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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돕고 이끌며 고락을 같이하는 아름다운 생활의 주인공들을 찾아(1)

 

화목한 가정에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꽃펴나기마련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고 같이 아파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고락을 같이하는것이 국풍으로 되고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만사람의 심금을 울려주는 미담들이 날마다 전해지고있다.

사회주의 우리 집을 더 따뜻하고 아름답게 해주는 미덕과 미풍의 주인공들을 찾아 얼마전 우리는 취재길에 올랐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서로 돕고 이끌며 단합된 힘으로 전진하는 우리 사회의 본태와 대풍모를 적극 살려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처음 들린 곳은 재령군 신곳리였다.

바로 이곳에서 오랜 세월 혈육도 아닌 로인을 친어머니처럼 모시고 김욱철, 김옥남부부가 살고있었다.

《정말 쉽지 않은 부부입니다.》

우리와 만난 농장일군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마을에 이사를 온지 얼마 안되는 김옥남동무가 이웃에 홀로 사는 로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것은 10여년전 12월 어느날이였다.

그날부터 김옥남동무의 머리속에서는 한시도 로인에 대한 생각이 떠날줄 몰랐다.

며칠째 동자질을 하면서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상념에 잠겨있는 그에게 어느날 남편인 김욱철동무가 정색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고 물었다.

한동안 남편을 바라보던 김옥남동무는 나직하나 절절한 어조로 말했다.

《이웃집에 사는 로인이 돌볼 자식도 없이 홀로 산대요.》

이번에는 남편이 말없이 안해를 바라보았다. 잠시후 그는 안해의 손목을 꼭 잡았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아오. 그런데 로인을 모시게 되면 자식들을 키울래, 교육사업도 할래 당신에게 더 부담이 가지 않을가?》

김옥남동무는 자기 심정을 선뜻 리해해주는 남편이 더없이 고맙고 미더웠다.

《그건 념려마세요.》

부모의 의향을 알게 된 두 딸도 할머니가 생겼다고 좋아 어쩔줄 몰라했다. 하여 이튿날 그들부부는 로인의 집을 찾아갔다. 아직 낯도 채 익히지 못한 사람들이 와서 친자식이 되겠다고 하는 소리에 로인은 깜짝 놀랐다. 고맙기도 했지만 이모저모로 짐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로인은 그들의 청을 가볍게 거절했다. 그들은 매일이다싶이 로인을 찾아가 설복했다.

(원, 나같은 늙은이가 뭐라고…)

이렇게 되여 로인에게는 끌끌한 아들, 며느리와 귀여운 손녀들이 생기게 되였다.

로인을 위하는 이들의 정은 결코 동정심으로부터 출발한것이 아니였다.

화목한 대가정을 이루고 사는 우리 사회에서는 모두가 한식솔이며 사회주의 우리 집에는 마음속그늘을 안고 사는 사람이 한명도 있어서는 안된다는것이 그들의 심정이였다. 한두해도 아니고 오랜 세월 로인의 친자식이 되여 혈육의 정을 다해가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느라니 가슴이 뭉클 젖어들었다.

우리는 농장일군과 함께 김욱철동무의 집을 찾았다. 백발을 머리에 얹은 로인이 우리를 반겨맞아주었다. 아흔살을 가까이하고있는 그는 찾아온 사연을 알고는 두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좋은 세상을 만나 이렇게 장수합니다. 우리 아들, 며느리를 세상에 자랑해주시오.》

이때 김욱철, 김옥남부부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어디서나 볼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였다. 그들은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그러는가, 자기들은 응당 할 일을 했을뿐이라며 얼굴을 붉히였다.

얼마나 돋보이는 사람들인가. 그들의 크지 않은 집처마아래에는 남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여기고 한식솔의 살뜰한 사랑과 정을 나누며 사는 사회주의대가정의 참모습이 아름답게 비껴있었다.

우리는 로인의 부탁대로 그의 아들, 며느리를 꼭 자랑하리라 속다짐하며 락랑구역 동산동으로 취재길을 이어갔다. 우리의 눈가에는 그곳의 한 주민이 보내온 편지의 구절구절이 화폭처럼 펼쳐졌다.

…지난 4월 어느날 저녁 동산동에서 살고있는 리효순동무는 달빛이 흘러드는 방안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방금전 집에 찾아왔던 동초급녀맹일군인 유금옥동무의 말이 귀전을 떠날줄 몰랐다.

《인차 딸의 결혼식을 한다지요. 지금껏 우리가 동무를 잘 도와주지 못한것이 늘 속에 맺혀있었는데 이번에 봉창을 하자요.》

그러면서 자기가 가지고온 치마저고리감을 내놓았다.

