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북남련방제를 거쳐 점차적방법으로 조국을 통일할데 대한 방안실현을 위한 제안

우리 당은 북남련방제를 거쳐 점차적방법으로 조국을 통일할데 대한 방안을 실현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합리적인 제안들을 내놓았다. 

1) 정치협상회의제안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북남련방제를 거쳐 점차적방법으로 조국을 통일할데 대한 획기적인 방안을 내놓으시면서 남조선의 모든 정당, 사회단체들과 개별적인사들은 북과 남이 하루빨리 협상할것을 요구하여나서야 할것이라고 하시였다. 그리고 주체54(1965)년 1월 8일 《워싱톤에 있는 조선문제연구소 소장에게 보낸 회답서한》을 비롯한 여러 로작들에서 북남정치협상을 가질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통일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남북조선 당국자들과 제 정당, 사회단체 및 개별적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진지하고 허심하게 협상할것을 항상 주장하고있습니다.》   

북남정치협상회의를 진행하는것은 북남련방제를 거쳐 점차적방법으로 조국통일을 실현할데 대한 우리 당의 방안을 현실에 구현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나섰다.

우리 당은 1970년대초에 북남협상방침을 내놓고 북과 남이 처음으로 북남적십자회담을 하게 된것과 관련하여 북남협상회의제안을 련이어 내놓게 되였다.

주체61(1972)년 5월 3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장은 남조선 《중앙정보부장》과의 면담에서 북남정치협상회의를 소집할데 대해 제안하였다. 이어 주체61(1972)년 8월 19일 공화국 제 정당, 사회단체 련합성명에서도 북남조선 제 정당, 사회단체련석회의를 소집할것을 남조선정당, 사회단체들에 제의하였다.

련합성명은 7.4공동성명의 발표를 계기로 조국통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전례없이 커지고 평화통일기운이 급격히 높아가고있으며 남조선인민들뿐아니라 정계와 사회계에서도 북남공동성명을 하루빨리 실현할것을 요구하고 북남협상과 대화의 길을 집권당국자들이나 특정한 사람들에게 국한시키지 말고 각 당, 각 파, 각계각층을 망라하여 폭넓게 개척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강하게 대두되고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제의하였다.

1. 우리는 조국통일을 최대한으로 앞당기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 힘을 다 바치는것이 민족앞에 지닌 응당한 의무라고 간주하면서 이에 북남 제 정당, 사회단체련석회의를 가질것을 남조선의 모든 정당, 사회단체들에 정중히 제의한다.

조성된 정세로 보아 이 회의는 될수록 빨리 열어야 할것이며 회의의 구체적인 의제와 시일 및 장소문제는 호상 협의에 따라 결정할수 있을것이다.

이를 위하여 북남조선 제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이 호상 편리한 임의의 장소에서 쌍무적 또는 다무적접촉을 가지는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2. 우리는 북남련석회의를 마련하기 위하여 아무때나 남조선의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과 접촉을 가질 준비가 되여있다.

주체62(1973)년 6월 12일 북남조절위원회 제3차회의에서 우리측은 북남조절위원회사업과는 별도로 북과 남의 각 정당, 사회단체대표들과 각계각층 인사들이 참가하는 정치협상회의를 소집하며 북남교류를 위한 분과위원회를 구성할데 대하여 제의하였다.

이에 따라 주체62(1973)년 7월 24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제59차 확대회의와 주체63(1974)년 8월 6일 제61차 확대회의, 주체63(1974)년 11월 8일 제63차 확대회의들에서 우리 당의 조국통일5대방침을 실현하기 위한 대책들을 토의하기 위한 대민족회의를 소집할것을 제의하는 호소문과 공동준비위원회구성과 대민족회의에서 토의할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우리 당은 북남정치협상회의제안을 유엔무대를 통하여서도 제의하였다.

