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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만세시위투쟁이 남긴 교훈​

 

1926년 6월 서울과 지방에서 벌어진 우리 인민의 대중적인 반일시위투쟁인 6. 10만세시위투쟁이 있은 때로부터 95년이 되였다.

지금도 귀기울이면 《조선독립 만세!》, 《일본군대는 물러가라!》의 구호들을 목청껏 웨치며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통치에 항거해나섰던 그날의 2천만 조선민족의 격노에 찬 함성이 들려오는듯싶다.

6. 10만세시위투쟁은 3.1인민봉기이후 민족해방투쟁무대에 새롭게 등장한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조직된 대중적인 반일시위투쟁으로서 간악한 일제의 식민지통치에 대한 조선인민의 쌓이고쌓인 원한과 분노의 폭발이였다.

20세기초 조선을 무력으로 강점한 일제는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속히 앙양되는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각계각층 인민들의 애국적진출과 반일투쟁기세를 짓누르기 위해 종래의 야만적인 《무단통치》를 보다 악랄하고 교활한 《문화통치》로 바꾸는 방법으로 식민지통치를 강화하였다.

일제는 악명높은 《고등경찰제도》를 내오고 경찰병력을 대대적으로 늘여 애국적인민들을 마구 체포학살하는 한편 대륙침략을 위한 식민지략탈에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그러나 우리 인민은 그에 굴하지 않았으며 1926년 6월 10일 서울에서 조선봉건왕조의 마지막황제였던 순종의 장례식을 계기로 대중적인 반일시위투쟁에 떨쳐나섰다. 서울에서부터 시작하여 삽시에 인천과 대구를 비롯한 전국각지로 번져진 시위투쟁에는 각계각층의 수많은 인민들이 참가하였다. 시위군중들은 《조선독립만세!》, 《일본군대 물러가라!》, 《조선독립운동자들은 단결하라!》는 구호를 웨치며 폭압에 날뛰는 일제군경들과 맞서 완강한 투쟁을 벌리였다. 항쟁의 거리에 떨쳐나선 시위군중은 폭압에 미쳐날뛰는 일제군경과 대결하면서 거리를 피로 물들이며 전진하였다. 격노한 시위군중들은 무장한 경관들에게 달려들어 원쑤를 맨주먹으로 때려눕혔다. 중무장한 일제군경들과의 격투에서 시위군중 160여명이 부상당하였으며 200여명이 체포구금되였다.

6.10만세시위투쟁을 통하여 우리 인민은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반드시 나라를 되찾고 민족의 존엄을 고수하려는 불굴의 의지와 투쟁기세를 과시하였으며 일제의 야수적본성과 《문화통치》의 기만성, 교활성을 발가놓고 일제식민지통치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6.10만세시위투쟁은 초기공산주의운동의 부족점과 결함을 드러냄으로써 우리 인민의 민족해방투쟁에 심각한 교훈을 남기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6.10만세시위투쟁은 자체의 본질적약점과 일제의 야만적탄압으로 실패하였으나 심각한 교훈을 남기였습니다.》

ㅡ 교훈은 무엇보다도 로동계급의 탁월한 수령과 혁명적당의 통일적지도와 옳바른 전략전술이 없이는 투쟁을 승리적으로 이끌어나갈수 없다는것이다.

6.10만세시위투쟁은 1925년에  창건된 조선공산당의 영향밑에 벌어졌다. 당시 조선공산당은 종파분자들의 극심한 파쟁으로 말미암아 사분오렬되여있었으며 정확한 투쟁강령과 전략전술도 없이 좌왕우왕하고있었다.

조선공산당은 창건후 현실에 부합되는 지도사상이 없고 대오가 통일되지 못하고 대중속에 튼튼히 뿌리박지 못한 근본적인 제한성으로 하여 로동계급의 전위대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였다.

조선공산당의 이러한 약점은 6.10만세시위투쟁에 부정적후과를 미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6.10만세시위투쟁에 대하여 회고하시면서 천일양병 일일용병이라는 말도 있지만 인민대중을 한번 싸움마당에 내세우자면 그들을 충분히 교양하고 조직화하며 훈련을 잘 주어야 한다, 그런데 6.10만세시위투쟁을 조직하고 지도한 사람들은 사전에 철저한 준비도 없이 총을 든 군경들앞에 적수공권의 군중을 수만명이나 내세웠으니 그 결과가 비참하지 않을수 없었다고 쓰시였다.

이처럼 6.10만세시위투쟁은 민족해방투쟁에서 승리하려면 탁월한 수령을 모시고 혁명적당의 옳은 령도를 받아야 한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민족해방투쟁은 수령의 령도밑에 옳은 투쟁강령과 전략전술을 내세우고 온 민족이 단합된 힘으로 떨쳐나서야 승리할수 있다. 이것은 6.10만세시위투쟁을 포함한 1910년대, 1920년대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이 남긴 가장 심각한 교훈이다.

ㅡ 교훈은 다음으로 제국주의침략자들을 타도하기 위하여서는 투쟁대렬안에 잠입한 종파분자들의 파괴책동을 철저히 분쇄하여야 한다는것이다. 

6.10만세시위투쟁 당시 종파분자들은 자파세력확장에 피눈이 되여 날뛰면서 합심하여 투쟁할 대신 어느 한 파가 투쟁을 조직하면 다른 파는 그것을 파탄시키기 위한 공작을 하였으며 지어 적에게 밀고하는 죄행을 꺼리낌없이 저질렀다. 화요파는 이 투쟁을 지도하면서 저들의 종파적견지에서 조직사업을 하였고 서울파는 이에 대립하여 방해공작을 하였다.

6.10만세시위투쟁을 발단으로 조선공산당지도부의 주요인물들은 대부분 검거되였다.

종파분자들의 책동으로 말미암아 6.10만세시위투쟁은 조직되고 단합된 력량에 의거하여 완강하게 벌어질수 없었으며 일제의 폭압에 부닥치자 더 크게 번져지지 못한채 좌절되고말았다. 결국 6.10만세시위투쟁은 종파분자들의 책동으로 하여 일제의 야수적탄압을 이겨내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부르죠아민족주의자들의 사대사상이 3.1인민봉기를 실패하게 한 근본원인의 하나라면 초기공산주의자들의 종파행위는 6.10만세시위투쟁을 말아먹은 기본화근이였다고 회고하시였다.

이처럼 6.10만세시위투쟁은 종파의 해독성을 뚜렷이 보여주었으며 종파주의를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해야 한다는 심각한 교훈을 남기였다.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과 공산주의운동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혁명의 진두에 나서신 그때로부터 비로소 곡절많던 수난의 시기를 끝장내고 새로운 발전의 길에 들어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시기에 벌써 선행한 시기 민족해방투쟁의 본질적약점과 력사적교훈을 깊이 통찰하시고 조선혁명이 나아갈 새로운 길을 뚜렷이 밝혀주시였으며 그 길로 인민대중을 확신성있게 이끌어오시였다. 그리하여 조선혁명은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밑에 전인미답의 길을 헤치면서 승승장구의 한길을 걸어올수 있었다.

오늘 우리 겨레는 위대한 수령님들과 꼭같으신 또 한분의 위대한 태양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우리 민족의 령수로 높이 모시고 민족운명개척의 활로를 열어나가고있다.

대를 이어 위인복을 누리는 우리 민족이야말로 대행운, 대통운을 안은 긍지높은 민족이다.

우리 민족의 존엄과 강대성의 상징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계시여 민족번영의 찬란한 래일은 반드시 오고야말것이다.

 

김일성방송대학 박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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