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 개척

전후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끊임없는 무력침공책동을 물리치면서 전후복구건설이 진행되던 그 어렵고 복잡한 시기에 자주적평화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은것은 우리 당의 조국통일로선의 위대한 생활력을 과시한 또 하나의 승리였다.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에서 우리 군대와 인민이 이룩한 빛나는 승리는 조국통일위업수행에서 거대한 력사적의의를 가진다.

그 의의는:

― 조국통일의 책원지이며 보루인 공화국북반부혁명기지를 영예롭게 수호하고 정치군사적으로 불패의 혁명력량으로 강화하였다는데 있다.

― 민족분렬의 원흉인 미제침략자들에게 수치스러운 정치군사적패배를 안기고 미제의 내리막길의 시초를 열어놓았다는데 있다.

― 미제에 의해 감행된 전쟁을 일단 억제하고 정전을 실현함으로써 하나의 조선로선, 통일로선의 기치밑에 나라의 평화와 평화통일의 가능성을 마련하였다는데 있다.

조국해방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이룩한 우리 당앞에는 전후에 전쟁으로 인하여 파괴된 인민경제를 복구발전시키며 령락된 인민생활을 안정시켜야 할 과업들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들이 제기되였다.

이런 속에서도 우리 당은 정전을 공고한 평화에로 전환시키며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완강하게 투쟁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우선 정전을 공고한 평화에로 전환시키며 남북조선이 호상 접근할수 있는 조건을 조성하여야 하겠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와  남조선<국회>사이의 협상을 이룩하며 인민들의 자유로운 래왕을 보장하며 경제, 문화, 과학, 예술의 교류를 실현함으로써 남북조선인민들간의 련계를 강화하고 호상 리해의 분위기를 조성하여야 하겠습니다.》    

 ① 우리 당은 전후 정치회의와 제네바회의를 통하여 정전상태를 시급히 평화상태에로 전환시키고 조선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성의있는 노력을 다하였다.

우리 당의 적극적인 투쟁과 노력에 의하여 주체42(1953)년 10월 26일부터 주체43(1954)년 1월 14일까지 판문점에서 정치회의소집을 위한 예비회의가 진행되였다.

미제의 계획적인 방해책동으로 말미암아 정치회의는 본회의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예비회의단계에서 결렬되고말았다.

우리 당은 그후 제네바회의에서 자유로운 총선거를 실시할데 대한 문제와 북남대표들로 전조선위원회를 조직하고 거기에서 총선거를 준비하는 문제, 6개월안에 모든 외국군대를 철거시킬데 대한 문제를 기본으로 하는 《조선의 평화적조정에 관한 방안》을 제기하고 그 실현을 위하여 진지하게 노력하였다.

회의에서는 우리측이 내놓은 통일방안에 대하여 미제가 반대하였을뿐 이전 쏘련대표와 중국대표는 찬성하였고 영국과 프랑스대표는 중립을 지켰다.

결국 미제는 고립되였다. 외토리가 된 미국무장관 덜레스는 회의가 시작되여 며칠 되지 않아서 달아나고말았다. 미제의 강도적책동으로 말미암아 조선문제토의는 아무런 전진도 가져오지 못하고 6월중순에 끝내 파탄되고말았다.

제네바회의가 파탄된 후 우리 당은 외무성성명 등을 통하여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을 위한 아시아국가들의 《극동회의》와 조선전쟁참전유관국가들의 회의를 소집할것을 제기하고 조선에서 외국군대를 철거시키며 조선의 평화적통일을 위한 방도들을 강구할것을 관계 각국 정부들에 요구하였다.

전후 정치회의와 제네바회의에서 정전상태를 시급히 평화상태에로 전환시키고 조선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우리 당의 성의있는 노력에 의하여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한 투쟁에서 유리한 환경이 마련되게 되였다.

② 우리 당은 북과 남사이의 다방면적인 합작과 교류를 실현하며 조선에서 모든 외국군대를 철거시키고 조선의 통일문제를 조선인민자신이 협상의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였다.

주체43(1954)년 10월 최고인민회의 제1기 제8차회의에서는 북과 남사이의 련계와 접촉을 강화하고 조선사람들끼리 한자리에 모여앉아 조국통일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것을 제의하는 호소문을 남조선의 《국회》와 제 정당, 사회단체, 각계각층 인사들, 전체 인민들에게 보내였다.

당 제3차대회에서는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북과 남의 모든 애국적정당, 사회단체, 개별적인사들의 련합을 실현하며 북과 남사이의 정치, 경제, 문화적련계를 맺고 인사래왕과 통신의 교환을 실현할데 대한 제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 방도로서 북남 정당, 사회단체련석회의 또는 개별적 정당, 사회단체, 애국적인사들과의 회담을 진행하며 북남사이의 접촉을 추진시키는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조국통일문제까지 토의하며 실제적대책을 취할수 있는 상설위원회를 구성할것을 제의하였다.

이와 함께 우리 당은 북과 남의 군사적대치상태를 해소하고 조선에서 외국군대를 철거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주동적으로 취하였다.

우리 당은 주체44(1955)년 3월 11일 최고인민회의선언과 주체45(1956)년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선언, 주체45(1956)년 5월 31일 공화국정부성명, 주체47(1958)년 2월 5일 공화국정부성명 등을 통하여 북과 남이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를 하지 말고 조선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것을 내외에 선포하며 북과 남의 군대를 10만이하로 축소하고 조선에서 모든 외국군대를 조속한 기간안에 철수시킬데 대한 제안을 내놓고 주체45(1956)년 8월까지 군대를 8만명 축소하였다. 중국정부는 우리 정부의 요구에 따라 주체47(1958)년 10월까지 중국인민지원군을 모두 철수시켰다.

