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혁명군은 결코 《창해일속》이 아니였다.​

 

위대한 항일대전의 나날을 더듬어-

 

 

조국해방의 새날을 밝혀주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적들은 우리를 <창해일속>이라고 하였지만 우리의 뒤에는 무궁무진한 힘을 가진 인민의 바다가 있었다. 우리가 무슨 로선을 내놓기만 하면 인민들은 그것을 쉽게 리해하고 자기것으로 만들었으며 우리 대오에 수천수만명의 아들딸들과 형제자매들을 보내주면서 물심량면으로 우리를 도와주었다.

우리가 령하 40도를 오르내리는 만주의 혹한속에서 15년동안이나 발톱까지 무장한 강적과 싸워 이길수 있었던것은 인민이라는 강력한 성새가 있고 인민대중이라는 무한대의 창해가 있었기때문이였다.》

 

《창해일속》이라는 말은 바다속의 좁쌀알만한 존재라는것을 의미한다. 대비조차 할수 없는 대상들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당시 우리 나라를 무력으로 강점한 일제는 항일의 기치를 높이 든 조선인민혁명군을 좁쌀알에 비유하면서 저들의 막강한 위력을 뽐내고 아시아의 《맹주》가 될 망상을 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오산했다.

조선인민혁명군은 결코 《창해일속》이 아니였다.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 자력독립의 기치높이 선포하신 항일대전은 전인민적항일대전이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창건될 당시의 인원수는 불과 100여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 무장대오에 비해볼 때 일제는 비행기, 땅크와 같은 현대적무기로 장비한 수백만의 정예무력을 가지고있었다.

 

때문에 무장력의 대비로 볼 때에는 일제가 조선인민혁명군을 가리켜 《창해일속》이니 뭐니 하면서 허장성세할수 있었다.

하지만 일제는 너무나도 몰랐다.

자력독립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시기부터 간직하신 확고한 신념이고 의지였다. 자력독립을 실현할수 있는 길은 민족대단결을 바탕으로 하는 전민항쟁에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주독립을 이룩할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 민족대단결을 바탕으로 하는 전민항쟁에 있고 민족대단결이 자력독립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적문제라는것은 우리가 일찍부터 주장해온 사상이였다고 교시하시였다.

현실적으로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항일전쟁을 단순히 일제와 항일유격대와의 전쟁으로만 보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항일전쟁은 명실공히 나라를 짓밟은 일제 대 민족적자존심을 짓밟힌 2천만 겨레와의 전쟁 즉 전인민적인 항쟁으로 보시였던것이다.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주체20(1931)년 12월 중순 중국 연길현 명월구에서 당 및 공청간부회의를 소집하시고 항일전쟁은 전민이 병사가 되여 싸우는 인민전쟁이라고 선포하시였다.

회의에서 인민이 국가이고 후방이며 정규군이다, 싸움이 시작되면 전민이 병사가 되여 일어나게 될것이며 우리가 벌리게 될 유격전은 인민전쟁으로 될것이라는 선언은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 항일무장투쟁을 결심하신 그때 벌써 간직하고계신 항일전쟁에 대한 독창적인 견해라고 할수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전인민적방위체계를 세울데 대한 사상 역시 유격전쟁의 전인민적성격에 맞는 정당한 사상이였으며 인민대중의 단합된 힘으로 수적, 기술적으로 우세한 적의 침공을 물리치고 유격구를 튼튼히 지킬수 있게 하는 혁명적이며 적극적인 사상이였다.

항일대전을 일제와 2천만 우리 온 겨레와의 항전으로 규제해주신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은 진정 력사가 일찌기 알지 못하는 전민항쟁로선의 창시자이시며 위대하신 그분을 모시여 일제가 떠들던 《창해일속》은 한갖 망발로 되고말았다.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끄시고 인민이라는 무한대한 창해에 의거하시여 항일혁명력량을 비상히 장성강화시키시였다.

