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혁명의 요구를 반영한 과학적인 정치방식

선군정치는 우리 시대 인민대중의 운명개척의 합법칙적요구를 정확히 반영한 정치방식일뿐아니라 반제군사전선이 제일생명선으로 되고있는 우리 혁명의 요구를 가장 정확히 반영하고있는 과학적인 정치방식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당은 우리 혁명이 처한 국제적환경과 급변하는 정세의 추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한데 기초하여 선군정치를 펼치였습니다 .》  

선군정치는 미일제국주의와의 대결속에서 개척되고 전진하여온 우리 혁명의 요구를 반영하여나온 정치방식이며 반제군사전선이 우리 혁명의 기본전선으로, 제일생명선으로 되게 된 엄혹한 정세의 요구를 반영하여 전면적으로 확립된 정치방식이다.

- 선군정치는 제국주의강적들과의 치렬한 대결속에서 개척되고 전진하여온 우리 혁명의 요구를 반영하여나온 정치방식이다.

총대를 튼튼히 틀어쥐고 선군의 길로 나갈데 대한 요구는 우리 혁명에서 특별히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였다.

그것은 력사적으로 볼 때 우리 나라에서 민족의 자주권을 고수하고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이 가장 포악한 두 제국주의강적인 미일침략자들과의 치렬한 대결과 밀접히 결합되여 진행되여왔기때문이다.

이미 수백년전부터 조선을 중요한 침략대상으로 정하고 그 실현을 위해 끊임없이 책동해온 일본침략자들은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미국을 등에 업고 조선침략의 돌격대로 나서게 되였다.

일본침략자들은 1875년 8월 강도적인 《운양》호사건을 도발하고 그것을 구실로 1876년 2월 조선봉건정부와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라는 불평등적이며 예속적인 조약을 강압적으로 체결한데 기초하여 우리 나라에 대한 내정간섭, 군사적침략의 길에 대대적으로 나섰다. 1905년 11월 《을사5조약》을 날조함으로써 우리 나라를 저들의 완전한 식민지로 전락시킨 일제는 우리 나라의 인적, 물적자원과 문화유산을 수많이 략탈하였으며 지어 우리 말과 글까지 없애려고 미쳐날뛰였다. 일제는 1945년 패망한후에도 우리 나라에 대한 침략야망을 버리지 않았으며 호시탐탐 재침의 기회만을 노려왔다.

일제를 대신하여 《해방자》의 탈을 쓰고 남조선에 기여든 미제는 전 조선을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려는 저들의 침략야망을 기어이 실현하기 위해 1950년 6월 25일 조선전쟁을 도발하였으며 전쟁에서 대참패를 당한 후에도 조선에서 또다시 새 전쟁을 일으키려고 끊임없이 악랄하게 책동하여왔다.

미제는 전후에 《림전태세》를 떠들면서 남조선에 현대적인 군사장비들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이였으며 《북조선에 대한 공격》을 가상한 각종 대규모군사연습을 1960년대 초에만도 해마다 수십차례씩 감행하고 1960년대 후반기에는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과 《EC-121》대형간첩비행기사건 등을 련이어 조작하여 조선반도의 정세를 극도로 긴장시켰다.

미제는 1970년대에 들어와서도 공화국북반부를 《선제타격》하기 위한 《예비전쟁계획》과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을 비롯한 대규모군사연습을 끊임없이 벌려놓고 여기에 옹근 한차례의 전쟁을 치르고도 남을 방대한 침략무력을 동원시키면서 《조선전쟁각본》을 더욱 완성하였다. 1980년대에 이어 1990년대에 들어와서도 미제는 공화국북반부를 침략하기 위한 군사적침략책동을 더욱 미친듯이 감행하였으며 1990년대 중엽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책동이 절정에 달하게 되였다.

그것은 《랭전》이 종식된후 우리 나라가 미제의 《1극세계》실현책동에 제동을 걸고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유일한 나라로 그리고 인류자주위업실현의 강력한 보루로 되였기때문이다. 이와 함께 21세기에 들어와서 조선반도의 지리적위치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있는것과도 관련된다.