주체63(1974)년 11월 25일 제29차 유엔총회 제1위원회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표단 단장은 연설에서 조선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공고한 평화를 보장하자면 유엔의 기발밑에 남조선에 있는 미국군대를 철거시키고 조선문제를 조선사람자신의 손에 맡기도록 할데 대한 문제와 조선에서 외국군대가 철거한 후에 제기되는 문제들을 협의해결할데 대한 문제와 함께 조선의 통일문제를 북과 남사이의 협상을 통하여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방도는 북과 남의 각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과 각계각층 인사들이 참가하는 대민족회의나 정치협상회의를 여는것이라고 언명하였다.

북남련석회의나 대민족회의와 같은 북남정치협상제안들은 그후 주체65(1976)년 7월 21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 30돐기념 보고회에서 채택된 편지와 주체66(1977)년 1월 25일 공화국 제 정당, 사회단체 련석회의에서 채택된 남조선 제 정당, 사회단체들과 각계층 인민들과 해외동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리고 주체67(1978)년 4월 24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에서 남조선의 제 정당, 사회단체들과 해외동포단체들에 보내는 호소문, 주체68(1979)년 2월 5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서기국성명 등에서도 발표되였다.

북남정치협상회의를 소집할데 대한 우리 당의 노력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도 계속되였다.

주체69(1980)년 1월 1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주석이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남조선의 정당, 단체, 인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북과 남이 하루빨리 대화의 문을 다시 열고 나라의 평화통일을 위한 길을 진지하게 모색해나가야 한다고 하면서 나라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것이라면 우리는 이미 우리가 주장한바있는 폭넓은 북남정치협상회의와 함께 당국자회담도 할수 있다고 생각하며 고위당국자회담도 성숙시켜나갈 용의가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우리 당은 획기적인 통일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대책을 론의하고 협의할 정치협상회의를 꾸준히 제안하였다.

비록 남조선당국자들이 우리의 거듭되는 제안에 이런 저런 구실을 붙여가면서 응해나서지 않았으나 그 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공명정대한 제안들은 남조선의 통일애국세력들의 통일열망을 높이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2) 평화보장대책제안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이밖에도 우리 나라에서 평화를 공고히 하고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이룩하는데 유리한 환경을 마련하기 위하여 미군을 남조선에서 철거시키고 북과 남이 서로 무력행사를 하지 않을데 대한 평화협정을 체결할것을 남조선측에 여러차례 제의하였으며 최근에는 미국과 직접 평화협정을 맺을데 대한 문제를 가지고 회담할것을 미국당국에 제의하였습니다.》   

유리한 평화적환경을 마련하는것은 북남련방제를 거쳐 점차적방법으로 조국통일을 실현할데 대한 우리 당의 방안을 실현하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의 하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북남련방제를 거쳐 점차적방법으로 조국통일을 실현할데 대한 획기적인 방안을 제시하시면서 북남사이의 관계를 개선하며 특히 남조선의 경제생활을 정상화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군대를 줄이는것이라고, 우리는 미군을 남조선에서 물러가게 하고 북남조선의 군대를 각각 10만 또는 그 아래로 줄일것을 계속 주장한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이것은 조선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평화적통일을 앞당기는 중요한 조치로 될것이라고 하시였다.

우리 당은 평화적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안들을 련이어 내놓았다.

주체52(1963)년 9월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15주년 평양시경축대회에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보고에서 남조선으로부터 미국군대를 철거시키는 조건하에서 북남이 서로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을데 대한 협정을 체결하고 북남의 군대를 각각 10만 또는 그 이하로 축소하며 나라의 통일을 그 어떤 외세의 간섭도 없이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민주주의적기초우에서 자유로운 북남 총선거를 통하여 실현할것을 제의하였다.

주체52(1963)년 11월 2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유엔총회 제18차회의와 관련한 비망록에서 우리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여 조선사람끼리 통일문제를 해결하는데 방해책동을 일삼는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의 해체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리고 주체53(1964)년 10월 31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담화에서 련방제실현의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기 위하여 북과 남으로 갈라진 혈육들간의 상봉과 서신거래 및 인사왕래를 진행하며 호상접촉과 협상을 통한 경제, 문화적합작과 교류를 실현할것을 제의하였다. 

