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등록 |  학생가입 
당에서 바란다면 무엇이나 다 만들어낸 락원의 로동계급

예술영화 《언제나 한마음》과 더불어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은 락원의 로동계급은 혁명과 건설의 력사적인 시기마다 당이 제시한 과업들을 충실히 집행하였다.

우리 당이 농촌경리의 수리화의 과업을 제기하였을 때에는 질좋은 각종 대형양수기를 많이 만들어 알곡생산을 늘이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우리 조국앞에 건설의 공업화과업이 나섰을 때에는 각종 기중기를 제때에 생산보장하여 건설장들에서 보다 큰 혁신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리고 굴착기와 산소분리기를 비롯하여 인민경제발전에서 거대한 의의를 가지는 중요기계설비들을 생산보장함으로써 채취공업을 발전시키며 대자연개조사업을 다그치는데서 특출한 공훈을 세웠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새 세대들도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하였던 전세대들처럼 한생을 빛나게 살도록 교양하여야 합니다.》

조국해방전쟁이 우리 인민의 위대한 승리로 끝난 후 나라형편은 말할수 없이 어려웠다. 3년간의 전쟁에서 우리 나라는 말그대로 페허가 된것이다.

바로 그 페허우에 사회주의를, 제손으로 살림을 꾸려나갈수 있는 자립적인 경제를 그것도 가장 짧은 시일안에 반드시 건설하여야만 한다는것이 우리 당의 결심이였다.

그 간고한 시기에 락원의 로동계급은 《모든것을 전후 인민경제복구발전을 위하여》라는 위대한 수령님의 호소를 높이 받들고 전쟁의 상처를 가시는 복구건설에서 선봉투사, 기수의 영예를 떨치였다.

락원로동계급이 복구의 첫삽을 들었을 때 공장은 형체도 알아볼수 없게 파괴된 상태였고 벽돌 한장 성한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현실앞에서 당황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원쑤들이 마사버린것보다 몇배 더 훌륭한 공장을 제손으로 세우려는 지향을 안고 낮에 밤을 이어 피타게 노력한 락원사람들은 공장주변과 산에 흩어져있는 돌들을 주어들이였고 주을 돌이 더 없게 되자 땅속에 묻힌 돌들을 파내였다. 그리하여 전쟁이 끝난지 한달도 못되는 기간에 3 000㎡나 되는 일반기계직장의 기초를 쌓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이 시기 도처에서 방대한 건설이 진행됨에 따라 당에서는 건설의 공업화에로 인민들을 불러일으켰다. 건설장들에서는 탑식기중기를 비롯한 각종 건설기계들을 요구하였다.

바로 그러한 때인 주체44(1955)년 9월 락원로동계급을 또다시 찾아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건설의 공업화에 필요한 탑식기중기, 자동차기중기를 비롯한 각종 건설기계를 많이 생산하여 건설장들에 보내줄데 대한 영예로운 과업을 주시였다.

당시 공장은 자갈선별기, 콩크리트혼합기, 광차 등 간단한 건설기계를 생산하는 정도였고 로동자들의 기능수준도 높지 못하였다. 이러한 형편에서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탑식기중기와 자동차기중기를 생산하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락원의 로동계급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맡겨주신 영예로운 과업을 실천하기 위한 투쟁에 대담하게 달라붙었다.

탑식기중기생산과정에는 허다한 난관이 제기되였다. 당시 작업의 기계화가 실현되지 못했던탓으로 높이가 30m나 되는 기중기의 부분품을 하나하나 사람의 힘으로 끌어올려 조립하는것이 헐치 않았으며 조립후면 중심도 잘 맞지 않았다.

이처럼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이 많았지만 락원로동계급은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으로 끝끝내 기중기를 만들어내였다.

간난신고끝에 제손으로 기중기를 만들기는 하였지만 로동자들은 첫 기중기의 출현이 여간만 신기하지 않았다.

장승같은 저것이 육중한 물체를 물어올리다가 넘어지지나 않을가 하는 위구심이 든 그들은 기중기 네다리에 바줄을 잡아매고 시운전을 하였다고 한다.

3~4층짜리 아빠트를 짓는 탑식기중기로부터 5~6층짜리 아빠트를 건설하는 새형의 탑식기중기 그리고 자동차기중기를 련이어 생산한 락원의 로동계급은 전후 3개년인민경제계획을 빛나게 완수하였다.