함께 온 동초급녀맹일군들도 자기들이 성의껏 마련해온 준비품들을 안겨주었다.

일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문턱에 불이 일 정도로 마을사람들이 찾아왔다.

어떤 사람은 자기 딸이 시집갈 때 주려고 장만했던 부엌세간을 가져왔고 또 어떤 녀인은 결혼상을 차리는데 필요한것들을 안고 방에 들어섰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가지 또 한가지 늘어나는 준비품들을 바라보는 리효순동무의 눈가에 맑은것이 고여올랐다.

그는 일찌기 남편을 잃었다. 가까운 친척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나라의 혜택과 인정많은 이웃들의 방조속에 오누이를 키우며 얼굴에 그늘 한번 지지 않고 여직껏 살아왔다. 몇해전에 제대되여 지방의 어느 한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방학을 계기로 집에 올적마다 몸보신을 하라며 토끼곰을 해다주고 학용품도 마련해주던 고마운 사람들이였다.

자기가 외로와할세라, 힘들어할세라 보살펴주고 떠밀어주었는데 왜 지금껏 도와준것이 없다고 한단 말인가.

그에게 있어서 유금옥동무를 비롯한 동초급녀맹일군들과 이웃들은 친혈육과도 같았다. 늘 자기 가정의 일을 두고 마음쓰는 그들에게 부담을 줄것 같아 인차 알리지 않았었는데 어떻게 알고 그길로 달려왔던것이다.

며칠후 결혼식이 진행되였다.

신랑, 신부는 물론 결혼식에 참가한 사람들모두가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 …

목적지에 도착하여 취재하던 과정에 우리는 이런 이야기가 비단 리효순동무의 가정에만 국한된것이 아님을 알게 되였다. 많은 사람들이 유금옥동무를 비롯한 동초급녀맹일군들을 친혈육처럼 여기고있었다.

이런 아름다운 소행의 주인공은 평원땅에서도 찾을수 있었다.

우리와 만난 평원은하피복공장의 한 처녀종업원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저에겐 부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언제 한번 외로움을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제곁에는 항상 어머니의 손길이 있답니다.》

알고보니 그는 공장로동자합숙에서 생활하고있는 부모잃은 종업원들중의 한명이였다.

그가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였다.

깊은 밤 그는 누구인가 자기의 이마를 짚어보는것을 느꼈다. 눈을 떠보니 지배인 최영복동무가 정깊은 눈길로 내려다보고있었다.

《내가 그새 남달리 체질이 약한 너의 건강을 소홀히 한것 같구나.》

이렇게 말하는 최영복동무의 품에 처녀는 와락 안겨들었다.

《어머니-》

생일날이나 명절때에는 부모생각이 날것이라며 사랑과 정을 더 기울이는 지배인을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습관되였던것이다.

이튿날 지배인의 사무실에서는 병상에 누워있는 종업원의 건강문제를 놓고 심중한 토론이 진행되였다.

최영복동무는 종업원의 건강을 위해 발이 닳도록 뛰여다녔다.

성의껏 마련한 영양식품을 가지고가 한끼도 번지지 말고 들어야 한다고 따뜻이 일렀고 또 어떤 날에는 생산지휘를 하느라 여기저기 바삐 다니다가 좋은 처방을 듣고서는 그길로 달려와 차근차근 알려주기도 했다.

그 뜨거운 사랑속에 종업원은 건강을 회복하였다.

이런 가슴뜨거운 사연은 그 누구에게서나 들을수 있었다.

어느해 장마철엔가 살림집에 비가 새여 애를 먹고있는 한 기능공의 마음속고충을 알고 본래의 모습을 찾아볼수 없게 집을 다시 지어준 이야기며 한 종업원의 자식이 조국보위초소로 떠날 때 기념품도 안겨주며 고마운 제도를 굳건히 지키라고 당부한 이야기…

하기에 공장의 종업원들 누구나 최영복지배인을 어머니라고 부르며 존경하는것이다.

사회의 아름다움은 그 사회에 사는 인간들의 아름다움이다.

둘러보면 우리 사회에는 남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여기며 뜨겁게 위해주고 보살펴주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

이런 성실한 인간들을 키워낸 우리 당의 모습, 이런 아름다운 인간들이 많은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의 참모습을 그려보며 우리는 취재길을 이어나갔다.

 

뜨거운 혈육의 정을 나누는 락랑구역 동산동의 녀맹원들

 

주체110(2021)년 7월 15일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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