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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남이와 동무들
단편소설

 

 

 

오늘은 운동회날입니다.
일남이네가 사는 고층살림집의 현관문으로는 이른아침부터 빨갛고 파란 운동복을 입은 애들이 연방 튀여나옵니다. 소학교 1학년생인 일남이네 6.6절학교운동회는 아마 여기 고층살림집에서 먼저 시작되는듯싶습니다.
일남이는 통통한 사과볼에 옴폭 보조개를 파며 잽싸게 학교운동장으로 향하고있습니다.
볼록한 되박이마를 덮은 빨간 새 모자가 해빛을 받아서인지 눈부시게 빛납니다.
《일남아!―》
콩콩 뜀박질해가던 일남이는 등뒤 먼발치에서 나는 소리에 홱 돌아보았습니다.
넙적한 앉은코에 입술 두터운 승진이가 뚱기적거리며 달려옵니다.
(승진이구나, 흥!)
일남이는 못 들은척 그냥 걸음을 옮겼습니다.
《일남아!―》
승진이의 부름소리가 덜렁거리는 가방소리와 함께 잔등을 두드릴듯이 가까와왔습니다.
《어― 숨차다. 찾는데 왜 안서니?》
모두숨을 쉬며 어깨까지 들먹이는 승진이가 일남이의 새초롬해진 얼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너 어제일 가지구 아직두 꽁했니? 쬐쬐하게.》
《뭐, 뭐라구? 그럼 넌 말더듬이니?》
《그렇담하자.》
그냥 벙글거리던 푸접좋은 승진이의 눈이 일남이의 모자를 보는 순간 반짝 빛났습니다.
《야! 너 오늘 새 모자 썼구나. 반짝거리는게 정말 멋있다야.》
《선생님이 날 달리기선수로 뽑았을 때 집에 가서 졸랐지 뭐. 그러니까 우리 엄마가 이렇게 막 반짝거리는걸로 사주었어.》
《히야! 새 모자 쓰구 1등으로 달리면 정말 멋있겠다야. 너 달리기솜씰 온 학교에 더 자랑하고파 그러지.》
일남이는 그렇다는듯이 해쭉 웃었습니다.
《그것뿐인줄 아니? 우리 할아버지가 오늘 우리 학교운동회를 촬영하러 오신다는걸 모르지.》
《정말? 너의 삼촌네와 산다는 조선중앙텔레비죤 그 기자할아버지 말이지.》
《그렇잖구.》
《나두 찍니?》
《피―》
일남이는 으쓱해서 괜히 빨간 모자창을 추스르며 물었습니다.
《나 멋있니?》
《음.》
승진이의 대답속에는 부러움이 넘실거리고있었습니다.
《나도 그럴줄 알았더라면 새 모자 쓰고 오는건데. 나한테 좀 대줄게지. 넌 딱친구라면서 저밖엔 몰라.》
승진이의 두볼은 밤알을 문듯 잔뜩 불어났습니다.
(쳇, 어제 오후엔 운동회련습두 못하게 못살게 굴구선.)
일남이는 승진이를 슬쩍 흘겨보았습니다.
×
어제 오후였습니다.
일남이는 턱을 고이고 앉아서 몇번이나 창문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넓게 펼쳐진 창너머 공원에서는 애들이 왁작 떠들며 운동회련습을 합니다.
일남이는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글쎄 자기는 그 어떤 수학문제든지 척척 풀겠지만 한학습반인 승진이와 혁이때문에 조롱속의 새가 되고만것입니다.
《일남아, 일―남아.》
《으응?》
승진이가 팔굽을 건드리는 바람에 일남이는 그제야 책으로 눈길을 가져갔습니다.
《이걸 좀 풀어보렴.》
승진이가 연필끝으로 가리키는 교과서우에서는 응용문제가 길다랗게 틀고앉아 올려다보고있었습니다.
