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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17세기 시문학에 구현된 반침략애국정신 (2)

 

2.2.2. 나라의 방위력을 강화할데 대한 지향

 

련이어 겪은 전란과 그 이후의 정세는 나라의 방위력을 강화할것을 절실히 요구하였고 나라를 걱정하는 문인들은 국토방위의 애국적지향을 반영한 작품들을 많이 창작하였다.

리안눌의 시《8월에 배꽃이 활짝 피여》를 비롯한 여러 시작품들, 장유의 《변방의 노래》(3수), 김창흡의 《백전가》, 김득신의 《변방의 노래》(12수), 강유(1597-1668)의 《밤에 풍악소리 들으며 느낀바 있어》, 박세당(1629-1703)의 《회령가는 길우에서》, 《북쪽싸움터로 가는 려성제에게》, 정두경의 《김사탁을 종성으로 보내면서》, 《함경도관찰사 리시를 보내며》, 《의주로 가는 리사강과 작별하며》, 리수광의 《변방의 노래》(6수)와 같은 작품들은 북쪽변방을 강화할데 대한 지향을 노래한 작품들이다.

리안눌의 시문학에서는 후금과의 전쟁을 전후하여 시시각각 다가오는 외적의 침략위험에 경종을 울리면서 국방력을 강화할것을 주장하고있다.

시《흰머리칼을 뽑으며》, 《8월에 배꽃이 활짝 피여》, 《영훈루좌석에서 여고, 자방 두 종사에게 주노라》들에는 침략위험이 가증되는 현실에 대한 깊은 우려가 국방강화에 대한 강렬한 주장과 결부되여 토로되고있다.

특히 1618년에 창작한 시《8월에 배꽃이 활짝 피여》에서 시인은 통치배들속에서 태평성대만을 부르짖으며 군사를 소홀히  하고 사치와 향락만을 일삼는 풍이 만연되는데 대하여 이렇게 타매하고있다.

 

신묘년 중구절 송도길 가다보니

집집마다 배꽃 피여 나무모습 새로워라  

지금쯤 강화도엔 가을이 한창이려나

배꽃은 가지 가득 그쯘하게 피였구나

뭇꽃들이야 계절을 어길수 없겠지만 

한해에 봄철이 두번 다시 있으랴

늙은 몸이 조물주의 뜻 어이 알랴

인간세상 임진년처럼 될것 같아 근심되네 

 

시인은 계절에 맞지 않게 피여난 배꽃을 보며 임진년 같은 사태가 들이닥칠수 있다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있다. 여기에는 쓰라린 교훈을 망각하고있는 봉건통치배들에 대한 혐오,나아가서 또다시 파국에로 떨어지는 나라의 운명에 대한 심각한 경고의 목소리가 깔려있다고 할수 있다.

 

한밤중에 변방봉화 온산에 타번지니

뿔나팔 부는 소리 군영에 울리누나

새벽녘 기마정찰 돌아와서 하는 말

십만의 오랑캐 북쪽관문 다달았다네

이시는 리수광의 시《변방의 노래》(제5수)이다.

 

시에서는 《한밤중에 변방봉화 온산에 타번지》자 뿔나팔을 울리며 출동준비를 서두르는 군사들의 모습과 《십만의 오랑캐 북쪽관문 다달았다》는 기마정찰의 말을 통하여 북쪽오랑캐들의 침입으로 긴장된 북방정세를 정서적으로 펼쳐보이고있다. 7언절구의 짧은 시형식으로 변방을 강화해야 할 절박성을 자연스럽게 펼쳐보이고있는 이 시는 17세기 초엽에 들어서면서 날을 따라 긴장해지는 북방변경의 정세에 한시바삐 대처할데 대한 시인의 주장이 강하게 반영되여 있다.

김창흡의 시《백전가》는 금화현에서 벌어진 군사훈련모습을 목격하고 지은 시이다.

령서지방 10개 군의 군사를 망라하여 오성산 북쪽에서 진행하는 이 훈련은 말타기, 활쏘기, 진법숙달 등 장관을 이루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지만 시인은 군사훈련의 실태에 비해볼 때 매우 한심한 국방상태를 우려하고있다.

 

진짜 적을 만나면 이렇게 될런지

서북변방 큰 걱정 가볍지 않다네

...  