주체55(1966)년 7월 2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유엔총회 제21차회의와 관련한 비망록에서 북남련방제를 거쳐 점차적방법으로 조국을 통일할데 대한 방안토의를 위한 북남조선 제 정당, 사회단체대표들의 련석회의나 다른 형태의 련석회의를 소집하며 조선문제에 관심을 가지고있는 국가들로서 조선문제의 평화적조정을 위한 유관국가회의를 소집할것을 제안하였고 주체56(1967)년 8월 21일에는 제24차 유엔총회와 관련하여 조선문제의 평화적조정을 위한 유관국회의소집을 제의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주체61(1972)년 11월 30일 북남조절위원회 제1차회의에서와 주체62(1973)년 3월 15일 북남조절위원회 제2차회의에서 우리 측은 북과 남의 긴장상태완화와 군사적대치상태를 해소할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그를 위한 5개 항의 대책을 제안하였다. 그것은 첫째로 무력증강과 군비경쟁을 중지하며 둘째로 북과 남의 군대를 각각 10만 또는 그 아래로 축감하고 군비를 대폭 축소하며 셋째로 외국으로부터 일체 무기와 작전장비, 군수물자반입을 중지하며 넷째로 미군을 포함한 일체 외국군대를 철수하며 다섯째로 북남평화협정을 체결할데 대한 대책에 관한 문제이다.

주체63(1974)년 1월 30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3차회의에서는 미국국회에 불가침서약을 하며 직접적무력충돌의 모든 위험성을 제거할데 대한 문제, 무력증강과 일체 무기와 작전장비, 군수물자반입을 중지할데 대한 문제, 외국군대는 《유엔군》의 모자를 벗고 빠른 시일내에 철거할데 대한 문제, 외국군대철거후 조선에 대한 외국의 군사 및 작전기지화의 불허에 관한 문제 등을 가지고 회담을 진행할데 대한 제안을 담은 편지를 채택하여 보냈다. 

주체68(1979)년 1월 23일 공화국 제 정당, 사회단체 련석회의에서는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촉진할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고 북과 남이 상대방에 대한 비방중상을 즉시 그만둘데 대한 문제와 쌍방이 7.4공동성명을 재확인하는것과 동시에 관영, 민영을 막론하고 온갖 수단과 방법에 의한 비방중상을 그만둘데 대한 문제, 상대방을 적대시하고 위협하는 모든 군사행동을 무조건 즉시 중지하며 쌍방군사당국이 3월 1일 0시를 기하여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한 전연일대에서 무력증강, 군사시설물의 구축과 같은 모든 적대적군사행동을 정지하고 어떠한 군사연습도 중지할데 대한 제안을 담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성명을 채택발표하였다.

북남사이에 호상비방과 중상을 중지할데 대한 제안은 주체68(1979)년 1월 31일 조선중앙통신사 성명을 통해서도 발표되였다.

주체68(1979)년 7월 10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교부대변인은 성명에서 남조선에서 미군을 철거시키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미국과의 회담을 주장하며 미국측이 요청한다면 우리와 미국사이에 남조선으로부터의 미군철거문제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를 가지고 진행하는 미국과의 회담에 남조선당국자들을 옵써버로 참가시키는것을 허용할것이라는것 등을 제의하였다.

이처럼 우리 당은 북남련방제를 거쳐 점차적방법으로 조국통일을 실현할데 대한 획기적인 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평화보장대책들을 거듭 제안하면서 통일을 지향하는 남조선의 통일세력과 각계각층 인민들을 나라의 통일을 위한 투쟁에로 고무추동하였다.

