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인들의 무리생활

 

△ 구석기시대 전기의 유적(舊石器時代)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 전기는 100만년이전부터 30만년이전까지였으며 이 시기 사람들이 남긴 유적들이 발굴되였다.

─ 가장 오랜 유적;

• 황해북도 상원군 흑우리 검은모루유적

 

 

검은모루유적 전경도

 

상원군 흑우리에서 발견된 검은모루유적은 상원읍에서 서쪽으로 3㎞정도에 있는 우물봉의 남쪽비탈의 석회암지층에 생긴 길이 약 30m, 너비 약 2m, 높이 2.5m 되는 100만년이전의 동굴유적으로서 현재 우리 나라에서 발굴된것들중 가장 오랜것이다.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

ㆍ타제석기(打製); 주먹도끼형석기, 제형석기, 뾰족끝석기 등이 있는데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석기로서 한두번 손질한것이다.

ㆍ당시 사람들이 잡아먹고 버린 짐승뼈화석들은 모두 29종

 

 

 

대표적인 짐승과 뼈화석

 

 이 가운데는 상원말, 짧은턱히에나 등 이미 오래전에 도태되여 멸종한 종이 절반이상

특히 덥고 습한 기후조건에서 산 짐승

물소, 원숭이, 큰쌍코뿔이, 코끼리, 상원큰점히에나, 검은모루땅쥐 등

숲이 무성한 지대에서 산 짐승인 메돼지, 이리, 큰곰 등

나무숲과 산간공지에서 산 짐승인 누렁이, 해리, 들쥐, 큰뿔사슴 등

결국 이것은 당시의 우리 나라 환경이 기후가 덮고 숲이 무성하며 여러가지 동물들이 많았음을 실증해줌

• 황해북도 승호군 만달리 절골동굴(아래층)유적

 

 

 

만달리유적과 동굴내부

 

원시시대의 사람들이 살던 석회암동굴이다.

동굴은 궁륭식으로 된 자연동굴로서 길이는 15m정도이고 너비는 7~8m정도이다.

동굴안에는 시기를 달리하는 3개의 퇴적층이 있었다.

만달리동굴의 맨 밑층에서는 짐승뼈화석만 나왔다.

짐승뼈화석들에서는 5목 13과 24종이 감정되였는데 그가운데는 동굴곰, 코뿔이, 원숭이 등 8종의 사멸종이 있다.

이 동물상은 상부갱신세 초기에 속한다.

만달리유적은 구석기시대의 원시인들의 생활을 연구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 검은모루유적보다 늦은 구석기시대전기유적

경기도 련천군 전곡면 전곡리유적

이와 같이 검은모루유적과 절골동굴유적(아래층), 전곡리유적의 화석포유동물상은 이 시기에 오늘날에는 볼수 없는 여러가지 동물이 많았으며 당시의 기후가 매우 습하고 더웠다는것을 말하여준다.

그러므로 산림과 숲이 무성하였으며 사람이 먹을수 있는 식물원천이 풍부하였으리라는것을 알수 있다.

구석기시대 전기사람들은 바로 그러한 식물성식용물을 채집하거나 짐승들을 잡아먹으면서 살았다.

구석기시대 전기유적들은 당시의 자연환경과 함께 사람이 출현하여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창조적활동을 벌리였던 사실을 잘 알수 있게 한다.

사람이 동물계로부터 벗어난 다음 몸구조가 오늘날의 모양으로 발전되기까지는 여러 단계와 오랜 기간을 거쳤다.

검은모루유적을 남긴 사람들은 인류진화발전의 첫 단계의 사람들로서 아직은 류인원의 모습을 완전히 벗지 못한 원시적인 특성을 많이 가지고있었다.

이렇게 처음으로 출현한 사람을 원숭이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하여 《원인》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원인들은 구석기시대 전기의 검은모루유적이나 절골동굴유적(아래층), 경기도 련천군 전곡리유적을 남긴 이후에도 우리 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일대에서 계속 살아왔다.

그러한 사실은 지금까지 발굴된 원인의 뼈화석과 석기들을 통하여 알수 있다.

중국 료녕성 영구현 금우산동굴유적과 료녕성 본계현 묘후산 제5기층 동굴유적에서 나온 원인의 뼈화석들은 이 일대에서 검은모루유적보다 늦은 시기의 사람들이 살았다는것을 보여준다.

