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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발휘된 8. 15인민유격대원들의 고결한 정신세계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해방후 처음으로 자기 조국의 품속에서 공장의 주인, 땅의 주인으로 되여 사람다운 생활과 참다운 행복을 체험한 우리 인민들은 조국이야말로 자기의 생명보다 더 귀중하며 조국을 찾아주신 수령님의 은덕에 한목숨바쳐 보답하는것이 응당한 도리라는것을 가슴깊이 자각하고 침략자들을 반대하여 희생적으로 투쟁하였습니다.》

며칠전 우리는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를 찾았다.

한목숨바쳐 공화국을 지키고 길이 빛내인 영웅들의 넋이 깃든 렬사묘를 돌아보던 우리는 어느 한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8. 15인민유격대 대장으로 싸운 공화국영웅 리기형동지의 묘비앞에 여러 사람이 그린듯이 서있었던것이다. 알고보니 영웅의 세 자식이였다.

그들은 해마다 전승절과 공화국창건기념일을 비롯한 뜻깊은 날을 앞두고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를 찾군 한다고, 그럴 때면 아버지가 생전에 들려주군 하던 8. 15인민유격대원들의 투쟁이야기가 떠오르고 우리 공화국을 대를 이어 굳건히 지키고 빛내여야 한다고 절절히 당부하던 목소리도 들려오는듯싶다고 감회깊은 어조로 말했다.

우리는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취재수첩에 그대로 옮겼다.

그것은 리기형동지의 인생담인 동시에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로 조직된 8. 15인민유격대의 별처럼 빛나는 투쟁의 행적이였다.

 

가자, 김일성장군님의 품으로!

 

그들의 이야기는 해방직후 남조선의 청년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였다.

왜냐하면 8. 15인민유격대의 대부분 대원들이 남조선에서 서울법정학교를 다니다가 어버이수령님의 품에 안겨 극적인 운명전환을 한 청년들이였기때문이다.

그들이 저주로운 남조선땅을 박차고 군사분계선을 넘은것은 해방된 이듬해였다.

해방은 되였으나 남조선을 강점한 침략자들은 민족반역자들과 야합하여 인민들의 총의에 의하여 세워진 인민정권기관들을 강제로 해산하였으며 참다운 배움을 갈망하는 청년학생들의 앞길을 가로막아나섰다.

해방된 제 나라, 제땅에서 마음껏 공부하고싶어하던 남조선의 청년학생들의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서울법정학교도 원쑤들의 야수적폭거로 하여 강제로 페쇄되였다.

리기형동지를 비롯한 서울법정학교의 학생들은 이에 항거하여 원쑤들과 용감히 맞서싸웠지만 놈들의 총칼앞에서 숱한 피만 흘리고 소원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러한 그들에게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새 조선의 첫 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을 세워주시고 로동자, 농민의 아들딸들을 공부시켜주신다는 감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가자, 북으로, 김일성장군님의 품으로!》

그들은 이렇게 웨치며 모임을 가지고 평양에 새로 건립되는 대학에 가서 공부하기 위하여 어버이수령님께 청원을 올리기로 결정하고 두명의 대표를 선출하여 떠나보냈다.

학우들의 절절한 당부를 안고 평양으로 찾아왔던 한 대표는 후날 그때의 일을 이렇게 회상하였다.

《…대표로 지목된 저와 한 교원은 적들의 감시를 뚫고 38˚선을 넘어 1946년 8월 30일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청사에서 꿈결에도 그리던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게 되였습니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저희들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서울법정학교에서 쫓겨난 학생들이 고뇌와 번민, 울분과 한탄속에 모대기고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학교까지 페쇄한단 말인가고 하시며 법정학교 학생들을 종합대학에 받아들여 그들의 소원을 풀어주자고 하시였습니다.

