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전쟁사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보천보전투의 력사적의의​

오늘은 보천보전투승리 83돐이 되는 뜻깊은 날이다.

보천보전투는 우리 나라 항일전쟁사에서 망국사의 흐름을 돌려세우는데서 뚜렷한 자욱을 남긴 의의깊은 전투이다.

해방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으로 돌아오셨을 때 각계인사들은 저저마다 그이께 항일무장투쟁시기의 전투담을 들려줄것을 요청드리군 하였다. 이때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늘 제일먼저 보천보전투에 대해 이야기해주군 하시였다. 사실 전과로 보면 이 전투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큰 전투들이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전쟁당시의 주요전투들을 소개하실 때면 언제나 이 전투를 맨 웃자리에 놓군 하시였다. 그것은 이 전투가 항일전쟁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기때문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보천보전투가 가지는 가장 주요한 의의는 조선이 다 죽었다고 생각하던 우리 인민들에게 조선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것을 보여주었을뿐아니라 싸우면 반드시 민족적독립과 해방을 이룩할수 있다는 신심을 안겨준데 있다.》

보천보전투의 력사적의의는 무엇보다도 우리 겨레에게 조선이 죽지 않고 살아있으며 싸우면 반드시 민족적독립과 해방을 이룩할수 있다는 신심을 안겨주었다는데 있다.

1930년대 중엽 일제는 대륙침략준비완성을 위해 조선인민에 대한 식민지통치를 그 어느때보다도 강화하고 지어는 《내선일체》, 《동조동근》을 요란스럽게 떠들면서 도처에 《신궁》, 《신사》를 만들고 우리 인민들에게 《일본정신》을 주입하려고 미쳐날뛰며 우리 말과 글까지 빼앗으려 하고있었다. 

특히 일제는 방대한 무력과 선전수단들을 동원하여 반일민족해방전선의 주력군이였고 민족의 독립의지와 신념의 최고대표자였으며 항일혁명의 조직자, 령솔자인 조선인민혁명군이 저들의 중요한 《병참기지》인 조선의 국경일대에 스며들지 못하도록 철저한 방비를 강구하여 물샐틈없는 국경경비진을 굴설하였다. 조선총독 미나미와 관동군사령관 우에다가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출을 막기 위한 《비상대책》을 세우기 위하여 1936년 10월 《도문회담》까지 벌려놓은 사실이 이를 잘 말해주고있다. 실지 회담후 일제는 국경연선의 2㎞마다에 경찰관주재소와 포대들을 배치하고 포를 비롯한 중무기들을 더 많이 증강배치하였으며 군용도로, 군용통신망 등 군사시설을 대대적으로 신설 또는 보강하였다.

이리하여 조선은 암흑천지로 변하고 조선민족의 운명은 생사존망의 위기에 놓이게 되였다. 이 시기 우리 인민들속에서는 조선이 이제는 다 죽었다는 생각과 함께 일본군의 강대성에 대한 일종의 환상까지 조성되고있었다.

바로 이런 시기에 조국땅 보천보에서 울린 조선인민혁명군의 총성은 2천 300만 동포들에게 조국해방을 이룩할수 있는 조선의 혁명군대가 있다는 긍지와 자부심, 조선은 죽지 않고 살아있으며 조국해방은 반드시 이룩된다는 신심을 북돋아주었던것이다.

당시 쏘련의 원동지방을 무대로 한동안 독립운동을 전개해온 독립운동자의 한 사람이였던 려운형은 보천보전투소식을 듣자 너무도 격동되여 곧 전투현장으로 달려갔으며 현지에서 전적을 보니 망국민의 설음이 순식간에 다 녹아내린것 같고 단군조선이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절로 흘러내리였다고 한다.

그때 완고한 민족주의자였던 김구도 보천보전투소식을 실은 신문을 읽고 어찌나 흥분했던지 창문을 열어제끼고 배달민족은 살아있다고 몇번이나 큰소리로 웨친 후에 자기 서기에게 운동을 한다던 사람들이 모두 뒤골목으로 자취를 감춘 이 판국에 김일성장군이 왜놈들을 정면으로 후려갈긴것이 얼마나 장쾌한 일인가고 하면서 이제부터 우리 림시정부가 김일성장군을 후원해야겠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조직지휘하신 보천보전투승리는 이처럼 우리 겨레에게 조선민족의 넋은 살아있으며 조선은 반드시 독립된다는 신심과 반일항전의 새로운 의지를 안겨주었다.

보천보전투의 력사적의의는 다음으로 일제침략자들에게 심대한 군사정치적타격을 주고 놈들을 걷잡을수 없는 불안과 공포속에 몰아넣었다는데 있다.

보천보전투는 조선과 만주에서 아시아의 제왕처럼 행세하던 일본제국주의자들을 보기 좋게 후려친 통쾌한 전투였다.

이 시기 일제는 중국대륙에 대한 침략을 준비하면서 후방의 안전을 위해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출을 막아보려고 국경일대에 삼엄한 경비진을 치고있었다. 