100여명의 인원으로 항일대전을 선포하시고 단행하신 남북만에로의 원정은 인민이라는 무한대한 바다에로 깊숙이 들어가는 첫걸음이였다고 할수 있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겨 국가적지원도, 후방도 없는 조선인민혁명군에게 있어서 의거할곳은 인민밖에 없다, 이것은 바로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 항일대전의 그 나날 언제나 신조로 간직하시고 조선인민혁명군대원들에게 심어주신 철리였다.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인민혁명군의 모든 지휘관들과 대원들에게 우리의 존재가치는 인민에게 있으며 인민을 사랑하고 또 인민의 지지를 받는것을 전투에서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승패문제이기전에 살아남느냐 아니면 없어지느냐 하는 존망문제로 간주하도록 하시였다.

이런 숭고한 경지에 이른 인민관을 지니신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몸소 그 수범을 보여주시면서 항일의 대오를 인민대중의 절대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는 인민의 무장대오로 강화발전시키시였다.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는것처럼 유격대가 인민을 떠나서 살수 없다.》는 철리를 혁명군의 생존방식, 활동원칙으로 제시하신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의 전기간 이 원칙을 견지하시였다. 항일유격투쟁의 나날에 꽃펴난 《사령관도 인민의 아들》이라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비롯하여 인민들이 진정을 담아 고삐까지 쥐여준 소라고 하여 그냥 끌고온것을 되돌려주게 하신 약수동 소이야기나 값을 물지 않고 닭을 가져온 대원이 주인을 찾아가 몇배나 되는 닭값까지 쥐여주며 진심으로 사례를 표하도록 하신 19도구 씨암닭이야기, 주인의 승인을 받지 않고 따온 강냉이 세배낭을 다시 밭머리에 가져다놓게 하신 이야기 등은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 혁명군이 언제나 인민과의 혈연적관계를 생명으로 지켜나가도록 하신 참으로 숭고한 일화들이라고 할수 있다.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혁명군대원들이 인민들과 관계를 바로 가지지 못할 때면 늘 이렇게 말씀해주군 하시였다. 인민을 더욱 사랑하라, 우리가 인민을 허술히 대하면 인민이 우리를 외면한다, 인민의 버림을 받는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비극은 인민의 사랑을 잃는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5(1936)년 인민혁명군의 규범과 행동준칙을 성문화한 《조선인민혁명군 잠행조례》를 발표하시여 군민관계를 하나의 뗄수 없는 혈연적관계로 더욱 굳건히 다지시였다.​

 

이렇게 되여 인민은 조선인민혁명군의 든든한 후방으로, 눈과 귀로 되였고 일제는 그 어떤 봉쇄책동으로도 혁명군에로만 달리는 인민이라는 거대한 바다의 도도한 흐름을 막을수 없었다. 가는곳마다 인민들은 혁명군을 도왔고 그들의 길잡이, 소식통으로 되였다.

여기에 인민들이 혁명군이 적들의 포위에서 벗어나도록 진정으로 도와나선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한 유격부대가 국내에 나와 적을 치고 두만강쪽으로 행군해가고있을 때의 일이였다. 대오의 뒤로 어떤 절름발이농사군이 부지런히 따라오고있었다. 그 사람은 《유격대어른들이 이곳으로 두만강을 건느자고 하는것 같은데 오늘 저녁에는 다른 길로 가야 하우다. 이 근방에는 놈들이 쭉 깔렸수다.》라고 말했다. 그 농민을 믿어야 할것인가를 망설이던 유격부대성원들은 그를 믿기로 결심하고 그 사람더러 어느쪽으로 가야 두만강을 무탈하게 건너갈수 있는가고 물었다. 농민은 자기가 안내하는데로 가면 된다고 하였다. 거기도 경비는 서지만 다 혁명군편을 드는 좋은 사람들이라는것이였다. 그날 밤 그들은 그 농민의 도움으로 두만강을 무사히 건너갔다. 경비에 끌려나왔던 마을의 주민들은 유격대가 강을 건너가는것을 보면서도 못본체 하고 눈을 감아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가 얕수다.》, 《거기는 깊수다.》 하면서 길안내까지 해주었다.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인민들의 지지와 성원이 어떠하였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편적인 이야기라고 할수 있다.

이렇게 인민의 절대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는 인민혁명군은 언제 어디서나 일제의 동태를 손금보듯 알수 있게 되였다.

그러니 일제가 조선인민혁명군을 어떻게 《소탕》해 버릴수 있었겠는가.