저도 울고 함께 왔던 교원도 눈물을 삼켰습니다.》

사선을 넘어온 대표들을 만나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친필존함이 새겨진 신임장과 함께 서울법정학교 학생들을 김일성종합대학에 취학시킨다는 문건을 안겨주도록 하시고 서울로 돌아가는 학생대표를 위해 기관차까지 따로 내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돌려주신 사랑을 안고 돌아온 학생대표를 맞이한 리기형동지를 비롯한 법정학교 학생들은 솟구치는 격정을 참을수 없어 《김일성장군 만세!》를 목메여 부르고 또 불렀다.

이렇게 되여 서울법정학교의 90여명 학생들은 어버이수령님의 품에 안기게 되였다.

평양에 도착한 그들을 친히 만나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법정학교 학생들이 드디여 왔다고, 기다렸다고 하시며 반가움을 금치 못하시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생들을 둘러보시며 동무들이 자기 소원대로 북반부에 들어와 마음껏 공부하게 되였으니 공부를 잘해서 새 조국건설의 훌륭한 역군이 되여야 한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그후 이전날의 서울법정학교 학생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각별한 사랑속에 꿈같은 학창시절을 보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 나라사정이 그처럼 어려운 속에서도 그들에게 장학금을 선참으로 보내주시고 교복과 내의류, 교과서와 생활필수품에 이르기까지 모두 무료로 공급해주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명절날이면 사랑어린 선물을 보내주시고 해마다 매 학생들의 생일상까지 차려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그들이 어버이수령님의 품에 안긴 때로부터 2년후 공화국이 창건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이 온 세상에 선포되고 우리의 국기가 창공높이 휘날릴 때 그들은 서로 얼싸안고 돌아가며 줄줄이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조국이 없어 온갖 천대와 멸시를 받던 지난날이 떠올라서였다. 자식들만이라도 공부시켜보겠다고 고생이란 고생을 다 겪으며 피타게 뒤바라지를 하던 부모들의 모습이며 눈물겨운 고학의 나날들도 떠올랐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속에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자기들의 희망을 마음껏 꽃피워온 학창시절은 그 얼마나 긍지스럽고 보람찼던가.

그들은 휘날리는 공화국기를 숭엄하게 바라보며 참다운 조국은 위대한 수령님의 품이며 그 품에 안길 때만이 배움의 희망도 삶도 꽃피울수 있다는것을 심장깊이 절감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몇해후 자기들이 목숨보다 귀중한 조국, 위대한 수령님의 품을 지켜 원쑤들과의 판가리결사전에 나서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조국은 목숨보다 귀중하다

 

전쟁의 불구름이 밀려왔다. 원쑤들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안겨주신 정다운 교정을 빼앗으려고 미친듯이 달려들었다.

주체39(1950)년 6월 27일 수십명의 남반부출신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은 자기 손으로 고향땅을 해방하고 참다운 자유와 행복을 갈망하는 남녘인민들의 앞길에 진정한 삶의 리정표를 세워줄 굳은 결의를 품고 인민유격대 대학생부대를 조직하였다.

거기에는 이전 서울법정학교 학생들도 망라되여있었다. 8. 15해방과 더불어 꽃피는 새 조선의 아름다운 생활을 남녘땅에 안고가기 위해 싸운다는 의미를 담아 그들은 부대의 명칭을 8. 15인민유격대라고 달았다.

우리 당과 공화국의 품속에서 누구보다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받아안으며 성장한 조국의 아들딸들이기에 그들은 이 땅에 전쟁의 불구름이 밀려오자 서슴없이 전선으로 달려나갔던것이다.

8. 15인민유격대원들이 렬차를 타고 평양을 떠난것은 6월 30일이였다.

7월 4일, 8. 15인민유격대는 서울시와 린접한 시흥계선에서 첫 전투를 치르었다.

그때 리기형동지는 대원들곁을 오가며 《동무들, 앞에 나타난 적들은 우리의 정든 대학을 빼앗으려는 극악한 원쑤놈들이다. 우리는 싸워 반드시 이겨야 한다.》라고 고무하면서 그들의 가슴에 증오의 불길을 지펴주었다.

이 전투에서 유격대는 많은 적을 살상포로하고 무기들을 로획하였다.

전과는 계속 확대되였다.

