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과거죄악의 력사는 절대로 지울수 없다​

일제가 《정미7조약》을 날조한 때로부터 11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왔다.

세월이 흐르면 지나간 일들이 기억속에서 삭막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우리 인민은 지난날 일제가 저지른 극악무도한 죄악을 절대로 잊지 않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아세아인민들과 전 세계인류앞에 저지른 죄악의 력사는 지금도 인민들의 기억속에 생생합니다.》       

《정미7조약》은 1907년 7월 24일에 일제가 날조한 침략조약이다. 원래 《조약》원문의 정식이름은 《한일협약》인데 정미년(1907년)에 조작된 7개 항목의 《조약》이라 하여 《정미7조약》이라고 불리운다.

일제는 이 《조약》에서 조선봉건정부는 《시정개선에 관하여 통감의 지도》를 받아야 하며 《법령의 제정 및 중요한 행정상의 처분은 미리 통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것, 《고등관리의 임명은 통감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통감이 추천하는 일본인을 관리로 임명》하여야 한다는것, 《통감의 동의없이 외국인을 용빙》하지 못한다는것 등을 규정하였다. 이리하여 조선봉건정부는 일본통감의 《지도》, 《승인》, 《동의》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게 되였다.

《정미7조약》의 날조는 우리 국토와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 인권을 무참히 유린한 일제의 특대형죄악이다.

일반적으로 조약이라고 할 때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 여러 분야에서 공동의 관심사로 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나라들사이에 일정한 권리와 의무의 발생, 변경, 소멸에 관하여 규정하는 국제적합의를 말한다.

력사에는 나라들간에 체결된 수많은 조약이 기록되여있다. 그가운데는 조약의 내용은 물론 그 체결 및 발효절차 등 공인된 기본원칙이 준수된 기초우에서 체결된 조약들이 있는가 하면 국제법의 공인된 기본원칙이 무시되고 강제로 체결된 조약 아닌 《조약》들도 있다. 하지만 일제와 같이 다른 나라에 식민지노예의 멍에를 씌우기 위하여 강압적인 방법으로 아무런 법적효력도 없는 가짜조약을 조작한 례는 없다.

《정미7조약》은 일제에 의해 일방적으로 날조된 아무런 법적효력도 적법성도 없는 비법문서, 협잡문서이다.

《정미7조약》은 우선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날조한 비법문서이다.

이미 1905년 11월에 세인을 경악케 하는 날강도적인 방법으로 《을사5조약》을 날조하여 우리 나라에서 통감통치를 실시하고 매국적인 내각을 내온 일제는 저들의 식민지통치를 강화하는데 일정한 장애로 되고있던 고종황제를 최종적으로 제거하기 위하여 각방으로 책동하였다. 

이러한 때인 1907년 6월 《헤그밀사사건》이 발생하였다. 일제는 이 사건을 저들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 《헤그밀사사건》에 대한 통보를 받은 일본정부는 내각회의를 열고 새로운 침략적결정을 채택한 다음 조선침략의 괴수인 이또 히로부미(이등박문)에게 그대로 집행할것을 명령하였다. 

일제침략자들의 목적은 《헤그밀사사건》을 계기로 모든 책임을 국왕인 고종에게 넘겨씌워 형식상으로나마 존재하던 국왕정부를 완전히 없애치우자는데 있었다.

당시 《통감》으로 임명된 이등박문은 상전의 지시를 친일매국적인 리완용내각을 내세워 실행하기로 결심하고 매국역적 리완용과 송병준으로 하여금 국왕에게 퇴위를 강요하게 하였다. 

고종에 대한 일제침략자들과 친일매국역적들의 퇴위강요에 항의하여 서울에서는 대규모적인 반일시위가 벌어졌으며 그것은 일제침략자들과의 폭력적대결로 번져졌다. 일제는 수많은 병력을 동원하여 시위를 야수적으로 진압하였으며 시내의 요소요소들에 폭압무력을 배치하고 어마어마한 경계진을 폈다. 서울시민들의 반일투쟁을 야수적으로 진압한 이등박문은 이미 작성한 범죄적계획에 따라 1907년 7월 23일 밤 리완용을 자기 집에 불러다놓고 《정미7조약》체결을 강박하였다.

이렇게 되여 그 다음날에 《정미7조약》이 일제에 의해 강압날조되게 되였던것이다.

《정미7조약》은 또한 조선봉건국가의 최고주권자인 고종황제의 비준을 받지 못한 사기협잡문서이다.

국가들사이의 중요한 조약이 반드시 국가대표자의 전권위임장과 비준을 필요로 하는 형식을 취하는것은 근대시기부터 국제조약체결에서 보편적인것으로 되고있다. 일본 근대초기의 권위있다고 하는 국제법학자들이 발간한 《국제법잡지》에 실린 일본을 포함한 각국의 외교협정형식이 그것을 보여주고있다. 당시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를 규제하는 중요조약들은 전권위임과 조인, 비준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것이 국제적인 관례로 되여있었다.

그러나 조선에 대한 독점적지배권을 노린 일제는 조선의 내정권까지 저들의 손에 틀어쥘 목적밑에 전권위임장과 비준이 없이 《정미7조약》을 날조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일제는 《헤그밀사사건》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로 황제자리에서 내쫓고 무능한 순종을 황제자리에 올려앉힘으로써 《정미7조약》을 손쉽게 조작해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고종은 7월 19일 황태자에게 황제를 대리시키겠다고 말하였을뿐 그해 8월 27일까지 황제의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그러므로 《정미7조약》은 응당 조선봉건정부의 최고주권자인 황제의 윤허와 서명, 옥새날인이 있어야 법적으로 성립될수 있었다. 고종은 《정미7조약》의 초안에 비준하라고 요구할 때에도 단호히 거절하였다. 그러자 일제는 총리대신인 매국역적 리완용의 도장만을 받아 《조약》이 마치도 체결된듯이 《한일협약》이라는 이름으로 이 《조약》을 공포하여 버리였다. 이것은 《정미7조약》이 초보적인 조약체결의 원칙마저 무시된 날조품이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외교권을 강탈당한 조선봉건정부와 외교권을 강탈한 일제사이에 그 무슨 《조약》을 체결한다는것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국가주권의 최고대표자의 서명과 날인이 없고 일방적으로 꾸며진 《정미7조약》은 그야말로 불법무법의 사기협잡문서이다.

이처럼 일제는 《정미7조약》과 같은 협잡문서들을 거리낌없이 조작하여 우리 나라를 저들의 식민지로 전락시키고 자연부원을 닥치는대로 강탈하였으며 우리 인민을 죽음의 전장터와 고역장에 끌고다니며 이루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강요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일본은 지난날의 과거죄악에 대하여 우리 민족앞에 성근하게 사죄하고 배상할 대신 오히려 외곡하고 부정하다 못해 미화분식해가며 흑백을 전도하고있다.

불법무법의 사기협잡문서인 《정미7조약》을 날조하여 우리 국토와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 인권을 무참히 유린한 일제의 특대형죄악은 그 무엇으로써도 정당화될수 없고 덮어버릴수도 없으며 천만년세월이 흘러도 우리 인민은 절대로 그것을 용서할수 없다. 

우리 겨레는 일제가 근 반세기동안이나 우리 나라를 날강도적인 방법으로 가로타고앉아 저지른 전대미문의 범죄행위의 대가를 백배, 천배로 기어이 받아내고야말것이다.

박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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