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8세기 말엽~19세기 초중엽의 문화

 

18세기 말~19세기 중엽 조선봉건왕조시기의 문화는 봉건사회말기의 매우 불리한 사회경제적조건에서도 실학자, 선진적인 학자들에 의하여 문학과 예술이 일정하게 발전하였다.

△ 문학

18세기 말~19세기 중엽 문학은 봉건제도붕괴기의 현실을 반영하여 그 내용과 형식에서 새로운 발전을 이룩하였다.

이 시기 봉건사회의 불합리한 현실과 량반통치배들의 썩어빠진 몰골을 날카롭게 폭로한 작품이 많이 나왔다. 이와 함께 근로인민의 로동생활과 사상감정을 반영하며 그들의 가난한 생활과 비참한 처지를 동정하는 작품들도 나왔다. 그리고 봉건사회의 붕괴과정이 촉진되고 자본주의적관계가 발생발전하고있는 당대의 현실이 사람들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과 근대화에 대한 인민들의 지향이 반영된 작품들이 이 시기 문학의 내용을 이루었다.

이 시기 문학의 특징은 내용에서 반봉건적사상감정을 반영한것이 많으며 그 형식에 있어서 근대적문학의 요소가 나타나고있는것이다.

18세기 말~19세기 중엽 산문문학이 발전하면서 국문소설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창작되였고 시문학에서는 서민문학이 발전하면서 국문시가가 많이 창작되였다.

내용과 형식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당시 문학작품들은 내용에서 현실을 좀더 날카롭게 비판하고 자본주의적관계가 발생발전하던 당시 현실을 반영하였으며 근로자들의 생활과 감정이 많이 반영하였다.

또한 형식에서 서민출신 시인이 많이 등장하여 우리말 시가가 많이 출현하였으며 실학파문학이 발전하였다.

ㅡ 이 시기의 소설문학발전에서 특기할 사실은 구전설화에 토대한 국문소설들이 많이 창작된것이다. 

이 시기에 창작된 국문소설은 그 사상예술적특성으로 보아 《토끼전》, 《장끼전》과 같이 봉건사회의 불합리성을 폭로한 인민창작적인 우화소설과 《콩쥐팥쥐》, 《사씨남정기》, 《장화홍련전》과 같이 봉건적가족제도의 모순을 폭로한 소설 그리고 《춘향전》, 《홍보전》, 《심청전》과 같이 착취계급의 부패성, 착취의 가혹성을 폭로풍자한 소설과 《배비장전》, 《채봉감별곡》, 《옥루몽》과 같이 근대적지향과 성격의 경향을 보여준 소설 등으로 구분하여볼수 있다.  

《춘향전》은 이 시기 국문소설의 대표작이다.

 

 

춘향전

 

《춘향전》은 구전설화를 토대로 하여 18세기경에 처음으로 국문소설로 창작되고 소설화되였다. 그리고 그후 개별적작가들에 의하여 개작되면서 수많은 이본을 내였다. 따라서 그만큼 봉건말기 인민들의 생활과 감정이 반영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춘향전>에 대하여 말한다면 이 작품은 봉건사회에서 량반과 상민사이의 신분적불평등을 비판하고 남녀청년들이 재산과 신분의 차이에 관계없이 서로 사랑할수 있고 같이 살수 있다는것을 보여준것만큼 그 당시에는 물론 진보적인것이였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량반계급의 신분적차별을 반대하는 사람자체가 다름아닌 량반의 아들이며 이 작품에 그려진 인간들의 정신세계는 우리 시대 청년들의 정신세계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것입니다.》  

《춘향전》은 신분적으로 서로 다른 량반 리몽룡과 상민 춘향간의 사랑선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관계를 통하여 당대사회의 부패상과 사회적불평등을 비판하고 신분적구속에서 벗어나 다같이 행복하게 살아보려는 지향을 반영하였다. 《춘향전》은 리몽룡을 《어진 량반》으로 등장시켜 《어진 정치》를 베풀기만 하면 행복하게 살수 있으리라고 여긴 사상적제한성을 가지고있으며 봉건유교사상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다.    

국문소설 《심청전》은 인민창작적구전설화를 작품화한것이다.

