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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후 민주녀성동맹의 강화발전에 쌓으신 업적 2)

 

2. 2. 민주녀성동맹을 대중적정치조직으로 강화발전

 

녀성들이 하나의 민주주의적녀성조직에 모두가 망라되여야 단결된 힘으로 새 조국건설에 이바지할수 있으며 민주주의적인 교양과 동맹조직생활을 통하여 참다운 녀성혁명가들로 자라날수 있다. 녀성들의 건국열의가 아무리 높고 그들의 노력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하나의 조직에 뭉치지 않고서는 녀성들앞에 나선 건국사업도 사회적해방을 위한 과업도 성과적으로 실현해나갈수 없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녀성동맹은 우리 나라 전체 사회성원의 반수를 차지하는 녀성들의 대중적정치조직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 전체 사회성원의 반수를 차지하는 녀성들을 조직적으로 결속하는것은 혁명력량을 확대강화하고 부강한 새 조국건설을 촉진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하시면서 녀성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광범한 군중을 당의 주위에 굳게 묶어세우며 민족통일전선의 기초를 튼튼히 닦아야 한다고 하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각계각층의 광범한 녀성들을 조직사상적으로 튼튼히 결속하여 민주녀성동맹을 위력한 대중적정치조직으로 강화발전시켜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녀맹이 결성되던 초기 여러가지 편향들이 나타나고있었다.

특히 녀맹조직이 중앙과 도, 시, 군, 면소재지를 비롯한 도시와 가두를 중심으로 결성되고 공장과 농촌녀성들속에는 뿌리박지 못하고있었다.

평양시녀맹원구성만 보아도 로동녀성들보다 가두녀성들과 지식인녀성들이 훨씬 더 많았으며 평양곡산공장은 종업원 1 100여명가운데서 녀성이 800명이나 되였지만 녀맹조직이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녀성동맹을 강력한 대중적정치조직으로 만들기 위하여서는 녀맹사업의 중심을 근로녀성들과의 사업에 두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 근로녀성들은 일제강점시기에 압박과 착취를 가장 많이 받아왔기때문에 낡은 사회제도에 대한 증오심이 강하며 민주주의적 새 조선을 건설하려는 열의가 높다고, 녀맹조직이 근로녀성들속에 튼튼히 뿌리박아야 보다 강력한 대중단체로 강화발전될수 있다고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높이 받들고 주체35(1946)년초 중앙녀맹일군들의 협의회에서 근로녀성들을 적극적으로 녀맹조직에 받아들이지 않고있는 편향을 바로잡을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민주녀성동맹은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를 높이 받들고 새 조국건설과 녀성해방을 위하여 싸우는 우리 나라 광범한 녀성들의 민주주의적대중조직인것만큼 응당 누구보다도 새 조국건설을 위한 투쟁의 앞장에서 나가는 광범한 근로녀성들로 조직을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녀성동맹은 반드시 근로녀성들을 중심으로 하여 광범한 녀성들을 자기 대렬에 묶어세우며 그들을 꾸준히 교양하여 새 민주조선건설에 적극 떨쳐나서게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주체35(1946)년 3월 각 도, 시 , 군녀맹조직들에서 공장과 농촌들에 녀맹조직을 내오는 사업을 빨리 추진시키도록 하시였으며 녀맹중앙위원회가 평양곡산공장에 녀맹조직을 내오기 위한 사업을 도와주도록 하시였다.

이에 따라 녀맹중앙위원회에서는 평양곡산공장 물엿직장에 먼저 시범적으로 녀맹초급단체를 내오고 그 경험을 일반화하는 방법으로 공장의 모든 직장들에 녀맹초급단체를 내왔다. 그리고 평양시안의 녀맹일군들이 방청으로 참가하여 평양곡산공장녀맹위원회를 결성하였다.

한편 김정숙동지께서는 녀맹조직에서 중소기업가, 상인, 종교인 등 여러 계층의 녀성들을 받아들이지 않고있는 편향도 극복하도록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주체35(1946)년 3월 동평양지구에 나가시여 여러 계층의 녀성들과의 사업을 외면하고있는 녀맹일군의 그릇된 태도를 바로잡아주시며 각계각층의 모든 애국녀성들을 녀맹조직에 다 받아들일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그리하여 주체34(1945)년 11월 녀맹이 결성될 당시 15만명이였던 녀맹원수는 주체35(1946)년 5월 북조선민주녀성동맹 제1차대표자회때 이르러 60여만명, 주체35(1946)년말에는 무려 100만명으로 장성하게 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녀맹조직을 강화하기 위하여 녀맹조직의 지도체계를 합리적으로 세우도록 하시였다.

도시와 농촌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녀맹조직들이 확대됨에 따라 그에 대한 조직지도체계를 옳게 세우는것이 중요한 요구로 나섰다.

평양시만 하더라도 80여개의 리녀맹조직들이 조직되여있었는데 시녀맹이 모든 리녀맹조직을 직접 대상하여 일하다나니 강연이나 해설담화사업 하나 포치하자고 해도 여간만 복잡하지 않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시녀맹아래에 리녀맹과 공장, 기업소, 기관녀맹단체들을 지도하는 중간단위를 내올것을 발기하시고 사동특별구녀맹조직의 경험을 받아들이도록 하시였다.

