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통일운동에서 력사적사변을 안아온 기치

민족단합을 이룩하여 조국통일위업을 성취하려는 온 겨레의 열망은 1990년대에 이르러 그 어느때보다도 높아졌다.

우리 당은 조국통일을 위하여 좋게 발전하고있는 정세의 요구에 맞게 북남사이의 장벽을 마스고 자유래왕과 전면개방을 실현하며 북남대화를 추진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렸다. 이와 함께 민족의 총의를 모아 민족공동의 통일방도를 확정하고 통일의 문을 열어나가며 범민족대회를 성사시키기 위한 투쟁에로 북과 남, 해외동포들을 힘있게 불러일으켰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민족의 통일념원을 반영하여 주체79(1990)년 5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1차회의에서 하신 시정연설에서 90년대에 통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결정적인 대책으로서 조국통일5개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조국통일5개방침은 첫째로 조선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평화적환경을 마련하며 둘째로 분렬의 장벽을 허물고 북과 남사이의 자유래왕과 전면개방을 실현하며 셋째로 북과 남이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에 유리한 국제적환경을 마련하는 원칙에서 대외관계를 발전시켜나가며 넷째로 조국통일을 위한 대화를 진행하며 다섯째로 전민족적인 통일전선을 형성하는것이였다.

① 우리 당은 조국통일5개방침을 받들고 민족의 단합을 이룩하며 전민족적인 통일전선을 형성하는데 큰 힘을 기울이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우리 당이 견지하고있는 립장은 남에게 의존할것이 아니라 우리 조선민족자신이 책임지고 민족의 힘을 합쳐 조국통일을 이룩하자는것입니다.》

주체79(1990)년 8월 15일 판문점에서 해방후 45년만에 처음으로 해내외통일운동단체대표들과 각계각층 인사들의 참가밑에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제1차범민족대회가 성대히 진행되였다.

대회에서는 조국통일을 위한 련대련합, 공동투쟁을 강화하며 통일애국력량의 확대를 위하여 적극 투쟁할데 대한 결의문이 채택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범민족대회에 참가한 대표들앞에서 하신 연설에서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실현하는데서 중요한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전민족적인 통일전선을 형성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범민족대회는 민족대단결로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에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되였다.

8.15범민족대회가 열린데 이어 북과 남, 해외에서 동포들사이의 접촉과 교류, 통일축전들을 마련하기 위한 사업이 적극 벌어졌다.

주체79(1990)년 9월 제11차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한 북남선수들에 대한 공동응원이 실현되고 10월에는 평양과 서울에서 《통일축구경기》가 진행되였다. 그리고 민족분렬이래 처음으로 북남유일팀이 구성되여 제41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제6차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민족의 슬기와 기개를 떨치였다.

체육분야와 함께 예술분야에서도 통일축전들이 진행되였다. 주체79(1990)년 10월 평양에서는 북과 남, 해외의 예술인들의 범민족통일음악회가 성대히 열렸으며 12월에는 서울에서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가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우리 당은 온 민족의 통일열망과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가 더욱 높아지는데 맞게 북과 남, 해외의 통일력량을 하나로 묶어세우기 위한 상설적인 련합체를 내오기로 하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적극 벌렸다.

그리하여 주체79(1990)년 11월에 베를린에서는 북과 남, 해외의 3자실무회담이 열리고 여기에서 전민족적인 통일애국세력의 련합체로서 조국통일범민족련합(범민련)이 결성되였다.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에 기초하여 조국통일을 실현하는것을 사명으로 하는 범민련은 북과 남, 해외의 모든 조선동포들의 공동의 의사를 대변하는 애국적인 통일운동조직이다.

범민련의  결성에  이어  주체81(1992)년  8월  판문점에서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련합(범청학련)이 결성되였다.

범민련과 범청학련이 결성됨으로써 북과 남, 해외동포들의 3자련대, 련합을 실현하고 통일운동을 조직화하는데서 새로운 국면이 열리게 되였다.

범민련은 북과 남, 해외에서 각각 조직체계를 수립해나갔으며 그에 기초하여 자기의 강령과 규약을 합의하고  주체82(1993)년  12월에  그  발효를 선포하였다.  범청학련도 북과 남, 해외에서 자기의 정연한 조직체계를 갖추었다.

범민련과 범청학련의 적극적인 활동에 의하여 범민족대회와 북과 남, 해외동포 청년학생통일대축전 등 범민족적인 통일행사들이 진행되였으며 이 과정에 북과 남, 해외동포들의 3자련대, 련합이 더욱 강화되고 민족적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는 한층 고조되였다.

남조선청년학생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인민들은 이러한 환경속에서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기세를 더욱 높이였다. 특히 주체82(1993)년 4월에 《전대협》을 계승한 《한국대학총학생련합》(한총련)이 결성되여 남북청년학생들의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투쟁을 활발히 벌리였다.

