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집안식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온 사회에 동지적사랑과 의리, 단결과 협조의 고상한 인간관계가 지배하고있으며 사회의 모든 성원들이 하나의 사회주의대가정을 이루고 서로 돕고 이끌면서 화목하게 살며 일하고있습니다.》

세상에 혈연의 관계보다 열렬하고 공고한것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의 모든 성원들이 하나의 대가정을 이루고 고락을 함께 하는 이 땅의 현실은 하나의 진리를 가르치고있다.

피보다 더 진한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정이다라고.

순천시 강포동에 자리잡고있는 순천련경생산사업소 로동자 리성동무의 고향은 자강도이다. 그가 어머니와 함께 순천땅에 보금자리를 편데는 참으로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다.

…몇해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뜻을 높이 받들고 석탄생산을 힘껏 돕던 병사 리성동무는 뜻하지 않은 일로 몸을 다치게 되였다.

그는 곧 가까운 병원으로 후송되였다. 얼마후 병원의료일군들의 뜨거운 정성에 의하여 의식을 회복한 그의 눈가에 전우들과 함께 낯모를 한 녀인의 모습도 비껴들었다.

리성동무는 후날에야 그 녀인이 순천련경생산사업소 소장 방정화동무라는것과 자기가 다친 그날 전우들과 함께 자기를 병원으로 후송한 고마운 녀인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방정화동무는 병사의 회복을 위해 온갖 지성을 다하였다.

귀한 보약재를 마련하여 병원에 보내주었고 사업소의 건물을 일떠세우는 속에서도 수십리길을 걸어 별식을 안고 찾아오군 하였다.

병사를 위해 기울이는 그의 정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지금도 병원의 의료일군들은 처음에는 그를 고향의 어머니로 알았다고, 정말 쉽지 않은 일군이라고 뜨거움에 젖어 추억하고있다.

《제가 더는 군사복무를 할수 없게 되였다는 말을 듣고는 눈물을 머금더군요. 길지 않은 병원생활과정에 소장동지에게 정이 든 저는 그때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전 이 땅을 뜨고싶지 않습니다!〉…》

우리와 만난 리성동무가 한 말이다. 그때 방정화동무는 그의 등을 가볍게 다독이며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너무 락심말아요. 비록 군복은 벗었지만 언제나 병사시절처럼 살면 되지요. 내가 힘껏 돕겠어요.》

이렇게 되여 리성동무는 순천련경생산사업소 종업원이 되였고 군사복무의 자욱이 찍혀진 땅에서 보람찬 로동생활을 하게 되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리성동무의 어머니가 사업소를 찾아왔다. 그는 방정화동무의 얼굴을 한동안 정겹게 바라보다가 손을 꼭 잡았다.

《우리 리성이의 마음을 헤아려주어 고맙습니다. 몸상태가 남같지 않은 그애때문에 속쓸 일이 많을텐데… 아무쪼록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할수 있게 곁에서 어머니처럼 채찍질해주세요.》

이튿날 리성동무는 고향으로 떠나는 어머니에게 크지 않은 보짐을 내밀었다.

《어머니가 속탈로 고생한다는 말을 듣고 소장동지가 마련한 보약재들이예요.》

보짐을 받아드는 어머니의 손이 가볍게 떨리였다. 무슨 말인가 하고싶었는데 목이 꽉 메여 할수가 없었다.

하지만 리성동무는 어머니의 심중에서 울리는 그 당부를 똑똑히 새겨안을수 있었다.

그는 맡은 일을 책임적으로 하였다. 사업소혁신자소개판에는 인츰 그의 사진이 큼직하게 나붙었다.

철따라 사과며 배, 포도와 딸기를 비롯한 과일을 공급받을 때에도, 다달이 팔뚝만 한 메기를 받아안으며 기쁨에 웃음지을 때에도 종업원들은 누구나 과수밭과 양어못을 관리하는 그의 일솜씨를 칭찬했고 그를 친자식처럼 돌봐주고 정을 기울이는 소장에 대해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

저녁시간이면 꼭꼭 리성동무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아들의 소식을 전해주는것이 어느덧 방정화동무의 하루 일과로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방정화동무는 오래동안 품고있던 속생각을 남편에게 터놓았다.

