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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악봉전투​

 

조선인민군의 한 구분대가 전술적으로 중요한 감악봉을 점령하고 그곳을 지켜 싸운 전투.
 감악봉전투는 위대한 조국해방전쟁 제3계단시기인 주체40(1951)년 2월 중순에 진행되였다. 감악봉은 강원도(남)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루면서 제천-원주간도로를 끼고 제천서북쪽 약 12㎞, 원주동쪽 5㎞ 지점에 있는 고지이다.

조선인민군의 공격에 패배를 거듭하면서 흥전, 횡성, 원주를 거쳐 남으로 도망치던 미제침략자들은 제천계선에 이르러 대렬을 수습보충하고 감악봉에 방어시설물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주체40(1951)년 2월 16일 전선에서 활동하던 조선인민군의 한 구분대는 감악봉의 적을 치고 아군련합부대의 전투행동을 보장하는 한편 공격하는 적을 제압하면서 고지를 고수할데 대한 명령을 받았다. 구분대는 2월 17일 새벽에 감악봉의 적을 기습하여 고지를 점령하였다. 날이 밝자 적들은 력량을 수습보충해가지고 비행기와 포화력의 엄호밑에 수많은 땅크를 앞세우고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적들은 18차례에 걸치는 《파장식》공격으로 반돌격을 감행하여왔다. 그러나 고지를 지켜싸운 인민군용사들은 높은 희생성과 대중적영웅주의를 발휘하여 달려드는 적들에게 그때마다 섬멸적타격을 주었다. 적들은 근 1개 련대의 력량을 손실당하였으나 계속 발악적으로 공격하여왔다. 19번째의 전투를 앞두고 인민군용사들은 고지에서 공개당세포회의를 열고 감악봉을 목숨으로 사수할 굳은 맹세를 다지며 결사전을 준비하였다. 19일 이른 새벽 적들은 2개 대대의 력량으로 10여대의 땅크를 앞세우고 맹포사격을 감행하면서 고지에로 달려들었다. 감악봉앞 돌출부를 차지하고 싸우던 강호영분대원들은 적들을 무리로 쓸어눕혔다. 적들은 무데기로 쓰러지면서도 집요하게 기여올랐다. 고지의 용사들은 적들과 치렬한 육박전을 벌리게 되였으며 이때 강호영분대장은 두 팔과 두 다리에 중상을 입었다. 그는 심한 부상과 출혈로 팔다리를 움직일수 없게 되자 마지막힘을 모아 수류탄을 입에 물고 적들속에 굴러내려가 원쑤놈들을 쓸어눕히고 장렬한 최후를 마치였다. 이 순간에 고지의 용사들은 일제히 반돌격으로 맞받아나가 적들을 소탕하고 고지를 영예롭게 사수하였다.

감악봉전투에서 불멸의 위훈을 세운 강호영분대장에게 공화국영웅칭호가 수여되였다.

감악봉전투의 승리는 적들의 원주계선에로의 공격을 결정적으로 짓부시고 아군련합부대의 공격준비를 보장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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