②  우리 당은 북남화해와 단합, 평화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았다.

온 민족의 통일열망이 고조되고 민족적화해와 단합의 분위기가 높아가는 조건에서 북남간의 군사적대치상태를 해소하고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실제적대책을 세우는것이 중요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로부터 북남고위급회담을 성사시키고 회담이 훌륭한 결실을 맺도록 하기 위한 구체적인 지도를 주시였다.

주체79(1990)년 9월부터 북과 남의 총리들을 단장으로 하는 북남고위급회담이 내외의 커다란 관심속에 평양과 서울에서 진행되였다.

우리 대표단이 기울인 진진하고도 성의있는 노력에 의하여 주체80(1991)년 12월에 있은 제5차회담에서는 《북남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협력, 교류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되고 뒤이어 조선반도의 비핵화문제를 협의해결하기 위한 세차례의 북남대표접촉을 거쳐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게 되였다,

주체80(1991)년 12월에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19차전원회의는 제5차 북남고위급회담결과와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금후과업을 토의하였으며 채택발표된 합의서를 리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세웠다.

주체81(1992)년 2월 평양에서 진행된 제6차 북남고위급회담에서는 북남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의 발효를 세상에 선포하였다. 이것은 민족적화해와 단합, 평화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은 력사적사변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북과 남이 서로 화해하고 무력으로 침략하지 않으며 협력과 교류를 실현할데 대하여 합의하고 세상에 발표한것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획기적의의를 가지는 력사적사변입니다. 이것은 미국과 남조선당국자들의 분렬로선에 대한 우리 당의 통일로선의 위대한 승리입니다.》

북남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의 채택은 그야말로 우리 당이 변함없이 견지하고있는 하나의 조선로선, 통일로선의 위대한 승리이다.

 ③ 우리 당은 민족대단결의 기치밑에 조국통일의 전환적국면을 마련하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렸다.

날로 높아가는 민족적화해와 단합의 분위기 그리고 우리 인민의 통일열망에 겁을 먹은 미제와 남조선의 반통일세력은 핵문제를 구실로 악랄한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에 매달렸다. 그리하여 조선반도에는 또다시 긴장한 정세가 조성되고 조국통일의 앞길에는 엄중한 난관이 가로놓이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성된 사태에 대처하여 주체82(1993)년 4월 6일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5차회의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발표하시였다.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은 모든 조항들에 관통되여있는 투철한 애국애족적립장과 공명정대성으로 하여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조국통일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사상과 신앙, 제도와 소속, 거주지와 재산의 유무에 관계없이 누구나 다 접수할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민족단합의 정치강령이며 조국통일의 대헌장이다.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은 나오자마자 북과 남, 해외의 전체 민족은 물론 세계 진보적인민들속에서 열렬한 지지와 환영을 받았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의 기치밑에 조국통일의 전환적국면을 마련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 추진시켜나가도록 하시였다.

우리 당의 주동적인 조치와 성의있는 노력에 의하여 주체82(1993)년 10월부터 북남최고위급특사교환을 위한 실무대표접촉이 이루어지고 이듬해 6월 28일에는 판문점에서 최고위급회담을 위한 부총리급 예비접촉이 진행되였다. 예비접촉에서는 주체83(1994)년 7월 25일부터 27일사이에 평양에서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열데 대한 합의서가 채택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북남최고위급회담의 성과적보장을 위하여 불면불휴의 로고와 온갖 심혈을 다 바치시였으며 7월 7일에는 회담과 관련한 문건을 보아주시고 김일성 1994.7.7》이라는 친필을 남기시였다. 이 력사적인 친필은 어버이수령님께서 남기신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친필이였다.

④ 우리 당은  해외동포운동을 민족대단합과 통일위업에 적극 이바지하는 폭넓은 민족적애국운동으로 급속히 확대발전시켰다.

1990년대에 들어와 줄기차게 벌어진 전민족적인 조국통일운동은 해외의 모든 조선동포들을 더욱 광범히 묶어세울것을 요구하였다.

우리 당의 주체적인 해외동포운동사상과 령도에 의한 총련의 강화발전은 해외에 사는 모든 동포들의 정치사상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주체사상을 지도리념으로 하는 애국애족적인 동포조직을 결성하고 조국통일운동을 벌려나가려는것은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 살고있는 동포사회에서 막을수 없는 기본흐름으로 되였다.

이러한 요구를 반영하여 조선사람이 살고있는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는 총련을 본보기로 한 해외동포조직을 결성하기 위한 사업이 활발히 벌어졌다.

이전 쏘련지역에서는 주체78(1989)년 11월에 조직되였던 《조선통일촉진위원회》(아쏘크)가 주체82(1993)년 9월 제2차대회에서 《국제고려인통일련합회》(국제고통련)로 개편되여 독립국가협동체지역에 사는 동포들이 민족적권리를 옹호하고 조국을 위하여 투쟁하는 주체의 해외동포조직으로 강화발전되였다. 이해 10월에는 이미 로씨야의 원동지구의 조선공민들로 조직되였던 지역별핵심조직을 토대로 하여 《재로조선공민중앙협회》가 조직되였다.