전쟁시기 8. 15인민유격대 대원으로 싸운 리영길녀성은 후날 자기의 수기에 이렇게 썼다.

《한 전투에서 나이가 19살이였던 김교웅동무는 단독으로 적진에 육박하여 화점을 까부시고 10여명의 적들을 순식간에 쓸어눕혔다. 전투가 끝난 후 나는 교웅동무에게 나이는 어린데 적들과의 싸움에서 그토록 용맹을 떨칠수 있은 비결이 어디에 있는가고 조용히 물었다. 그러자 그는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한 김일성종합대학 모표를 꺼내보이며 전승의 그날 대학모표를 달고 정든 교정으로 다시 돌아가 공부할 생각을 하니 천백배의 힘이 솟는다고 하였다. 우리 대학생부대의 모든 전투원들은 이런 소중한 꿈과 희망, 승리에 대한 신심을 안고 싸웠다.》

8. 15인민유격대는 평택과 천안계선전투에 이어 금강계선 무명고지습격전투에서 140여명의 적들을 살상포로하고 2문의 포와 3문의 중기관총을 비롯한 많은 군수물자를 로획하였으며 그후 적후투쟁의 간고한 길을 계속 헤쳐나갔다.

8. 15인민유격대원들은 전투원들인 동시에 정치공작대원들이였다.

갓 해방된 남녘의 도시와 마을들, 얼마전까지 원쑤들의 반공화국악선전이 범람하던 땅에서 한사람이 열, 백을 대상으로 선전활동을 벌린다는것은 결코 헐한 일이 아니였다.

수천발의 총포탄보다 더 위력한 정치공작대의 눈부신 활동에 공포를 느낀 적들은 그들의 생명을 해치려고 피를 물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8. 15인민유격대원들을 비롯한 정치공작대원들은 당과 공화국정부를 대표하는 자기들의 무거운 임무를 자각하고 한몸이 그대로 불씨가 되여 남녘인민들의 가슴속에 참된 삶의 숨결을 부어주고 애국의 불길을 지펴주었다.

8. 15인민유격대에 대한 한 자료에는 대전시에서 그들이 진행한 정치공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되여있다.

《당시 인민군부대들은 적을 추격하여 계속 남진하던 관계로 대전시에 대한 보위사업은 8. 15인민유격대원들을 중심으로 대전시민자신들에 의하여 수행되여야 하였다. 부대는 이 사업을 진행하는 한편 검찰, 내무기관들을 조직하여 파괴암해분자들을 숙청함과 동시에 각종 형식의 해설선전사업을 조직하여 많은 성과들을 거두었다. 그들은 곤난한 조건하에서도 각종 선전물들을 작성하여 교양자료로 제공하였으며 대전이 해방된지 10일만에 도당기관지인 〈충남로동〉의 창간호를 발간하게 하였다. 녀대원들은 도녀맹창설사업과 인민군부상자들을 치료하는 사업들을 활발히 벌리였으며 각종 예술단체들을 조직하고 공연활동도 벌리였다. 부대는 이밖에도 지리산빨찌산에 로획한 무기 60정과 기타 많은 전투기술기재들을 수송하여줌으로써 전시 리현상부대가 거창, 합천전투를 성과적으로 진행함에 큰 방조를 주었다.》

남녘인민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안겨주며 진격하는 인민군대오의 뒤에는 언제나 정치공작대원들이 있었다. 해방지역에서 그들은 원쑤들의 보이지 않는 총구와 맞서 생명까지 서슴없이 바치며 민주개혁의 실시와 인민정권의 수립, 인민생활안정향상을 위한 치렬한 전투를 벌렸다.

해방된 남조선전역에 전개된 정치공작대활동은 그야말로 세계전쟁사에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또 하나의 전선, 포성없는 전선이였다.

8. 15인민유격대원들중 많은 대원들이 정든 모교로 돌아오지 못하였다.

그에 대해 리영길녀성은 이렇게 회상하였다.