 

남조선에서 발행된 한 도서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일본군대는 오랜 세월 많은 희생을 내면서 수많은 군대를 출동하여 그 <토벌>에 노력하였지만 그들은 김일성장군부대를 <토벌>할수 없었다. <토벌>하면 할수록 늘어나고 커가는 김일성장군부대, 실로 20세기의 이 수수께끼앞에서 일본군대가 전률했을뿐아니라 세계의 군사가들이 그 얼마나 놀랐는가.》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 조직령도하신 일제와의 최후결전은 조선인민혁명군과 2천만 조선인민이 한덩어리로 된 창해의 위력을 남김없이 과시한 력사적계기였다.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2천만을 조국광복회라는 민족대통일전선에 묶어세우시였다.

 

일제를 증오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민족적독립을 위해 일제와의 싸움에 나설 의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로동자, 농민, 지식인, 청년학생만이 아니라 그가 지주나 자본가, 종교인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지난날 공산주의운동을 했거나 민족주의운동을 했거나에 관계없이 과거를 불문에 붙이고 민족해방이라는 성스러운 위업을 위해 뭉치자는것이 위대하신 그분의 거족적인 민족대통일전선사상이였다.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애국에 불타는 조선사람이라면 그 누구나가 접수할수 있는 공명정대하고 혁명적인 민족대단결사상을 구현한 조국광복회를 창건하시고 그 두리에 전민족을 묶어세우시였다.

 

주체25(1936)년 5월 5일 동강에서 조국광복회창립대회가 진행되였고 여기에서 조국광복회가 창건되였다.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조국광복회 창립선언에서 온 민족이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식량이 있는 사람은 식량을 내고 기능과 지혜가 있는 사람은 기능과 지혜를 바치며 2천만 민중이 한데 뭉쳐 행동으로 반일조국해방전선에 참가한다면 조선의 독립은 반드시 성취될것이라는 확신을 표명하시고 모두다 조국광복회에 망라되여 싸울것을 열렬히 호소하시였다.​

 

조국광복회결성은 반일에 민족의 총력을 기울일수 있게 하는 가장 현명한 방책이며 민족대승의 길이였다. 

조국광복회는 창립되자마자 국내에는 물론 중국 동북지방을 비롯한 조선인민이 사는 모든 거주지들 지어 일본땅에도 그 조직을 넓혀나갔으며 나라를 사랑하는 모든 조선인민을 일제와의 판가리싸움에 불러일으켰다.

 

천도교도정이였던 박인진이 전국의 300만 교도들을 모두 조국광복회에 가입하도록 하겠다고 한 사실은 물론이고 남만에서 활동하던 독립군의 참모장 윤일파가 서신으로 위대한 수령님께 조국광복회창립을 축하하고 앞으로 반일전선에서 긴밀한 련계를 가질것을 희망해왔으며 한때 상해, 베이징, 천진 등 중국관내에서 다년간 독립운동에 종사한 박씨성을 가진 독립운동자는 불원천리하고 만주까지 찾아와 조국광복회 남만대표였던 리동광을 만나 앞으로 국내외의 넓은 지역에서 조국광복회사업을 광범히 전개해나갈것을 약속하였다. 1930년대 후반기에는 김활석의 휘하에 있던 독립군의 잔존세력이 최윤구를 선두로 조선인민혁명군에 스스로 편입하였다 .

 

1942년에 일제는 저들이 탐지해낸 국내의 반일지하조직만 해도 180여개나 되고 조직적력량이 50만이 넘는다고 비명을 올렸다.

일제의 경찰기관과 관공서, 일본지도관들의 감시가 살벌한 정안군내에도 특수회원들과 혁명조직들이 활동하였다. 공식 회원만 해도 20여만이며 그 산하에 수십수백만의 각계층 군중을 망라하는 조국광복회조직이야말로 무궁무진한 위력을 가진 2천만조선인민을 전민항쟁에로 준비시킨 강유력한 지하혁명조직이였다고 말할수 있다.

참으로 독창적인 전민항쟁로선을 내놓으시고 인민에게 의거하고 인민을 불러일으키는 탁월한 령도로 항일대전을 승리에로 이끄신 전설적영웅 김일성장군님을 높이 모시여 조선인민혁명군은 결코 《창해일속》이 아니였던것이다.

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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