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나라의 농업발전을 위하여, 우리 농민들의 생활을 두고 언제나 마음쓰시며 불면불휴의 로고를 다 바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조하신 분조관리제는 농장원들이 공동경리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생산과 관리에 주인답게 참가하게 하는 훌륭한 생산조직형태, 우월한 관리방법입니다. 분조관리제의 우월성은 실천을 통하여 뚜렷이 확증되였습니다.》
전후 우리 나라에서 조직된 농업협동조합(당시)은 농촌문제해결에서 중요한 성과였으나 작업반을 단위로 하는 작업반독립채산제는 농장사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일정한 제한성이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 농업협동조합을 처음으로 조직하였을 때에는 그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기때문에 농민들이 공동경리를 자기 일처럼 여기고 집단생활에도 자각적으로 참가하였다. 그후에 협동조합이 리단위로 통합되면서 작업반들이 크게 조직되였다.
농업협동조합의 조직은 물론 대규모적인 토지건설과 기계화를 하는 등 농촌기술혁명을 수행하는데서 우월성을 나타내였다.
큰 규모로 조직된 작업반은 농촌에서 집단생활의 세포로는 적당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작업반단위로는 공동경리의 우월성을 제대로 발양시킬수 없었다. 이로부터 일부 일군들은 작업반을 단위로 하여 독립채산제를 실시하자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작업반독립채산제는 많은 불합리성을 가져올수 있었다. 그것은 농촌기술혁명에 지장을 주었고 작업반들사이에 본위주의를 낳게 하여 전반적인 농장사업의 발전을 저애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였다.
이 시기 사회주의를 건설하던 다른 여러 나라들에서도 이러한 문제성을 안고 그 해결방도를 모색해왔으나 끝내 옳바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있었다. 일부 사회주의나라들에서 농민들에 대한 물질적자극을 기본으로 하여 협동경리를 관리운영하는 방법을 받아들이는 길을 택하였는데 그것은 사회주의농촌경리제도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을뿐이다.
농촌에서 집단생활의 세포, 기층생산단위를 옳게 설정하고 농민들의 창발성을 높이는것은 사회주의농촌경리발전의 절박한 요구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54(1965)년 5월 11일 강원도 회양군 포천협동농장(당시)을 현지지도하시면서 분조관리제를 실시할데 대한 구상을 처음으로 내놓으시였다.
철령너머 깊은 산간지대에 자리잡고있는 포천농장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민들과 허물없이 자리를 같이하시고 농사형편으로부터 농장원들의 생활형편과 사상의식수준, 작업반과 분조의 구성, 농장관리운영에서 나타나고있는 편향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였다. 차에서 내리는 길로 당시 관리위원장으로부터 알곡수확고와 농장의 일반적인 형편부터 알아보시고 관리능력에 비해 농장의 규모가 너무 크다는것을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색깊은 어조로 벌판은 좋은데 어떻게 경영하겠는가 하시였다.
얼마후 협의회장소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인들과 먼저 인사를 나누시고 허물없이 이야기하시였다.
로인들로부터 포천리가 생긴 력사적사실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전후 10년이 되였는데 오늘까지 농사가 잘되지 않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관리위원회의 한 기술일군을 찾으시여 해발고와 서리오는 날자, 비내림량과 적산온도 등 기상조건을 료해하시고 한 녀성작업반장을 찾으시여 어째서 매해 비료를 주는데 농사가 잘되지 않는가고 안타까이 물으시였다.
협의회에 참가한 로인들과 초급일군들, 농장원들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나무람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들어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마을어구에 들어설 때까지도 포천농장이 산골농장인줄 알았는데 마을어구에 들어와보니 이곳에 큰벌이 있고 강도 있고 비도 많이 오며 기온도 낮지 않고 해발고도 그리 높지 않은 괜찮은 고장이라고, 지금까지 이 농장의 농사가 잘 안되고 농장원들의 살림살이수준도 높지 못한것은 이 고장이 바람이 세고 땅이 산성화되고 로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본은 이곳 농장원들의 정치사상적준비와 계급적각성이 부족하고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성실하게 일하지 않았기때문이라고 지적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농사일을 자기 일처럼 주인답게 하지 않는 현상들을 일일이 지적하시고 그 결함들을 시정극복하고 농장사업을 개선강화하기 위한 과업과 방도를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계급적각오를 높이도록 농장원들속에서 계급교양사업을 강화할데 대하여서와 농장에서 사회주의분배원칙을 철저히 지킬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포천농장에서 분조관리제를 실시하여야 하겠다고 교시하시면서 작업반들의 구성상태를 료해하시였다.
