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조선(단군조선)의 성립

 

△ 성립과정

고조선은 B.C. 30세기 초에 평양을 중심으로 하여 성립된 우리 나라 력사상 첫 고대국가였으며 그 시조는 단군이다.

 

 

 

우리 민족의 시조왕 단군화상

 

-  고조선의 건국과정은 건국설화인 《단군신화》에 일정하게 반영되여있다.

• 단군신화는 고조선의 건국당시나 그 직후에 이루어진 다음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윤색가미되여 많은 기록들에 남게 되였는데 그가운데서 가장 오래된것으로서 《삼국유사》의 고조선조에 인용되여있는 《고기》의 기사를 들수 있다.

단군신화의 줄거리는 대체로 환웅신화와 단군의 출생신화, 단군의 건국기사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볼수 있다.

여기서 환상적인 이야기로 엮어진 환웅신화와 단군의 출생신화에는 고조선건국이전 원시사회말기의 사회상이 집약적으로 반영되여있다.

환웅신화에 의하면 무리 3 000을 데리고 태백산으로 내려온 환웅이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생명과 질병, 형벌과 선악 등 360여가지 일을 주관하면서 인간세상을 다스리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평등하던 원시사회가 점차 무너지면서 계급과 계층으로 갈라지고 정치적권력을 가진 통치집단이 형성되여가고있던 당시의 형편을 보여주고있다. 환웅은 이러한 통치집단의 우두머리였다. 형벌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있는것으로 보아 계급적대립이 이미 상당히 첨예한 상태에 있었다는것을 알수 있다.

단군의 출생신화에 의하면 곰과 범이 같은 굴에서 살았는데 그후 곰이 녀자로 되였고 이 녀자와 환웅이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곰과 범을 토템으로 하는 두 씨족으로 구성된 종족이 있었는데 종족장의 지위를 차지한것은 곰씨족출신이였고 이 종족과 환웅이 거느린 종족이 합쳐 하나의 종족련합을 이루었던 사실이 반영되여있다. 환웅은 이 종족련합의 추장이였다.

이와 같이 신화는 환웅의 시대에 이미 종족련합이 이루어져있었고 사회성원들은 공동체추장과 씨족적귀족, 공동체성원들로 갈라져있었으며 지배계급을 반대하는 피지배계급의 반항을 억누르기 위하여 형벌이 적용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이것은 단군의 출생당시에 건국의 제반조건이 성숙되고있었다는것을 의미한다.

단군의 건국기사에는 단군이 평양에 수도를 정하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다는것이 밝혀져있다.

 

※ 단군신화에 대한 비판분석

ㆍ신비롭게 꾸며진 이야기가 많다 .

    이것은 단군을 신성화하기 위해 후세에 꾸며 덧붙인것

ㆍ한편 고조선의 건국과 관련된 력사적사실들이 신화적외피속에 반영되여있다.

    건국과정, 건국자, 중심지, 건국시기 등등…

 

― 단군신화에서 강조된바와 같이 고조선의 건국시조는 단군(檀君, 壇君)이였다.

평양시 강동군 강동읍의 대박산기슭에 있던 단군릉의 발굴과정에 단군과 그 안해의 유골이 확인되였는데 단군유골의 년대측정치는 5011 267년전(1993년측정)으로 판명되였다. 이것은 단군이 발굴당시로부터 5000년전에 출생한 사람이였다는것을 말해준다.

 

단군릉

 

단군과 안해의 유골

 

단군은 5000년전에 평양일대에 있던 종족련합의 추장의 아들로 태여났고 어머니는 곰을 숭배한 씨족출신종족장의 딸이였다. 단군의 출생지는 단군의 무덤이 자리잡고있는 오늘의 평양일대였다.

― 건국과정

단군이 나서자란 평양일대는 예로부터 산수가 수려하고 사람살기에 좋은 고장이였으며 사회를 발전시켜나가는데 필요한 조건들이 잘 갖추어진 지대였다. 선조들은 이러한 유리한 조건을 리용하면서 일찍부터 사회를 빨리 전진시켜나갔고 그 결과 B.C. 4000년기 후반기에 이르러 국가성립의 제반조건들이 평양일대에서 제일먼저 갖추어지게 되였다.

• 종족련합의 형성

원시시대 말기에 이르러 씨족이나 종족과 같은 작은 혈연적집단의 테두리를 벗어나 보다 큰 사회적집단을 이루고 살려는 사람들의 요구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우리 선조들은 종족련합을 이루게 되였고 그에 맞게 원시사회의 정치조직을 확대하고 그의 기능과 역할을 높여나갔다. 그후 사람들의 활동범위와 내용이 더욱 넓어지며 다양해지고 사회적련계가 깊어지는데 따라 사회관리를 보다 능동적으로, 통일적으로 실현할수 있는 보다 강력한 정치조직을 요구하게 되였다.