국경일대에 1선, 2선, 3선도 모자라 4선으로 경계진을 치고 삼엄하고 조밀한 국경경비태세를 갖추고있었고 300여개를 헤아린다는 북부국경지대의 경찰서와 경찰관주재소들에만도 수천명의 폭압무력이 배치되여있었다. 혜산경찰서에서는 유격대의 《토벌》을 기본목적으로 삼는 정예부대인 국경특설경비대라는것까지 무어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출에 대비하였다. 이것은 후날 이 경비대의 대장이였던 오가와 슈이찌의 고백을 통하여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인민혁명군은 이처럼 물샐틈없는 국경경비진을 뚫고 조선총독부당국이 치안유지가 잘된다고 장담하던 국내에 들어가 한개 면소재지의 통치기관들을 일격에 소탕해버림으로써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커다란 공포를 주었다.

새 군복과 무기로 무장한 조선인민혁명군은 위대한 수령님의 지휘밑에 주체26(1937)년 6월초에 19도구를 떠나 20도구, 21도구, 22도구를 거쳐 6월 3일 밤 선발대성원들이 마련한 구시물동떼목다리를 리용하여 은밀히 압록강을 건넜다.

6월 4일은 장날이여서 보천보시가는 장보러온 사람들로 붐비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틈을 리용하여 마동희동지와 김확실동지를 비롯한 정찰조에 임무를 주시여 보천보시가에 대한 정찰을 세밀히 진행한데 기초하시여 작전계획을 빈틈없이 세우시였다. 

밤 10시, 보천보시가의 밤하늘을 헤가르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쏘아올리신 한발의 신호총성에 따라 개시된 작전은 순식간에 승리로 결속되였다. 

이 고장 경찰들의 소굴이며 온갖 폭압과 만행의 아성인 경찰관주재소가 녹아나고 면사무소, 우편국, 산림보호구, 소방회관을 비롯한 여러개의 적통치기관들이 일시에 화염에 휩싸였다. 당시 《동아일보》는 전투가 있은 얼마후인 6월 8일부에서 전투현장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태풍일과후의 보천보, 보천면사무소, 우편국, 산림보호구, 소방회관 이런 중요한 건물이 전부 하루밤사이에 재가 되였다. 면사무소 그자리에는 지금도 연기가 무럭무럭 나고 기둥과 들보가 탄 시커먼 숯덩이만 앙상하게 쌓였고 문서더미가 그대로 타버려서 바람에 재가 날린다.》

전투목표의 설정과 시간의 선택, 불의의 공격, 방화를 통한 충격적인 선동, 활발한 선전활동의 배합 등 모든 과정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립체적으로 맞물린 빈틈없는 작전으로 승리적으로 결속된 보천보전투는 허장성세하던 일제군경들에게 그야말로 커다란 타격으로 되였다. 

《6월 4일 오후 11시 25분… 가림주재소로부터의 급전화를 받은 찰나 예상하지 않았던 너무나 큰 중대사건도발에 흡사 후두부를 〈쾅〉 하고 단단히 얻어맞은것과 같이 전신은 굳어졌다.… 생각하면 보천보사건에 관하여서는 천날동안 베여들인 새초를 한순간에 재더미로 만든것과도 같은 감정이였다.… 아아 6월 5일! 일생 잊지 못할 슬픈 기념일로 되였다.》

이것은 혜산경찰서 서장이 함경남도경찰부에서 발행한 잡지 《함남경우》에 남긴 절명의 한구절이다. 이 구절만 놓고보아도 보천보전투가 적들에게 안긴 군사정치적타격이 얼마나 큰것이였는가를 잘 알수 있는것이다.

참으로 보천보전투는 일제란 결코 무적강군이 아니며 칼로 내리치면 동강이 나고 불을 지르면 짚검불이나 북데기처럼 타번지는 일종의 페기물같은 존재라는것을 뚜렷이 보여준 의의깊은 전투였다. 

만국평화회의장 문전에 나타나 일본의 죄악을 고발하며 렬강들에게 독립을 구걸하던 조선이라는 약소국에 세계 5대강국의 일원임을 자랑하는 일본군을 사정없이 쳐갈기는 민족의 영웅 김일성장군의 혁명군대가 있으며 그 군사들이 일제가 축성한 《금성철벽》을 바람처럼 넘어들어가 침략자들을 호되게 징벌하였다는 사실은 당시 국내외의 주요신문들과 출판물들을 통하여 널리 전해졌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경성일보》를 비롯한 국내의 주요신문들은 일제히 인상적인 표제를 달고 보천보전투소식을 전하였고 이러한 선전물들은 삽시에 식민지, 반식민지나라 인민들의 투쟁을 크게 고무하는 매개물로 되여 세계적인 판도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보천보전투를 통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을 승리에로 이끄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명망은 해외동포들을 포함한 전체 조선인민과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가슴속에 해방의 구성, 민족의 태양, 위대한 군사전략가, 전설적영웅으로 더욱 깊이 아로새겨지게 되였다.

보천보전투는 오늘도 조국해방의 위업을 이룩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걸출한 위인상을 전하며 우리 조국력사에 빛나고있다.

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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