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제의 《두개 조선》정책에 적극 추종한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조선분렬책동

일본군국주의자들은 1970년대에 들어와 미제가 《두개 조선》정책을 들고나오자 그에 적극 추종하면서 조선의 통일을 방해하고 분렬을 영구화하려고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남조선을 저들의 상품시장으로, 식민지로 만들려는 목적밑에 미제의 〈두개 조선〉정책에 적극 추종하고있으며 우리 나라에 대한 재침책동을 악랄하게 감행하고있습니다.》

 

일본반동들이 미제의 《두개 조선》정책에 추종한 리유와 침략적목적

- 그 리유는 조선반도의 정세와 그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변화와 관련된다.

원래 일본반동들은 제2차 세계대전후 미제의 대아시아정책에 추종하면서 력대적으로 《하나의 <한국>》정책을 표방했으며 《북진통일》, 《승공통일》론에 기초하여 《자유체제의 기치》밑에 조선문제가 해결되여야 한다는 립장을 시종일관 견지해왔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남조선일변도적인 대조선정책을 그대로 밀고나가기 어렵게 되였다.

○ 그것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식민지통치체제가 전면적으로 붕괴될 위험에 직면한 반면에 아시아에서 사회주의력량과 반제자주력량이 크게 장성하고 특히 우리 공화국의 위력이 비할바없이 강화된것과 관련된다.

○ 변화된 정세는 일본반동들에게 《하나의 <한국>》정책으로서는 전조선에 대한 지배는 고사하고 자칫하면 남조선마저 잃어버릴수 있다는 불안을 가져다주었다.

이로부터 일본반동들은 미제의 대조선정책에 추종하여 《두개 조선》조작을 대조선정책의 기본으로 내세우게 되였다.

- 일본반동들이 《두개 조선》조작책동을 통하여 추구한 기본목적은

○ 막대한 경제적리윤을 주는 자본투하지, 상품판매시장으로서의 남조선을 계속 틀어쥐고 그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려는것이였으며

○ 남조선만이라도 계속 틀어쥠으로써 장차 그것을 전조선과 대륙침략을 위한 발판으로 리용하려는것이였다.

 

일본반동들의 《두개 조선》정책실현을 위한 책동

- 일본반동들은 1970년대에 《두개 조선》에 의한 남북조선의 《공존》그 자체가 조선문제의 해결로 된다고 하면서 미제와 공모하여 조선의 통일을 방해하고 영원히 둘로 갈라놓기 위하여 여러모로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반공화국정책》실현에서 서로 공모결탁하는 미, 일, 남조선괴뢰외교관들  

 

○ 일본반동들은 조선분렬의 력사적근원문제를 심히 외곡하면서 그것이 마치도 국제법적근거를 가지고있는듯이 날조하려고 책동하였다.

조선이 분렬되게 된 력사적근원은 과거 일제의 조선강점과 식민지지배에 있으며 미제의 남조선강점에 있다. 그런데 일본반동들은 과거 저들의 침략적죄행을 가리우고 조선문제와 관련된 력사적책임에서 벗어나며 《두개 조선》의 《합법성》을 론증해보려는 기도밑에 어용출판물들을 내세워 조선의 분렬이 얄따회담(1945. 2.)에서의 《국제적합의》에 기초하고있는듯이 력사적사실을 날조하려고 책동하였다.

○ 일본반동들은 미제와 결탁하여 《국제적조정》과 《담보》에 의해 《두개 조선》을 《합법화》해보려고 교활하게 책동하였다.

• 미제와 결탁하여 《남북조선유엔동시가입》을 실현시켜보려고 책동하였다.

일본반동들은 박정희역도로 하여금 1973년 《6.23특별성명》에서 《남북조선유엔동시가입론》을 들고나오도록 배후조종했으며 1973년 유엔 제28차총회에서 《남북조선유엔동시가입》을 위한 《공동결의안》의 발기자가 되여 그것을 통과시켜보려고 집요하게 책동하였다.

• 미제의 《남북조선교차승인》책동에도 적극 합세하였다.

이전 일본외상 기무라는 1974년 8월 9일 《남북조선의 통일문제는 미국, 중국, 쏘련, 일본이 공동으로 책임지고있다.》고 하면서 《4개국에 의한 국제적조종》은 《조선문제해결의 합리적방도》라고 떠벌이였다. 그후 1975년 6월 10일 일본외상으로 된 미야자와도 《일, 미, 중, 쏘가 남북조선을 승인하면 평화의 증진에 기여할것》이라는 망발을 거리낌없이 내뱉았다.

