 애국주의, 민족주의를 공산주의의 원쑤처럼 여기고 배척하였다는데 바로 사이비공산주의자들, 행세식맑스주의자들의 리론실천적착오가 있었다.

공산주의는 로동계급의 리익만을 옹호하는 사상이 아니다. 공산주의는 로동계급의 리익과 함께 근로인민대중과 자기 민족의 리익을 옹호하는 참다운 애국애족의 사상이다. 민족주의 역시 나라와 민족의 리익을 옹호하는 애국애족이 사상이다.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의 실천투쟁의 구호도 반제자주이고 진정한 민족주의자들의 종착점도 반제자주의 길이다.

진정한 공산주의자도 참다운 애국자이며 또 진정한 민족의자도 참다운 애국자이다.

애국심은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이 다같이 소유하고있는 공통적인 사상감정이며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이 민족을 위한 하나의 궤도에서 서로 화합하고 단결하고 협력할수 있게 하는 최대공약수이다. 애국애족은 공산주의를 참다운 민족주의와 련결시켜주는 대동맥이며 참다운 민족주의를 련공의 길로 이끌어주는 원동력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동적인 부르죠아민족주의와 참다운 민족주의를 철저히 구별하여보며 부르죠아민족주의는 반대하고 경계하여야 하지만 참다운 민족주의는 지지하고 환영하여야 한다는것이 민족주의에 대한 옳은 관점과 립장이라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주의자들과의 단합을 실현하는데서 제기되는 원칙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과학적인 해명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주의자들과의 단합을 실현하는 문제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고 힘이 약할 때에는 하고 강할 때에는 하지 않는 문제도 아니며 주권을 잡기 전에만 하고 주권을 잡은 다음에는 하지 않는 그런 문제도 아니며 민족의 완전한 화합과 통일단결을 실현할 때까지 항구적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할 중요한 문제, 전략적문제라고 밝히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주의자들과의 단합을 위한 투쟁을 자원성의 원칙에서 부단한 해설과 설복의 방법으로 진행하며 공산주의자이든 민족주의자이든 자기의 사상과 주의주장을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말고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며 오직 민족공동의 리익과 위업을 첫자리에 놓고 여기에 모든것을 복종시킬데 대한 문제, 민족주의자들의 반일적이며 애국적인 사상감정은 적극 장려하여 단결하면서 그들의 계급적처지와 사상적미숙성으로부터 나타나게 되는 혁명투쟁에서의 불철저성과 동요성, 이중성과는 투쟁하여 극복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민족주의자들과의 단합을 실현하는데서 나서는 원칙적인 문제들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 민족주의자들과의 단합을 위한 투쟁에서 이룩하신 업적에서 중요한것은 다음으로 뜨거운 민족애와 넓으신 포옹력으로 민족주의자들이 민족해방위업수행의 참다운 길에 들어서도록 끝까지 이끌어주신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선 공산주의자들이 민족주의자들과의 사업을 잘해나가도록 끊임없이 교양하고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길림육문중학교에 적을 두고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시기 차광수를 비롯한 새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에게 조선의 일부 타락한 민족주의자들이 일제에게 굴복하여 《자치》와 민족개량주의를 설교하고있지만 량심적인 민족주의자들과 지식인들은 국내와 해외에서 뜻을 굽히지 않고 조선독립을 위해 투쟁하고있다, 일제의 야만적식민지통치를 체험하고있는 조선의 민족주의자들은 반일정신이 강하다, 그러므로 그런 민족주의자, 민족자본가들과는 손을 잡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에게 단일민족국가인 우리 나라에서 진정한 민족주의는 곧 애국주의로 된다는 원리로부터 출발하여 진정한 민족주의자들과의 단결과 협력을 언제나 중시하며 그것을 혁명승리의 확고한 담보로 보아야 한다고 가르치시면서 민족주의자들과의 단합을 실현하기 위한 사업을 잘해나갈데 대하여 강조하군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16(1927)년 2월중순 안창호가 길림시 대동공창에서 《조선민족운동의 장래》라는 제목으로 시국대강연을 진행할 때 서면질문으로 그의 그릇된 반일독립운동방법을 비판하시였으나 그를 비롯하여 강연회에 참가하였던 300여명의 사람들이 중국반동군벌에게 체포되였을 때에는 그들을 석방시키기 위한 투쟁을 조직전개하시였다.

