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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자료를 통하여 본 항일의 전설적영웅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위인상 (1)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20성상 항일혁명투쟁을 승리에로 령도하시여 조국광복의 위업을 이룩하신 전설적영웅이시며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에서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미제침략자들을 때려부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며 사회주의혁명과 건설을 현명하게 이끄시여 식민지동방일각에 사회주의강국을 일떠세우신 절세의 위인이십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2권 156페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조직전개된 영광스러운 항일혁명투쟁은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우리 인민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에서 가장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영광스러운 혁명투쟁이였으며 모든것을 자체로 해결하면서 발톱까지 무장한 일제침략자들을 대상하여 싸운 간고한 투쟁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투철한 자력독립의 혁명적신념과 의지, 배짱을 지니시고 백절불굴의 혁명정신, 탁월한 군사전략전술로 간고하고 시련에 찬 항일혁명투쟁을 승리의 한길로 이끄시였다.

민족수난의 비운이 가장 암담하게 드리웠던 일제식민지통치시기 반일의 기치아래 우리 인민을 조국해방의 성전에로 불러일으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태양의 존함은 민족적독립과 존엄의 상징이였으며 민족대단결의 기치였다.

이 글에서는 당시의 문헌자료를 통하여 우리 민족이 항일의 전설적영웅으로, 민족해방의 구성으로 높이 흠모하여마지 않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위인상의 일단을 개괄해보려고 한다.

길림주재 일본령사가 1929년 5월 14일부로 일본외무대신에게 보낸 조선공산청년회조직과 관련한 보고요지에 《김성주》라는 존함을 기록한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당시 국내에서 발간되였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경성일보》, 《매일신보》, 해외에서 조선어로 발간된 《만선일보》와 《오사까아사히신붕》, 《오사까마이니찌신붕》, 《쁘라우다》를 비롯한 각종 국내외신문, 《대안비적상황에 관한 건》, 《공비관계서류》, 《사상대책월보》, 《토벌순보》, 《경우》를 비롯한 일제관헌문건, 기타 출판물을 비롯한 수백여종의 각종 문헌자료들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과 함께 항일무장투쟁과 관련한 내용이 기록되여있는것을 찾아볼수 있다.

실례로 《조선일보》는 1937년 6월 한달동안만도 항일무장투쟁소식을 보도한것이 수십여건이나 되며 함경남도 경찰문건인 《대안비적상황에 관한 건》은 1936년 5월부터 1937년 10월까지의 기간에만도 80여건이나 되는데 이 문건의 결본이 과반수이상이라는것을 고려해보면 거의 매일과 같이 기록한것으로 된다.

무엇보다도 당시의 문헌자료들은 탁월한 령군술과 전략전술로 항일무장투쟁을 승리에로 이끄신 강철의 령장으로서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위인상을 보여주고있다.

자력독립의 기치밑에 조직전개된 항일무장투쟁은 일제침략자들을 쳐물리치고 민족의 자주권과 나라의 독립을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이룩하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반일항쟁으로서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의 새로운 단계를 열어놓은 력사적인 장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1(1932)년 4월 25일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시여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주류인 무장투쟁을 직접 담당하고 이끌어나갈 원동력을 마련하시였으며 그를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강화발전시키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은 조선에서 일제식민지통치를 뒤집어엎고 조선인민의 민족적독립과 사회적해방을 달성하는것을 자기의 가장 중요하고도 첫째가는 목적과 사명으로 내세운 우리 인민의 혁명적무장력이였으며 간도와 동변도일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전 조선지역에서 군사정치적으로 가장 강대한 항일무장력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십수백배나 되는 대적과의 대결에서 언제나 주도권을 틀어쥐고 련전련승을 이룩하시면서 조선인민혁명군을 그 어떤 정황에도 능숙하게 대처할수 있는 다양한 전법과 전술을 소유한 강군으로 강화발전시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끄시고 장기간의 지속적이고 격렬한 군사정치활동으로 일제침략자들에게 심대한 정치군사적타격을 가하고 식민지통치체계를 밑뿌리채 뒤흔들어놓으시고 조선민족의 독립의지와 신념을 내외에 널리 과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 유인매복전술, 동성서격전술을 비롯하여 위성타원전술, 망원전술 등 령활무쌍한 전법으로 일제침략자들에게 끊임없는 군사정치적타격을 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가 대륙침략전쟁준비에 광분하면서 조선민족말살책동을 악랄하게 벌리고있던 시기인 주체26(1937)년 6월 보천보의 식민지통치기관들을 통쾌하게 후려치심으로써 조선은 죽지 않고 살아있으며 싸우고있다는것을 온 세계에 시위하시였으며 주체28(1939)년 5월에는 력사적인 무산지구전투를 단행하시여 적들이 《전멸》당했다고 선전하던 조선인민혁명군이 건재해있을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더 강대한 력량으로 자라나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계속 철추를 내리고있다는것을 만천하에 과시하시였다.

