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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수령님의 은혜로운 사랑 청산벌은 길이 전하리

사회주의전야에 봄빛이 짙어간다. 철따라 어김없이 찾아와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계절의 정서는 참으로 류다르다.

드넓은 전야에서 봄철영농작업을 다그치는 농업근로자들, 협동벌을 쉬임없이 누비며 논갈이를 하는 뜨락또르들, 거름더미들이 쌓여있는 포전마다에 피여오르는 아지랑이…

구수한 땅냄새가 풍기는 한줌 흙을 쥐여보아도 봄의 약동이 벅차게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이 불러온 봄의 정서에만 심취되지 않는다. 화창한 4월의 봄계절 사회주의전야 그 어디에 가보아도 가슴후덥게 넘쳐나는 숭고한 감정이 있다. 그것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절절해지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이다.

한평생 나라의 농사일을 두고 그토록 마음쓰시며 포전길을 걷고걸으신 위대한 수령님,

얼마전 강서구역 청산협동농장을 찾았던 우리는 사회주의농촌건설과 농민들의 생활향상을 위해 크나큰 심혈과 로고를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의 헌신의 자욱, 은혜로운 그 사랑을 다시금 심장깊이 절감하게 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청산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몸소 현지지도하시면서 모범을 창조하신 단위입니다.》

활기에 넘쳐있는 수도의 거리들을 지나 얼마쯤 취재차를 달리니 우리의 눈앞에 청산리의 풍경이 한눈에 안겨왔다.

소재지의 나지막한 둔덕에 게시된 《위대한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 만세!》의 대형글발, 김일성-김정일주의연구실, 청산리혁명사적관과 농장연혁소개실, 관리위원회, 리문화회관, 농업과학기술보급실, 아담한 농촌살림집들…

여기가 바로 력사의 땅 청산리라는 생각에 우리의 가슴은 끝없이 설레이였다.

우리가 제일먼저 찾은 곳은 암화산기슭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이였다.

청산벌이 환해지도록 해빛같은 미소를 지으시며 농민들과 함께 계시는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앞에서 오래도록 걸음을 떼지 못하는 우리에게 농장일군인 로경찬동무는 격정에 넘친 목소리로 말하였다.

《우리 청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령도자욱이 깊이 아로새겨져있는 영광의 땅입니다. 정말이지 우리 수령님의 정력적인 령도의 손길을 떠나 생각할수 없는 오늘의 우리 청산리입니다.》

비록 길지 않은 말이였지만 우리가 받아안은 감동은 컸다.

예로부터 푸른 산밑의 마을이라 하여 청산리라 불리우던 이곳이 과연 언제부터 온 나라가 다 아는 뜻깊은 고장으로 빛을 뿌리게 되였던가.

청산리혁명사적관을 돌아보며 우리는 복받은 청산리의 오늘이 어떻게 펼쳐질수 있었는가를 깊이 느낄수 있었다.

강사의 안내를 받으며 총서관에 들어선 우리의 눈가에 하나의 글발이 안겨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현지지도 85차》

진정 세상에 령도자가 많고많지만 그 어느 력사의 갈피에 우리 수령님처럼 나라의 농업발전을 위해 한개 농촌마을에만도 이렇듯 정력적인 헌신의 자욱을 새긴 위인이 있었던가.

숭엄해지는 마음을 안고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날자들을 하나하나 읽어갈수록 눈굽이 쩌릿이 젖어들었다.

사적관에는 청산리에 새기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자욱을 보여주는 영상사진문헌들과 사적자료, 사적물들이 전시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청산리를 현지지도하시면서 남기신 감동깊은 이야기들은 우리의 심금을 세차게 울리였다.

주체37(1948)년 5월 31일 위대한 수령님께서 청산리를 찾으시였을 때였다.

