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울리는 절세의 위인에 대한 칭송의 메아리

세월은 모든것을 실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류수와 같은 세월의 흐름속에서도 더욱 깊어지고 뜨거워지는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절세의 위인에 대한 만민의 다함없는 칭송과 경모의 정이다.

7월에 들어선 지금 주체의 영원한 태양이시고 만민의 친근한 어버이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경모심은 우리 인민뿐아니라 전세계 진보적인민들속에서도 더욱 세차게 끓어번지고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걸출한 정치가, 국제사회가 공인하는 불세출의 대성인!

세계 곳곳에서 울려나오는 이 격찬의 목소리는 절세위인을 우러러 터치는 만민의 심장의 분출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인정미와 숭고한 도덕의리, 넓으신 도량과 포옹력에 매혹되여 그이를 심장으로 따른 외국의 벗들이 그 얼마였던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사상과 정견이 다른 사람들도 누구든지 우리 수령님을 한번 만나뵈오면 그 고결한 인품에 매혹되여 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고 존경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신것은 인류의 자주위업수행에 쌓으신 업적중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만민의 칭송을 받고있다.

주체사상을 열렬히 신봉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고 존경하였다. 그들중에는 그이를 만나뵙는 과정에 위인의 한없이 고매한 인품에 온넋으로 매혹되여 주체사상을 더욱 열렬히 신봉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여기에 이런 일화가 있다.

《당신은 서유럽사람이고 정부의 상까지 지낸 사람인데 왜 주체사상을 신봉합니까?》

《당신들이 김일성주석을 한번 만나보십시오. 그러면 누구나 그이를 스승으로 모시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될것입니다.》

이것은 한 일본학자가 1980년대말 주체사상국제연구소와 관련한 사업으로 일본을 방문하고있던 한스 클레카츠키와 나눈 문답의 한 토막이다.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리사장이였던 한스 클레카츠키는 한때 오스트리아에서 사법상을 한 경력도 가지고있었다. 그러한 사람이 주체사상신봉자가 되여 조선의 김일성주석을 스승으로 받들어모신다는 소식은 자본주의일본의 정계와 사회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한스 클레카츠키는 사법상자리를 내놓은 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종합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주체사상을 신봉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뵙고 그이의 숭고한 덕망에 매혹되면서 확고한 인생전환의 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주체74(1985)년 10월 2일 당시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리사장이였던 한스 클레카츠키는 우리 나라를 방문하여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홀앞에까지 몸소 나오시여 태양같이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먼길을 오느라고 수고했다고 하시며 그를 반갑게 맞아주시였다. 그리고 그들일행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허물없이 담화를 나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온 세계를 자주화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 함께 손을 잡고 유럽의 자주화, 아프리카의 자주화, 라틴아메리카의 자주화, 아시아의 자주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그이의 위인적풍모를 페부로 절감한 그는 김일성주석님이시야말로 《세계적인 수령》, 《나의 친아버지》, 《나의 위대한 스승》이시라고 격정을 터치였으며 우리 수령님을 끝까지 따를 굳은 결심을 가지게 되였다.

그때부터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그이를 어버이로, 스승으로 모시고 따랐다. 그는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주체사상을 온 세계에 널리 선전하는데 온갖 심혈을 기울이였다.

그의 이런 절절한 마음을 헤아려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해 9월 주체사상국제연구소의 사업으로 일본으로 가던 도중에 우리 나라에 들린 그를 자신의 곁으로 불러주시였다.

기쁨에 넘쳐 한달음에 달려온 그를 반갑게 맞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신이 왔다기에 식사나 한끼 하자고 불렀다고 하시면서 그의 건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물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오스트리아공화국 전 수상 크라이스키를 만나주시던 일도 들려주시고 조선의 특산물을 일일이 소개하시며 권하기도 하시였으며 국제정세문제에 대하여 명철하게 분석도 해주시였다.

여러차례에 걸쳐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그는 사람들에게 진정에 넘쳐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지니신 인간애와 인정미, 인간향기는 참으로 뜨겁고 숭고한것이여서 만사람을 매혹시키고있으며 언제나 그이를 존경하고 따르게 한다.》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위인적풍모에 그토록 매혹되였기에 그는 자기 삶의 모든것을 절세위인의 불멸의 업적과 주체사상을 선전하는데 바칠수 있었다.

에꽈도르 볼룬따드출판사 총사장이였던 움베르또 오르띠스 플로레스도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의 품에 안긴 그때부터 새로운 삶의 길을 걸은 사람이다.

그는 오래동안 출판부문에서 일해온 선진적인 출판업자였다. 인민대중을 깨우칠 일념을 안고 볼룬따드출판사를 내온 움베르또는 어느날 뜻밖에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에 접하게 되였다. 로작들을 읽을수록 그는 그 세계에 완전히 심취되였으며 정의와 진리의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비로소 찾게 되였다.

주체사상을 깊이 파고들수록 그의 가슴속에는 주체사상의 창시자이신 위대한 수령님을 뵙고싶은 마음이 강렬해졌다.

그의 소원은 마침내 이루어졌다. 주체63(1974)년 10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나라를 방문한 움베르또를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움베르또의 우리 나라 방문을 열렬히 환영한다고 하시면서 먼길을 온 그의 수고도 헤아려주시였고 뜻깊은 기념사진도 찍어주시였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에서 출판물을 통하여 조선인민의 조국통일위업을 지지성원하여주고있는데 대하여 감사하다고, 마치도 옛친구를 만난것과 같은 감정이라고 따뜻한 말씀도 해주시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움베르또에게 세계정치정세와 조선의 통일문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였다.

대단한 정치가도 경제가도 아니고 한갖 출판업자에 불과한 자기를 스스럼없이 대해주시면서 세계정치의 대소사를 론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깊은 모습은 그에게 커다란 감명을 주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친우라고 다정히 불러주시며 앞으로 조선에 자주 오라고, 다시 올 때에는 부인과 아이들을 데리고오라고, 가정적분위기속에서 함께 지내면 더 좋을것이라고 은정깊은 말씀을 해주시였다.

그날의 감격에 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내가 50평생 그토록 찾고찾던 절세의 위인의 모습을 나는 김일성주석의 풍모에서 보았다. 주석의 풍모는 내가 그리던 성인의 세계를 몇십배나 초월한 거룩한 모습이였다. 그 품은 한생을 의탁하고 따르고싶은 어버이의 품, 영원한 삶의 품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위인상에 완전히 매혹된 그는 반동들의 회유와 위협공갈에도 끄떡하지 않고 주체사상을 세계에 널리 선전하기 위한 사업에 한생을 깡그리 바치였으며 자식들도 그 길에 내세웠다.

《그 사상과 인품에 매혹되고 그 품에 안기여 인생전환을 한 나와 같은 각 대륙의 수많은 제자들, 부모들의 뜻을 이어가는 나의 자식들과 같은 2세, 3세들, 진보적인류와 함께 위대하고 거룩하신 김일성주석은 영생하신다.》

움베르또의 이 말에는 그만이 아닌 진보적인류의 한결같은 심정이 어리여있다.

숭고한 덕망으로 만민을 매혹시키시고 세계를 움직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진보적인류의 칭송의 목소리는 오늘도 행성에 끝없이 메아리치고있다.

주체109(2020)년 7월 5일 《로동신문》

박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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