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앙집권적봉건통치체제의 재정비

 

1392년 7월 고려왕조를 뒤집엎고 새왕조를 세운 리성계일파는 무엇보다먼저 봉건적중앙집권체제를 재정비하는 길에 들어섰다.

△ 한양천도

고려왕조를 뒤집어엎고 새왕조를 세운 리성계는 우선 나라이름을 《조선》으로 고치고 수도를 옮기는 문제를 일정에 올렸다.

조선봉건통치배들이 개경을 버리고 수도를 한양(서울)으로 옮긴것은 개경에 리성계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많이 남아있는것으로 하여 새 왕조를 위협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이리하여 새로운 수도의 후보지를 정하고 수도를 건설하는 문제가 당면과제로 나섰다.

- 1394년 8월 한양으로의 천도가 결정되고 10월에는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서울)으로 옮겼다.

◦ 한양은 한강을 끼고있어 전국 여러 고을로부터 거두어들인 전세, 공물 등을 한강을 통해 운반하기에 편리하였고 군사지리적으로도 유리한 자연조건을 가지고있었다.

정치적으로 볼 때도 반리성계세력이 적었다.

◦ 수도 한양건설은 1394년 말부터 시작하여 1410년대까지 기본적으로 끝났다.

수도건설은 내용적으로 종묘와 궁궐건설, 도성, 도로와 하천, 행랑, 관청 및 주택건설로 이루어졌다.

20만명의 인민들이 동원되여 그들의 피와 땀, 희생과 고역의 대가로 수도 한양이 건설되였다.

그리하여 15세기 20년대 중엽경에 이르러 한양은 10여만의 인구를 가진 당시로서는 세계적으로 큰 도시의 하나로 되였다.

△ 중앙집권적통치체제의 재정비

- 조선봉건국가는 중앙집권적통치기구를 강화하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국가주권은 정치적지배권이며 사람들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기본요인입니다. 착취사회에서는 국가주권을 쥔 착취계급만이 지배권을 가지고 모든 권리를 행사하며 국가주권을 쥐지 못한 근로인민대중은 아무런 자유와 권리도 못가지고 오직 착취와 억압의 대상으로만 됩니다.》

재정비된 15세기봉건통치체제의 특징은 고려시기에 비하여 봉건적중앙집권력과 국왕의 전제권이 더욱 강화된것이다.

조선봉건통치배들은 국왕의 전제권을 끝없이 강화하는 방향에서 국가통치체제를 재편성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는 국왕이 주요관리임명권을 직접 장악하였다. 

고려시기에 주요 관리임명은 1~9품까지 다 문하부와 사헌부의 동의와 수표를 받았다. 그러나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와서 4품이상은 국왕 혼자의 의사에 따라 임명하였으며 그 이하는 사헌부, 사간원의 동의와 수표를 받았다.

조선봉건왕조시기 고려시기에 있었던 재추들의 합의기관인 도평의사사를 1400년에 없애버리고 개별적관리들이 지방에서 자기의 권력지반을 닦지 못하게 하기 위한 여러가지 조치들을 취하였다.

봉건국가는 상피법을 적용하여 같은 도안에 관찰사, 고을원을 가까운 친척이 있는곳으로 임명할수 없게 하고 그 임기를 짧게 정하였으며 출신도에 임명하는것을 철저히 금지하였다. 또한 과전도 경기에만 두도록 하였다.
   이처럼 조선봉건왕조시기 국왕은 전제군주로서 독판치기정치를 할수 있도록 무제한한 권한이 부여되였으며 그의 언행은 옳고 그름이 없이 항상 법적성격을 띠였다.

국왕은 전제군주로서 모든 국가권력을 틀어쥔 최고통치자였으며 가장 큰 착취자였다.

국왕밑에는 최고통치기관으로서 의정부가 있었다.

의정부에는 령의정, 좌의정, 우의정 등 3정승이 있었고 그 밑에 좌찬성, 우찬성, 좌참찬과 우참찬, 사인, 검상, 사록 등이 있었다.

의정부밑에 봉건국가의 최고의 중앙행정집행기관으로서 6조가 있었다.