이 시기 지배계급, 착취계급으로 변질된 공동체우두머리들과 피착취대중사이의 대립과 투쟁이 더욱 첨예화되면서 지배계층속에서는 원시사회 말기의 정치조직을 특권계층의 리익을 철저히 옹호하는 권력기관으로 전환시킬데 대한 요구가 제기되였다.

 

고대시기 고인돌 쌓기

 

고조선의 건국시조인 단군은 이러한 사회적배경속에서 나서자랐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종족련합의 추장이 되였다.

단군과 그 측근들은 원시사회말기의 정치조직을 보다 강력한 폭넓은 정치조직으로 발전시켜나가면서 그것을 지배계급의 요구와 리해관계에 맞게 폭력과 결합시켜 하나의 권력기구로 전환시키였다. 이렇게 첫 국가를 세우고 국호를 《조선》이라고 하였다.

• 고조선의 건국시기는 B.C. 30세기 초이다.

고조선이 B.C. 30세기 초에 출현한 고대국가였다는것은 단군조선초기에 축조된것으로 판명된 평양시 강동군 남강로동자구(옛 이름은 향단리)에 있는 황대성유적을 통해서도 확인할수 있다.

성은 성벽우에 자리잡고있는 고인돌무덤과 성터안에서 발굴된 돌관무덤에 의하여 5000년전경에 쌓은것으로 확증되였다.

단군조선-고조선은 노예제가 지배하는 고대국가였다.

최근 강동군의 린접인 평안남도 성천군 룡산리에서 노예순장(奴隷殉葬)무덤이 발견되였다.

 

룡산리순장무덤

 

성천군 룡산리순장무덤은 발굴당시로부터 5 060년전(5069±426년전)의 무덤이다. 이것은 단군조선 초기에 벌써 수십명이상의 노예를 소유한자들이 있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원시사회말기, 종족련합체단계에서 발생한 이러한 노예제적관계는 고대국가의 성립과 더불어 하나의 제도로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였다.

― 초기령역과 수도

단군조선의 초기령역은  평양을 중심으로 한 한강이북, 청천강과 압록강계선애 이르는 서북조선일대였다.

단군조선의 수도는 평양(왕검성)이였다.

근거;

우리 나라의 많은 옛 기록들은 평양이 단군조선의 수도였다는것을 전하고있다.

• 문헌기록;

《삼국유사》고기의 자료-단군이 평양에 도읍을 정하였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 동천왕조 《仙人王儉之宅》(평양이 선인왕검이 살던 도읍터였다는것이 밝혀져있다.) 

《고려사》 지리지-평양은 3왕조(단군조선, 후조선, 만조선)의 수도였다는것이 명기되여있다.

• 고고학적자료;

평양을 중심으로 사방 40km내에 분포되여있는 고인돌무덤은 무려 1만 4 000여기에 달한다. 고인돌무덤은 우리 나라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볼수 있지만 이렇게 밀집되여있는곳은 오직 평양일대뿐이다. 특히 평양일대에는 왕릉급의 특대형고인돌무덤들이 집중되여있다. 지배계급의 무덤인 고인돌무덤이 평양일대에 많다는것은 평양이 당시 지배계층이 집중되여있던 나라의 중심지, 고대정치문화의 중심지, 수도였다는것을 말하여준다.

평양은 고인돌무덤뿐아니라 단군조선시기 고대성곽의 집중적분포지이기도 하다. 평양시 대성구역일대에는 청암동토성(아래성벽) 이 자리잡고있으며 그것을 중심으로 100여리 사이를 두고 동쪽과 서쪽, 남쪽에 각각 황대성과 성현리토성(아래성벽, 평안남도 온천군), 지탑리토성(아래성벽, 황해북도 봉산군)이 배치되여있다. 이것은 평양이 단군조선의 정치적중심지였으며 청암동토성이 단군조선시기의 수도성인 왕검성일수 있다는것을 시사하여준다.

△ 고조선성립의 의의

단군조선, 고조선의 성립은 우리 나라 력사발전을 추동한 하나의 큰 사변이였다.

― 우리 나라 력사에 새로운 문명의 기원을 열어놓았다는것

고대문명의 시대는 국가시대와 함께 시작된다. 우리 선조들은 아시아동방의 첫 고대국가, 고조선을 일떠세움으로써 남달리 일찍 원시상태에서 벗어나 고대문명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였다.

※ 중국 첫 고대국가 하나라의 성립시기 B.C. 21세기

이것은 우리 나라 력사발전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하나의 큰 사변으로서 주변지역에 큰 영향을 주었다.

― 단군을 원시조로 하는 조선민족형성의 결정적계기를 열어놓았다는것

단군조선의 성립, 발전과 더불어 조선반도를 중심으로 한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던 우리 선조들의 대부분이 하나의 국가통치밑에 포괄되게 되였으며 또 한 지역안에서 오래동안 생활하는 과정에 고대조선주민들사이에 언어와 피줄, 문화의 공통성은 날로 더욱 확고해지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