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통일적중앙정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외세에 의하여 민족분렬이 강요된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장구한 기간 조선로동당은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국통일로선, 하나의 조선로선의 기치를 높이 들고 전민족적통일운동을 승리와 승리에로 쉬임없이 그리고 줄기차게 이끌어왔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국통일로선을 튼튼히 틀어쥐시고 조국통일을 위하여 온갖 로고를 다 바쳐오신 위대한 공적으로 하여 조국통일운동은 분렬주의세력의 방해책동을 물리치면서 계속 발전하였으며 불패의 력량으로 확대강화되였다.》   

조선로동당의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력사는 한마디로 말하여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분렬로선에 대한 우리 당의 통일로선의 위대한 승리의 력사이다. 그 력사적로정에서 우리 당의 조국통일로선은  위대한 생활력을 남김없이 과시하고있다.

해방후 남조선을 강점한 미제의 민족분렬정책과 식민지예속화책동이 로골화되고있던 시기에 통일적중앙정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한것은 우리 당의 조국통일로선, 하나의 조선로선의 위대한 승리였다.

① 우리 당은 민족분렬의 첫 시기에 가장 정당하고 합리적인 조국통일로선을 내놓고 그 관철에서 견지해야 할 기본방침, 근본립장을 밝혔다.

진보와 반동, 애국과 매국사이의 대조가 뚜렷하게 드러나는것은 정치로선, 정책이다. 정치로선, 정책의 이와 같은 특이성이 가장 눈에 뜨이게 나타난것이 해방후 북과 남의 통일정책이였다.

이 시기 북에서는 나날이 강력한 민주기지가 꾸려졌다. 그러자 쉽게 전조선을 타고앉을수 없다고 판단한 미제는 남조선에서만이라도 식민지통치기구를 조작할 목적밑에 모스크바3국외상회의 결정에 의하여 소집되였던 쏘미공동위원회사업을 고의적으로 파탄시키고 1947년 10월 유엔에서 조선인민의 대표도 없이 조선문제를 토의결정하였으며 이어 유엔의 비법적인 결정에 의하여 조작된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을 남조선에 끌어들여 그 감시하에 남조선에서 5.10《단독선거》를 실시하려고 책동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37(1948)년 신년사와 주체37(1948)년 3월 9일 연설 《반동적남조선단독정부선거를 반대하고 조선의 통일과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에서와 주체37(1948)년 3월 28일 《북조선로동당 제2차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에서 조국통일로선, 통일적자주독립국가건설로선을 제시하시고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우리 당의 원칙적립장과 조국통일방도를 내외에 선언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 민족분렬의 위기가 조성된 정치정세하에서 우리 나라의 통일은 자주적립장에 기초할뿐아니라 민주주의적원칙에 기초한 자유로운 북남총선거를 통하여 통일적인 중앙정부를 세울데 대한 조국통일의 기본방침을 천명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조국통일로선과 근본립장, 기본방침은 철저한 자주적립장과 반제반미투쟁정신으로 일관되여있고 우리 인민과 전체 조선민족의 한결같은 의사와 요구의 반영이였다.

② 우리 당은 북남협상을 실현하여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단선, 단정》조작책동을 분쇄하기 위한 투쟁에 전체 조선인민을 불러일으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하나의 조선로선, 통일적자주독립국가건설로선을 관철하기 위하여 북남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들의 련석회의를 소집할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남조선의 수많은 정당, 사회단체들과 개별적인사들이 북남협상제의를 지지하면서 북조선의 정당, 사회단체들과 협상할것을 요구하였다. 1947년 10월말 남조선민주주의민족전선에서는 북남협상을 요구하는 담화를 발표하였으며 11월에는 10여개의 중간 및 우익정당대표들이 모여 정당협의회를 결성하고 북남협상을 주장하여나섰다.

이런 정세하에서 1948년 1월 9일에 열린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중앙위원회 의장단회의에서는 남조선의 정당, 사회단체 지도자들과 개별적인사들에게 북남협상을 조속히 실현할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낼데 대하여 토의하였다. 3월 25일 북조선민전 중앙위원회 제26차회의에서는 북과 남의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련석회의를 4월에 평양에서 열것을 남조선정당, 사회단체들에 제의하는 공개서한을 채택발표하였다.

북남련석회의준비사업은 안팎의 원쑤들의 파괴책동으로 하여 매우 어려운 조건에서 진행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남조선의 많은 정당, 사회단체와 개별적인사들에게 일군들을 파견하시여 북남련석회의를 제의하는 공개서한을 전달하고 우리 당의 하나의 조선로선, 통일적자주독립국가건설로선과 방침, 통일전선정책, 북남련석회의소집목적을 알려주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우익정객들인 김구, 김규식의 련석회의참가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들을 세우시였다.

마침내 온 민족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속에 력사적인 북남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련석회의가 주체37(1948)년 4월 평양에서 진행되였다.

회의에는 북과 남의 1 000여만명의 당원들과 맹원들을 망라한 56개 정당, 사회단체대표 695명이 참가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련석회의에서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밝힌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남조선에서의 반인민적망국선거를 거부하며 파탄시키는것은 오늘 우리 민족앞에 나선 가장 큰 정치적과업이라고 하시면서 북남조선의 모든 애국력량이 단합하여 통일적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며 민주주의적원칙에서 통일정부를 세우기 위한 거족적인 투쟁을 벌려나갈것을 호소하시였다.