이 모든것은 우리 나라를 침략하고 지배하려는 미제와 일본군국주의의 야망은 세월이 흘러도 절대로 변하지 않으며 그로 하여 조선에서의 전쟁위험은 가셔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커가고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참으로 미제와 일본군국주의는 수백년동안이나 우리 나라를 군사적으로 침략하기 위해 끊임없이 책동해온 침략의 원흉, 백년숙적이며 이들의 항시적인 군사적침략과 위협을 받아온 우리 인민은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지켜내기 위해 총대강화, 군력강화의 길로 나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우리 혁명의 이러한 요구를 정확히 반영하여나온 과학적인 정치방식이 바로 선군정치이다.

- 선군정치는 1990년대 중엽이후 반제군사전선이 우리 혁명의 기본전선으로, 제일생명선으로 되게 된 엄혹한 정세의 요구를 가장 정확히 반영하여 전면적으로 확립된 정치방식이다.

이 시기 우리 혁명의 국제적환경과 나라의 사회주의건설은 매우 불리한 형편에 놓이게 되였다.

제국주의반동들은 세계사회주의체계의 붕괴를 좋은 기회로 삼고 반제자주력량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였으며 여기서 특히 세계유일초대국으로 대두한 미제의 강권과 전횡은 극도에 달하였다. 그리하여 세계 진보적력량, 사회주의력량은 급격히 약화되였으며 세계사회주의시장도 붕괴되였다. 여기에 여러해째 자연재해가 련이어 들이닥쳐 우리의 경제건설과 인민생활에서는 커다란 난관이 조성되게 되였다.

바로 이러한 때 우리 인민은 수천년 민족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대국상을 당하게 되였다.

사회주의조선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던 미제와 온갖 반동들은 이 모든것을 절호의 기회로 삼고 우리 나라를 정치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고립압살하기 위한 반공화국책동을 미친듯이 벌리였다.

미제는 저들의 목적을 실현하는데서 군사력의 사용을 기본으로 보고 유럽지역에서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로 침략무력을 이동전개하면서 각종 대규모적인 침략전쟁연습을 련이어 벌려놓으며 정세를 일촉즉발의 전쟁접경에로 몰아갔다.

그리하여 우리 조국과 인민은 생사운명을 판가리하는 엄혹한 시련에 부닥치게 되였으며 조국과 혁명, 사회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반제군사전선은 우리 혁명의 기본전선으로, 제일생명선으로 되게 되였다.

변화된 국제적환경과 우리 혁명의 엄혹한 정세는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으로 하여금 선군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군력강화에 최선의 힘을 넣을것을 절박하게 요구하였으며 혁명대오를 정치사상적으로 더욱 튼튼히 다지고 경제건설에 조성된 난관을 기어이 자체의 힘으로 뚫고나갈것을 요구하였다.

우리 혁명이 제기하는 이 모든 문제를 원만히 풀어나갈수 있는 최선의 길은 선군정치를 전면적으로 확립하는데 있었다.

선군정치를 전면적으로 확립하여야 혁명의 기둥이며 주력군인 인민군대를 정치사상적으로, 군사적으로 강화하여 조국과 혁명, 사회주의를 견결히 지켜낼수 있었으며 혁명성과 조직성, 전투력이 강한 군대를 핵심으로 하여 혁명대오를 반석같이 다지고 군대의 선도자적역할에 의거하여 경제건설을 비롯한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부닥친 난관을 뚫고 새로운 앙양을 일으켜나갈수 있었다.

하기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인민군대를 혁명의 기둥, 주력군으로 내세우고 그에 의거하는 정치방식만이 우리 혁명의 요구를 가장 원만히 실현할수 있다는데로부터 출발하여 선군정치를 전면적으로 확립하는 길을 선택하시였던것이다.

이와 같이 선군정치는 포악한 미일제국주의와의 치렬한 대결속에서 개척되고 전진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우리 혁명, 우리 사회주의위업의 실천적요구를 반영하여나오고 반제군사전선이 혁명의 제일생명선으로 된 1990년대 중엽의 엄혹한 정세의 요구를 반영하여 전면적으로 확립된 가장 과학적인 정치방식이며 우리 혁명의 영원한 승리의 기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