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조국분렬의 력사적전제

 

 

우리 나라에서 통일문제발생의 력사적근원을 바로 인식하는데서 그 전제를 잘 리해하는것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원래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고 식민지통치를 하지 않았더라면 분렬이요, 통일이요 하는 문제자체가 생기지도 않았을것이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렬강들이 조선문제를 동서간의 대립관계에 기초하여 처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나라가 분렬되지 않았을것입니다.》

 

도이췰란드나 일본과 같은 전쟁도발국도 전패국도 아닌 우리 나라가 해방과 동시에 민족분렬이라는 엄청난 불행과 고통에 맞다들리게 된 배경에는 40여년간에 걸친 일제의 식민지통치가 있다.

 

한마디로 말하여 조선분렬의 전제는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지배에 있다. 다시말하여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고 식민지통치를 실시하지 않았더라면 제2차 세계대전시기 전후처리를 위한 국제회의들에서 조선문제가 상정되지 않았을것이다.

 

△ 일제는 불법무효한 협작문서들을 날조하여 우리 나라에 대한 식민지지배권을 틀어쥐였다.

1868년 명치유신이후 서방보다 뒤늦게 자본주의길에 들어선 일제는 조선에 대한 식민지통치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아시아의 관문이며 중국과 이전 쏘련을 련결하는 전략적지대의 중심부에 자리잡고있는 조선반도를 장악하기 위하여 호시탐탐 노리고있던 일제는 1875년 《운양》호사건을 조작하고 조선에 대한 침략을 본격적으로 감행하였다.

 

 

일제는 조선을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하여 집요하게 책동해오다가 미리 계획한대로 1905년 《을사5조약》과 1907년에 《정미7조약》을 허위날조하여 조선의 외교, 군사, 행정권을 틀어쥐고 이른바 통감통치를 실시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식민지지배권을 틀어쥐였다.

 

 

일제에 의해 허위날조된 《을사5조약》(복사본)

 

일제가 조선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통치를 위해 꾸며낸 모든 조약들과 법문서들은 해당한 법적절차도 밟지 않고 강제적으로 날조해낸 불법무효한 범죄적문서들이였다. 일제가 날조하여 공포한 모든 《조약》들과 《법》들은 당시 황제인 고종의 승인을 받지 못한것이며 이른바 《조약》문에는 고종의 수표도 옥새날인도 찍혀지지 않은 위조문건이였다. 《을사5조약》에 빙자하여 설치된 일제의 통감부는 조선에 군림한 식민지통치기관이였으며 그 우두머리인 통감은 조선의 외교와 내정 등 모든 실권을 장악한 실제적인 식민지총독이였다. 일제는 조선에서 통감정치의 개시를 계기로 제마음대로 조약이나 법을 조작해냈다.

 

 

《을사5조약》의 무효를 선언한 고종의 친서 (1906. 6. 22)

 

우리 나라 내정을 완전히 강탈하는것을 법제화한 《정미7조약》은 조선봉건정부의 최고주권자인 고종의 비준없이 강도적으로 날조한 위조문서였다. 포악무도한 일제강점자들은 1907년 8월 27일 순종이 황제즉위식을 가진것을 기회로 고종을 경운궁에 강제로 연금하는 폭거를 감행하였다.

 

일제의 통감정치시기의 《정미7조약》을 비롯한 《법》문서들과 칙령들은 일제에 의하여 조작된 사기문서로서 그 합법성과 유효성에 대하여서는 더 론의할 여지가 없다.

일제는 동서고금의 력사에서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가장 강도적인 방법으로 《조약》을 날조해내고 조선을 저들의 독점적인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고 민족의 자주권을 무참히 유린하였다.
 

원래 우리 민족은 오랜 력사를 통하여 한피줄을 이어받으며 한강토에서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통일적으로 발전해왔다. 다른 나라들에서 봉건시대의 특징인 소국으로 분립되던 때에도 우리 민족은 문화, 경제적련계를 가지면서 민족적공통성을 계속 유지해온 력사에 드문 단일민족이다.

 

△ 일제는 조선을 강점하고 식민지통치를 실시하면서 조선인민의 오랜 력사를 통하여 창조된 슬기로운 문화유산을 무참히 짓밟고 《동조동근》, 《내선일체》​를 떠벌이며 조선사람의 언어와 이름까지 빼앗고 《황민화》하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일제침략자들은 조선인민의 민족적인 모든것을 말살하고 우리 나라를 영영 없애버리기 위하여 《내선일체》니, 《동조동근》이니 하는 따위의 침략적구호를 로골적으로 뇌까리면서 우리 인민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전통을 외곡날조하는 한편 조선인민에게 《일본국기게양》, 《궁성요배》, 《신사참배》, 《정오묵도》, 《황국신민서사》제창 등 반동적인 《일본정신》과 일본식생활양식을 강제로 내려먹임으로써 조선인민의 민족적 및 계급적의식을 마비시키려고 책동하였다. 일제는 또한 조선말과 글을 영영 없애버리기 위하여 강제로 일본어를 교육하고 일본말만을 쓰도록 책동하였으며 1939년에 이르러서는 《창씨개명》을 강요하여 조선사람들의 성과 이름마저 왜식으로 고치게 함으로써 조선민족을 완전히 말살하려고 책동하였다. 일제는 《내선일체》의 구호밑에 조선의 수많은 청년학생들을 《지원병》, 《학도병》, 《징병》의 명목으로 제놈들이 저지른 침략전쟁의 대포밥으로 내몰았다.

 

이처럼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고 식민지통치를 실시해옴으로써 전후처리와 관련하여 여러차례에 걸치는 련합국들의 회의들에서는 파쑈도이췰란드와 이딸리아, 일본제국주의 및 그 동맹국들에 대한 문제와 함께 그들이 강점한 식민지문제들이 중요한 의제의 하나로 토의되였다.

 

워싱톤회담으로부터 까히라회담과 테헤란회담, 얄따회담들에서 미제가 조선문제를 들고나와 저들의 지배야망실현을 위해 집요하게 책동하게 된 구실은 바로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였던것과 관련되였다.

 

 

얄따회담(왼쪽으로부터 쳐칠, 루즈벨트, 쓰딸린)

 

력사적으로 대륙침략을 꿈꾸어온 미국에 있어서 조선반도는 대륙에 첫발을 붙일수 있는 더없이 리상적인 교두보였다. 하기에 미제는 일찍부터 조선에 대한 지배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그러나 만일 우리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가 아니였더라면 미제가 아무리 지배야망에 들떠있었어도 제2차 세계대전시기 국제회의들에서 공식적으로 조선문제를 꺼내놓을수 없었을것이며 조선의 《지역분담대책안》이라는것을 만들 구실도 없었을것이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고 식민지통치를 실시해오다가 패망한것을 기회로 미제는 련합군으로서 일제의 무장해제를 구실로 남조선에 기여들었다.

일제가 우리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지 않았더라면 일제의 《무장해제》라는 구실로 미제가 남조선땅에 기여들수도 없었을것이며 따라서 조선에서 분렬이요, 통일이요 하는 문제자체가 산생되지 않았을것이다. 우리 나라는 통일된 자주독립국가로서 정상적인 자기 발전의 길을 걸어왔을것이다.

력사적사실은 일본의 조선강점과 식민지책동이야말로 우리 나라의 국토와 우리 민족을 인위적으로 갈라놓은 력사적전제로 된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이처럼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가 산생되게 된 력사적근원은 남조선에 대한 미제의 군사적강점과 민족분렬정책에 있으며 그 사회력사적전제는 다름아닌 일제의 조선강점과 식민지지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