이 시기에 이르러 우리 나라에서는 300여개의 기업소들과 각종 일용품공장들이 복구되였거나 새로 건설되여 조업을 시작하였다. 이것은 전후 재더미우에서 우리 인민이 이룩한 거대한 성과였지만 희망찬 래일을 위한 건설의 서곡에 불과하였다.

력사적인 당중앙위원회 1956년 12월전원회의이후 우리 나라에서는 위대한 천리마운동이 시작되였다. 우리 당은 농촌경리의 사회주의적개조를 다그치면서 수리화를 위한 력사적인 대자연개조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갔다.

기양관개공사가 시작되고 어지돈관개공사도 벌어졌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락원로동계급앞에는 관개공사에 필요한 대형양수기를 만들어야 할 과업이 나섰다.

대형양수기로 말하면 이곳 로동계급이 아직 본적도 없고 만들어본적도 없는것이였다.

특히 양수기생산의 첫 공정을 맡은 주철직장이 맞다든 애로와 난관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수십t에 달하는 주형틀제작과 8t이나 되는 본체주조는 종전의 방법이나 기술, 현존설비로써는 거의나 불가능하였던것이다.

그러나 락원의 로동계급에게 불가능이란 있었던가.

우리는 영웅조선의 근로자, 조선로동당원들이다!

죽으나사나, 아니 이 한몸 쇠물이 되여서라도 기어이 대형양수기본체를 부어내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과업을 무조건 수행해내자!

락원의 10명 당원들을 비롯한 로동계급은 이렇게 심장으로 웨치며 소극과 보수, 답보와 침체를 배격하고 결연히 떨쳐나섰다.

농촌수리화의 성과가 자기들의 어깨에 지워져있다는 자각으로 심장을 불태우며 락원로동계급은 두기의 용선로에서 쇠물을 동시에 녹이고 그것을 두개의 남비에 담아 일제히 주형틀에 붓도록 하여 소극분자, 보수주의자들의 궤변을 또다시 짓부시고 거대한 양수기본체를 단번에 부어냈다.

조립작업반에서는 한달에 양수기 3대를 조립하였는데 20~30대를 조립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나섰다.

그런데 당시 공장에 하나밖에 없는 천정기중기가 양수기동체를 물고 16시간이상 들고있어야 하기때문에 다른 공정을 맡은 로동자들은 천정기중기가 자리를 내줄 때까지 아무 일도 못하고 나앉아있어야 하였다. 그렇게 해서는 조립속도의 보장이란 말할 여지도 없어 작업반원들은 안타까움으로 가슴을 쥐여뜯었다.

이때 한 조립공이 고심어린 연구끝에 천정기중기를 쓰지 않고 양수기를 땅우에서 조립할수 있게 하며 그것도 고급기능공이 아닌 일반로동자들도 손쉽게 다룰수 있는 지구를 창안하여 내놓았다.

어느 한 양수설비가공에는 반드시 6m타닝반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지만 락원사람들은 이것을 단능보링반으로도 훌륭히 해내였다.

마침내 양수기가 제작되였을 때 조립공들은 그것이 물을 제대로 퍼올리는가를 시험하기 위해 추운 겨울날 굳게 얼어붙은 강의 얼음을 까고 찬물속에 뛰여들어 시운전을 하였다.

이렇게 시간을 주름잡는 전투의 련속으로 락원의 로동계급은 그 이듬해 봄까지 300여대의 양수기를 각지 양수장들에 보내였고 기양관개공사에 필요한 대형양수기도 제기일에 생산보장하였다.

그들이 양수기를 기양땅으로 보낸 날 밤 한 조립공은 집에 돌아와 오래간만에 곤한 잠에 들었다. 그로부터 불과 한시간도 못되여 문을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에 그는 잠에서 깨여났다.

기양에서 큰 사고가 났으니 빨리 나오라는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그의 고막을 때렸다. 그가 부랴부랴 옷을 입고 나섰을 때에는 공장지배인의 승용차가 기다리고있었다.

지배인과 조립공을 태운 승용차는 온 나라의 이목이 집중된 기양으로 밤새 달리였다.

마침내 목적지에 다달았을 때 차에서 내린 그들에게 양수기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하는 엄한 질문이 날아왔다.

날카로운 목소리였지만 조립공은 당돌하게 대답했다.