그때 청년공산주의자들은 안창호의 리론에 대하여 반박하는 서면질문까지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왜 그를 구원하지 못해 그렇게 애를 쓰시는지 의문스러워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안창호의 사상을 문제시하는것이지 안창호라는 인간자체를 반대한것은 아니다, 안창호도 조선사람이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애국지사인데 어떻게 그를 구원하지 않을수 있겠는가고 설복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창호의 강연을 반박하신것은 그들이 사대주의적이고 민족허무주의적이며 개량주의적인 립장에서 벗어나 조국을 해방하는 성스러운 싸움에 더 적극적으로 투신해주기를 바라시였기때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민족주의자들과 사상투쟁을 하신것은 그들을 타도하자는것이 아니라 그들을 깨우쳐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반일의 기치아래 묶어세우시려는데 목적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원동의 훈련기지에서 상해림시정부의 김구세력과 합작하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실 때에도 조선인민혁명군안의 일부 지휘성원들도 처음에 그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리유는 반공분자인 김구와의 합작이 가능하겠는가 하는것이였고 설사 합작이 성사되는 경우에도 그것이 조국해방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는가 하는것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의 민족주의에 대한 주체적견해와 립장에 대하여서와 열렬한 민족애와 넓으신 도량으로 민족주의자들과의 단합을 실현하시려는 큰뜻을 받아안고는 자기들이 김구의 애국심을 중시할 대신 그의 반공적측면만 너무 일면적으로 보았다고 자책하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의도에 대하여 전적으로 지지찬동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처럼 공산주의자들을 부단히 교양하시여 반일독립운동에 몸바쳐 투쟁하고있는 민족주의자들을 민족해방운동의 선배로, 애국자들로 존경하고 존대하면서 나라의 독립과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의 길에서 변심없이 잘 싸워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민족주의자들과의 단합을 이룩하기 위한 사업을 인내성있게 꾸준하게 벌려나가시였다.

한때 새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사이에는 일정한 마찰과 대립도 있었다.

고이허, 현묵관과 같은 국민부상층이 1929년 가을 흥경현 왕청문에서 새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을 여러명이나 살해한 왕청문사건(주-일명 남만청총대회사건이라고도 함.)이 발생하였을 때 새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은 고루한 민족주의자들의 반민족적인 학살만행을 통렬히 규탄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왕청문에서의 희생이 아무리 참혹하고 가슴아픈것이라 하더라도 국민부의 반동적인 상층이 범한 죄행을 민족주의진영전체의 잘못으로 증폭시켜 전가할수 없으며 대의를 위하여 동지들의 희생으로부터 오는 슬픔과 분노를 묵새기며 반일민족통일전선의 기발아래 민족주의자들도 다 하나로 묶어세워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일제의 식민지기반에 얽매여 민족의 운명이 경각에 달한 위급한 시각에 민족해방을 위하여 투쟁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협애한 편견에 사로잡혀 자기의 사상과 주의주장만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민족적의리와 량심을 저버리는것으로 될뿐 아니라 반일민족통일전선을 저애하며 나아가서는 우리 민족을 자기들의 영원한 식민지노예로 만들려는 일제의 민족말살책동을 도와주는것으로 된다는것이 그 당시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시였던 민족단합이 경륜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민족주의자들과의 단합을 얼마나 중시하시였는가 하는것은 갓 창건된 반일인민유격대의 첫 사업으로 단행된 남만원정과정을 통하여서도 잘 알수 있다.

당시 반일인민유격대가 단행한 남만원정의 주되는 당면목적은 통화지방에서 활동하는 량세봉사령이 지휘하는 독립군부대와의 공동전선을 맺으려는데 있었다.

박훈을 비롯한 유격대지휘성원들은 량세봉이 반공사상으로 쩌들대로 쩌든 국민부계통의 민족주의자인데 공산주의자들과의 합작을 달가와하겠는가고 하면서 머리를 기웃거리였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국의 구국군과도 공동전선을 맺었는데 반일이라는 공동의 경륜을 두고 한피줄을 가진 사람들끼리야 손을 잡지 못할 리유가 무엇인가고 하시면서 독립군부대와의 통일전선을 어떻게 하나 성사시켜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의 간계에 넘어간 량세봉의 요지부동의 반공자세로 하여 합작에서 실패하였지만 그들이 언제인가는 공산주의자들의 진심을 리해하고 유격대와의 련합의 길에 들어서게 될 날이 오리라는것을 의심하지 않으시였으며 그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으시였다.