당시 사동지역에는 3 000여명에 달하는 녀맹원들을 하나의 리녀맹에 망라시켜 생활시키는것이 어려운 조건에서 남주택, 북주택, 태성지구 등 부락단위로 녀맹지부를 결성하고 그것을 통일적으로 지도하는 사동특별구녀맹을 내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 경험을 받아들여 시녀맹아래의 동평양지구녀맹위원회를 먼저 내오게 하시고 이어 중구, 서구, 북구에도 지구녀맹위원회를 내오도록 하시였다.

지구녀맹위원회가 조직됨으로써 중앙과 시녀맹의 지도가 기층녀맹조직들에 더 잘 미치게 되였으며 사업에서 복잡성을 없애고 녀맹일군들이 자기 사업을 더 실속있게 벌려나갈수 있게 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해방후 우리 녀성들을 사상의식적으로 각성시키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나라가 해방은 되였으나 녀성들은 무지와 몽매, 일제사상잔재와 봉건유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녀맹조직이 녀성들속에서 문맹을 퇴치하고 미신행위를 없애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벌리도록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평양연초공장(당시)을 비롯하여 녀성로동자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공장들과 평안남도 룡강군(당시), 대동군의 여러 농촌마을들을 찾으시여 실태를 료해하시고 녀맹조직들이 문맹퇴치운동을 힘있게 벌리도록 떠밀어주시였다. 그리고 주체36(1947)년 11월에는 문맹퇴치사업에 대한 녀성들의 그릇된 태도도 바로잡아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특히 녀맹조직들이 미신행위를 없애기 위한 교양사업을 힘있게 벌리도록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녀맹조직들이 자기 고장의 실재한 사실을 가지고 미신타파를 주제로 한  소품들을 만들어 녀성들속에 들어가 공연하도록 하시고 지난날 먹고 살아가기 위해 무당이나 점쟁이노릇을 하던 녀성들을 장악하고 그들을 교양각성시켜 대중모임장소에서 미신의 허황성을 폭로하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도 널리 리용하도록 하시였으며 주체35(1946)년 4월 양덕군 대탕지(당시)마을에 가시였을 때에는 그곳에서 치료받던 녀성들속에 들어가시여 미신행위의 해독성을 차근차근 깨우쳐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주체36(1947)년 12월 어느날 녀맹중앙위원회에 나오시여 최근에 평안남도 룡강군에서 미신행위때문에 빚어진 사실에 대하여 알려주시였다.

룡강군의 한 녀성이 어머니가 갑자기 앓아눕게 되자 의사의 진단과 치료를 받을 대신 무당을 데려다 련 사흘 굿만 하다가 종시 어머니를 잃고만 사실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러한 미신행위가 녀성들속에서 없어지지 않아 새 사회건설과 녀성운동발전에 큰 지장을 주고있다고 하시면서 룡강군에서 있은 사실을 가지고 평안남도녀맹에서 짧은극을 하나 잘 준비하여가지고 도안의 여러 군들을 돌면서 공연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작공연된 혁명연극이 군중들속에서 거대한 생활력을 나타낸데 대하여 들려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평안남도녀맹에서 만든 미신타파주제의 예술소품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되였으며 커다란 생활력을 나타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다른 도들에서도 자기 고장에 실재한 사실을 가지고 극을 만들어 순회공연을 하도록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녀맹조직이 출판물과 방송선전을 통하여 녀성들을 각성시키고 교양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벌리도록 하시고 녀성잡지를 내오기 위한 사업을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주체35(1946)년 2월 녀성잡지창간호발간을 위한 편집성원들을 잘 꾸리게 하시고 그들의 사업조건을 원만히 보장하도록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후 여러차례에 걸쳐 편집안을 보아주시고 편집방향도 정해주시며 잡지에 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실을데 대한 문제로부터 잡지의 내용, 제호와 표지를  완성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그리하여 주체35(1946)년 9월에 나온 《조선녀성》잡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녀성들을 튼튼히 무장시키고 그들을 새 조국건설에 힘있게 불러일으키는 위력한 사상적무기로 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방송을 녀성교양에 효과적으로 리용하기 위하여 《방송강연》과 《가정시간》을 설정하고 이 시간에 정치문제와 다양한 상식을 내보냄으로써 녀성교양에 이바지할수 있게 하시였다.

이 시기 방송을 통하여 내보낸 《첫 인민경제계획수행에서 녀성들의 임무와 역할》, 《인민경제계획과 절약》, 《3.8절과 해방된 조선녀성》 등 《방송강연》과 《인민회의란 무엇인가?》, 《녀성과 독서》 등과 같은 문제들을 해설한 《가정시간》은 녀성들을 각성시키고 새 조국건설에로 불러일으키는데서 커다란 생활력을 나타내였다.

이렇듯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정력적인 활동에 의하여 해방후 짧은 기간에 녀성동맹은 각계각층의 광범한 녀성들을 망라하는 대중적인 녀성조직으로, 조직사상적으로 위력한 정치력량으로 강화발전될수 있었다.

 

김일성종합대학 리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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