유독 조선만 싸울만 한 군사 없나니

훈련원, 어영청은 빈 이름뿐이구나

속오군은 더우기 근심스러운데

10년에 한번 훈련하여 어찌 된다더냐

비 튕기는 갑옷엔 푸른 이끼 돋고

투구엔 거미줄, 활집엔 구멍 숭숭 

갑자기 일 터지면 서둘러 닦고가니

하물며 상벌조차 분명치 않구나

오호라 이런 군사 적과 마주친다면

무기만 잡았을뿐 견고하지 못하리니

군사훈련 안되였으니 장군인들 온전하랴

나라의 운명이란 군사에 달려있다네

 

임진조국전쟁시기에 조선봉건왕조는 뒤늦게나마 훈련도감, 어영청을 설치하고 고정된 통솔체계를 골자로 하는 속오분수법(속오법)을 새로 적용하였고 17세기에 들어와서는 군사장비를 개선하기 위한데 일정한 관심을 돌리였다.

그러나 문존무비의 악습으로 군영책임자는 대부분 군사에 무식한 문관이 임명되였고 군포제도는 수탈공간으로 전락되여갔다. 군총(군인수)은 명색상 늘어났지만 상비무력은 오히려 줄어들고 훈련체계가 문란해져 무술훈련은 고사하고 장구류태반이 녹이 쓸어 못쓰게 되는 형편이였다.

시에서 푸른 이끼 덮인 갑옷과 구멍 뚫린 활집,거미줄 엉킨 투구 등은 바로 이처럼 지상공론으로 되여버린 국방강화를 개탄하며 그 후과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형상적으로 부각시키고있다. 시인은 계속하여 《병자년의 패전이 여기서도 계속》된다고 애타게 절규하면서 실지 유사시에 효과적으로 대처할수 있게 군력강화에 힘쓸것을 강조하고있다.

정두경의 시작품들에도 북부국경에로 떠나가는 친구들을 바래우며 국경방위의 필요성과  절박성을 노래한 작품들이 많다.

륙진의 하나인 종성으로 떠나는 지방관들을 전송하면서 지어준 시《김사탁을 종성으로 보내면서》와 《김원립을 종성으로 보내며》는 바로 북방오랑캐들의 침입에 대처하여 나라의 북쪽관문을 굳건히 지켜줄것을 간절히 바라는 서정적주인공-시인의 내면세계를 진실하게 펼쳐보이고있는 작품들이다.

 

국경은 오랑캐땅과 이웃해있고

하늘끝에 큰 강이 흐르고있네

변경을 지키는것 본분이거니

수주에는 근심이 없어지리라

 

이 시에서 시인은 김사탁이 종성에 새로 생겨난 거진에 임명되여가는것을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오랑캐의 침입으로부터 변경을 굳건히 지켜줄것을 간절히 부탁하고있다.

시인의 절절한 이 당부에는 바로 나라의 방위력강화에 대한 애국의 념원이 짙게 어려있다.

정두경은 일본의 침략에도 경각성을 높일데 대하여 노래하고있다.

《일본가는 사람에게》,《서장관 신택유를 바래우며》(2수),《통제사 리현달에게》(3수), 《경상관찰사 목성선을 바래우며》등의 작품들의 그 대표작이다.

시 《통제사 리현달에게》(3수)는 동남해안일대의 지방관직에 파견되여가는 리현달을 전송하면서 지어준 작품으로서 여기에는 왜놈들의 재침책동에 경각성을 높이고 해안방비를 강화할데 대한 지향이 토로되고있다.

 

장막안의 병부는 통제사의 징표요

싸움배는 모두다 장군에게 배속됐소

동쪽을 바라보면 해돋이가 장쾌하니

룡천검 틀어쥐고 검은구름 결딴내오

(제1수)

 

루에 올라 하늘 보면 별들이 빛나는데

그 기상 장군의 보검에 어려있소

동해에서 한번은 칼 쓸 때가 있으리니

왜놈들의 책동에 경각성을 높이오

(제3수)

 

보는바와 같이 시《통제사 리현달에게》는 언제 다시 쳐들어올지 모르는 왜적들의 책동에 경각성을 높일것을 전란의 교훈으로 거듭 환기시키고있다.

정두경의 시작품들은 남북으로 끊임없이 밀려드는 외적을 물리치고 나라의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애국적투쟁과정에 체험된 시인의 원쑤격멸의 기개와 강렬한 호소로 일관된 조국방위지향을 진실하게 반영함으로써 이 시기 반침략투쟁주제의 시문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2.2.3. 반침략투쟁에서 무훈을 세운 인물들에 대한 찬양

 

임진조국전쟁은 17세기에 들어와서도 의연히 문학의 형상원천으로 되였으며 특히 전쟁에서 발휘한 애국적인물들의 위훈은 민족의 자랑으로 간주되였고 따라서 이 시기 반침략투쟁주제 시작품들에서도 무시할수 없는 주제분야를 이루고있었다.

김창흡의 《홍의장군의 노래》, 《진주 촉석루》, 리원형(17세기 전반기)의 《나라 위해 죽은 기생을 추모하여》, 리기설(1558-1622 자; 공조, 호;련봉)의 《병정의 안해》, 정두경의 《동해의 용감한 녀인》, 《송둔암의 <렬녀전>에 쓰노라》등이 그 대표작이다.

