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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행렬차의 기적소리 영원하리

 

위대한 장군님께서 리용하시던 야전렬차에는 오늘도 환한 불빛이 흐른다. 인민에게 베푸신 어버이의 다심한 은정이 뜨겁게 어려있는 문건들은 여전히 집무탁에 놓여있고 새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혁명의 힘찬 진군보폭처럼 벽시계의 초침은 멈춤없이 돌아가고있다.

옷걸이에 정히 걸린 야전솜옷과 야전복 그리고 보풀이 인 장갑…

금수산태양궁전에 보존되여있는 그 야전렬차안을 숭엄히 바라보느라면 금시라도 그이께서 들어서시여 인민들이 기다리는데 현지지도길을 계속 이어가자고 말씀하실것만 같아 발걸음을 쉬이 옮길수 없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온 나라에 뻗어간 두줄기 레루우에는 한평생 인민행렬차를 타시고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멀고 험한 길을 이어가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령도자욱이 뜨겁게 어리여있습니다.》

인민행렬차!

이는 말그대로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것을 생의 더없는 보람으로 여기시며 끝없는 헌신과 로고의 천만리를 이어오신 위대한 장군님의 한평생이 비껴있는 고귀한 부름이다.

《달리는 집무실》, 《달리는 숙소》로 불리운 인민행렬차와 더불어 어버이장군님의 인민사랑의 세계를 보여주는 전설같은 이야기들은 얼마나 많이도 태여났던가.

그가운데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막장에서 일하는 검덕의 광부들이 보고싶어 사랑의 기적소리를 울리며 찾아가신 이야기도 있고 새로 개건한 아이들의 야영소를 현지지도하시려 렬차에 오르시던 어느해 깊은 밤의 사연도 있다. 자신도 인민을 위하여 일하는 일군이라고 하시며 수십년전 사람들이 붐비는 일반렬차를 타시고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신 이야기는 오늘도 얼마나 커다란 충격을 불러일으키는것이며 길이 정 나빠 승용차가 못가면 기차로 가더라도 꼭 들리자고 하시며 룡양의 로동계급에게로 떠나시던 그날의 화폭은 또 얼마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고있는가.

인민행렬차로 초강도강행군을 하시는것은 백두산의 기질을 그대로 지니신 우리 장군님께 있어서 결코 달리하실수 없는 빨찌산식야전일과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 사랑하는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외국방문의 먼길에 오르시였을 때의 일을 잊을수 없다. 광활한 대륙을 횡단해야 하는 기나긴 방문로정을 강행군식으로 이어가실 결심을 피력하시며 이번 방문도 빨찌산식으로, 야전식으로 하자고, 화려하고 아늑한 초대소를 숙소로 정할것이 아니라 렬차를 숙소로 정하고 밤에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낮에는 방문해야 할 단위들을 련이어 쉬임없이 다니며 돌아보자고 뜨겁게 교시하신 우리 장군님.

닷새동안에 무려 7 000여리에 달하는 렬차강행군길을 이어가신 그 나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가는 렬차들의 소음때문에 근심스러워하는 일군들에게 나야 달리는 야전승용차와 렬차에서 쪽잠도 자고 달콤하고 깊은 잠도 자는것이 생활화되여있는데 오고가는 렬차의 소음이 무슨 대수인가고, 야전승용차의 발동기소리와 렬차의 덜커덩거리는 소리는 나의 자장가이고 잠동무라고 호탕하게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조국과 혁명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치시는 절세의 위인, 인민을 위해 겪으시는 온갖 고생을 더없는 락으로 여기신 우리 장군님께서만 간직하실수 있는 류다른 생활의 애착이고 긍지였다.

사나운 눈보라가 앞을 막아도 가시고 억수로 비내려도 멈추지 않으신 그 로고의 길을 따라 조국이 번영에로 줄달음쳤고 우리 인민의 행복이 나날이 커만 갔다. 그 인민행렬차와 더불어 지난 1970년대에는 혁명대오의 사상적일색화, 문학예술혁명을 비롯한 거창한 사회적변혁들이 마련되였다면 지난 1990년대에 이어 2000년대에 이르는 기간에는 강계정신, 성강의 봉화, 라남의 봉화, 함남의 불길이 시대의 기상으로 나래쳐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도약기가 펼쳐지였다.

인민행렬차는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혁명열, 투쟁열을 더 폭발적으로 분출시키시며 초강도강행군길을 이어가신 우리 장군님의 눈물겨운 헌신을 전하는 력사의 증견자이다.

온 나라에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을 지펴가시며 주체98(2009)년 한해동안에만도 무려 200여개 단위를 현지지도하시는 위대한 장군님께 일군들이 올해에 렬차를 타고 현지지도하신 거리가 지난 10년동안 렬차행군을 하신 거리와 맞먹는다고 삼가 아뢰인적이 있었다. 죄스러움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전사들을 달래시듯 이제는 렬차를 타고다니며 거기에서 생활하는것이 습관이 되여 그런지 렬차에 오르면 집에 온것같이 느껴지고 반대로 집에 들어서면 려관에 온것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시던 어버이장군님의 말씀을 정녕 천만년세월이 흘러가도 우리 인민은 잊지 못한다.

머나먼 혁명의 려정을 이어오시며 쌓으신 업적은 하늘의 높이에도 비길수 없이 거대한것이였지만 혁명생애의 마지막시각까지도 인민행렬차의 기적소리를 멈추지 않으신 위대한 장군님,

그래서 우리 인민은 조국과 혁명을 위하여 수천수만리 멀고 험한 길을 넘고 헤치신 위대한 장군님의 한생에 대하여 생각할 때, 자신의 열과 정을 깡그리 바쳐 사랑하는 인민의 행복을 꽃피워주신 그이의 은덕에 대하여 말할 때 가장 숭엄한 격정속에 인민행렬차, 이 부름을 먼저 떠올리는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한생토록 울려가시던 인민행렬차의 기적소리를 오늘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온 나라 방방곡곡에 울려가고계신다.

위대한 장군님처럼 인민행렬차를 집무실로, 숙소로 삼으시고 낮과 밤이 따로 없는 강행군을 하시던 어느해에는 단 두달동안에 무려 60개가 넘는 단위를 현지지도하시면서 사랑하는 조국에 비약의 숨결을 안겨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바로 이렇게 세계를 진감하는 절세위인의 힘찬 보무를 따라 찬란한 미래에로 나아가는 인민의 마음속에 인민행렬차의 기적소리는 변함없이 울리고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쌓으신 한평생의 업적과 함께, 그이의 숭고한 념원을 활짝 꽃피워가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영광찬란한 력사와 함께 인민사랑의 그 기적소리는 영원히 울려퍼질것이다.

주체110(2021)년 12월 8일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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