3) 북남대화제안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남조선당국자들은 우리의 거듭되는 남북협상제의와 그 실현을 요구하는 남조선인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할수 없이 남북간의 대화에 응하였다고 볼수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북남련방제를 거쳐 점차적방법으로 조국을 통일할데 대한 획기적인 방안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하여 남조선당국자들은 물론 각계각층 인사들에게 서로 마주앉아 허심탄회한 론의를 하는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가르치시였다.

특히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력사적인 주체60(1971)년 8월 6일 연설에서 주체적인 북남협상방침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그리하여 1970년대에 북과 남사이에 대화의 문이 열리고 고위급정치회담이 마련되였으며 주체61(1972)년에는 온 겨레에게 통일의 희망과 신심을 안겨주는 7.4북남공동성명이 채택발표되게 되였다.

우리 당은 북과 남이 서로 마주앉아 호상간의 오해와 불신을 가셔버리고 통일문제해결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하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였다.

주체50(1961)년 1월 18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는 평화통일촉진과 북남사이의 접촉과 협상실현에서 긍정적의의를 가지는것이라면 남조선의 정당, 사회단체 또는 개별적인사들의 어떤 제의도 환영하며 가까운 시일안에 판문점이나 다른 적당한 장소에서 북남협상을 진행할것을 제의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주체51(1962)년 6월 21일 최고인민회의 제2기 제11차회의에서는  남조선 《국가재건최고회의》 및 남조선 사회정치활동가들과 전체 인민들에게 북남협상을 요구하는 편지를 채택하였다.

편지에서는 남조선당국이 당장 우리와 북남련방제실현문제를 가지고 협의할 의사가 없다면 통일문제는 호상 리해가 접근되는 차제로 해결하더라도 우선 북남당국이 호상 상대방을 반대하여 무력행사를 하지 말며 미군을 철거시키고 민족의 장래문제에 대한 리해를 접근시키기 위하여 판문점이나 평양 혹은 서울에서 협상할것과 우리 민족 내부문제를 외세의 간섭이 없이 우리 조선사람끼리 북남조선당국자들간에 토의해결할것을 주장하였다.

주체53(1964)년 3월 27일 최고인민회의 제3기 제3차회의에서는 남조선인민들과 제 정당, 사회단체 인사들 및 남조선 《국회의원》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하였다. 호소문에서는 미제의 직접적인 조종하에 진행되는 남조선과 일본과의 매국《회담》을 분쇄하고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촉진하기 위하여 남북간의 경제적합작을 실현하여 전민족적력량으로 남조선에 조성된 위기를 타개하는것과 동시에 전민족적 반미, 반일대책을 토의하며 북남간의 민족적련계를 회복하고 경제적합작을 실현할 구체적대책을 수립하기 위하여 북남조선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흉금을 털어놓고 협상할것을 다시한번 제의하였다.

주체53(1964)년 5월 15일 조선민주청년동맹 제5차대회에서 채택된 호소문에서는 북남청년학생들간의 자유래왕과 서신거래 및 과학, 예술, 체육분야에서 교류실현과 명승고적들에 대한 관광단과 류학생, 연구생의 호상교환을 위한 회담을 제의하였다.

주체60(1971)년 8월 14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력사적인 주체60(1971)년 8월 6일 연설에서 내놓으신 북남협상방침에 따라 남조선적십자사 총재에게 북남으로 흩어진 가족, 친척, 친우들의 자유래왕과 호상방문, 서신거래의 실현을 위한 북남적십자회담을 제안하고 이를 위하여 9월안으로 판문점에서 쌍방대표들의 예비회담을 가질것을 제의하는 편지를 보내였다.

주체61(1972)년 10월 14일 전국체신일군대회에서는 남조선체신부문 로동자, 기술자, 사무원들에게 조국의 신경회복, 북남사이의 편지거래와 우편물교환실현문제와 약전공업과 통신, 방송기술의 공동개발문제를 토의하는 북남체신부문 대표회담을 제의하는 편지를 채택하였다.