당시 4세포위원장으로부터 작업반이 6개분조로 되여있고 농장원은 150명인데 한개 분조인원이 25명이라는 대답을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작업반도 크고 분조도 너무 크다고, 25명이면 군대의 한개 소대력량과 비슷하다고, 군대에서는 소대에 소대장과 부소대장, 분대장들이 있고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강한 규률이 서있지만 소대장이 소대를 관리하기 힘들어 한다고, 그런데 농장원 25명을 분조장이 혼자서 관리한다는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분조의 인원수를 포천농장같은데서는 15명정도로 하는것이 적당하다고 교시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매개 분조에 포전을 다 고정시켜주고 부림소도 분조마다 다 고정시켜주어 분조에서 관리하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분조에서는 부림소를 관리하는 사람을 내여 그가 소관리를 하면서 밭갈이도 하게 하여야 한다고 일일이 가르쳐주시면서 포천리에서 먼저 작업반우대제 기준을 놓고 그에 준하여 분조관리제를 해보아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분조관리제를 실시하는데서 나타날수 있는 편향에 대해서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작업반장들과 함께 분조의 생산계획과 실지 생산량을 따져보시고 분조에서 알곡을 더 많이 생산하여 농장원들이 더 많이 나누어가질수록 좋다고 하시며 분조에서 농사를 잘하여 국가생산기준을 초과하여 생산한것을 나누어가지는데 대하여서는 그 누구도 시비하지 말아야 하며 이 분조에서 번것을 저 분조에 얼마 주라고 내리먹이거나 작업반에 얼마 내놓으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였다.
3작업반장에게 작업반우대제를 타본적이 있는가고 물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우대제를 타본적이 없다고 말씀올리자 분조관리제를 하면 타먹을 사람이 있지 않겠는가고 하시며 즉석에서 분조의 규모를 정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분조관리제는 본질에 있어서 그것이 농민들을 집단경리운영에 적극 참가시키는 훌륭한 생산조직형태이며 그들속에서 공산주의사상을 키우고 집단주의정신을 높이 발휘하게 하는 가장 합리적인 집단생활의 세포라는데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장내를 둘러보시며 우렁우렁하신 목소리로 한개 분조가 잘살게 되면 다른 분조들도 그 분조를 따라가게 되며 모든 분조들이 다 잘살게 될것이라고 하시였다.
분조관리제를 새롭게 발기하시고 그것을 옳게 실시하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을 자자구구 밝혀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는 어떻게 하나 우리 농민들을 잘살게 하시려는 크나큰 사랑으로 사람들의 심장속에 뜨겁게 흘러들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사회주의농촌경리발전의 합법칙성과 우리 나라 농촌건설의 실천적경험에 기초하여 작업반보다 규모가 작은 분조가 사회주의농촌에서 집단생활의 세포, 기층생산단위로 되여야 한다는 사상을 제시하시고 독창적인 분조관리제를 창조하심으로써 농장관리운영에서 나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를 빛나게 해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분조관리제의 우월성을 확증하시기 위하여 포천농장을 비롯하여 강원도안의 농장들과 자강도 우시군에서 먼저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하시였다.
분조관리제를 받아들인 농장들에서는 농민들의 생산열의와 집단주의정신이 높이 발양되고 농업생산에서 획기적전환이 일어났다.
멀고 험한 산간마을에 오시여 분조관리제를 창조하신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가슴깊이 새겨안는 농업근로자들 (자료사진)
정녕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나라의 농업발전을 위하여, 우리 농민들의 생활을 위하여 언제나 마음쓰시며 불면불휴의 로고를 다 바치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