대표적으로 김창흡의 시를 들수 있다.

시《홍의장군의 노래》는 전쟁초기의 어려운 나날에 의병투쟁의 첫 봉화를 지펴올린 곽재우(1552-1617 자; 계유, 호; 망우당)의 애국적위훈과 깨끗한 량심을 찬양하고있다.

시의 첫머리에서 임진년간에 왜적을 친 의로운 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곽재우보다 더 나은 사람은 없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있다.

 

싸움터에서 백마타고 종횡무진하면

붉은 옷 한번 봐도 왜적들 기겁했네

주춤거리며 감히 맞서지 못하였고

마침내 부딪치면 폭풍치고 불 일었지

총탄이 비오듯 해도 흰 말갈기 휘날리고

철갑들이 퇴각할 때 전포자락 가벼웠네

 

시의 전반부가 홍의장군 곽재우의 기상과 지략에 넋이 나간 왜놈들이 어찌할바를 몰라 갈팡질팡하다가 쓰러지는 몰골을 통쾌한 심정으로 부각시키였다면 후반부분에서는 주로 전쟁이 끝난 후 그가 보여준 청렴결백한 품성을 노래하는데 바쳐지고있다.

여기서 시인은 《큰 공을 세우기보다도 그다음 처신이 더욱 어려운것》인데 곽재우는 온 나라가 받드는 영웅으로서 조정의 높은 표창과 벼슬도 마다한채 초야에서 조용히 여생을 마친데 대하여 뜨거운 찬양의 감정을 토로하였다. 특히 의령땅에 돌아온 그가 전날의 용맹한 의병장모습과는 달리 자그마한 오막살이집 하나를 송화가루주머니와 낚시대가 실린 쪽배를 타고 고향의 산수를 즐긴 세부묘사에 력점을 찍으면서 이렇게 노래하였다.

 

깊은 마음 당시에는 헤아릴수 없었으나

오랜 세월 흐른 지금 그 마음을 보겠구나

홍의장군이여 그대는 아름다운 노래라

그대의 옛 터전에 말 세우고 노래하노라

 

곽재우가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목숨걸고 싸운것은 결코 명예나 보수를 바란데서 출발한것이 아니였음을 시인은 시에서 강조하려고 하였다. 이것은 입으로만 나라방비를 떠들다가도 정작 국난이 닥쳐올 때에는 일신의 안일부터 생각하던 부패한 봉건관료들과 다른 곽재우의 애국정신과 인간적풍모에 공감된 시인의 열정적인 토로이다.

한편 차운로의 시《곽재우가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쳐 여러차례 공세우다》에서는 임진조국전쟁시기 무훈을 떨친 곽재우를 잃은 애석함을 절절하게 노래하고있다.

 

붉은 옷 입고 요사스런 적 쓸어버렸어라

백발 되여 산골에 살면서도 나라를 사랑했네 

하늘세상 신선을 지켜주지 못하듯이

인간세상 이제는 곽장군을 잃었구나

풍운을 휘잡아 오랑캐의 기세를 평정하니

옥돌을 다듬어 나라 위한 그 기개 새겼구나

저 멀리 령남을 향하여 눈물은 하염없다

굳센 넋은 그 어디 외로운 묘에 의지했구나 

 

시는 임진조국전쟁에서 커다란 무공을 세운 곽재우가 사망한 1617년에 창작된것으로 보인다.

작품에서는 임진조국전쟁에서 홍의장군으로 왜적을 쳐부시는데 크게 공헌한 곽재우는 옥돌에 새겨져 그 이름이 후세에 전해질것이라는 믿음이 노래되고 한편《굳센 넋은 그 어디 외로운 묘에 의지했구나》와 같은 시구절을 통하여 당시 어수선한 나라정세에 대처할 인물이 없는데 대한 한탄과 애국적인물을 잃은 시인의 슬픔을 표현하고있다.

실학자이며 시인이였던 리수광의 작품들에는 애국명장 리순신에 대한 뜨거운 추모의 감정과 함께 조국의 운명을 두고 걱정하는 서정적주인공의 체험세계가 진실하게 형상되고있다.

시 《통제사 리순신의 전사를 애도하여》에서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위엄 높은 그 이름에 원쑤들 전률하고 

세상 휩쓴 기이한 공 천하에 소문났네

섬오랑캐 도망쳐간 바다엔 달 밝더니

장수별 떨어지고 새벽구름 자욱하다

파도는 영웅의 한 씻어줄 길 없어도

력사는 길이 전하리 원쑤친 그 위훈을 

오늘날 남아를 누구누구라 하랴

슬프고나 충의로운 리순신장군이여

 

보는바와 같이 시에서는 임진조국전쟁시기 바다에서 왜놈들의 수륙병진작전을 파탄시키고 전쟁승리를 위해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리순신에 대한 끓어오르는 추모의 정과 그의 높은 애국심을 다양한 감정의 교차로 훌륭히 형상하고있다.