그러나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은 긴장완화와 평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을 외면하고 조선정전협정을 유린하면서 우리 나라에서 정세를 긴장시키며 전쟁준비에 광분하였다.

우리 당은 제네바회의와 그 이후 여러 계기들에 북과 남사이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광범한 합작과 교류를 실현하며 남조선의 리재민들과 실업자, 고아들을 구제할데 대한 동포애적제안을 거듭 내놓았다.

우리 당이 취한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한 주동적인 제의와 조치들은 미제와 그 주구들을 더욱더 궁지에 몰아넣었으며 남조선인민들의 반미투쟁을 크게 고무하였다.

남조선의 애국적인민들의 줄기찬 투쟁의 결과로 그리고 남조선혁명운동의 필연적요구를 반영하여 주체44(1955)년 12월 합법적정당인 진보당이 나오게 되였다.

남조선인민들의 애국투쟁은 주체49(1960)년 봄에 이르러 마침내 리승만괴뢰통치를 뒤집어엎기 위한 대중적인민봉기로 발전하여 미제의 식민지통치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였다.

4월인민봉기는 인민들의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제를 몰아내고 그 식민지통치를 철저히 청산하여야 하며 투쟁에서 승리하자면 광범한 인민대중이 조직적으로 결속되여야 한다는 심각한 교훈을 남기였다.

③ 우리 당은 4월인민봉기후 남조선에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새로운 방안과 방침을 내놓았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49(1960)년 8월 14일 8.15해방 15돐 경축대회보고에서 남조선당국이 자유로운 총선거에 아직 응할수 없다면 나라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앞당겨나가기 위한 과도적대책으로서 북남련방제를 실시할데 대한 중대한 제안을 내놓으시였다.

우리 당이 내놓은 공명정대한 제안은 조국통일을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크게 고무하였다.

남조선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라는 구호를 들고 조국통일을 열렬히 주장해나섰다.

우리의 과도적련방제방안에 고무된 남조선인민들은 민족의 분렬을 종식시키고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애국투쟁을 광범히 전개하였으며 미제의 식민지통치에 심각한 위기를 조성하였다.

이에 겁을 먹은 미제는 1961년 5월에 군사정변을 조작하고 남조선에 군사파쑈정권을 수립함으로써 조국통일의 앞길을 가로막아나섰다.

정세는 미제와 남조선당국의 무분별한 새 전쟁도발을 저지시키기 위해 공화국북반부의 혁명기지와 통일력량을 백방으로 강화하는것과 함께 남조선의 통일력량을 튼튼히 꾸려 자주적평화통일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리며 우리 나라의 통일을 지지하는 국제적력량과의 련대성을 더욱 강화할것을 요구하고있었다.

주체50(1961)년 9월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에서 조선인민은 자주적으로 나라의 평화적통일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는것을 천명하시고 통일방도를 재삼 밝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3(1964)년 2월 력사적인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8차전원회의에서 조국통일의 3대력량을 백방으로 강화할데 대한 방침을 천명하시였다.

조국통일의 3대력량을 강화할데 대한 방침의 정당성은 현실에서 증명되였다.

공화국북반부의 혁명력량은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우리 당의 로선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과정에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백방으로 강화되였다.

남조선에서는 이 시기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이 남조선-일본《회담》을 반대하는 투쟁과 밀접히 결합되여 벌어졌으며 이 과정에 통일력량이 더욱 장성되였다. 매국적인 남조선-일본《회담》을 반대배격하여 일어난 청년학생들과 시민들의 1964년 3월 24일-6월 3일 봉기는 《민족분렬을 일삼는 독재정권 물러가라!》, 《4.19정신으로 3 000만이 뭉쳐보자, 단결없이 남북통일 할수 없다》라는 구호밑에 치렬하게 벌어졌으며 여기에는 도합 160여만명이상의 청년학생들과 시민들이 참가하였다.

이 과정에 남조선에서는 통일을 위한 투쟁을 이끌어나갈 전위력량이 준비되고 1964년 3월에 서울에서는 통일혁명당 창당준비위원회가 결성되였으며 1969년 8월에는 마침내 통일혁명당 창당이 선포되였다.

 ④ 우리 당은 조국통일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할수 있도록 통일력량을 백방으로 강화해나갔다.

우리 당은 1960년대 후반기에 들어와 미제가 량면정책과 작고 분렬된 나라들에 대한 전쟁정책을 강화하고 특히 1966년 10월에 남조선에 기여든 죤슨이 《아시아의 어느 다른 지역에서 전쟁을 할지 모른다.》느니, 《국토통일을 할 준비를 갖추라.》느니 하면서 북침전쟁도발을 로골적으로 고취하고있는 정세에 비추어 주체55(1966)년 10월에 소집한 조선로동당대표자회에서 조국통일과 관련한 원칙적립장을 다시금 천명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통일위업을 반드시 자주적으로 실현할데 대한 우리 당의 일관한 원칙적립장과 통일의 구체적방도의 호상관계에 대하여 밝히시면서 조국통일을 실현하는데서는 여러가지 방도들이 있을수 있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나라의 통일은 조선민족의 내부문제이며 유엔이나 그 어떤 외부세력도 여기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천명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후시기 발표하신 여러 로작들에서도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우리 당의 변함없는 기본방침을 거듭 천명하시면서 조국통일의 혁명적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할수 있도록 통일력량을 더욱 강화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정력적으로 이끄시였다.

이처럼 우리 당은 전후시기 조국통일로선을 더 높이 추켜들고 적극적인 투쟁을 벌림으로써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반통일책동을 걸음마다 짓부시고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