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 태양의 품속에서 영생하는 애국의 삶

한 총련일군이 남긴 충성의 자욱을 더듬어

 

재일조선인운동사의 갈피마다에는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애국위업의 강화발전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친 총련일군들의 값높은 생의 자욱이 수놓아져있다.

총련이 형언할수 없는 시련의 광풍속에서도 좌절을 모르고 지나온 년대들에 승리와 영광만을 수놓을수 있었던것은 바로 조국에 무한히 충실한 이런 일군들이 억척같은 뿌리가 되여 애국위업이라는 거목을 떠받들어왔기때문이다.

그 못 잊을 군상속에는 총련중앙상임위원회 부의장이였던 로재호동지의 모습도 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공화국의 건국과 수호, 기적과 번영의 성스러운 발전행로속에는 머나먼 이역땅에서 람홍색공화국기를 창공높이 휘날리며 애국애족의 선각자, 애국충정의 모범, 세계해외교포조직의 본보기의 영예를 떨쳐온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고귀한 피와 땀이 뜨겁게 스며있습니다.》

재일조선인운동의 1세로서 한덕수의장과 함께 총련을 결성하는데서 핵심적역할을 한 로재호동지, 그는 한생 신들메를 풀지 않고 애국운동의 강화발전과 조국의 륭성번영을 위한 길을 걷고걸은 해외의 애국충신이였다.

실력과 인격, 일본새에서 로련하고 청렴결백하며 신망있는 일군, 소탈하고 격식이 없으며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군말 한마디없이 남모르게 많은 수고를 한 사람이라는것이 로재호동지에 대한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추억이다.

절세위인들에 대한 열렬한 충성심은 로재호동지가 거치른 이역땅에서 간고하고 시련에 찬 애국의 초행길을 묵묵히, 꿋꿋이 헤쳐올수 있은 비결이였다.

일제식민지통치의 암담한 세월 태를 묻은 정든 고향을 눈물로 하직한 그는 한줄기 해빛조차 그리운 이역의 고역장에서 마소보다도 못하게 무참히 혹사당하는 조선사람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주먹을 부르쥐고 싸웠다.

당시 《동두로조》의 로재호라면 일본감독들도 진저리를 쳤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식민지망국노의 처지에서 벗어날수 있었겠는가.

일제의 야수적인 고문으로 페인이 된 한덕수동지를 업어내오는 그의 눈가에는 피눈물이 고였었다.

만고절세의 영웅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해방의 홰불을 높이 추켜드시고 일제침략자들을 통쾌하게 족치신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전해듣고 그는 한덕수동지와 서로 어깨를 부둥켜안고 격정의 눈물을 흘리였다.

항일의 총성이 울려퍼지는 백두산으로 가려던 뜻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그는 김일성장군님을 따르는 길에 조국해방의 그날이 약속되여있다는 확신을 안고 반일애국투쟁에 용약 나섰다.

산설고 물설은 바다건너 이역땅에 끌려가 민족적존엄과 삶의 권리마저 빼앗겼던 로재호동지와 같은 력사의 비참한 수난자들에게 있어서 절세의 영웅 김일성장군님은 운명의 하늘이시였다.

마침내 조국이 해방된 후 동포들과 함께 《김일성장군 만세!》, 《조선해방 만세!》의 환호성을 목청껏 터치며 거리를 누비던 로재호동지는 가나가와현에서 선참으로 애국운동의 봉화를 추켜들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새 조국건설을 령도하시느라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재일 100만 동포들에게》라는 력사적인 서한을 보내주시여 애국열의로 불타는 재일동포들에게 무한한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시였다.

사기충천한 로재호동지는 어버이수령님의 령도를 높이 받들어 공화국창건을 위한 투쟁의 앞장에 나섰다.

마침내 공화국이 창건되였다는 소식이 동해의 파도를 넘어 일본땅에 전해졌다.

재일동포들에게 있어서 공화국의 창건은 말그대로 운명전환의 력사적사변이였다.

하기에 이 기쁜 소식에 접한 그들은 일본땅곳곳에서 오각별 찬란한 공화국기를 휘날리며 경축대회, 예술공연, 운동회와 좌담회 등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하였다.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우리도 김일성장군님을 높이 모신 공화국의 주인이다!

이끌어줄 수령이 없고 품어줄 나라가 없어 얼음처럼 차거운 일본땅에서 설음의 눈물을 뿌리던 재일동포들은 저저마다 거리에 떨쳐나와 목청껏 만세의 환호성을 터치였다.

환희에 넘쳐 노상 어깨춤을 들썩이며 돌아가던 로재호동지는 오랜 궁리끝에 특색있는 행사를 준비하였다. 가나가와현경축대회가 끝난 후 자동차시위행진을 벌리는것이였다.

공화국기를 꽂은 200여대의 자동차시위행렬은 실로 굉장하였다. 농악대를 태운 차를 선두로 하여 마지막차가 대회장을 떠날 때까지 거의 한시간이나 걸리였다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로재호동지의 애국열의는 날로 더욱 불타올랐다.

막걸리장사로 겨우 가정의 생계를 유지해가는 안해의 병약한 모습을 보면서도 그는 입술을 깨물고 애국운동의 일선에서 맹활약하였다.