ㆍ리조(吏曹); 문관관리의 임면과 조동, 표창관계, 작위제정 등을 담당

내부부서; 문선사(관리선발배치), 고훈사(표창관계), 고공사(관리들의 사업정형장악) 등

소속관청; 충익부, 내시부, 상서원, 종부시, 사옹원, 내수사, 액정서

관료; 판서(정2품), 참판, 참의, 정랑, 좌랑(정6품)

ㆍ호조(戶曹); 호구, 공물, 부역, 전세, 식화 등을 담당

ㆍ례조(禮曹); 례악, 제사, 연회, 조빙, 학교, 외교, 과거 등을 담당

ㆍ병조(兵曹); 무관임명, 군사행정, 무기무장, 문호, 관약(자물쇠) 등을 담당

ㆍ형조(刑曹); 법률, 송사, 노예 등을 담당

ㆍ공조(工曹);  수공업, 도로건설, 토목공사 등을 담당

그 외에 중앙관청들로서 삼사로 불리우는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그리고 승정원이 있었다.

이밖에도 중앙통치기구에 속한 중앙급관청은 무려 80여개나 되였다.

이와같이 중앙통치기구는 국왕의 전제권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에서 편성되였다.

조선봉건통치배들은 중앙통치기구와 함께 지방통치기구도 개편하였다.

 

 

조선봉건왕조의 행정구역도

 

전국을 8도(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황해도, 강원도, 함경도, 평안도)로 나누고 도에는 관찰사 1명을 두었는데 흔히 감사라고 불렀다.

도밑에 지방행정단위인 고을이 있었는데 부, 대도호부, 목, 도호부, 군, 현 등으로 구분되였으며 그 장관은 부윤, 대도호부사, 목사, 도호부사, 군수, 현령, 현감이라고 불렀다. 이것을 통털어 원이라고 불렀다.

- 조선봉건국가는 군대제도도 개편하였다.

조선봉건통치배들은 《중문경무》정책을 실시하면서 문관만 내세우고 무관을 천시하였으며 인민들속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상무기풍도 말살하였다.

통치배들이 이러한 정책을 쓴것은 인민을 무서워하고 반대파들이 무력으로 정변을 일으킬가봐 두려워하였기때문이다.

군사제도개편에서 조선봉건국가의 《중문경무》정책은 군대의 통수권을 국왕이 직접 장악하고 군대의 요직도 모두 무관이 아니라 문관이 차지하게 하였으며 《무정장무정졸》원칙에서 군대를 조직하고 해마다 무관직을 교체한데서 표현되였다.

조선봉건국가에서 군사행정의 최고기관은 병조였다.

병조에는 판서를 비롯한 관료들이 있었는데 모두 문관출신들이 임명되였으며 그 산하에 무선사, 승여사, 무비사를 비롯한 몇개의 기관들이 있었다.

군대는 그 사명과 임무에 따라 중앙군과 지방군, 병종에 따라 륙군과 수군으로 편성되였다.

중앙군은 5개의 위(의흥위, 룡양위, 호분위, 충좌위, 충무위)로 조직되였다.

5위의 통솔기관으로서 5위도총부가 있었는데 병조의 지휘를 받았다.

지방군은 진관제도에 의하여 조직되였다.

수군도 역시 진관제에 의하여 조직되였다.

다만 해당지휘관의 명칭만 달랐다. 주진의 장관을 수사, 포진(거진)에는 수군절제사, 포(제진)에는 수군동첨절제사가 배치되였다.

- 조선봉건국가는 봉수제도(봉화제도) 우역제도도 정비하였다.

봉수는 봉건사회에서 국경에서 벌어지는 긴급한 정황을 중앙이나 국경기지에 알리는 군사통신수단을 말한다.

전국적으로 봉수의 주요간선을 5개로 하고 봉수대를 설치하였으며 봉수군사를 배치하였다.

15세기 인민들의 간고한 로동에 의하여 적지않은 도로들이 신설되여 우역제도가 더욱 정비보강되였다.

도로망이 정리되는데 따라 역참망도 정비되였다.

이와 같이 조선봉건통치배들은 중앙집권적인 통치체제를 재정비하여 인민들에 대한 정치적지배를 실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