련석회의에서는 남조선《단독선거》를 반대배격하며 통일정부를 수립할데 대한 결의를 담은 《조선정치정세에 대한 결정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외국군대의 즉시철거를 쏘미량국에 요구하였으며 남조선《단독선거》반대투쟁전국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전조선동포들에게 미제와 남조선반동들의 《단선, 단정》조작책동을 분쇄하고 자주적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설것을 호소하는 격문을 채택하였다.

련석회의에 뒤이어 4월 30일 우리 당을 비롯한 북남조선 정당, 사회단체지도자들은 협의회를 가지고 외국군대를 철거시키며 통일정부를 세우기 위한 당면문제들을 제시한 《남북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공동성명서》를 발표하였다. 5월 2일 대동강의 쑥섬에서 있은 북남련석회의 지도부성원들의 협의회에서는 망국적《단독선거》를 저지파탄시키기 위한 투쟁에서 반미통일전선을 강화발전시킬데 대하여서와 통일적인 중앙정부로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할데 대하여 협의확정하였다.

북남련석회의는 해방후 처음으로 북과 남의 정당, 사회단체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주적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토의하고 우리 인민의 통일의지를 내외에 널리 시위한 력사적인 회합으로서 우리 당의 통일로선, 하나의 조선로선의 빛나는 구현이였다.

③ 우리 당은 북과 남의 모든 애국적민주력량을 조직동원하여 통일적중앙정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였다.

력사적인 4월북남련석회의결정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은 북과 남에서 힘있게 벌어졌다.

공화국북반부지역에서는 평양시를 비롯한 각지에서 련일 군중집회와 시위가 벌어졌으며 여기에서는 남조선《단독선거》를 배격규탄하고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하였다.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여러가지 형태의 투쟁을 세차게 벌렸다.

이에 당황한 미제는 남조선전역에 계엄상태를 조성해놓고 5월 10일 단독《선거》를 강행하였다. 격노한 인민들은 투표장을 들부시고 경찰서들을 습격하였다. 제주도에서는 인민들의 투쟁에 의하여 《선거》가 거의 진행되지 못하였다. 남조선《단독선거》는 사실상 파탄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제와 그 앞잡이들은 사기와 협잡으로 《선거》결과를 날조하고 미리 꾸며낸 각본에 따라 괴뢰국회와 괴뢰정부를 조작하였다.

우리 당은 조국통일로선, 하나의 조선로선의 기치를 더 높이 추켜들고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보다 결정적인 투쟁대책을 세웠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37(1948)년 6월 29일 북남조선 정당, 사회단체들의 지도자협의회를 소집하시고 지체없이 북남총선거를 실시하여 전조선적인 통일적중앙정부를 세울데 대한 방침을 다시금 천명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지체없이 조선인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전조선최고립법기관을 세우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을 실시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단독정부를 세울것이 아니라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들로써 전조선정부를 세워야 하겠습니다.》   

협의회에서는 남조선《단독선거》를 무효로 선언한 다음 전조선적인 총선거를 실시하며 이에 기초하여 조선최고인민회의를 창설하고 북남조선대표들로 중앙정부를 세울것을 결정하였다.

우리 당은 전체 조선인민을 북남총선거를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조직동원하였다.

주체37(1948)년 7월에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2차회의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실시와 최고인민회의선거를 위한 사업에서 당단체들앞에 나서는 과업을 토의하고 모든 당단체들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높은 정치적열의와 로력적성과로 맞이하기 위한 조직정치사업을 힘있게 벌리도록 하였다.

또한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사업을 강화하여 민주주의적 정당, 사회단체들이 총선거에서 일치한 보조를 취하도록 하였다.

주체37(1948)년 8월 25일 북남조선 전지역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가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공화국북반부지역에서는 자유로운 분위기속에서 일반적, 평등적, 직접적선거원칙에 의한 비밀투표의 방법으로 선거를 진행하였다. 남조선에서의 선거는 미제와 반동들의 탄압책동을 고려하여 비밀리에 선거자들의 서명을 받아 먼저 인민대표를 선출하고 그들이 공화국북반부지역에 모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선거하는 방법으로 하였다.

북남총선거의 빛나는 승리에 기초하여 9월 2일 평양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차회의가 열리였다.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을 채택하였으며 전체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의사와 념원을 담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수상, 국가수반으로 높이 추대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37(1948)년 9월 9일 조선인민의 통일적중앙정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를 조직하시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시였으며 9월 10일에는 나라의 완전한 통일과 부강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정강》을 발표하시였다.

공화국이 창건됨으로써 조선인민은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개척해나가는 힘있고 존엄있는 인민으로 되였으며 우리 나라는 당당한 자주독립국가로서 국제무대에 떳떳이 나설수 있게 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은 미제와 남조선반동들의 분렬로선에 대한 우리 당의 조국통일로선, 하나의 조선로선의 빛나는 승리였다.

이처럼 우리 당의 조국통일로선은 해방후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반통일책동에 커다란 타격을 준 위력한 무기였으며 통일적중앙정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의 위대한 기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