리를 현지지도하시면서 일군들로부터 토지개혁후 농민들의 생활이 그전에 비해 퍽 달라졌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민들이 어떻게 살고있는지 좀 보자고 하시며 어느 한 로인의 집에 들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사일로 거칠어진 로인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며 가정생활형편을 일일이 알아보시였다. 그러신 다음 부엌에 나가시여 가마뚜껑을 열어보시였다.

그때 가마안에는 삶은 감자가 가득 있었다. 그것을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안색을 흐리시며 감자만 삶아 잡수시는가고 물으시였다.

로인이 그 감자는 손자애들이 군음식으로 먹는것이라고 말씀올리였다.

이윽하여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쌀독이 어디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로인은 쌀독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더니 자랑이나 하듯이 쌀독뚜껑을 하나하나 열어드리였다.

쌀독에는 흰쌀이 가득 채워져있었다. 그것을 보시고서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만하면 걱정이 없겠다고 기쁨을 금치 못하시였다.

평범한 농사군의 집에 찾아오시여 가마뚜껑까지 열어보시고 쌀이 떨어지지나 않았는지 념려하시며 쌀독까지 보시고서야 만족한 미소를 지으신 어버이수령님,

이렇듯 농민들의 생활을 따뜻이 보살펴주시고도 못다 주신 사랑이 있으신듯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청산리일군들과 농민들이 청산리를 리안의 모든 농민들이 다같이 잘사는 모범리로 꾸리기 위하여 적극 노력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청산리에는 벌도 있고 야산도 있고 강하천도 있기때문에 농사도 잘 지을수 있으며 야산에 여러가지 과실나무도 심어 리를 살기 좋은 고장으로 훌륭히 꾸려나갈수 있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청산리에 자주 와보려고 한다고, 자신께서는 여러분들이 높은 건국열의를 가지고 맡은 일을 잘함으로써 청산리를 모범리로 훌륭히 꾸리리라고 믿는다고 절절히 당부하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청산리를 모범리로 꾸릴 원대한 구상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새 조국건설시기의 그때에 벌써 펼쳐주신것이였다.

대소한의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1월에 오시여 벼수확고를 높이자면 랭상모를 많이 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비닐박막으로 모를 기르면 모도 잘 자랄뿐아니라 품도 많이 절약된다고 그 우월성에 대해 다심히 가르쳐주신 사실, 농장을 찾으시여 영농작업에 필요한 뜨락또르대수도 손수 계산해보시고 청산리에서 한번 기계화를 잘하여보라고 하시면서 청산리에 먼저 기준량대로 주겠으니 기계화를 힘껏 내밀어 시범을 창조하라고 이끌어주신 이야기들은 우리로 하여금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또 어떤 날에는 문화주택건설장을 일일이 돌아보시고 농민들의 살림살이에 자그마한 불편도 있을세라 종이우에 몸소 주택의 설계도면도 그려주시던 우리 수령님이시다.

이뿐이 아니였다. 사적관에 소중히 전시되여있는 청산리의 멍석에 깃든 이야기도 우리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주었다.

어느해 가을 농장에 찾아오신 어버이수령님을 일군들은 방안으로 모시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방에 들어갈것이 있는가, 가까이 앉아야 정이 더 든다는데 여기에다 멍석이나 깔고앉아 이야기를 하자고 하시면서 탈곡장마당에 편 멍석우에 스스럼없이 앉으시여 농사일을 의논해주시였다.

언제인가 청산리혁명사적관을 찾았던 어느 한 나라의 대통령은 지금까지 수많은 나라들을 다녀보았지만 김일성주석처럼 인민들과 아무런 간격도 없이 지내시는 위대한 수령은 보지 못했다고 격정에 넘쳐 말하였다고 한다.

청산리의 사연깊은 멍석, 진정 그것은 우리 수령님과 청산리농업근로자들이 어떻게 혈연의 정으로 이어졌으며 청산리의 천지개벽이 어떻게 펼쳐지였는가를 전하는 력사의 증견물이다.