 

 

《심청전》은 일찌기 어머니를 여의고 눈먼 아버지의 슬하에서 어렵게 자라난 마음씨 곱고 효성이 지극한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띄우기 위하여 자기의 몸을 바치는 눈물겨운 이야기를 기본내용으로 하고있다. 소설의 앞부분에서는 인민들의 불행하고 암담한 처지가 현실그대로 진실하게 사실주의적수법으로 그려져있고 뒤부분은 가난하고 천대받는 사람들의 행복에 대한 념원과 지향이 랑만주의적수법으로 씌여졌다.

소설 《옥루몽》은 우리 나라 중세소설가운데서 비교적 큰 작품으로서 사건이 복잡하게 엉켜있고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있다. 작품에서 작가가 애써 강조한 측면은 애국적경향이다. 주인공은 늘 나라의 방위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외적이 침입해오자 한몸을 무릅쓰고 전쟁에 나가 용감하게 싸우고있다. 그리고 등장인물의 성격을 철저하게 애국과 반역의 관계속에서 부각시키고있다.

이밖에도 《배비장전》, 《채봉감별곡》, 《해동명장전》 등과 같은 소설들이 있는데 특히 《해동명장전》은 세나라시기부터 17세기 초까지 52명의 명장, 무관들의 전기를 서술하였다. 이 책은 중세기 전쟁사와 군사전략전술, 명장들의 활동연구에 참고로 되지만 봉건적충군사상을 선전한 제한성을 가지고있다.

ㅡ 이 시기에 진보적인 문인들에 의하여 한문소설도 많이 창작되였다.

한문소설의 대표적인 작가로서는 박지원을 들수 있다.

 

 

연암 박지원은 단편소설 《허생전》, 《량반전》, 《범의 꾸중》과 《예덕선생전》, 《민옹전》과 《광문전》등 수많은 소설작품들을 창작하여 당대 진보적문학발전에 기여하였다.

ㅡ 이 시기 시문학도 발전하였다.

이 시기 시문학의 중요특징은 중인과 서리 등 서민계층출신의 진보적작가들이 많이 진출하여 창작활동을 활발히 벌림으로써 시문학에서 새로운 풍조를 보여준것이다.

서민시문학은 시조, 잡가 등 국문시가와 한자시의 두 계렬로 발전하였다.

서민시인들의 국문시가는 《청구영언》, 《해동가요》 등 가사집에 실려 전해지고있다.

《청구영언》은 1727년에 김천택이 편찬한 우리 나라 최초의 국문시가 종합선집이다. 여기에는 약 1 000수의 시조와 17편의 가사가 곡조별로 분류되여 실려있으며 약 140명의 시인들에 대한 간단한 경력도 소개되여있다.

《해동가요》는 1763년에 김수장이 《청구영언》에 자료를 더 보충하여 편찬한 국문시가집이다. 여기에는 900수에 가까운 국문시가작품들이 작가별로 분류되여있다. 이 시가작품들은 당시까지의 국문시가 특히는 시조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귀중한 문학유산으로 되고있다.

19세기 초 한시문학에서 이채를 띤것은 김삿갓의 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봉건사회가 몰락하여가던 시기에 활동한 재능있는 시인 김삿갓을 응당 평가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는 옛날 우리 나라의 재능있는 시인의 한사람이라고 평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인민들이 김삿갓을 사랑해주고 위해준것은 그가 인민들의 요구와 념원을 일정하게 반영하여 봉건통치배들을 비판하고 인민들의 비참한 처지를 동정하였기때문이라고 하시였다. 또한 그의 시작품들가운데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것은 당시 량반통치배들의 비행과 위선을 폭로비판한것이라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삿갓이 개별적인 량반관료들을 풍자하고 조소하는 시들을 썼지만 당시 사회제도 자체를 비판하거나 폭로하는데까지 이르지 못한것은 당시의 시대적조건과 그의 세계관에서의 제한성을 보여준다고 가르치시였다.

김삿갓은 우리 나라 봉건사회말기에 활동한 재능있는 풍자시인이였다.

김삿갓의 시창작에서 특징은 량반들을 풍자하고 인민들을 동정한것이였다.

대표적인 작품들로서 《이십수하 삼십객》, 《온종일 머리숙인 나그네》, 《원생원》, 《가난을 읊노라》 등을 들수 있다.    

김삿갓의 풍자시들은 량반들의 무지, 우매성, 위선, 허장성세를 야유하는데 비판의 화살을 돌렸으며 인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동정하고 당시의 불합리한 현실을 일정하게 폭로하였다.

그러나 김삿갓의 풍자시들은 개별적량반관료들을 풍자하는데 그치고 당시 사회제도 자체를 비판폭로하는데까지 이르지 못하였다. 이것은 당시 시대적조건과 작가의 세계관과 관련되여있다.