○ 남조선괴뢰도당의 《실력》을 《배양》시키기 위하여 책동하였다.

• 《남북간의 군사적균형》을 유지한다는 미명하에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의 철수를 저지시키기 위하여 각방으로 책동하였다.

당시 일본총리 미기는 1975년 8월 6일 《일미수뇌자회담》후 오찬회에서 한 연설에서 《미군이 남조선에 계속 주둔하는것이 조선반도의 평화, 아시아의 안정을 위하여 중요한 공헌을 하고있다.》고 줴쳤다. 이자는 또한 1975년 9월 16일 중의원본회의에서 《당면한 과제는 현재의 남북조선의 균형상태를 유지하며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는 미군의 계속 주둔이 필요하다.》고 떠벌이였다. 그리고 미국상하원 의원단과 만난 자리에서는 남조선으로부터의 미군철수를 반대하는것이 《일본의 기본립장》이라고 표명하였다.

• 조선반도에서《힘의 균형》을 보장한다는 명목밑에 남조선괴뢰들에 대한 《지원》을 전례없이 강화하였다.

괴뢰들의 《실력》을 강화하는것이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해서 중요할뿐아니라 《교차승인》을 실현하는데도 결정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지어줄것이라고 타산하였다. 도이췰란드의 경우 《교차승인》이 쉽게 이루어진것은 《서부도이췰란드가 경제적으로 매우 발전》했기때문이라고 하면서 괴뢰들에 대한 정치, 경제, 군사적《지원》을 강화하였다.

- 일본반동들은 1980년~1990년대 초에도 《두개 조선》정책을 실현하기 위하여 집요하게 책동하였다.

○ 이 시기 일본반동정부의 《두개 조선》정책에서 기본으로 된것은 남북조선의 《유엔동시가입》과 《교차승인》, 남조선괴뢰들이 주도하는 《남북대화》의 추진 그리고 《서울올림픽》의 성공적개최를 통하여 《두개 조선》을 국제적으로 기정사실화하며 남조선괴뢰들의 이른바 《힘의 우세》를 보장해주어 우리로 하여금 《두개 조선》정책을 받아들이게 하려는것이였다.

• 1983년 1월에 남조선에 기여든 당시 일본수상 나까소네는 남북조선의 《유엔동시가입》을 성사시키기 위해 국제무대에서 적극적역할을 놀것을 약속하였으며 그후 실지 그렇게 행동하였다.

일본반동들은 1985년과 1986년의 《선진국수뇌자회의》라는데서 이른바 《발기인》이 되여 남북조선의 《대화촉진》과 《유엔동시가입》, 《서울올림픽》을 지지하는 3개의 《결의》를 조작하게 하였다.

• 일본반동들은 1987년에 《북남조선의 대화를 촉진》시키고 《서울올림픽》의 성공적개최를 위한 《측면지원》을 강화하며 《유엔동시가입》을 성사시키기 위해 《주변의 주요나라들이 남북조선과의 련계를 균형있게》 가지도록 하는것을 《대조선정책》의 《3대원칙》으로 정식화하고 그것을 국제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하여 집요하게 책동하였다.

○ 이 시기 어떻게 하나 《두개 조선》을 조작하려는 야망으로부터 우리가 내놓은 3자회담제안의 실현을 방해하기 위해서도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 일본반동들은 우리의 3자회담제안이 조선의 《적화통일》을 지향하고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반대하도록 남조선괴뢰들을 부추기였다.

당시 일본외상이였던 아베는 우리 공화국의 회담제안에 대하여 《북조선이 정말로 회담을 바라고있는지 그 참뜻을 알수 없다.》고 떠벌이였고 나까소네는 괴뢰들과 만난 자리에서 《3자회담을 제의하는것은 평화공세를 취하기 위한것이므로 남조선은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줴쳤다.

• 우리의 3자회담제안에 《6자회담》이나 《당사자회담》을 대치시키면서 그 실현에 장애를 조성하였다. 그 리유는 일본이 참가하지 못하는 《회담》은 열리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부터 출발한것이였다.

이처럼 일본군국주의자들은 미제와 함께 《두개 조선》을 조작함으로써 우리 인민에게 영구분렬의 고통을 들씌우려고 온갖 교활한 책동을 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