만주국 군정부가 발행한 잡지 《철심》(1937. 5호)에《김일성… 선전과 전투의 능란한것은 다른 … 부대들이 도저히 따를수 없다. 각 토벌대가 모든 힘을 다하여 그를 섬멸하려고 애쓰고있으나 교묘하게 예봉을 피하여 신출귀몰하며 각지에 나타나 용맹을 떨치고있다》고 한 기록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신출귀몰》한 전략과 전술, 전법으로 일제와 맞서 오랜 기간 항일혈전을 벌리신데 대한 생동한 반증의 하나이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경성일보》를 비롯한 국내의 각종 신문들과 일제와 만주국의 경찰문건들, 여러 나라 통신들이 보천보전투가 진행된 소식을 광범히 실었다. 《동아일보》 1937년 6월 6일부는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과 함께 보천보전투에 대한 소식을 보도하였으며 《경성일보》(1937. 6. 6.)도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전략전술과 위대한 풍모에 대하여 소개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신 조선인민혁명군은 단순히 군사활동만을 벌리는 무장대오가 아니라 광범한 군중을 의식화하고 조직화하여 반일투쟁에로 조직동원하는 정치적군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특히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항일무장투쟁의 전기간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는것처럼 유격대가 인민을 떠나서 살수 없다.》는 구호밑에 조선인민혁명군이 명실공히 인민의 군대로서의 자질과 면모를 갖추도록 하는데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25(1936)년 12월에 몸소 작성공포하신 《조선인민혁명군 잠행조례》에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성격과 사명, 지휘관, 병사들이 일상생활에서 준수하여야 할 규범들과 행동준칙들이 자세히 밝혀져있다.

잠행조례가 지향하고있는 목적은 명백하였다. 그것은 인민의 리익을 조금도 침해하지 않고 군민이 하나로 되고 관병이 하나가 되여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을 발휘함으로써 인민이 학수고대하는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기어이 우리 힘으로 이룩하자는것이였다.

잠행조례를 관통하고있는 기본정신은 사랑이였다. 다시말하여 인민에 대한 사랑, 병사들에 대한 사랑, 지휘관들에 대한 사랑을 철칙으로 삼으라는것이였다.

조선인민혁명군 잠행조례는 그 누구를 통제하고 단속하기 위한 규칙이나 법문서가 아니라 인민과 군대, 지휘관과 병사들사이를 뜨거운 정으로 이어주는 사랑의 법전, 사랑의 헌장이였다.

미국에서 발행된 《신한민보》 1937년 9월 30일부는 《…간도를 근거하고 활동하는 김일성씨의 무장부대가 있어 지난 6월에 국경을 넘어 갑산 보천보를 습격하여 왜군경의 간담을 떨어뜨렸고 그후에도 동군의 행동이 <동아일보>와 기타 신문에 자주 보도되였다.》고 하면서 《…한중의 용군중에 가장 용맹스럽고 쌈 잘하는 군사는 한인 김일성장군통솔하에 전혀 한인으로 편성한 사단이라고 한다. … 그들의 단결존재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데 있는것이며 일종 가족식계통적지배에다 의협충용 등 전통적정신훈련을 겸해서 그 단결이 더 굳은것이다. 이로 인하여 수령이 한번 령을 내리면 그 부하가 수화를 가리지 않고 내닫는것이다.

