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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무효한 허위문서로 국권을 강탈한 특대형죄악

 

1905년 11월 17일 일제가 강도적방법으로 《을사5조약》을 날조하고 조선에 대한 식민지통치를 실시한 때로부터 어언 116년이 된다.

한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는 일본이 지난날 우리 나라를 비법적으로 강점하고 강요한 온갖 불행과 고통이 아물지 않는 원한의 응어리로 남아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는 지난날 근 반세기동안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고통을 들씌운 피맺힌 원쑤입니다.》

일본의 반동세력들은 과거 일제가 감행한 침략과 온갖 특대형반인륜범죄들을 비호두둔하고 《을사5조약》을 꺼들면서 조선강점과 식민지지배의 《적법성》에 대하여 떠들어대고있다. 그러면서 저들의 극악한 과거범죄행위들에 대한 국가적책임에서 벗어나며 배상을 회피하려고 음흉하게 획책하고있다.

《을사5조약》은 아무러한 법적효력도 가질수 없는 불법무효한 협잡문서이다.

국제조약의 체결은 주권국가들사이의 자원적인 의사합의를 기초로 하고있다.

조선봉건국가의 고종황제와 대신들은 자유로운 선택권을 보장받지 못하였으며 총칼로 무장한 일제의 로골적인 위협공갈속에 있었다. 날조과정의 비법성은 조선봉건국가의 최고주권자인 고종황제의 비준을 받지 못한데서 집중적으로 표현되였다.

국가들사이의 중요한 조약은 반드시 국가대표자의 전권위임장과 비준을 필요로 하는 형식을 취하게 되여있다. 이것은 근대시기부터 국제조약체결에서 보편적인것으로 되고있다. 국제법학자들이 발간한 《국제법잡지》에 실린 일본을 포함한 각국의 외교협정체결형식이 그것을 보여주고있다.

당시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를 규제하는 중요조약들은 전권위임과 조인, 비준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것이 국제적인 관례로 되여있었다.

그러나 일제는 조선의 국권과 관련되는 조약들을 조선봉건국가의 조약체결절차마저 강압적으로 뒤집어엎고 전권위임장과 비준이 없이 날조하는 강도행위를 일삼았다. 그 대표적인것의 하나가 바로 《을사5조약》이다.

국권을 지켜보려는 고종황제의 완강한 태도와 조선인민의 격렬한 반일투쟁기세, 조선을 둘러싼 렬강들과의 격화되는 모순에 위구를 느낀 일제는 《을사5조약》날조를 위해 총과 대포에 의거한 군사적강권을 발동하는 방법에 매달렸다. 계획부터가 강제성을 전제로 하였던것만큼 그 날조과정 또한 불법무도한 위협과 공갈로 일관되였다는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로일전쟁을 전후한 시기의 일본군자료들을 모아 편찬한 《륙군정사》에는 당시 조선주둔군사령관 하세가와의 보고서가 게재되여있다.

보고서에서 하세가와는 《을사5조약체결당시 일본군 기병련대와 포병련대까지 한양성내에 투입하여 완전장악했다.》고 하면서 조선강점의 제1공로자가 자기라고 주장하였다.

당시 고종의 반대로 황제의 비준과 국새날인을 받을수 없게 되자 일제는 조선봉건정부 외부대신의 인장을 훔쳐내여 제멋대로 찍는 비렬한짓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을사5조약》은 조약발효의 중요한 절차인 황제의 비준, 국새날인도 없이 날조되였다. 즉 합법적조약으로서의 초보적인 형식조차 갖추지 못하였다.

2002년 11월 미국에서 발간되는 한 신문에는 고종황제가 자기가 《을사5조약》문서에 비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영국에 알리는 밀서를 비롯하여 일본의 침략만행 등을 기록한 《동방의 래일》이라는 제목의 옛책이 발견된 내용이 실렸다.

당시 우리 나라에 체류하고있던 영국인의사 스토리가 쓴 이 책은 1907년에 발간되였다. 책에는 고종황제가 1906년 1월 29일에 작성하여 스토리에게 영국정부에 전해줄것을 부탁한 《을사5조약》의 무효화주장을 담은 밀서사본이 게재되여있었다.

고종황제는 《을사조약에는 황제가 비준하지 않았다.》, 《황제가 비준하지 않은 을사조약은 인정할수 없다.》는 등의 내용들을 쓰고 옥새까지 찍은 자기의 밀서를 스토리에게 주었다. 만일 밀서가 일본에 발각될 경우 고종황제가 목숨까지 잃을수 있는 극비문건이였다.

그때에 스토리가 쓴 책의 내용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못한 원인은 영국정부가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인디아와 영국령토에서만 배포한다.》는 조건부로 책의 발행을 허용하였기때문이라고 한다.

고종황제의 밀서내용은 《을사5조약》이 일제에 의해 완전히 날조된것이며 조선에 대한 일제의 군사적강점은 철저히 비법이고 그 무엇으로써도 정당화될수 없다는것을 다시한번 명백히 실증해주고있다.

일제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총칼을 휘둘러 날조해낸 이런 날강도적인 《을사5조약》에 기초하여 《한일합병》이라는 전대미문의 국토병탄행위를 감행하고 극악한 조선민족말살정책을 실시하였다.

40여년간의 식민지통치기간 일제가 강행한 조선민족말살정책은 력사에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야만적인것이였다.

일제에 의해 얼마나 많은 조선의 청장년들이 죽음의 전쟁터들과 고역장들에 끌려가 인간이하의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겪었는지 모른다. 일제가 랍치, 유괴, 강제련행하여 전쟁판과 공사장들에 내몬 조선사람은 중일전쟁도발후에만도 840만여명에 달하였다.

강도 일제는 100여만명의 조선사람들을 살륙하였으며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일본군성노예로 전락시키는 특대형반인륜범죄를 감행하였다.

일제는 우리의 말과 글 지어는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까지도 없애버리려고 간악하게 날뛰였으며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재부들과 우리 나라의 풍부한 자연부원을 닥치는대로 파괴, 략탈하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입힌 정신적 및 물질적피해는 상상을 초월하는것이다.

일본반동들이 아무리 파렴치하게 놀아대도 국권강탈자의 죄악을 감소시킬수도, 잔악한 조선민족말살력사를 지워버릴수도 없다.

일본은 지난날 우리 나라의 국권을 유린하고 강탈한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

주체110(2021)년 11월 17일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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