《우리가 만든 양수기가 오작일수 없습니다.》

이어 축이 녹아붙고 전동기가 탄 양수기를 한참이나 들여다본 조립공은 말하였다.

《오작이 아니라 조작이 잘못됐습니다.》

다른 사람이 손을 대지 않은 양수기를 자기가 조립하여 시운전을 해보겠다고 하며 조립공은 자기의 주견을 굽히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오작이라느니, 조작이 잘못되였다느니 한동안 의견이 구구하였지만 너무도 확신에 찬, 아니 신념의 웨침과도 같은 조립공의 말대로 그에게 시운전을 맡기기로 하였다.

그는 남들이 그때까지 떼내지 못한, 조작을 잘못하여 녹아붙은 부분품들을 단 두번의 메질로 떼여낸 다음 당시의 기양뜨락또르공장에 달려가 필요한 부속품을 제손으로 만들어다 다시 조립한 후 양수기시운전에 달라붙었다.

그가 스위치를 누른지 불과 7분만에 1단양수장으로부터 37m높이에 있는 2단양수장에서 물이 콸콸 쏟아져나왔다.

순간 산등성이에서는 만세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때의 심정에 대하여 조립공은 후날 이렇게 말하였다.

《발은 양수기우에 붙어있지만 마음은 공중에 떠있는것 같더군요. 지배인동무는 그때에야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를 돌아보겠지요. 그러면 그렇겠지…하는 기색으로요. …어쩐지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립디다.》

주체48(1959)년 5월 1일,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양수장준공의 력사적인 테프를 끊는 자리에는 그 조립공도 참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수고하였다고 치하하실 때 그는 마음속으로 맹세다지였다.

(저는 언제나 수령님께 충직한 전사로 싸워나갈것입니다.)

주체78(1989)년 4월 27일, 《락원1》호양수기에 로력영웅칭호가 수여되였다.

《락원1》호양수기에 수여된 로력영웅칭호,

그것은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를 쌓아올리는 간고한 투쟁의 나날 기적과 위훈의 자욱을 수놓아온 락원로동계급의 열화같은 충실성과 불같은 애국심에 대한 값높은 표창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이 바로 수령님의 사상과 뜻을 결사옹위하고 당정책을 결사관철하는 투쟁이라는것을 신념으로 간직한 락원로동계급이였기에 우리 나라에서 굴착기문제가 아주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였을 때에도 당과 혁명이 요구한다면 굴착기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것도 우리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충성의 대답소리를 높이 울리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시기 처음으로 락원을 찾으신 때로부터 10년이 지나 또다시 공장을 찾아오신 그날 로동자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그전날에는 10여대의 낡은 선반으로 겨우 나사나 깎고 간단한 농기구나 만들던 조그마한 공장이 오늘은 현대적시설을 갖춘 대규모기계공장으로 자라났다고 하시면서 올적마다 공장이 전진하고있고 올적마다 한가지씩 귀중한 일을 해놓는다고 매우 만족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의 구상을 실현하는데 모든것을 바쳐싸운 락원로동계급의 성실성과 노력을 치하하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전후복구건설시기 락원기계공장 로동계급은 당에서 준 대형양수기를 만들데 대한 과업을 훌륭히 수행하였습니다. 그때 이 공장 로동계급은 첫 대형양수기를 만들어놓고 시운전을 하여본 다음 나에게 보고하였습니다.

락원기계공장 로동계급이 전쟁전에는 소형양수기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였지만 전후에는 대형양수기를 만들어냄으로써 농촌경리의 수리화를 실현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락원의 로동계급은 자동차기중기와 굴착기, 산소분리기를 만들데 대한 과업도 훌륭히 수행하였다고 하시면서 계속하여 절절히 교시하시였다.

《지난 기간 락원기계공장 로동자, 기술자, 사무원들은 좋은 일을 많이 하였으며 당에서 요구하는것이라면 무엇이나 다 만들어냈습니다. 나는 그에 대하여 언제나 기억하고있습니다. 당은 항상 락원의 동무들을 잊지 않고있습니다.》

당에서 요구하는것이라면 무엇이나 다 만들어낸 락원의 로동계급!

그들이 보여준 수령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과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고귀한 혁명정신은 당 제8차대회 결정을 높이 받들고 새로운 5개년계획수행의 첫해 과업관철에 떨쳐나선 온 나라 전체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따라배워야 할 산모범으로 된다.

 

 

 

 

주체110(2021)년 3월 31일 《로동신문》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