이 시기 서민출신 시인들의 시가도 활발히 창작되였다.

류재건, 최경흠 등이 1857년에 편찬한 《풍요삼선》에는 대부분 서민시인들이 창작한 305편의 시가 들어있었다.

△ 예술

― 이 시기 미술이 한층 더 발전하였다.

◦ 이 시기에 그림분야에서도 진보적이며 사실주의적화풍, 인민적이며 민족적인 화풍이 크게 발전하였다.

이 시기의 그림에서 눈에 띄게 발전한것은 인물풍속화이다. 풍속화의 뛰여난 화가들은 김홍도, 신윤복, 김두량, 우수관 등이다.

김홍도는 힘있고 아름다운 필치로 생활을 진실하게 그렸다. 그는 특히 근로인민의 생활을 반영한 그림을 많이 그렸으며 로동생활의 다양한 모습을 생동하게 묘사하였다.

 

 

김홍도의 그림  《대장간》, 《집짓기》, 《마당질》, 《씨름》, 《서당》, 《춤》, 《김매기》 등은 널리 알려진 걸작들로서 로동생활의 다양한 모습과 인민들의 소박하고 락천적인 생활모습들을 잘 묘사한 필치가 독특한 작품이였다.

신윤복도 현실생활의 다양한 측면을 화폭에 반영한 화가인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봄놀이》, 《배놀이》, 《주막》, 《풍악놀이》 등이 있다. 그는 주로 피압박대중을 자기의 화폭속에 등장시켜 도시와 농촌에서 벌어지는 세태생활을 묘사하는데 힘을 넣었다.

그러나 김홍도와 달리 주로 도시평민 그것도 녀성들을 그리였으며 또한 로동생활보다도 세태생활을 주로 묘사하였다. 그는 그림에서 량반과 중을 비롯한 지배계급의 썩어빠진 생활리면을 폭로하였다.

김득신은 《량반과 상민》, 《마당질》, 《양치기》와 같은 작품에서 당시의 계급신분관계의 모순을 잘 나타냈으며 량반과 상민들의 모습을 각각 특색있게 그리였다.

 

 

량반과 상민

 

특히 《량반과 상민》은 하늘소를 타고 거드름을 부리며 길을 가는 량반과 그 앞에서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굽히고있는 농민을 그려 량반과 상민의 대립관계를 집중적으로 반영하고있으며 봉건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한 사회였는가를 엿볼수 있게 하였다.

김두량의 작품 《사계절》, 《소몰이군》 등에는 농민들의 생활이 진실하고 생동하게 묘사되여있다.

 

 

소몰이군

 

《소몰이군》은 인물과 소형상을 통하여 화가의 사실주의적묘기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화면 한가운데 커다란 황소가 그려져있고 그 오른편 나무밑 풀밭에 배를 드러내놓고 잠을 자는 소몰이군이 그려져있는데 농민들의 소박하고 근면한 로동생활을 눈앞에 보는듯이 진실하게 형상하였다.

우진호(우수관)의 대표작 《농민생활도》(경직도)는 19세기 우리 나라 풍속화의 새로운 발전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당시의 농촌현실을 계급적립장에서 잘 형상하였다.

◦ 18~19세기 초중엽에는 풍속화와 함께 풍경화, 동물화, 화조화도 새롭게 발전하였다.

정선(겸재, 1676~1759년)의 《만폭동》, 《혈망봉》, 《옹천의 파도》, 《구룡폭》, 《인왕신》 등과 심사정(현재, 1707~1769년)의 《여름의 산막》, 《겨울경치》, 《꿩과 매》, 리인문(유춘, 1745~1821년)의 《강산은 끝없어라》, 《사공》, 《어촌》, 《심산마을》은 이 시기 풍경화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18~19세기에는 동물화와 화조화가 이전시기에 비하여 더 많이 그려졌다.     

꽃과 새, 짐승들은 흔히 고운 채색화로 그려진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조선화의 우수한 특성의 하나인 색채와 명암, 표현의 특징적수법을 잘 보여주었다.

동물그림에서 윤덕희는 말을, 김두량은 소를, 변상벽은 고양이와 닭을, 심사정은 꿩과 범을, 김홍도는 개와 표범가죽을, 신윤복은 매를 잘 그려 이름을 날리였다.