그러면서 작품은 단순히 명장의 죽음에 대한 비통한 감정을 보여주는데 그친것이 아니라 이것을 침략자들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과 함께 리순신과 같은 인물이 없는데 대한 개탄의 감정과 결합시키고있다.

리수광의 시 《충민사》역시 우와 같은 경향의 작품들이다.

 

조국을 지켜싸운 제일가는 장군이여

갖은 험난 무릅쓰고 우리 나라 건졌다네

산과 강엔 증오의 그 기백 남아있고

하늘땅엔 영웅의 그 풍경 서려있네

대마도의 봄파도는 고요히 잠들고 

동해의 암운도 어느덧 개였구나

지금도 바다에선 왜적이 엿보나니

누가 다시 원쑤 친 장군의 큰 공 이을소냐

 

시에서는 임진조국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왔다고 하지만 나라의 정세는 여전히 긴장하고 《바다에선 왜적이 엿보》고 있으니 리순신과 같이 조국을 지켜싸울 장군이 없음을 한탄하고있는것이다.

17세기 한자시인중에서 가장 유명했던 석주 권필은 나라를 지켜선 인민들의 투쟁모습과 애국정신, 왜적의 발굽밑에 신음하는 인민들의 처지를 반영한 작품을 창작하였다.

 

변방기슭에 찬서리 내리고

기러기 남으로 날아가네

구월이 되여도 포위된채

금성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구나

 

원쑤와 싸우다 쓰러진 님

안해는 그 소식 못 듣고서

밤깊도록 홀로 앉아

겨울옷 지어 보내려 다듬이질하네

 

이것은 7언절구로 된 시《병사의 안해》이다.

시에서 시인은 남편을 원쑤치는 싸움에 떠나보내고 후방을 억세게 지키며 전선지원에 지성을 바쳐가는 안해의 높은 정신세계를 펼쳐보이면서 원쑤 왜적에 대한 끝없는 증오를 안고 불행과 고통을 꿋꿋이 이겨나가는 후방녀성들에 대한  찬양의 감정을 뜨겁게 전달하고있다.

김창흡의 시 《진주 촉석루》와 리원형의 《나라 위해 죽은 기생을 추모하여》, 리기설의 《병정의 안해》, 정두경의 《동해의 용감한 녀인》, 《송둔암의 <렬녀전>에 쓰노라》등은 임진조국전쟁시기 관료도 군인도 나라가 위기를 껶을 때 조선녀성들이 발휘한 슬기와 애국심을 잘 보여주고있다.

한편 정두경의 시《동해의 용감한 녀인》은 원쑤에 대한 끝없는 적개심을 간직한 한 녀인이 연약한 녀성의 몸으로 원쑤의 가슴팍에 비수를 박은 이야기를 통하여 원쑤와의 대결에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은 조선녀성의 애국적기상과 영웅적기질을 칭송하였다.

그런가 하면 《송둔암의 <렬녀전>에 쓰노라》에서는 임진조국전쟁시기 원쑤를 갚은 한 렬녀에 대하여 《영웅다운 그 명성 누구와 견주리오/이름난 옛 녀인은 렬녀에게 못미치리》라고 찬양하였다.

작품들은 전쟁에서 발휘한 조선녀성들에 애국심 나아가서 천대받던 인민들이 전쟁에서 발휘한 희생정신을 진실하게 보여준것으로 하여 의의를 가진다.

 

3. 결 론

 

17세기 창작된 반침략애국정신을 구현한 시작품들은 비록 애국, 우국의 리념과 민족의 얼을 지키려는 지향을 반영한 작품들일지라도 여기에도 창작자들의 세계관적 및 계급적제한성이 있다.

진보적시인들이 제창한 애국주의는 어디까지나 인민들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전제로 하는 봉건국가를 지키고 유지, 공고화하려는데로 지향되고있으며 그들의 애국심은 봉건적충군사상과 밀접히 결합된것이다.

그러나 거듭되는 전란으로 나라에 위기가 조성되던 시대에 반침략애국정신을 구현하려고 한 17세기의 시문학작품들은 우리 나라 중세문학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우리는 우리 인민의 애국정신을 구현한 민족의 시가유산들을 귀중히 여기고 적극 발굴연구하여 민족문화유산을 풍부히 함으로써 사회주의위업수행에 적극 이바하지하여야 할것이다.

 

김일성종합대학 김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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