철창속에 갇히웠을 때에도 그는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다. 후날 그는 영생불멸의 혁명송가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부르며 고문장으로 나가면 교형리들의 악형도 두렵지 않았다고 말하군 하였다.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도 로재호동지는 재일동포들을 조국수호성전에로 불러일으키기 위한 투쟁의 앞장에서 용감하게 싸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주체적인 로선전환방침을 높이 받들고 총련을 결성하는데도 적극 이바지하였다.

때없이 들이닥치는 준엄한 시련의 폭풍우를 헤쳐나가야 하는 총련일군들에게 있어서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생명이다.

주체62(1973)년 9월 15일은 그의 한생에서 가장 뜻깊은 날이였다.

이날 공화국창건 25돐 재일조선인축하단 성원으로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니였던것이다.

설레이는 바다우에 태양이 솟아오르는듯 눈부신 예지와 사랑의 밝은 미소를 지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하신 영상을 뵈옵는 순간 이역의 찬서리를 맞으면서도 눈물만은 보이지 않던 그였지만 솟구치는 격정을 금할수 없어 어깨를 떨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재일조선인운동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고 평생을 두고 잊을수 없는 크나큰 은덕을 베풀어주시는 어버이수령님앞에서 이역살이에 서리고 맺힌 원한과 설음의 고드름이 봄날의 눈석이마냥 일시에 녹아내리는것만 같았다.

위인의 손길아래 애국사업을 한다는 자부와 격정의 메아리가 흉벽을 세차게 두드렸다.

어버이를 한자리에 모신 단란한 가정적분위기속에서 시간은 꿈같이 흘러갔다.

사실 그날 외국의 친선사절들과의 접견 등 행사일정이 바쁘셨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역의 전사들을 위해 오랜 시간을 바치시였다. 그 각별한 사랑에 로재호동지의 가슴은 축축히 젖어들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주신 고귀한 가르치심은 로재호동지에게 있어서 한생 흔들림없는 삶의 좌표로 되였고 영광의 그날 그가 다진 충성의 맹세는 위대한 수령, 위대한 조국을 받들어 영원히 애국의 한길을 걸어갈 신념의 메아리였다.

로재호동지는 재일조선인운동의 중요한 고비마다 가장 어려운 모퉁이를 맡군 하였다. 그것은 총련결성이후 그가 력임한 귀국대책위원회 부위원장, 조선신보사 사장, 재일본조선인교육회 회장 등의 직무들이 말해준다.

일찌기 가나가와현에서 애국운동의 첫 발자욱을 떼던 시기에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노란자위땅에 조선학교들을 일떠세워 반동들의 눈알이 뒤집히게 만들었던 로재호동지는 재일본조선인교육회 회장으로 사업하던 기간 민족교육의 토대를 강화하기 위해 고심어린 노력을 기울이였다.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해 해마다 사랑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는 조국의 은혜로운 사랑에 천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애국의 일념으로 가슴 불태우며 그는 늘 동포들속에 들어가 민족교육의 정당성과 우월성을 해설선전하고 학교들의 물질기술적토대를 튼튼히 꾸리기 위한 방도들을 진지하게 토의하면서 그들모두를 민족교육의 강화발전을 위한 투쟁에로 불러일으켰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학교와 함께 있었다. 민족교육에 대한 그의 사랑과 헌신은 참으로 열렬한것이였다.

조선신보사 사장으로 사업하던 시기에도 그는 《조선신보》의 사명은 어버이수령님의 위대성을 내외에 널리 선전하는것이라고 하면서 이 사업을 줄기차게 벌려나갔다.

조국과 총련이 함께 고난의 언덕을 넘던 시련의 그 나날 재일동포들의 가슴속에 신념의 대들보를 더욱 억척같이 세워주신 위대한 장군님, 그이께서 심어주신 백절불굴의 투쟁정신은 로재호동지에게 있어서 험난한 투쟁의 길에서 변치 않을 신념의 무기로 되였다.

총련의 책임일군이였지만 로재호동지는 늘 허물없이 동포들과 마주앉아 흉금을 터놓군 하였다. 그때마다 우리 수령님과 장군님에 대한 이야기, 번영하는 조국에 대한 이야기를 펴놓으며 애국의 신심을 북돋아주고 앞날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는 그를 동포들은 무척 따랐다.

《조국과 총련조직을 받드는 주추돌로 한생을 살겠다. 이것이 나의 인생관이다.》

자식들과 친지들앞에서 늘 이런 말을 뇌이던 그는 불치의 병에 걸려 침상에 누운 후에도 총련사업을 걱정하면서 곁을 지키던 딸마저 애국초소로 등을 떠밀어보냈다.

숭고한 도덕의리와 혁명전사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지니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못내 가슴아파하시면서 조의행사와 관련한 온갖 은정깊은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주체적해외교포운동사상과 령도를 높이 받들어 총련을 결성하는데서 핵심적역할을 하였으며 재일조선인운동의 강화발전을 위한 길에서 삶을 빛내인 해외전사를 영생의 언덕에 세워주시였다.

이렇듯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은혜로운 손길아래 로재호동지는 해외교포운동의 저명한 활동가로 값높은 생의 자욱을 새겨올수 있었다.

태양의 품속에서 영생하고있는 로재호동지, 그의 한생은 참된 애국의 삶은 수령의 품속에서 시작되고 수령에 대한 변함없는 충실성으로 이어지며 순결한 량심과 의리로 빛난다는 고귀한 진리를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심장속에 뚜렷이 새겨주고있다.

주체109(2020)년 9월 28일 《로동신문》

허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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