… 그들의 목적은 다만 민족을 위하여 원쑤를 갚는것뿐이요, 전략은 많이는 유격방식을 취하여 신출귀몰하므로 왜적으로 하여금 갈팡질팡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는것이다.》라고 썼다.

 이전 쏘련의 도서에서는 이렇게 썼다.

《조선빨찌산들의 성공적인 반일투쟁의 가장 중요한 조건의 하나는 빨찌산들과 조선근로대중과의 련계의 견고성이다.

북부조선의 농촌들에서 빨찌산들이 식량과 유생력량을 공급받고있는데 대해서는 더 말할것도 없고 그들은 도시주민들과도 매우 견고하게 련결되여있다.

빨찌산들이 자기 나라 근로대중과의 련계의 이러한 견고성은 주민들에게 있어서 빨찌산들은 일본출판물들이 지껄이고있는 비적이 아니라 억압받는 대중속에서 나왔으며 제국주의와의 무장투쟁의 곤난을 자신들이 담당하고있으며 일본제국주의의 기반으로부터 모든 조선인민들을 반드시 해방시키게 될 길을 가르쳐주고있는 자기의 사람들로 되고있다는 바로 거기로부터 흘러나오고있다.》(《조선은 일본제국주의의 군사기지》 쏘련군사출판사 1939년 모스크바 84페지)

위대한 수령님의 고매한 위인적풍모에 대하여서는 김정부가 잡지 《삼천리》에 자기가 조선인민혁명군 밀영에 와서 직접 눈으로 보고 심장으로 느낀것을 솔직하고도 대담하게 피력한데서 그 일면을 찾아볼수 있다.

《<…김일성>이라 하면 국경일대에선 너머나 알니엇고 신문지나 본 사람은 누구나 기억하리라.

총사장이란 이름을 가지고 X에 가까운 만인, 조선인부하를 이리저리 통제해가며 습격싸흠, 완강히 군대와 저항해가며 산중소굴을 지휘해가는 그! 은근히 동의자를 규합하며 이일저일을 꿈꾸는 그! 그는 과연 어떤 인간인고?

김정부옹은 많은 흥미를 가지고 이 수수꺽기의 인간을 회견하였든것이다.

후리후리한 키, 우락부락한 말소리음성을 보아 고향은 평안도인듯. 예상보다 년령은 너머나 젊은 혈기방장의 30미만의 청년. 그는 만주어에 정통, 어대까지 대장이란 표적이 없고 복장, 식음에까지 하졸과 한가지로 기거를 같이하며 감고를 같이하는데 그 감화력과 포용력이 잇는듯하게 보엇다.

…》(《삼천리》 1937년 10월호)

이 글은 혜산에 있던 천도교 도정 박인진의 제자인 량일천이 쓴것으로서 일제당국의 감시와 통제 특히 조선인민혁명군의 움직임에 대한 보도관제가 심하였던 당시의 환경에서 잡지 《삼천리》가 이런 정도의 기사를 실었다는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는것이다.

1937년 5월 만주국 군정부에서 발행한 《철심》은 《김일성 결연한 공산주의자로서 30살도 안되는 젊은이》이나 《현재로서는 동변도에서 손꼽히는 집결세력》이라고 하였다.

하기에 동북항일련군의 지휘간부인 주보중은 1941년 1월 국제당에 보낸 서한에서 《김일성 가장 훌륭한 군사간부이며 … 조선인동지들중에서 가장 우수한 일군이다.》라고 높이 칭송하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일제가 자인하듯이 탁월한 령군술과 전략전술로 《승천입지》, 《신출귀몰》하면서 일제침략군에게 강력한 정치군사적타격을 안겨 식민지통치를 밑뿌리채 뒤흔들어놓으신 백두산의 호랑이, 만고의 빨찌산영웅, 절세의 애국자이시였다.

 

사회과학원 박사 리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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