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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의 어버이가 되시여​

 

 

연안군 오현리 피살자가족들과 담화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주체51(1962)년 1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혁명의 핵심대렬을 꾸리는데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한목숨바친 혁명전사들의 유가족들을 열렬한 혁명가로 키워 그들이 혁명의 대를 꿋꿋이 이어나가도록 하는것을 매우 중요한 문제로 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애국렬사유가족들의 생활을 사회적으로 잘 도와주어야 하겠습니다.》

 

장구한 항일혁명투쟁과 조국해방전쟁에서 고귀한 생명을 바친 혁명전사들의 유가족들을 책임지고 보살펴주는것을 자신의 숭고한 혁명적의리로, 의무로 여기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전직후의 어려운 시기에도 유가족들의 생활에 애로가 있을세라 여러모로 국가적조치를 취하여주시였으며 그들을 사회적으로 적극 내세워주시고 당정책관철에서 핵심적역할을 놀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유가족들을 사회주의건설의 믿음직한 역군으로 키우도록 하시였다.

 

주체46(1957)년 4월 중순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국녀성열성자회의에 참가한 애국렬사유가족, 인민군대후방가족들을 만나 담화를 하실 때 개성직물생산협동조합 녀맹위원장이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남편이 못다한 일을 자기가 하겠다고 뛰여다녔으나 아는것이 없어 애를 태우는 때가 많다고 말씀드리였다. 그 녀성의 꾸밈없는 이야기를 다 듣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은 일을 잘할뿐아니라 공부도 많이 하여야 한다, 열심히 배워 아는것이 많아야 농사도 잘 지을수 있고 사람들을 교양하여 당의 두리에 묶어세우는 사업도 잘할수 있으며 원쑤들과의 싸움에서도 이길수 있다, 앞으로 동무들과 같은 애국렬사유가족들을 공부시키는 학교를 내오려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곧 유가족강습소를 조직하게 하시고 그것을 잘 운영하며 유가족들을 사회주의건설의 믿음직한 역군으로 키워내도록 하시였다.

 

주체47(1958)년 3월, 안악군을 현지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군에서 운영하는 전사자 및 피살자들의 유가족강습소에 들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학습과 생활조건 그리고 강습에 참가하는 동안의 가정살림에 대해서까지 세세히 료해하시였으며 강습생들의 학습장도 보아주시고 손수 틀린 글자의 획과 받침까지 하나하나 바로잡아주시면서 공부를 잘하도록 고무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가족강습소사업을 강화하도록 하시는 한편 주체48(1959)년에는 인민경제학원을 세우시여 전국의 유가족들을 공부시키게 하시였다. 그리고 인민경제학원이 문을 연지 얼마후에는 친히 학원을 찾으시여 유가족들의 학습과 생활을 따뜻이 보살펴주시면서 공부를 잘하여 리론적으로도 준비되고 적과 싸울줄도 아는 훌륭한 녀성혁명가가 되라고 고무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은혜로운 사랑속에서 모든 유가족들은 부모와 남편의 뒤를 이어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갈 뜨거운 열정과 불굴의 의지를 지닌 혁명가들로 성장해나갔으며 국가기관의 정무원으로, 공장과 조합의 관리일군으로 자라나 혁명과 건설에 크게 이바지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유가족들의 생활을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 인민생활을 안정향상시키기 위한 국가적대책을 세우실 때에도, 현지지도의 길에서 인민들의 생활을 보살피실 때에도 언제나 남편이 없이 살림을 꾸려나가는 유가족들의 생활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주체46(1957)년 12월, 황해남도 벽성군 옥정리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을에 들어서시자 한 유가족의 집부터 먼저 들리시였다. 집들이를 한지 얼마 되지 않는 아담한 문화주택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안의 유가족들이 다 새로 지은 이런 집에 든것을 아시고 못내 기뻐하시며 집안팎을 세심히 살펴보시고 일군들에게 불이 잘 들게 굴뚝도 더 높이 쌓아주고 집의 구조도 더 편리하게 고쳐주도록 이르시였다. 그러시고는 그 집 녀성에게 살림살이를 잘 꾸릴데 대하여 차근차근 가르쳐주시였다. 현지지도의 바쁘신 길이였음에도 오랜 시간을 내여 그 집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 유가족녀성에게 공부를 잘하고 더 주인답게 군중의 선봉에 서서 일하라고 하시면서 아이들을 잘 키워서 훌륭한 민족간부로 만들어야 한다고, 당은 유가족들을 기둥으로 믿고있다고 간곡하게 교시하시였다.