《강기슭에서 쏘아대는 적화점의 기관총탄알은 전우들의 가슴을 뚫었다. 리기형동무는 결전장에 열백번 쓰러져도 나의 조국, 나의 교정을 절대로 내주지 않으리라는 맹세를 안고 희생적으로 맨 앞장에서 적화점으로 달려나가 수류탄으로 일격에 까부셨다. 고지에 오른 리기형동무는 놈들과 육박전을 벌려 순간에 적병 수십명을 쓸어눕히고 등에 10여곳이나 창상을 입어 그만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리기형동무의 뒤를 이어 김교웅동무가 반땅크수류탄으로 밀려드는 적땅크를 보기 좋게 료정냈다. 놈들은 계속 달려들었다. 온몸에 부상을 입고 최후결전을 앞둔 김교웅동무는 해방후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겨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공부하던 행복한 나날들을 돌이켜보며 달려드는 적땅크를 향하여 마지막수류탄을 안고 일어섰다.

〈이놈들아,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똑똑히 보라!〉

이런 웨침과 함께 그는 육탄이 되여 적땅크에 돌입하였다. 김교웅동무는 이렇게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이러한 사실들은 8. 15인민유격대원들을 비롯한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이 자기 조국, 자기 인민을 위하여 얼마나 용감히 싸웠는가를 실증해주고있다.

주체40(1951)년 9월 30일부 《로동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리였다.

《…김일성종합대학 전체 교직원, 학생들은 한사람같이 조국을 수호하는 투쟁에 총궐기하였다. 전체 학생들을 비롯하여 교단에 섰던 교수들까지도 전선출동을 자원하여나섰으며 그들은 정치공작대로 또는 직접 무기를 손에 잡고 전선에로 달려갔다. 그리하여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수호하는 성스러운 투쟁에 직접 참가하게 된것을 무상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그들은 도처에서 용감성과 헌신성을 발휘하여 국가로부터 수많은 훈장들과 메달들을 수여받았다.》

력사는 수많은 전쟁을 기억하고있지만 나라의 최고대학의 학생들 거의 모두가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스스로 원쑤와의 판가리결전에 나선 례는 그 어느 나라, 그 어느 시기에도 없었다.

이러한 애국적장거는 오직 위대한 수령님께서 새 조선의 인재들로 한사람한사람 품들여 키워주신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속에서만 있을수 있는 일이였다.

주체45(1956)년 10월 25일 8. 15인민유격대원들의 투쟁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키워낸 종합대학 학생들이 전쟁이 일어나자 당의 부름에 호응하여 인민군대에 나가서도 잘 싸웠고 또 인민유격대에 참가하여 인민군대와 함께 직접 전투도 하고 정치공작사업도 진행한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라고 만족해하시였다. 특히 대학생들로 인민유격대를 조직하여 적과 직접 맞서싸우면서 해방지구에서 당, 정권기관, 사회단체를 조직하고 군중정치사업까지 진행한것은 높이 평가하여야 할 일이라고 치하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국가표창을 수여하도록 하시고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종합대학 학생들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조금도 굴함없이 자기의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 희생적으로 잘 싸웠습니다. 바로 이것은 그들이 자기들에게 모든 행복과 배움의 길을 열어준 당과 조국의 고마움을 잘 알고 다시는 어제날과 같은 망국노의 생활을 되풀이할수 없다는것을 똑똑히 깨달았기때문입니다.》

주체45(1956)년 12월 리기형, 김교웅동지에게 공화국영웅칭호가, 9명에게 국기훈장 제2, 3급이 수여되였다.

 

*     *

 

어버이수령님의 품속에서 두번다시 태여난 새 조선의 아들딸들의 투쟁위훈과 영웅적모습은 오늘도 후대들의 심장마다에 인생의 참된 진리를 새겨주고있다.

위대한 수령의 품에 안겨야 삶이 빛날수 있으며 조국과 인민을 위해 바친 생은 강대한 우리 조국의 력사와 더불어 영원하다는것을.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전선으로 열렬히 탄원하는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

주체110(2021)년 9월 7일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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