결국 량세봉은 후날 련공에로의 방향전환을 결심하였다. 이것을 내탐한 일제는 유격대와 독립군의 합작을 가로막기 위하여 밀정과 주구들을 내몰아 량세봉을 기만유인하여 살해하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량세봉은 림종을 앞두고 자기 부하들에게 《나는 죽어서 항일을 할수 없지만 너희들은 살아서 김일성사령을 찾아가라. 살길은 그 길밖에 없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그의 유언이자 련공선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만원정시기 남만지방의 혁명조직성원들속에서 나타나고있던 민족주의자들과의 단합을 저애하는 그릇된 경향도 바로잡아주시였다.

국민부반동들은 남만지방에서 공산주의자들과 방향전환을 시도하는 혁신파민족주의자들에 대한 테로를 강화하고있었다. 류화지방의 공청원들과 반제청년동맹원들은 테로를 밥먹듯하는 국민부우파들과 결사적으로 대결해야겠다고 주장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복수의 칼을 벼리기 전에 이런 불상사가 어떻게 되여 일어나는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국민부가 민족주의우파의 소굴로 전락되였다고 하여 거기에 망라된 성원들을 다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문제는 일제가 국민부를 반동화할 목적밑에 앞잡이들을 파견하여 부단히 와해작전을 벌리는데 있다, 그들은 국민부내의 신흥세력인 혁신파에 주목을 돌리면서 그 내부의 분렬대립을 교묘하게 조장시켜왔다, 우리가 테로로써 국민부를 타도한다면 좋아할것은 일제놈들뿐이며 리득을 볼것도 일제놈들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민부의 반동화된 상층을 고립시키면서 거기에 잠입한 일제의 앞잡이들을 색출해내고 적들의 음모를 폭로해야 한다, 민족재생의 담보가 단합에 있다는것을 모두가 잊지 말자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1(1932)년 여름 이도백하에서 독립군이 중국인반일부대와 합세하여 유격대를 습격하고 무장을 해제할 음모를 꾸미고있다는 정보를 받고 유격대원들이 국민부테로분자들에게 타격을 가하고 희생된 최창걸의 복수를 하자고 나설 때에도 상대가 아무리 토비화되고 우경화된 군사집단이라고 하여도 한피줄을 나눈 동족이고 또 구국투쟁에 몸을 바치고있던 사람들인것만큼 군사적방법에 의한 보복이나 제재를 추구할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 그들을 정치적방법으로 설복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분격을 금치 못하는 유격대원들을 제지시키시였다.

독립군과의 합작을 단지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문제로만이 아니라 수백명의 독립군 대원들의 운명을 지켜주기 위한 중대사로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박훈을 비롯한 몇몇 유격대원들을 이도백하로 파견하시여 해설과 설복으로 독립군 대원들에게 애국력량의 단합을 호소하도록 하시였다.

유격대원들의 절절한 선동에 감화되여 끝끝내 독립군 대원들은 반일인민유격대오에서 같이 싸울것을 결의해나서게 되였으며 유격대와 독립군과의 통합이 이루어지게 되였다.

이에 대하여 일제의 문건에는 《동변도방면의 흥경, 환인, 류하, 집안, 관전 각 현 지방을 최후의 근거지로 하여 홍단배일을 표방하는 불온행동을 계속하고있는 조선민족파의 유일한 잔당인 조선혁명당(주-조선독립군을 말함.)이 최근 동변도지방 공비(주-적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을 모독하여 이렇게 불렀다.)의 지도밑에 있는 남만반일련합군에 참가하여… 합작을 책동하는 외에… 인민혁명군과의 접근합작도 기도하는데 이르러 독립군동을 표방하는 적화운동까지도 시도하게 되였다.

… 이들 민족파잔당의 흡수를 책모함에 이르러 민족파잔당의 공산파와의 접근은 점차 표면화되였다.》(《최근 만주에 있어서의 공산운동의 현황검토》 재만일본제국대사관 경무부 1935.7.3 45~46페지)고 기록되여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30년대 후반기 상설적인 반일민족통일전선조직체를 결성하시고 거기에 민족주의자들을 튼튼히 결속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상설적인 반일민족통일전선조직체인 조국광복회를 창립하시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발표하신 이후 민족주의자들과의 단합을 실현하기 위한 사업은 더욱 활기있게 추진되였다.

조선혁명군 정부참모장으로 활동하던 윤일파는 위대한 수령님께 서한을 올려 조국광복회창립을 축하하고 앞으로 반일전선에서 긴밀한 련계를 지을것을 희망해왔다.