 

온 나라의 유가족들을 한품에 안아 보살펴주시는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기쁜날, 즐거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들을 먼저 생각하시였다.

 

주체47(1958)년 1월 1일 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창밖으로 소리없이 내려쌓이는 눈을 바라보시며 유가족들이 설을 어떻게 지내는지, 겨울을 나는데 곤난한것은 없는지 이것저것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잠을 이루지 못하시였다. 이튿날 이른아침,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시의 순안군 대양리 신정부락을 찾으시였다.

민주선전실에서 마을의 유가족들과 허물없이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기 대양리에 피살자가족이 많다는 말을 이미 들었지만 전쟁때에는 미국놈들과 싸우느라고 오지 못했고 전후에는 복구건설을 하느라고 오지 못하다가 오늘에야 왔는데 그사이 곤난한 일들이 많았을것이라고 하시며 유가족들의 생활을 세세히 알아보시였다. 그러시고는 우리가 집을 지어도 주추돌과 기둥이 든든해야 하는것처럼 우리 당의 핵심이 튼튼해야 사회주의건설을 잘하고 우리의 원쑤도 갚을수 있다고 하시면서 유가족들이 모든 사업의 선두에 서서 모범적으로 일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원아들을 어버이사랑으로 보살피시였다.

유가족들에게 돌려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은정깊은 사랑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더욱 뜨겁게 미치였다.

해방직후 혁명자유가족학원을 세우신데 이어 가렬한 전쟁시기에 부모를 잃은 유자녀들을 위하여 나라의 여러곳에 학원을 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학원들을 당에서 직접 돌봐주게 하시고 친히 원아들의 자애로운 아버지가 되시여 그들을 부모의 대를 굳건히 이어나가도록 키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자녀들을 빠짐없이 찾아 학원에 보내주시였을뿐아니라 학원에 가서 부러운것없이 행복하게 배우며 자라고있는 그들의 생활을 돌봐주기까지 하시였다.

 

주체48(1959)년 5월, 황해남도를 현지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쁜 시간을 내시여 당시의 해주유자녀학원을 찾아주시였다.

교실과 기숙사를 돌아보고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운동장에서 춤판을 벌리고있는 학생들을 바라보시며 모두가 대학생처럼 컸다고 대견해하시였다. 학생들은 목청껏 만세를 부르며 어버이수령님께로 달려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생들에게 학원생활이 재미있는가, 어떤 과목들을 배우는가, 앓는 아이들은 없는가, 고향은 어디고 집에는 누가 있는가를 하나하나 물으시고나서 훌륭한 혁명가가 되기 위하여 열심히 배우고 또 배우라고 고무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단련도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농민들의 모내기를 도와준 다음 평양견학을 떠나되 걸어가면서 밥도 제손으로 해먹고 풍을 치고 자기도 하며 돌아올 때에는 기차를 타고오라고 이르시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견학을 가는 이 학원 학생들을 길가에서 만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품에 와락 안기는 원아들에게 걸어오기에 힘들지 않았는가, 발은 부르트지 않았는가, 잠은 어디서 자고 하루에 몇리씩이나 걸었는가, 밥은 다 제손으로 해먹었는가를 일일이 알아보시고 먼길을 온 자식을 대견해하는 친부모의 심정그대로 참 용타고 치하해주시였다. 그리고 평양에 올라가서는 한 열흘동안 묵으면서 견학을 하되 어디어디를 꼭 돌아보라는것까지 가르쳐주시고 돌아갈 때에는 기차를 타고가라고 거듭 당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원아들을 보내시고 그들이 가는 도중에 들리게 될 황해제철소(당시)에 전화를 거시여 학생들을 한가정처럼 따뜻이 맞이해주고 잘 돌봐주라고 이르시였으며 평양에 도착하는 날에는 당중앙위원회 일군이 그들을 맞이하고 견학사업을 조직해주게 하시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유자녀들에게 돌려주시는 사랑과 은정은 한량없이 컸으며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하기에 그들은 자기들을 따뜻이 안아주시고 극진히 보살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의 품을 한없이 뜨겁고 자애로운 친어버이의 품이라고 노래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은혜로운 사랑의 품속에서 유자녀들은 행복의 노래를 높이 부르며 수령님의 참된 혁명전사로 억세게 자라나 부모들의 뒤를 이어 혁명의 대를 꿋꿋이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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