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전후 미제의 새 전쟁도발책동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미제침략자들은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남조선에 무기와 군수품을 반입하여 리승만괴뢰군을 무장시키고있으며 그들을 <북진통일>에로 사촉하고있다.》

미제는 조선전쟁에서 참패를 당한 후에도 전쟁의 방법으로 전 조선을 식민지화할데 대한 기본전략에 따라 정전협정에서 예견된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을 가로막고 새 전쟁도발책동을 강화함으로써 남조선을 새 전쟁도발을 위한 군사기지로 더욱 철저히 전변시켰다.

 

정전직후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을 가로막기 위한 미제의 책동

- 미제는 1953년 10월 26일부터 판문점에서 열린 정치회의와 관련한 쌍방예비회담을 지연파탄시켰다.

 

정치회의문제에 관한 판문점예비회담

 

정전협정에서 규제된 정치회의의 기본목적은 정전을 공고한 평화에로 전환시키며 남조선에서 미제침략군을 철거시키고 조선인민자신의 힘으로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하려는데 있었다. 미제의 지연전술에 의하여 의정합의를 보는데만 18일이 걸렸으며 그후의 회담에서도 우리측의 공정한 제안과 사리정연한 론리에 부닥치게 되자 일방적으로 퇴장하였다. 그후 미제는 정치회의소집을 위한 쌍방예비회담을 다시 열데 대한 우리측의 거듭되는 제의를 무턱대고 거절함으로써 정치회의소집을 완전히 파탄시켰다.

- 미제는 1954년 4월 제네바외무상회의에서의 조선문제토의도 남조선괴뢰들을 사촉하여 악랄한 방법으로 파탄시켰다.

- 미제는 제네바회의파탄후 우리 공화국이 여러차례에 걸쳐 제기한 합리적인 조국통일방안들을 한사코 반대하면서 해마다 유엔총회에서 《유엔감시하의 선거안》을 들고나왔다.

그러나 이것은 《북진통일》정책을 감싸기 위한 한갖 너울에 불과하였다. 미제는 그 막뒤에서 조선에서 새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달기 위한 도발책동에 미쳐날뛰였다.

 

정전직후 새 전쟁도발을 위한 군사적준비책동

- 미제는 전후 새 전쟁도발의 《법적기초》를 마련하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 미제는 정전협정이 조인되던 바로 그 날에 워싱톤에서 조선전쟁에 참가하였던 추종국가들의 회의를 열고 《16개국 공동선언》이라는것을 발표하여 새로운 조선전쟁도발야망을 세상에 공포하였다.

○ 미제는 남조선괴뢰들과 1953년 10월 1일 남조선미국 《호상방위조약》을 체결하였다.

- 미제는 정전협정에 조인한 잉크가 마르기도전에 우리를 반대하는 각종 군사적도발사건들을 련이어 감행하였다.

○ 미제는 정전협정의 요구를 무시하고 군사분계선일대에서 군사적도발을 감행하였다.

1953년 7월 27일 22시(정전협정 효력발생시간) 20분경부터 전선동부 어은산남쪽에서 우리측 870.2고지에 기관총사격을 가하였으며 22시 50분경 전선동부 우리측 진지에 정전후 첫 포사격을 감행한것을 비롯하여 7월 27일 22시~28일 5시사이에만도 8차례의 정전협정위반행위를 감행하였다.

○ 미제는 해상과 공중에서도 우리측 지역에 대한 불법침입 및 정탐행위를 감행하였다.

1953년 7월 29일 비행기에 의한 첫 공중정탐행위를 감행한 미제는 정전직후부터 1957년 9월 말까지의 기간에 년평균 152건의 각종 군사적도발을 감행하였다.

- 미제는 리승만역도로 하여금 《북진》을 고창하면서 괴뢰군무력을 급속히 늘이도록 하였다.

○ 미제는 정전직후부터 리승만역도에게 《북진》을 고창하도록 하였다.

정전직후 미국부대통령 닉슨은 50여명의 전쟁사환군들을 끌고 남조선에 기여들어 전쟁준비를 현지에서 지휘하고 전쟁열기를 북돋아주었다. 1954년 7월 미제는 리승만을 워싱톤에 불러다놓고 《북진》을 사촉하였다. 이에 힘을 얻은 리승만역도는 《조선에서의 정전은 단지 사격중지에 관한 협약뿐이다.》, 《싸움은 이제부터이다.》고 하면서 공공연히 전쟁을 선동하였다.

○ 미제는 침략적인 남조선-미국《호상방위조약》과 《회담의사록》에 규제된대로 괴뢰군병력을 증강하는데도 박차를 가하였다.

괴뢰군현역은 정전후 1955년 초까지 기간에 4개의 륙군사단과 1개의 해병사단 기타 각종 부대들을 새로 편성하여 정전당시의 16개 사단으로부터 21개의 사단으로 증강되였다. 괴뢰군예비병력은 1954년 9월~1955년 5월까지의 사이에 《민병대》를 조작하고 여기에 제대병과 40살까지의 장정들을 긁어모아 10개의 예비사단으로 편성되였다. 결과 괴뢰군병력은 정전당시 16개 사단의 59만 4 000여명으로부터 31개 사단의 72만명으로 급격히 장성하였다.

- 미제는 남조선을 새 전쟁도발을 위한 침략적군사기지로 전변시키는데 미쳐날뛰였다.

미제는 정전직후 일시 일본으로 철수시켰던 미8군사령부와 극동군사령부를 1954년 하반년에 다시 남조선에 끌어들이고 남조선에서 군사시설을 확장하기 위해 발광적으로 책동하였다.

- 미제는 1956년 이후부터 전쟁소동과 전쟁준비를 더욱 강화하였다.