《여보, 리성이를 합숙에서 데려다 우리 함께 사는게 어때요?》

그러면서 그는 산골에 홀로 있는 리성동무의 어머니를 데려다 아들과 함께 살게 하자는 의향을 터놓았다.

《난 매일 밤마다 아들을 그리워할 리성이 어머니생각에 잠이 오지 않아요. 리성이도 같을거예요.》

그날 방정화동무의 남편은 미더운 눈길로 안해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의 정이란 참… 리성이 혼자만 데려온다면 내 마음도 개운치 못할거요. 집이 좁아 못살겠소. 우리 그렇게 하기요.》

오랜 당일군인 남편이 스스럼없이 하는 이 말에 방정화동무는 가슴이 확 열리는것만 같았다.

(고마와요!)

이렇게 되여 방정화동무의 집에 남남인 두 사람이 보금자리를 펴게 되였다.

방정화동무가 성간군까지 먼길을 달려가 리성동무의 어머니를 데리고 돌아온 날이였다. 어머니와 아들이 얼싸안고 기뻐하는 모습을 미소속에 바라보던 그는 조용히 부엌으로 나갔다.

가마에 쌀을 안치는 그의 어깨가 소리없이 오르내렸다. 그런 눈물은 남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느낄줄 아는 참된 인간만이 흘릴수 있는 행복의 눈물이였다.

그날 리성동무의 어머니는 마을사람들이 보내는것이라고 하면서 종이에 싼것을 내놓았다. 펼쳐보니 이런 글발이 있었다.

《원수님식솔》

우리가 리성동무에게서 이야기를 듣고있는데 종업원들이 겨끔내기로 찾아왔다.

병원에 입원한 종업원이 있으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가고 생활이 어려운 종업원들의 가정을 찾아 때없이 밤길에 나서군 한 이야기며 종업원자식이 복무하는 부대에서 보내온 감사편지를 혁신자어머니의 사진과 나란히 붙여놓고 자식앞에 떳떳한 어머니로 살도록 이끌어주고 떠밀어준 이야기, 명절이면 의례히 앞치마를 두르고 종업원식당에서 특식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는 이야기, 종업원들의 생일을 일일이 적어두었다가는 기념품도 꼭꼭 마련해준다는 사실…

그들이 터놓는 소장의 뜨거운 정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가도 끝이 없을상싶었다. 바로 이런 뜨거운 정이 사업소를 해마다 맡겨진 인민경제계획을 넘쳐 수행하는 전투력있는 단위로, 축산과 과수, 양어 등 당정책관철에서 모범적인 단위로 되게 한것이였다.

종업원 한사람, 한사람을 혁명동지로, 대가정의 한식솔로 여기고 사랑과 정을 아낌없이 기울여가기에 사업소가 일 잘하고 단합된 단위로 자랑떨칠수 있는것이였다.

종업원들을 위하는 그렇듯 뜨거운 인정미, 이것이 과연 타고난 천성이겠는가.

우리는 그 대답을 방정화동무의 사업수첩에 적혀있는 한편의 노래에서 찾아본다.

 

억만금 준대도 인정은 못 사 세상이 부러워하네

저 하늘 끝에도 비길수 없는 무한한 인정의 세계

아 인민과 맺으신 정 혈연의 피줄로 이으신분

우린 한시도 떠나 못살아 원수님 그 품을

 

사랑과 정을 다해 인민을 돌보시는 경애하는 원수님, 인민을 위한 길에 웃음도 눈물도 많으신 우리 원수님을 대가정의 어버이로 높이 모시였기에 이 땅에서는 그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끝없이 꽃펴나는것이다.

주체109(2020)년 9월 22일 《로동신문》

오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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