《달리기경기를 하는데… 1반에서 일곱명, 2반에서 여섯명 참가… 1반에서 세명, 2반에서 한명이 참가 안한다면 달리기경기에 모두 몇명이 참가하겠습니까?… 이거야 뭐, 아홉명 아니가?!》
일남이는 뻔한걸 또 물어본다는듯 눈을 흘겼습니다.
《엉, 어떻게? 천천히 대줘.》
《자, 보라. 일곱 더하기 여섯 덜기 셋 덜기 하나 같기는 아홉 아니가?》
일남이는 기관총을 내쏘듯 뚜루룩 내뱉았습니다.
《가만, 뭐라구? 야― 좀 천천히 말하라는데.》
《야― 정말, 넌 아무때나 천천히… 천천히… 그러다간 언제까지 다 하겠니?》
일남이가 두눈섭을 곧추 치켜세우자 승진이는 미안한지 헤식은 웃음만 지어보였습니다.
그러자 이제껏 듬직하게 말이 없던 혁이가 듣다못해 입을 열었습니다.
《얘얘, 싫으면 그만둬. 승진아, 우리 공부인데 우리 둘이서 곰곰히 생각해보면서 풀자. 저 일남인 항상 우리를 깔봐.》
《글쎄말이야. 너무 그러지 말아.》
가만있을줄 알았던 승진이까지 맞장구를 칠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일남이는 그만 골이 잔뜩 났습니다.
《그럼 좋아. 너희들끼리 실컷 해보렴.》
일남이는 책을 덮으며 발딱 일어났습니다.
《가겠으면 가려마.》
승진이와 혁이도 말릴념않고 저희들대로 풀풀 거립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
운동회를 알리는 나팔소리가 랑랑히 울립니다.
일남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기다렸다는듯 환성을 올리며 주석단쪽을 바라봅니다.
주석단뒤에는 《6.6절》이라고 쓴 큼직한 글발이 걸려있습니다.
그앞에서는 일남이네 할아버지가 촬영기를 부지런히 돌리고계십니다.
일남이가 아무리 눈길을 맞추려고 해도 할아버지는 머리를 잔뜩 돌리고 촬영기만 들여다보십니다.
(씨― 할아버진 날 보시지 않구.)
운동장을 감싸안은 소소리높은 뽀뿌라나무들도 저저마다 빙― 둘러서서 운동회를 구경하는듯 합니다.
《…다음은 마지막종목인 사람찾아달리기경기입니다. 〈대성산〉팀에서 나올 선수들은 1학년 1반의 정명수, 김승진, 리일남.》
나팔꽃모양의 하얀 수지나팔이 일남이 자기 이름도 부릅니다.
일남이는 사기충천하여 용수철처럼 튀여일어났습니다.
호르륵― 빽―
드디여 호각소리가 경쾌하게 울렸습니다. 첫번째 선수들이 쏜살같이 달려나갔습니다. 두번째는 승진이차례, 그다음인 마지막선수는 바로 일남입니다.
마지막에 누가 속도를 더 채는가에 따라 경기승패가 좌우된다며 선생님이 맨 마지막선수로 일남이를 정하셨던것입니다.
승진이뒤에 선 일남이는 자신있다는듯 선자리에서 뜀뛰기를 해봅니다.
응원소리는 와―와 더욱 높아만 갔습니다.
《이겨라! 이겨라! 우리 선수 이겨라, 야!》
드디여 제 차례가 된 승진이가 뚱뚱한 몸을 날쌔게 놀리며 《모란봉》팀 애보다 먼저 달려나가 쪽지를 펼쳤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운동장을 쭉 가로질러 일남이네 할아버지쪽으로 달음질쳐가는것이였습니다.
(엉? 저 애가?!)
숨가쁘게 달려간 승진이가 할아버지의 손목을 이끌자 할아버지는 순간 엉거주춤하더니 웃음을 함뿍 담고 달립니다.