이 시기 동물화에서 뛰여난 재능을 발휘한것은 변상벽이였다. 그의 《두마리의 고양이》, 《어미닭과 병아리》는 고양이와 닭의 생태를 주의깊게 관찰하고 그것들의 동작과 성질까지 파악하면서 그렸기때문에 형태와 순간적인 동작이 정확한것은 물론 털의 복잡한 색채적변화와 부드러운 질감까지도 섬세하기 그려졌다. 이것은 화가의 높은 회화적기량을 보여주는것이다.

― 이 시기 음악분야에서는 인민적인 음악이 종래의 궁중음악을 압도하면서 급속히 발전하고 재능있는 음악가들이 나타나 활동하였다.

인민적인 음악으로서는 민요와 도시평민가요, 민간기악음악이 당시 음악의 주류를 이루면서 빨리 발전하였다.

민요가운데는 로동가요가 적지 않은데 《모내기소리》, 《농부가》, 《김매기소리》, 《가래질소리》, 《방아타령》, 《옹헤야》, 《도리깨타령》 등이 대표적이다.

로동가요들에는 서정적주인공들의 생활처지, 아름다운 념원과 지향이 정서적으로 깊이있게 반영되여있으며 악곡구성이 받는 소리와 메기는 소리로 구분된것이 아주 특징적이였다.

로동가요와 함께 인민서정가요들이 인민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대중적으로 발전하였다. 인민서정가요로는 《개성난봉가》, 《평북녕변가》 등을 대표적으로 들수 있다.

이 시기 도시평민가요로서 잡가가 새로 나타나 발전하였다. 《심청기》, 《새타령》, 《륙자백이》, 《토끼타령》 등은 대표적인 잡가이다. 도시주민층에 생활적지반을 두고 불리워왔으며 조국산천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도시주민들의 생활기분과 애정륜리 등을 류창한 선률로 노래하였다.

이 시기 민간기악음악이 발전하였다.

종래에는 기악이 주로 궁중직업악단에 의해 발전하였으나 18~19세기에는 민간악단이 조직되여 민간에 널리 보급되였다. 궁중음악이 쇠퇴됨에 따라 거기에서 떨어져나온 악사들은 민간악단을 조직하였으며 그들은 악단에 여러가지 악기들을 도입하여 전통적인 악곡들을 연주하였다.

18세기를 전후하여 우리 나라 일부 지방들에서 판소리가 발생발전하였다. 판소리는 소리광대(배우) 한사람이 북잡이의 장단에 맞추어서 긴 이야기내용을 창과 아니리(극적줄거리를 설명하는 말)를 가지고 출현하는 극적서사가양식으로서 극적음악양식의 발전에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판소리에는 《춘향전》, 《배뱅이》, 《심청전》, 《토끼전》, 《홍보전》, 《배비장전》, 《장끼타령》 등이 이름난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가운데서 《배뱅이》는 서도판소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오랜 기간 인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판소리는 량반들이 갓쓰고 하늘소를 타고다니던 시절에 술이나 마시면서 앉아서 흥얼거리던 봉건통치배들의 요구와 저속하고 락후한 취미와 생활정서를 반영한 음악양식이다. 그리고 판소리에서 내는 소리는 우리의 민족적선률에 맞지않는 발성으로서 자연스럽지 못하고 인위적이다.

이 시기에는 음악과 함께 무용도 발전하였는데 《농악무》를 비롯하여 《장구춤》, 《사냥춤》, 《길쌈놀이》 등 인민들의 근면한 로동생활을 주제로 한 수많은 인민창작무용이 발전하였다.

― 18~19세기 건축도 발전하였다. 그러나 조선봉건국가의 통치위기와 관련하여 크게 발전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우리 인민이 창조한 우수한 건축술은 면면히 이어졌다.

 1794~1796년에 수원성이 건설되였는데 성의 둘레가 5.5㎞나 되였다. 그리고 해자, 문, 수문, 비밀통로(암문), 지휘처, 포루, 봉화축대, 화점 등도 건설하였다.

 

 

1865~1868년에는 6.6m의 높은 궁성벽으로 3.5㎞를 둘러친 경복궁을 건설하였다. 특히 근정전, 경회루, 강녕전, 교태전, 광화문 등이 유명하다.

  현재 남아있는 목조건물가운데서 제일 큰 2층으로된 근정전은 앞면이 30.14m, 옆면이 21.04m나 되며 건물에는 금단청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이러한 건물들은 통치배들의 계급적지배와 유흥에 리용되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인민들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