200여만을 헤아리는 재중동포들속에서도 조직결성을 위한 사업이 벌어져 범민련재중조선인본부를 토대로하여 주체80(1991)년 3월에 《재중조선공민총련합회》가 결성되였다.

해외동포조직들은 동포대중을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조국통일의 기치밑에 굳게 묶어세워 조국통일운동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갔다.

그리하여 해외동포운동은 민족대단합과 통일위업에 적극 이바지하는 폭넓은 민족적애국운동으로 급속히 확대발전되게 되였다.

⑤ 우리 당은 1990년대중엽에 민족의 대국상을 당하고 슬픔에 잠긴 온 겨레를 일떠세워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통일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적극 불러일으켰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체83(1994)년 10월 16일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는데서 조국통일을 이룩하는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조국통일위업을 기어이 성취하려는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수령님께서  그처럼  바리시던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하여 수령님의 생전의 뜻을 꽃피워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기 북남관계는 남조선당국의 반북대결책동으로 하여 전례없이 악화되고있었다.

우리 민족이 대국상을 당하였을 때 몸부림치는 동족에게 총구를 겨누고 파쑈적탄압과 전쟁소동을 광란적으로 벌리던 김영삼문민파쑈정권은 1996년 9월에 이르러 북남관계를 전면차단하는데로 나아갔다.

이러한 때인 주체85(1996)년 11월 판문점을 시찰하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조국통일친필비앞에서 기어이 조국을 통일하려는 결심과 의지를 더욱 굳히시였으며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조국통일3대원칙과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은 조국통일의 3대기둥, 3대헌장이라고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주체86(1997)년 8월 4일 불후의 고전적로작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를 발표하시여 조국통일3대헌장에 관한 사상을 구체화하시고 그에 기초하여 통일을 실현하는데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과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조국통일의 전환적국면을 열어나가기 위한 당면과업들을 밝히시였다.

이해 8.15를 계기로 판문점과 평양에서 진행된 어버이수령님의 조국통일유훈관철결의대회와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97범민족대회에서는 조국통일3대헌장의 기치밑에 조국을 통일하려는 우리 민족의 철석같은 의지와 결의를 내외에 엄숙히 선언하고 당면한 과업과 방도들을 구체적으로 토의결정하였다.

우리 민족의 통일열기가 그 어느때보다도 높아가고있던 주체87(1998)년 4월 18일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는 력사적인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련석회의 50돐기념 중앙연구토론회에 보내신 서한에서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민족대단결5대방침을 제시하시였다.

민족대단결5대방침은 첫째로 민족의 대단결은 철저히 민족자주의 원칙에 기초하여야 하며 둘째로 애국애족의 기치, 조국통일의 기치밑에 온 민족이 단결하여야 하며 셋째로 북과 남사이의 관계를 개선하여야 하며 넷째로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반대하고 외세와 결탁한 민족반역자들, 반통일세력을 반대하여 투쟁하여야 하며 다섯째로 북과 남, 해외의 온 민족이 래왕하고 접촉하며 대화를 발전시키고 련대련합을 강화하여야 한다는것이다.

민족대단결5대방침은 위대한 수령님의 민족대단결사상을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심화발전시켜 민족단합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조국통일의 전환적국면을 열어놓기 위한 리정표이다.

우리 당은 조국통일3대헌장과 민족대단결5대방침을 지도적지침으로 하여 전민족의 대단결을 실현하기 위한 여러가지 적극적인 조치들을 취하였다.

주체87(1998)년 6월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와  《민족경제협력련합회》(민경련)가 조직되였으며 이로하여 민족대단결의 기치아래 민간급에서 화해와 단합을 이룩해나갈수 있는 보다 넓은 길이 열리게 되였다.

이해 8월 15일 판문점에서는 북과 남, 해외대표들의 참가밑에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한 대축전》이 열리였으며 이어 동포단합대회,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98범민족회의》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였다. 이듬해 8월에는 범민련 북측본부와 해외본부대표들과 함께 범민련남측본부와 《한총련》, 《전국련합》, 《민주로총》 등 애국과 통일을 지향하는 남조선의 통일운동단체대표들이 참가한 99통일대축전 10차범민족대회(범민족통일대축전)가 성대히 열려 북과 남, 해외의 3자련대, 련합이 강화되였다.

이처럼 우리 당이 높이 추켜들고 변함없이 견지하고있는 하나의 조선로선, 통일로선은 1990년대의  그처럼 복잡하고 엄혹했던 내외정세속에서도 반통일세력의 악착스러운 도전을 물리치면서 전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을 보다 높은 단계에로 끌어올린 위대한 기치로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