원인들은 동물계에서 갓 벗어난 사람이였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하여 자연을 자기의 요구에 맞게 리용하기 위한 창조적활동을 벌려나갔다.

△ 원인들의 생활

─ 사회조직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사람은 사회적집단을 이루고 활동하여야 생존하고 발전할수 있다. 사람은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사회성원들의 집단적협력에 의해서만 자연과 사회를 개조할수 있으며 자주적요구를 실현할수 있다.》        

원인들은 의식수준이 매우 낮았던것만큼 그들사이에 이루어졌던 사회적관계도 매우 미숙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단결과 협력에 기초한 집단생활을 하면서 발전하며 생존할수 있었다.

원인들은 원시무리를 이루고 살았다.

 

 

원인들의 무리생활

 

사람은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사회적집단을 이루고 협력하여야 자연과 사회를 개조변혁하면서 자주적본성에 맞게 살며 발전할수 있다.

원시무리는 사회생활을 처음으로 시작한 원인들의 집단생활이였다. 원인들은 원시무리를 생활단위로 하여 사회적인 집단생활을 하고 생산활동도 하였다.

그들은 미숙하지만 처음부터 하나의 사회적집단을 이루고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나갔다.

 

- 근거;

• 서로 다른 짐승뼈화석들이 한곳에 집결되여있는것이다.

• 혼자서는 잡을수 없는 큰짐승뼈화석이 있는것이다.

- 왜 무리생활을 하였는가?

• 미약한 힘을 합치지 않고서는 자연을 정복하면서 생산활동을 벌려나갈수 없었기때문이였다.

• 사나운 맹수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 원시무리는 수십명정도의 작은 집단이였고 그 내부가 아직 공고하지 못한 집단

• 아직 째이지 못함. 혼인관계도 무질서한 군혼

•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면 쉽게 흩어지군 함

 

원시무리에서 집단성원들사이에 이루어진 사회적관계는 원시적인 집단주의에 기초한것이였다.

원인들이 이루고 산 원시무리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으며 그 성원이 수십명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생산력수준이 낮았고 떠돌이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당시의 조건에서 집단의 규모가 크면 불리했던 사정과 관련된다.

─ 생산활동

• 자연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람들의 창조적활동은 로동도구의 제작으로부터 시작되였다.

 

 

로동도구의 제작

 

첫 로동도구로서는 원시적인 타제석기였다.

원인들은 창조적능력이 매우 낮은 수준에 있었고 그들이 만들어 쓴 로동도구도 극히 유치하였다.

원인들이 처음으로 만든 로동도구는 돌을 깨뜨려 만든 거칠은 타제석기였다.

검은모루유적에서 발견된 석기들은 구석기시대 전기에도 이른 시기의것으로서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고 살기 시작한 첫 시기의 로동도구들이였다.

이 시기의 석기들은 가장 원시적인 도구제작수법인 때려깨기와 내리쳐깨기로 만든것들이다.

이 석기들은  내리쳐깨거나 때려깬 다음 거의나 손질을 하지 않았기때문에 그 생김새에서 규칙성이란 없으며 둔하여 얼핏 보아서는 자연적으로 깨진 돌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이다.

원인들은 이렇게 매우 유치한 타재석기를 가지고 나무를 찍고 다듬어서 곤봉도 만들었다.

또한 그러한 도구를 리용하여 나무열매를 따거나 풀뿌리를 캐내는 채집활동을 벌렸으며 짐승도 잡으면서 사냥활동을 벌렸다.

원인들은 먹을것을 찾아 많은곳으로 류동하였으며 자연동굴에 거처하여 살았다.

 

 

 

원인들의 동굴생활

 

원인들은 사회적관계를 맺고 집단적으로 생활하였으며 그것은 언어의 중요한 역할에 의하여 담보되였다.

사람들이 로동을 통하여 사회적재부를 만들며 사회적관계를 이루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서로 의사를 교환하며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언어가 필요하였다.
   원인들의 언어는 류인원의 음성과 달리 한 상태에 머물러있지 않았으며 로동활동이 발전함에 따라 끊임없이 풍부해져갔다.

이처럼 이 시기 사람들은 원시무리를 이루고 자연을 정복하면서 생활하였다.

이 과정에 사회를 한걸음 한걸음 발전시켜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