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삼봉전투
보천보전투에서 심대한 타격을 받은 일제는 국경경비를 더욱 강화하는 한편 《긴급회의》를 열고 이른바 《정예》를 자랑하던 조선주둔 19사단소속 함흥74련대를 포함하여 약 2 000명정도의 대병력을 동원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을 추격하도록 하였다.
국내진공작전에 참가하였던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지양개에서 련환대회를 마친 다음 간삼봉계선으로 진출하였다.
간삼봉은 신갈파에서 서북방향으로 약 10㎞ 떨어진 사등방산줄기의 한갈래끝에 형성된 해발높이 1 200m안팎의 3개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으로서 서강등판에 솟아있다.
6월 30일 오전 8시경에 팔반도일대에 주둔하고있던 위만군부대들이 짙은 안개를 리용하여 간삼봉기슭에 나타나자 아군부대들은 적을 가까이 접근시킨 다음 불의의 집중사격으로 놈들을 족쳤다. 첫 타격에 많은 손실을 당한 적들은 여인수상류로 강을 건너온 함흥74련대와 합세하여 간삼봉 북쪽과 아군이 차지한 제1, 2고지의 정면으로 각각 공격하여왔으나 대기중에 있던 조선인민혁명군의 강력한 기관총사격과 수류탄벼락을 맞고 지휘체계까지 마비되였다. 적들은 시체에 시체를 쌓으면서도 정면으로 기여드는 한편 포사격의 엄호밑에 량익측으로 공격하여왔다. 조선인민혁명군대원들은 쏟아져내리는 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면서 달려드는 원쑤놈들을 쓸어눕혔다.
이날 전투에서 아군부대는 적들의 《토벌》기도를 완전히 파탄시켰다.
간삼봉전투의 승리는 대륙침략에 미쳐날뛰는 일제침략자들에게 심대한 군사정치적타격을 주고 조선인민혁명군의 위력을 다시한번 시위하였으며 국내진공작전의 승리를 공고히 하고 우리 인민에게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을 더욱 굳게 안겨주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호박대가리》에 대한 이야기도 바로 이 전투에서 생겨난것이다.
간삼봉전투가 이처럼 큰 승리를 이룩할수 있은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