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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한 애국애족으로 빛나는 고결한 한생

 

오늘은 열렬한 애국자이신 김보현선생님의 탄생 150돐이 되는 날이다.

한평생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김보현선생님의 고결한 생애를 우리 인민은 세월이 흘러도 잊지 못하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할아버지는 늘 〈남자는 전장에서 적과 싸우다 죽어야 마땅하다.〉고 하면서 집안식구들이 모두 나라를 위해 떳떳이 살도록 교양하였으며 자손들을 혁명투쟁에 아낌없이 내세웠다.》

애국애족은 김보현선생님께 있어서 삶의 넋이였고 기둥이였다.

일찌기 아버님이신 김응우선생님으로부터 나라가 있어야 백성이 있다는 애국주의교양을 받으며 성장하신 김보현선생님께서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심이 남달리 높으시였다.

유서깊은 만경대고향집뜨락에 들어서면 이 땅에 망국의 비운이 무겁게 드리웠던 수난의 시기 자손들을 모두 일제를 반대하는 독립성전의 길로 떠나보내시던 김보현선생님의 모습이 눈앞에 어려오는듯싶다.

지금도 잊을수 없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께서 일제경찰에게 또다시 체포되시였다는 소식이 만경대에 전해졌을 때의 일이였다.

칠골의 창덕학교에서 공부하시면서 이 가슴아픈 소식에 접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체없이 팔도구로 떠날 결심을 하시였다.

그때 마을사람들은 우리 수령님께 학교를 마저 졸업하고 날씨가 좀 풀린 다음에 떠나실것을 거듭 권고하였다.

하지만 김보현선생님께서는 아버지가 령어의 몸이 되였으니 이제는 네가 나설 차례라고 하시며 손자분을 혁명의 길로 주저없이 떠미시였다.

이것은 빼앗긴 나라와 짓밟힌 겨레의 운명을 생각하는 김보현선생님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발현이였다.

이렇듯 강의한 성품을 지니시였기에 김보현선생님께서는 불의앞에서는 추호도 타협을 모르시였고 간악한 원쑤들과도 견결히 맞서 싸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밑에 조선인민혁명군이 날로 장성강화되자 일제는 만경대고향집을 봉쇄하고 감시까지 하였으며 심지어 일가분들에게 행패질까지 하면서 온갖 비렬한짓을 다하였다. 한번은 추악한 변절자들이 만경대고향집에 달려들어 돈뭉치를 내놓으며 일가분들을 회유하려고 하였다.

이때 김보현선생님께서는 원쑤에 대한 끓어오르는 적개심을 안으시고 이 천하에 고현놈들, 그래 우리보고 제 손자의 목숨을 돈과 바꾸라는거냐, 그런 개수작질은 싹 걷어치우고 당장 물러가라고 불호령을 내리시였다.

이때만이 아니였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할 때에도 김보현선생님께서는 이를 단호히 배격하시며 조선민족의 넋을 굳건히 지키시였다.

원쑤들의 갖은 고문에도 굴복하지 않은 일가분께 이름을 일본말로 고치지 않은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하시면서 지금 성주가 왜놈들과 싸우고있는데 네가 이름을 일본말로 고치면 되겠느냐, 맞아죽으면 맞아죽었지 절대로 이름을 일본말로 고쳐서는 안된다고 결연히 말씀하신 김보현선생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의 일을 두고 혁명하는 자손들을 두다나니 우리 조부모님들이 고생을 많이 하였다고, 하지만 그처럼 모진 시련과 박해속에서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절개를 굽히지 않고 꿋꿋하게 잘 싸웠다고,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왜정말기에 창씨개명을 강요하였지만 자신의 조부모님들은 거기에도 응하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우리 고향에서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지 않고 끝까지 버티여낸것은 우리 집 하나밖에 없었다고 감회깊이 추억하시였다.

조국이 해방된 후 그리운 고향 만경대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이 서른살이 넘도록 효도를 못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자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아버지가 하다가 못한 조선독립을 해냈으면 그게 효도지 그보다 큰 효도가 어디 있겠는가고, 나라와 백성을 잘 돌보면 그게 효도라고 하신 김보현선생님의 말씀은 오늘도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준다.

정녕 김보현선생님의 자손분들을 위한 뒤받침은 단순히 인정적이고 세속적인것이 아니라 애국, 애족, 애민의 가풍을 굳건히 이어놓으신 숭고한 헌신이였다.

김보현선생님께서는 해방된 조국땅에서 한 나라의 수령의 할아버지로가 아니라 평범한 농민으로서 그 어떤 특혜와 특전도 바라지 않으시고 오직 우리 수령님의 새 조국건설위업을 받들어 백성된 도리를 다하시였다.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였던 김구가 만경대고향집을 방문하여 감탄을 금치 못한 사실이 있다.

친히 울바자를 엮으시며 수수한 농가에서 사시는 김보현선생님을 뵈온 김구는 깊은 감동에 젖어 그이께 손주님을 일국의 수령으로 두신분이 왜 이렇게 험한 일을 아직도 하고계시는가고 말씀드리였다.

그때 김보현선생님께서는 내 손자는 나라의 수령이지만 나는 철들어서부터 한평생을 농사로 늙어왔은즉 농사는 천하지대본일진대 내가 농사를 잘 지어야 손자가 보는 나라의 정치도 잘될것이 아니겠는가고 하시였다.

진정 나라의 독립과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김보현선생님의 한생은 인간의 진정한 삶이 어디에 있는가를 가르쳐준 고귀한 생애였다.

삶의 순간순간을 열렬한 애국애족의 넋으로 빛내이신 김보현선생님의 한평생은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 인민의 가슴마다에 애국의 참된 진리를 심장깊이 새겨주고있다.

주체110(2021)년 8월 19일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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