어제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빈궁의 흔적을 가시며 새 모습을 떨친 청산리의 자랑찬 행로를 돌이켜볼수록 우리의 생각은 깊어졌다.

그럴수록 우리의 마음속에 명곡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의 구절구절이 감회깊이 되새겨지였다.

이 풍년을 그 누가 주었나

이 행복을 그 누가 주었나

우리 당이 가져다주었지

수령님의 은덕일세

그렇다. 황금나락 설레이는 청산벌,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더 늘어만 가는 농장의 살림, 이것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진것이 아니였다. 청산리를 사회주의농촌답게 꾸려주시려 사시장철 쉬임없이 포전길을 걷고걸으신 우리 수령님의 끝없는 헌신과 로고속에 마련된것이였다.

그 잊을수 없는 나날에 어버이수령님께서 위대한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을 창조하시여 더욱더 유명해진 이곳 청산리가 아니던가.

우리는 력사적인 청산리당총회가 진행되였던 어제날의 소중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민주선전실도 돌아보았다.

바로 이곳에서 위대한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이 태여났다고 생각하니 우리의 가슴은 뜨거워올랐다.

세월의 흐름속에 어느덧 반세기가 넘었다. 하지만 사회주의적농촌경리발전과 대중령도에서 튼튼히 틀어쥐고나가야 할 강령적지침을 밝혀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우리 어찌 잊을수 있으랴.

참으로 청산리가 걸어온 자랑스러운 로정은 오로지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시며 그들의 힘에 의거하여 혁명과 건설을 끊임없는 앙양에로 확신성있게 이끌어오신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령도의 축도였다.

청산벌을 돌아보며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을 꽃피워가는 사회주의농촌의 벅찬 숨결을 절감할수 있었다.

봄을 맞은 청산벌의 그 어디서나 봄철영농작업으로 들끓고있었다.

우리와 만난 윤춘화관리위원장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농민들의 본분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떻게 하나 농사를 잘 지어 당정책을 결사옹위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농장에 베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하늘같은 은덕, 크나큰 사랑을 심장에 새기고 영광의 땅을 언제나 풍요한 황금가을을 안아오는 옥토로, 살기 좋은 사회주의농촌으로 대를 이어 가꾸어가겠습니다.》

그의 심정은 청산리사람들의 한결같은 심정이기도 하였다.

과학농사의 열풍을 세차게 일으켜 기후변화에 대처할 작전안을 빈틈없이 세워가는 농장기술일군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좋고 씨뿌리기를 진행해나가는 농장원들의 깐진 일솜씨를 보아도 좋다. 하루 영농계획을 넘쳐 수행하고서도 만족을 모르고 다수확작업반, 다수확농민의 영예를 빛내여갈 맹세를 가다듬으며 일손을 놓지 않는 농산제11작업반 농장원들의 투쟁기풍을 보아도 좋고 화선병사마냥 운전대를 틀어잡고 우렁찬 동음을 기운차게 울리며 농촌기계화초병으로서의 임무를 다해나가고있는 뜨락또르운전수들을 만나보아도 좋다.

황금나락 설레일 래일을 향하여 힘차게 내달리는 청산리일군들과 농장원들의 가슴마다에 차넘치는것은 오직 하나 올해 농사에서 통장훈을 부름으로써 우리 당에 충성의 보고를 올릴 뜨거운 일념뿐이였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청산벌의 봄바람이 우리의 마음을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더더욱 불타게 하였다.

취재를 마치고 떠나는 우리의 눈가에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한 령도의 자욱이 아로새겨져있는 청산벌이 안겨왔다.

참으로 사연도 많은 력사의 땅을 바라보며 우리는 확신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리상을 빛나는 현실로 꽃피우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현명한 령도가 있어 여기 청산벌 아니 우리의 사회주의농촌 그 어디에나 풍요한 황금가을이 찾아올것이라는것을.

주체110(2021)년 4월 5일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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