○ 1956년 3월에 미국무장관 덜레스는 남조선에 기여들어 《북조선해방》에 대한 도발적성명을 발표하고 괴뢰들로 하여금 《북진》소동을 더욱 요란히 벌리도록 하였다.

○ 이와 때를 같이하여 정전협정의 개별적조항들을 제멋대로 페지하고 새로운 무장장비들과 부대들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이는 엄중한 도발행위를 감행하였다.

1956년 5월 초에 미제는 워싱톤에서 조선침략전쟁에 참가하였던 16개국의 《대표회의》를 소집하고 《중립국시찰소조의 남조선으로부터의 철거요구》를 결정하였으며 6월 19일에는 일방적으로 중립국시찰소조를 남조선에서 철거시켰다. 그리고 1957년 6월 21일에는 증강하는 작전물자의 반입을 금지할데 대한 정전협정 제13항 ㄹ항목을 일방적으로 페기하였다. 정전협정조항들을 제멋대로 페기한 미제는 《B-52》전략폭격기와 오네스트죤대대 및 280mm원자포대대를 비롯하여 새로운 현대적무장장비들과 부대들을 남조선에 대대적으로 끌어들이였으며 남조선주둔 미제7사단과 제24사단을 원자사단으로 개편하는 등 남조선을 점차 원자기지화하기 시작하였다. 

○ 미제는 1957년 7월 1일에 《유엔군사령부》도 일본으로부터 남조선에 비법적으로 끌어들이였다.

○ 미제는 남조선괴뢰들과 함께 《북진》을 가상한 각종 전쟁연습들을 미친듯이 감행하였다.

1958년 1월 서울-림진강계선에서 남조선-미국합동군사연습을 감행하였으며 그해 10월 하순에는 괴뢰군부대들의 《원자전예비기동훈련》을 감행하였다.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은 1958년 5월 포항에서 정전후 최대규모의 상륙훈련을 감행하였다. 여기에는 200여척의 함선, 50대의 비행기가 동원되였다. 이와 같은 연습은 1960년에 30여차, 1962년에 50여차나 감행되였다. 이것들은 주로 군사분계선과 해안에서의 돌파 및 상륙, 해상보급작전이였다.

이처럼 미제는 전후 첫시기부터 정전협정을 란폭하게 유린하고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을 가로막으면서 새로운 침략전쟁을 도발하기 위해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남조선에서 군사파쑈독재수립후 미제의 새 전쟁도발책동

미제는 1961년 5월에 남조선에서 군사파쑈독재를 조작한후 그에 의거하여 침략과 전쟁정책을 그 어느때보다도 강화하였다.

- 미제는 남조선에서 침략무력을 증강하고 군사연습소동을 발광적으로 벌리였다.

○ 미제는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의 군사장비를 강화하며 남조선괴뢰군을 늘이고 그 장비를 《현대화》하기에 광분하였다.

 

미제가 괴뢰군《현대화》를 위해 남조선에 넘겨준 신형무장장비들과

《군사원조》로 건설된 군수공장

 

○ 미제는 새 전쟁도발을 위한 군사연습소동도 대대적으로 빈번히 벌리였다.

1961년 한해동안에만도 미제는 《북조선에 대한 공격》을 가상한 34차의 각종 대규모적군사연습을 벌리였으며 그 이듬해에는 51차의 군사연습을 벌리였다.

미제는 1965년 이후 남조선괴뢰들과 일본군국주의자들사이의 군사적결탁을 강화한 기초우에서 미, 일, 남조선《합동군사연습》도 자주 벌리면서 전쟁소동에 열을 올리였다. 1968년에 《남침위협》을 떠들면서 벌려놓았던 《솔개미작전》, 《박쥐작전》, 《반게릴라훈련》 등 각종 군사연습들과 1969년 3월 미제침략군 및 남조선괴뢰군이 련합하여 감행한 《포커스 레티너작전》은 그 대표적실례로 된다.

- 미제는 전쟁도발을 목적으로 한 군사적침범책동을 발광적으로 벌렸다.

미제는 군사분계선일대와 우리 나라 령해, 령공에서 새 전쟁도발을 목적한 군사적침범행위를 끊임없이 감행하였다.

1960년대에 미제가 감행한 각종 군사적도발행위는 이미 정탐의 범위를 벗어나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달기 위한 로골적이며 광란적인 성격을 띠였으며 그 건수도 년평균 7 991.2건으로서 1950년대 중엽의 근 52배에 달하였다.

○ 미제는 1968년 1월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을 계기로 무분별한 전쟁도발소동을 더욱 미친듯이 벌리였다.

미제의 무분별한 전쟁소동으로 말미암아 우리 나라에는 임의의 시각에 전쟁이 다시 터질수 있는 엄중한 정세가 조성되였다.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발광하는 미제침략자들에게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대답할것이라는 폭탄선언을 내리시였다.

이렇게 되자 미제는 마침내 1968년 12월 23일 조선인민앞에 무릎을 끓고 저들이 범한 침략행위에 대하여 사죄하며 다시는 그런 범죄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것을 담보하는 사죄문에 서명하였다.

○ 미제는 우리를 반대하는 도발행위를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항복서》에 도장을 찍은후에도 침략과 전쟁소동을 미친듯이 감행하였다.

1969년 1월부터 4월 10일까지의 기간에 군사분계선일대에서 일으킨 군사적도발책동은 우리측이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하여 정식 항의한것만 하여도 2 180건에 달하였다. 미제는 1969년 4월 15일에 일어난 《EC-121》대형간첩비행기사건을 계기로 흑백을 전도하면서 새로운 전쟁소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조선에서 새로운 침략전쟁을 도발하려던 미제의 발악적인 책동은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굳게 뭉친 우리 인민의 불패의 힘앞에서 산산이 부서지고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