또한 상해의 조선인거류민단에서 활동하고있으면서 상해, 베이징, 천진 등 중국관내에서 다년간 독립운동에 몸바쳐온것으로 하여 애국지사로서 민족주의운동자들속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있던 박씨성을 가진 독립운동자는 만주에까지 와서 조국광복회 남만대표였던 리동광을 만나 앞으로 국내와 국외를 포괄하는 넓은 령역에서 조국광복회사업을 널리 전개해나갈것을 약속하였으며 앞으로 전 민족적인 무장력량으로서 《독립혁명군》을 결성하기 위한 방도문제까지 토론하고 갔다.

주체27(1938)년에는 국민부산하의 마지막 독립군부대가 최윤구를 따라 조선인민혁명군에 편입하였다.

이것은 우리 나라 민족해방투쟁사와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사에서 거대한 력사적의의를 가지는 경이적인 사변으로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시종일관하게 내세우시고 실시하여오신 통일전선로선과 정책의 승리였으며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서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쌓아올린 커다란 민족사적업적이였다.

조선인민혁명군과 독립군의 련합은 리념이 다르고 신앙과 정견이 서로 다른 사람들도 나라와 민족을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있다면 얼마든지 단결하고 화합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준것으로서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자들이 반드시 따라배워야 할 선구자적인 본보기였다.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제의 패망이 가까와옴에 따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의 주류인 항일무장투쟁에 합류하려는 민족주의자들의 열의는 더욱더 승화되였다.

리용을 비롯한 국내의 많은 민족주의자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통일전선로선을 받들고 조국광복회조직에 가입하여 반일투쟁을 같이하였으며 보천보전투후 조선인민혁명군에 군자금을 보내자고 미국에 있는 동포들에게까지 호소하였던 상해림시정부 주석 김구는 김일성장군님께서 지휘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과 련합해야 독립을 이룩할수 있다는것을 확신하고 1944년에 위대한 수령님께 련락원까지 파견하였다.

김구의 비서로서 그의 련락원으로 파견되였던 안우생은 그때를 회상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1944년말이였다.
   …

백범선생은… 몇몇 측근들과 숙고한 끝에 김일성장군님께 사람을 파견하기로 했던것이다.

만주벌판과 백두산일대를 주름잡으며 백만관동군과 일만군경을 상대로 가렬처절한 혈투를 벌려온 조선인민혁명군의 혁혁한 전과는 내외동포들속에서 전설처럼 전해지고있었으며 광범한 대중속에 공고한 지반을 닦은 혁명군의 권위에 대해서는 일제어용출판물들까지도 감히 감출수 없었던 사실이였다.

전설적영웅 김일성장군님께서 령도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과 어떤 형태로든지 련합을 실현해야 한다는 백범선생의 생각이 굳어진 반공관념까지도 능히 뛰여넘게 한것이다.》

1940년대 조선독립운동자들의 활동방식과 민심동향의 변화에 대하여 일제는 저들의 문건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였다.

《사상사건에서의 특이한 점

종래와 같이 주의주장의 리론구성에 구애되지 않고 중심목표인 조선민족의 독립에 중점을 지향시키고있으며 따라서 종래의 대립관계에 있었던 공산주의운동과의 관계에서도 심히 접근하고있으며 민족주의분자와 좌익분자와의 혼재합작으로 이루어지는 사건과 같은것도 드물지 않는 상황에 있다.》 [《고등외사월보》 제51호, 조선총독부 경무국 보안과, 소화19년(1944년) 3월–4월분, 5페지]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밑에 청년공산주의자들과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이 자신들의 투철한 조국애와 민족해방을 위한 실천투쟁으로써 공산주의자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들이라는것을 온 민족앞에 과시하고 민족해방투쟁의 진두에서 민족주의자들과의 단합을 위해 헌신적이고도 희생적인 노력을 기울여왔기에 수많은 민족주의자들이 참다운 민족해방위업수행의 길에 들어서게 되였으며 항일혁명투쟁발전에 자신들의 뚜렷한 생의 자욱을 남길수 있게 되였다.

항일혁명투쟁의 나날 조선의 참다운 공산주의자들이 민족주의자들과의 단합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이룩한 업적은 해방후 애국과 매국, 진보와 보수, 민주와 반동사이에 첨예한 대결이 벌어지고있던 그렇듯 복잡한 정세속에서도 완고한 민족주의자들과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할수 있게 한 참다운 본보기였고 고귀한 경험이였으며 튼튼한 토대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항일혁명투쟁시기 민족주의자들과의 단합을 이룩한 경험은 북과 남, 해외의 모든 통일애국력량이 사상과 리념, 정견의 차이를 초월하여 일치단합하면 반통일세력을 몰아내고 조국의 통일과 민족의 자주적발전을 이룩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사회과학원 박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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