주체62(1973)년 4월 5일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2차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 총리는 보고에서 북과 남사이에 정치, 경제, 문화, 군사, 외교의 각 분야에 걸쳐 다방면적인 합작을 실현하며  북남조절위원회사업을 잘하는것과 함께 대화의 폭을 넓혀 북과 남의 정당, 사회단체들사이의 광범한 접촉과 협상을 실현할데 대하여 제안하였다.

주체62(1973)년 9월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25돐기념 중앙보고대회에서 한 정무원 총리의 보고에서는 북남조절위원회에서 《중앙정보부》 특무들을 제거하고  쌍방사이의 신의를 지키고 진정으로 평화통일을 원하는 사람들로 교체하며 조절위원회사업에 각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과 각계각층 인사들을 널리 인입하여 북남조절위원회를 개편할것을 제의하였다.

주체62(1973)년 11월 16일 공화국 제 정당들은 남조선정당들에 보내는 편지에서 북과 남의 각계층 인민들과 각 정당, 사회단체대표들로 구성되는 대민족회의를 지체없이 소집할것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제의는 주체68(1979)년 6월 26일 조선중앙통신사 성명에서도 밝히였다.

주체69(1980)년 1월 1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 총리는 총리접촉을 제의하여 남조선의 《국무총리》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에서 북과 남이 대화를 재개하고 자주적평화통일의 길을 열어나가기 위하여 이미 우리가 주장하고있는 폭넓은 정치협상회의와 함께 북과 남의 당국자회담도 할수 있고 더 나아가서 고위당국자회담도 성숙시켜나갈 용의가 있다고 하면서 이러한 립장으로부터 남조선의 《국무총리》와 직접 만나 격의없는 의견을 서로 나누자는것을 제의한다고 하였다.

주체69(1980)년 1월 1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주석이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북과 남의 대화를 실현하며 나라의 평화통일을 촉진하기 위하여 해외에 있는 각계인사들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이처럼 우리 당은 1960년대에도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남조선당국과 제 정당, 사회단체들은 물론 남조선의 각계각층에게 대화를 제안하였으며 특히 1970년대에는 폭넓은 북남협상방침을 제기하고 그 실현을 위해 적극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1970년대에는 비로소 북남대화의 문이 열려 북남적십자회담은 물론 고위급정치회담까지 열리여 조국통일3대원칙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내는 등 커다란 성과를 거두게 되였다.

4) 북남협력교류제안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또한 분렬로 인한 인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통일촉진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정치적문제와는 관계없이 남북간의 경제문화적교류를 실현할것을 제의하였으며 갈라진 부모, 처자, 친척, 친우들의 절실한 념원을 풀어주기 위하여 남북간의 래왕과 우선 서신거래라도 실현할것을 거듭 제의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력사적인 주체49(1960)년 8월 14일 조국해방 15돐경축연설에서 획기적인 통일방안을 내놓으시면서 정치문제와는 관계없이 남북간의 경제문화교류를 실현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우리 당은 1960년대에 이어 1970년대에 각 분야에 걸쳐 애국애족의 립장에서 북남협력교류제안들을 련이어 내놓고 그 실현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였다.

주체50(1961)년 3월 3일 조선문학예술총동맹결성대회에서는 남조선작가, 예술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채택하였다. 편지에서는 북남작가, 예술인들이 창작취재를 위하여 백두산으로부터 한나산까지 자유롭게 래왕하며 영화, 연극, 기타 문학예술작품을 공동으로 창작하며 우리의 고전문학예술유산들을 발굴정리하여 계승하는 사업도 공동으로 진행할데 대하여 제의하면서 이를 위해 우선 미제강도들에 의하여 조성된 치욕스러운 인공적장벽을 무너뜨려야 하며 북남의 작가, 예술인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흉금을 털어놓고 서로 접촉하고 기탄없이 상론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공화국북반부 전체 작가, 예술인들은 북남간에 문학예술의 교류를 촉진하며 우리 민족문화예술의 통일적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북남작가, 예술인단체들의 공동협의기관을 설치하는것이 시급히 요구된다고 주장하였다.

