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인들의 생활

 

원인들은 백수십만년에 걸쳐 집단적인 로동을 하는 과정에 굼뜨게나마 로동도구를 개선하고 갖가지 경험을 쌓아나갔으며 사회적관계도 발전시켜나갔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굴포리에서 발굴된 고고학적자료는 우리 나라에도 구석기시대가 있었고 그때에 벌써 우리 나라 땅에서 사람이 살고있었다는것을 말하여줍니다.》

구석기시대 중기는 30만년전~5만년전까지이다.

이 시기에 이르러 사람들의 몸구조와 생김새는 원인과 뚜렷한 구별이 있게 변화되였다.

원인보다 발전한 구석기시대 중기의 사람을 《고인》이라고 한다.

조선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지역에서 고인들이 살아온 사실은 그들이 남긴 여러 유적들을 통하여 잘 알수 있다.

△ 구석기시대 중기의 대표적인 유적

함경북도 화대군 석성리유적, 평양시 력포구역 대현동유적, 평안남도 덕천시 덕천읍 승리산유적 아래층, 함경북도 라선시 굴포리 굴포문화 제1기층,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석장리유적 등을 들수 있다.

─ 함경북도 화대군 석성리유적

세계적으로 가장 이른 30만년전의 고인화석이 발견됨.

웃턱뼈, 옆머리뼈, 얼굴뼈, 머리뼈, 몸뼈 등 3개체분의 고인화석

원시적인 특징과 함께 발전된 특징도 가지고있다. 이것을  《화대사람》이라고 부른다.

─ 평양시 력포구역 대현동유적

사람뼈화석(7~8살정도 되는 아이의 머리뼈)

 

 

력포사람

 

대현동유적에서는 이른 시기의 고인에 속하는 사람의 머리뼈화석이 나왔는데 이것을《력포사람》이라고 부른다. 이 화석은 화산룡암속에 묻혀있었는데 조선사람이 이 땅에서 발생하여 발전해왔다는것을 확증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력포사람》의 머리뼈화석은 형태학적으로 볼 때 원인보다는 훨씬 발전하였으나 현대사람보다는 덜 발달하였다.

─ 평안남도 덕천시 덕천읍 승리산유적 아래층

승리산동굴유적의 맨 아래층에서 나온 고인의 화석은 《덕천사람》이라고 부른다.

《덕천사람》의 화석으로서는 이발 2개와 어깨뼈 1개가 있는데 두이발의 세부에는 신인과는 구별되며 고인들에게서 흔히 볼수 있는 특징들이 나타나있다.

─ 함경북도 라선시 굴포리 굴포문화 제1기층

10만년전의 움막자리유적; 돌모루와 석기들(찍개, 칼날같은 격지)이 나왔는데 이 시기의 석기들은 여러번 때려내고 잘 손질한것이다.

△ 고인들의 생활

여전히 원시무리를 이루고 살았으나 이전보다 훨씬 전진하였다.

 

 

고인들의 무리생활

 

고인단에 이른 사람들의 뇌수는 원인보다 훨씬 크며 신체구조도 많이 발달하였다.

고인의 뇌수에서 사유의 기능을 수행하는 부위와 언어운동을 관할하는 부위는 원인의것에 비할바없이 크다.

뇌수의 이러한 특징은 고인의 고등신경계통이 상당히 발달되여있었다는것을 의미한다.

고인들은 동물적인 추동이나 흥분을 억제하는 제지의 기능도 일정하게 발달하였으므로 자기의 행동을 조절통제하면서 분별있게 처신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것은 역시 사람에게만 있는 고유한 특성의 하나이다.

고인들은 몸구조와 몸자세에서 현대사람에 거의 접근하여 두발로 서서 걸으며 두손으로 로동을 할수 있게 되였다.

이처럼 고인단계에서 신체구조변화는 로동활동과 집단생활에 편리한 방향으로 진행되였다.

원인으로부터 고인에로의 발전은 자연을 정복하는 사람의 창조적능력을 그만큼 더 증대시켰다.

─ 로동도구개선

구석기시대 중기에는 전기에 비하여 로동도구들이 현저히 개선되였다.

• 로동도구가 개선된 사실은 석기제작수법이 발전한것을 놓고 말할수 있다.

이 시기 석기들은 때려떼기수법으로 떼여낸 격지나 그것을 일정하게 가공한것으로서 타제석기이기는 하지만 종래보다 여러번 손질하여 좀더 쓸모있게 만든것들이였다.

이 시기에는 하나의 돌덩어리에서 여러개의 격지를 떼여내여 그것으로 예리하고도 쓸모있게 만드는 수법이 널리 보급되였다.

때려떼기수법으로 만든 석기는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아지며 또한 이 수법으로 격지나 쪼각을 떼여낸 곳에는 그것을 예측할수 있는 잔해들이 남게 된다.

라선시 굴포문화 1기층, 충청북도 단양군 도담리 금굴 제3문화층을 비롯한 구석기시대 중기의 여러 유적들에서는 때려떼기수법으로 석기를 만든 흔적을 볼수 있다.