(엥이, 저거 승진이 코코에 방해를 놀아. 다음번에 날 찍을 준비를 다 해놓았겠는데 못 찍게 하자는거야 뭐야?)
일남이의 머리속에는 어제 오후 학습반때의 일이 영화장면처럼 지나갔습니다.
운동회련습도 못하고 문제풀이를 도와주는데 자기가 좀 언짢게 말한다고 하여 톡톡 내쏘던 혁이, 승진인 또 뭐야? 맞장구치면서.
출발선에 선 짧은 순간이지만 고까운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그러는새 어느덧 일남이차례가 되였습니다.
일남이는 장탄되였던 총알처럼 쌩― 달려나갔습니다.
《저 빨간 모자를 쓴 애가 정말 빠르구만.》
《야! 그녀석 정말 잘 뛰는데.》
귀바퀴를 스치는 바람소리를 타고 칭찬하는 목소리들이 솔솔 들려오는것만 같았습니다.
(할아버진 빨리 촬영기앞에 서실것이지.… 이러다간…)
그래도 선참으로 앞서달려나간 일남이는 가쁜숨을 몰아쉬며 쪽지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쪽지에는 《제일 친한 동무와 손잡고 뛰시오.》라고 씌여있었습니다.
(제일 친한 동무?)
일남이의 눈앞에 대바람 탁아소때부터 손과 발처럼 묻어다니던 승진이의 둥그런 얼굴이 확 안겨왔습니다.
(승진이! 그다음은 혁이, 그런데…)
방금전까지만 해도 승진이와 혁일 고깝게 생각하던 일남이는 어찌할바를 모르고 굳어졌습니다.
《승…》 겨우 소리를 냈다는것이 개미목소리 같은데다가 그나마 마지막말은 그만 삼켜버리고말았습니다.
쿵챙쿵챙! 꽹과리소리며 《이겨라, 이겨라.》하는 응원소리들이 더더욱 귀따갑게 들려왔습니다.
《일남아! 왜 그러니?》
일남이만 지켜보던 애들이 그 짧은 순간도 얼마나 길게 느꼈는지 와르르 달려나왔습니다.
《보자!》
누군가가 일남이의 손에서 쪽지를 가로챘습니다.
《뭐니, 뭐니?》
애들의 눈길이 약속이나 한듯 자그마한 쪽지에 모여들었습니다.
《제일 친한 동무?》
이때 승진이가 다짜고짜로 일남이의 손을 잡아쥐였습니다.
《빨리 뛰자.》
엉겁결에 승진이에게 손을 맡긴 일남이는 선뜻 달릴수 없었습니다.
《나하구도 뛰자.》
혁이도 급하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자, 빨리!》
혁이와 승진이는 와락 일남이의 량손을 갈라잡고 속도를 놓았습니다.
일남이의 마음속에서는 알수 없는 그 무엇이 고패치며 맴돌았습니다.
(아, 승진이, 혁이, 좋은 애들! 나는 왜 이런 애들을 얕잡아만 생각했댔을가? 왜 내 욕심만 부렸을가?)
이렇게 생각하니 일남이의 온몸에 다시 새힘이 부쩍 솟았습니다.
그는 애들의 손을 꽉 틀어잡고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촬영기앞에 선 할아버지는 어깨나란히 발맞춰달리는 일남이네를 대견스레 바라봅니다.
일남이는 승진이와 혁이의 손을 꼭 잡고 행복에 찬 눈길로 할아버지쪽을 보았습니다.
함박꽃웃음을 담은 할아버지는 결승의 꽃테프를 끊으며 1등으로 들어서는 일남이네를 촬영기에 담고계십니다.
《야! 이겼다!》
응원석에 앉은 애들이 일제히 환성을 올렸습니다.
주석단앞에서는 《대성산》팀의 종합1등을 알리는 축하의 목소리가 흥겨운 노래가락처럼 울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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