주체53(1964)년 12월 2일 조선건축가동맹 제2차대회에서는 남조선건축가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하였다.

호소문은 우선 우리는 한겨레인 북남조선건축가들간의 자유래왕과 서신거래로부터 시작하여 호상 접촉과 련계를 맺을것을 다시한번 주장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건축과학기술의 교류를 실현하며 호상 견학단을 교환조직하며 각종 공동행사를 진행하며 유서깊은 명승고적들과 민족건축유산들을 집체적으로 혹은 개별적으로 답사하는 관광단을 교환할것을 절실히 원한다고 하였다.

계속하여 호소문은 우리는 또한 유일한 조직으로서 국제무대에 진출하여 조국의 영예와 존엄을 고수하며 국제적위신을 제고하기 위하여 함께 손잡고 나아갈것을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하였다.

주체60(1971)년 12월 27일 전국교원대회에서는 북남학술교류와 관련하여 남조선교원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하였다.

호소문은 헤여졌던 북남의 교원, 학생들이 한자리에 서로 모여앉으며 자유로운 학술토론을 진행하고 체육, 문화의 자유로운 교류를 실현하여 북남간의 접촉의 길을 터놓고 서로의 의사를 소통하며 점차 통일에로의 문을 열어제끼자는것을 강조하였다.

주체61(1972)년 10월 24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회대표단은 북남적십자 본회담 제3차회의에서 북남으로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주소와 생사확인을 위한 대책을 강구할것을 제안하였다.

주체61(1972)년 12월 4일 북남조절위원회 북측공동위원장대리는 기자회견에서 정치, 경제, 문화, 군사, 외교분야에서 북남사이의 다방면적인 합작을 실현할것을 제안하였다.

북남사이의 다방면적인 합작내용은 정치분야에서는 북남련방제의 실시와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자주적평화통일을 실현할데 대한 문제를 제안하였다. 경제분야에서는 지하자원의 공동개발과 북남어장개방문제와 관개공사를 호상협력할데 대한 문제이다. 문화분야에서는 력사공동연구와 민족어의 통일적발전을 보장할데 대한 문제와 무대예술의 교환공연을 진행할데 대한 문제, 영화의 공동제작과 교환을 실현하며 여러 공동전람회를 개최할데 대한 문제 그리고 단일민족예술단과 체육단을 구성할데 대한 문제들을 제안하였다. 군사분야에서는 군비경쟁을 중지하고 군축을 실현할데 대하여서와 긴장상태완화와 평화를 보장할데 대한 문제 그리고 외래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처할데 대한 문제들이다. 외교분야에서는 민족의 우수성과 조국의 위력을 과시하며 아시아와 세계평화에 적극 기여할데 대한 문제들이다.

주체68(1979)년 9월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31돐기념 중앙보고대회에서 한 부주석의 보고에서는 민족대단결의 리념으로부터 출발하여 북과 남의 다방면적인 합작을 실현할데 대한 문제를 강조하였다.

주체68(1979)년 12월 20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올림픽위원회 위원장 겸 조선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은 남조선올림픽위원회 위원장 겸 체육회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22차 국제올림픽대회에 북과 남이 민족유일팀을 구성하여 출전할데 대하여 제의하였다.

주체69(1980)년 1월 1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주석이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해외의 각계 인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전민족적통일대화를 마련하기 위한 해외동포들과의 접촉을 진행할데 대하여 제의하였다.

이처럼 우리 당은 1960년대초에 북남련방제를 거쳐 점차적방법으로 나라의 통일을 실현할데 대한 획기적인 통일방안과 그 실현을 위한 합리적이고 공명정대한 대책들과 수많은 제안들을 내놓고 꾸준한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조국통일운동을 끊임없이 전지시켜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