한편 구석기시대 중기의 석기들에는 손질을 하여 날을 예리하게 하였거나 떼여낸 격지를 용도에 맞게 세공한 석기들이 많다.

이처럼 구석기시대 중기의 석기들가운데는 앞선 시기부터 쓰던 형태의 석기들도 있지만 긁개, 찌르개와 같이 용도가 세분되고 보다 편리하게 만들어진것이 우세하다.

• 구석기시대 로동도구가 개선되였다는것은 석기제작기술의 발전에서뿐아니라 골각기(뼈도구)들을 많이 썼다는 사실을 놓고도 말할수 있다.

대현동동굴유적, 충청북도 청원군 가덕면 로현리 두루봉 2굴 7기층을 비롯한 이 시기의 유적들에서는 골각기들이 많이 발굴되였다.

이것은 당시 고인들이 이러한 로동도구를 가지고 채집과 사냥을 하면서 생활하였다는것을 알수 있게 한다.

─ 구석기시대 중기 고인들이 자연을 정복하는데서 이룩한 중요한 성과의 하나는 불을 인공적으로 일쿠어 리용하게 된것이다.

사람들이 불을 리용한것은 구석기시대 전기였으나 처음에는 자연적으로 일어난 불을 보존하면서 리용하였다.

그러나 고인단계의 사람들은 인공적으로 불을 일으켜 리용하였다.

황해북도 승호군 화천동유적 2호굴 퇴적층의 불피운 자리가 이를 잘 실증해준다. 이 우등불자리는 여러모로 보아 당시 사냥군들이 잠시 머물렀던 곳으로 인정되고있다.

일상적인 거처지도 아닌 임의의 장소에서 불을 리용하였다는것은 당시 사람들이 인공적으로 불을 일쿨줄 알았다는것을 말해준다.

사람들이 불을 일쿨줄 알고 널리 리용하게 된것은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인간의 활동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불의 리용

 

불은 추위를 막고 맹수들의 습격으로부터 자신을 효과적으로 보호할수 있게 하였으며 이전에는 날것대로 먹던것을 익혀먹을수 있게 하였다.

─ 고인들은 여전히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짐승을 사냥하거나 식물 또는 조개류를 채집하여 먹고살았다.

고인들은 원인에 비하여 살아가는 방식과 수준을 훨씬 개선하였으며 사회집단도 더 째이고 공고해졌다.

고인들은 몰이사냥방법이나 불을 리용하여 코끼리, 코뿔이같은 큰 짐승들과 맹수들까지도 잡아먹었다.

고인들의 생활에서는 채집도 여전히 중요한 식량획득방법이였다.

짐승사냥에는 실패도 많았던것만큼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는 채집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 구석기시대 중기 고인들도 원인들과 같이 원시무리를 이루고 살았지만 그들의 사회경제적관계는 더욱 발전하였다.

원시적인 로동도구를 가지고 사냥을 비롯한 생산활동에서 성과를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로동력을 합리적으로 리용하는것이 중요하다.

협업의 한 형태인 몰이사냥은 원시적인 사냥도구밖에 가지고있지 못했던 고인들로 하여금 크고 사나운 짐승들도 잡을수 있게 하였다. 그러므로 고인들이 이룩한 생산의 발전 특히 사냥물의 증대는 주로 협업과 같은 사회경제적관계의 발전에 의하여 이룩되였다.

고인들의 원시공동체적인 사회경제적관계는 분업의 발생도 다그쳤다.

인류사회에서 발생한 최초의 분업은 자연적분업의 발생, 불의 공동관리, 사유와 언어의 발전 등 고인들의 사회적련계를 훨씬 긴밀하게 하였으며 그들의 원시무리를 보다 째이고 공고한 집단으로 되게 하였다.

최초의 분업은 성별에 따르는 자연적분업이였다.

집체적인 로동과 공동생활과정에 이루어진 집단의 단합은 고인들의 의식에 반영되여 자신뿐아니라 집단에 대한 관념을 형성하게 하였으며 서로 도와주는 일이 많아지게 되였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이 무덤을 쓰기 시작한데서 찾아볼수 있다.

인류력사에서 처음으로 무덤을 쓴것은 고인 때였다. 그들이 무덤을 쓰게 된것은 그들에게 자기 집단내 성원이 죽은 다음에도 돌봐주려는 감정에서 나온것으로서 자신들을 집단이나 집단성원들과의 관계에서 보게 되였다는것을 말하여준다.

고인들사이에서는 혼인관계도 원인보다 발전하여 무질서하고 무제한한 혼인은 많이 제지되였다. 그것은 고인들의 대뇌피질이 훨씬 발달하여 고등신경활동에서 제지의 기능이 점차 우세해지기 시작한것과 관련된다. 즉 고인에게 있어서는 동물적인 흥분을 제지하는 능력이 더 자랐던것이다.

그러나 고인들의 혼인관계는 혈연가족내에서 일정하게 제한되여 있는것이였다.

원시무리시기 사람들이 남긴 유적과 유물들은 우리 나라가 인류발생지의 하나이며 우리 선조들이 아득히 먼 옛날부터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왔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