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관도 인민의 아들이라시며​

 

 

사령관도 인민의 아들이라시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키시면서 인민들속에 들어가 그들을 의식화, 조직화하시는 모범을 몸소 보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두만강연안 국경대안에 진출하시여 적극적인 군사정치활동을 벌려나가시였다.

 

반일인민유격대가 두만강연안국경일대에서 적극적인 군사정치활동을 벌리는것은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켜나가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였다. 유격대의 군사정치활동을 적극화하면 일제침략자들에게 군사정치적타격을 주고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어 대중의 의식화, 조직화를 촉진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군사요충지에 둥지를 틀고있는 적들에게 된타격을 주는 한편 국내혁명조직들과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고 그들을 혁명투쟁에로 고무추동하실것을 결심하시고 주체22(1933)년 4월초 량수천자습격전투를 조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1933년 4월 4일에 내가 반일인민유격대의 한개 중대력량으로 량수천자를 들이쳐 적들을 소탕하였습니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우리 나라 온성지구와 잇닿아있는 량수천자는 온성, 도문, 훈춘, 왕청과 같은 큰 주민지역을 가까이에 두고있는 비교적 교통이 편리하고 지리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다. 일제침략자들은 이곳에 령사관경찰과 위만군을 비롯한 많은 병력을 배치하고 마을들과 주변산발들을 싸다니면서 유격대와 이곳 지하혁명조직들의 활동을 저지시키려고 발악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습격전투에 앞서 정찰조를 파견하시여 적정을 구체적으로 장악하시였으며 그에 기초하여 전투서렬을 타격대상물 수에 맞게 여러개의 조로 편성하시고 매 조들에 구체적인 전투임무를 하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대오가 량수천자부근의 무명고지뒤에 이르자 대원들을 휴식시키신 다음 지형을 료해하시고 매 조들의 전투임무를 확정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모든 조들이 자기 위치를 차지한것을 확인하시고 전투개시를 알리는 신호총소리를 높이 울리시였다. 신호총소리와 함께 습격조들은 타격대상물들에 일제히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적들은 갈팡질팡하다가 무리로 쓰러졌고 요행 살아서 도망치려고 담장에 기여오른 놈들도 유격대원들의 명중탄에 맞고 그자리에 너부러졌다.

적에 대한 소탕전이 한창 벌어지고있을 때 정치공작원들이 거리와 마을들에 삐라를 뿌렸다.

 

 

량수천자습격전투의 빛나는 승리는 무장투쟁의 국내에로의 확대발전을 가로막기 위하여 발악하던 적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고 왕재산회의방침을 철저히 관철해나가는데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국경대안에서 적극적인 군사정치활동을 벌리시면서 몸소 인민들속에 들어가시여 대중정치사업의 숭고한 모범을 보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이끄시는 반일인민유격대의 주력부대가 두만강연안일대에서 활동하던 주체22(1933)년 4월초 어느날 두만강기슭에 있는 량수천자부근의 한 농막집앞에서 잠시 휴식하게 되였다.

 

4월이라고 하지만 해질무렵이여서 날씨는 춥고 두만강의 얼음은 두터웠다. 주인을 찾았으나 집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대원들은 농막집마당에서 휴식할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의 외투를 벗으시여 부상당한 대원들을 덮어주시고는 추운 때에는 가만히 앉아있기보다 몸을 놀리는것이 더 좋다고 하시면서 손수 도끼를 드시고 마당의 나무를 패시였다. 대원들은 모두 수령님을 따라나서 집주위의 눈을 치고 마당을 쓸었으며 나무를 해다가 불을 피워놓고 식사준비를 서둘렀다.

 

한편 총멘 사람들이 마당에 들어서는것을 보고 왜놈군경놈들인줄 알고 집안에 숨어서 문짬으로 바깥동정을 살피던 농막집의 늙은 부부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졌다. 대원들의 동정을 눈여겨보면서 그들부부는 인민을 위하고 동지를 위하는 그들이 분명 왜놈군대가 아니라는것을 알고 바삐 밖으로 나와 저들의 잘못을 사과하며 집안으로 맞아들이였다. 그리고는 식량과 추녀밑에 매달았던 배추까지 아낌없이 내놓으며 정성을 다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로인을 할아버지라고 부르시며 담배를 권하시고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그이께서는 로인에게 농민들이 가난하게 사는것이 팔자탓이 아니라 일제와 지주놈때문이라는것과 인민들이 잘살수 있는 길은 오직 유격대를 도와 일제와 그 앞잡이들을 반대하여 싸우는데 있다고 차근차근 일깨워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막을 떠나시면서 로인앞에 얼마간의 돈을 내놓으시며 할머니가 입고계신 옷이 헐어서 문밖출입을 못하시는것 같은데 적은 돈이지만 보태쓰라고, 닭도 사다가 기르면서 아이들에게 고기도 먹일수 있게 하라고 하시였다.

 

로인은 자기들을 이렇게까지 극진히 대해주시는분이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이시라는것을 알게 되자 수령님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그러한 큰 어른이 손수 나무를 패시다니, 사령관님께서 그런 일을 다하시니 될말인가고 하면서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로인의 감동어린 말에 가벼이 미소를 지으시며 사령관도 인민의 아들이라고 하시면서 인민들이 다하는 일을 자신이라고 어째 못하겠는가고 하시였다.

 

로인은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의 숭고한 풍모앞에서 너무도 감동되여 수령님의 손을 덥석 부여잡으며 날씨가 추운데 하루밤 집에서 더 쉬여가시라고 하면서 세상에 이런 군대는 처음 본다고 진정을 담아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시는 곳마다에서 꽃피우신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는 인민들의 가슴속에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신뢰와 흠모의 정을 깊이 심어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3(1934)년 2월 중순과 10월 중순에도 량수천자전투​를 조직하시여 일제경찰과 위만군, 자위단을 소탕하게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반일인민유격대는 이밖에도 국경대안의 적의 요충지들을 타격함으로써 적들을 군사적으로 제압하고 무장투쟁의 국내에로의 확대발전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반일인민유격대 소부대, 소조들이 온성, 회령, 경원, 경흥, 무산을 비롯한 북부국경일대에 끊임없이 진출하여 적들의 병영, 경찰관주재소, 면사무소, 도선장세관들을 습격파괴하고 악질적인 경찰 및 일제주구들을 처단하는 전투활동을 적극 벌려나가게 하시였다.

 

반일인민유격대의 소부대, 소조들은 주체22(1933)년 3월 중순 회령 성북리일대에 배치된 일제경찰기관에 대한 습격전투(성북리전투​), 9월 중순 경원군 룡당나루파출소에 대한 습격전투(룡당나루전투), 10월 종성군(당시) 운암동부근전투​를 벌려 적들에게 죽음과 공포를 주고 국내인민들에게 크나큰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23(1934)년에 들어서면서 더욱 악랄해지는 일제의 《토벌》공세에 대처하여 유격구방위를 위한 투쟁이 가렬하게 벌어지고있던 시기에도 반일인민유격대의 소부대와 소조들을 국내에 련속 파견하시여 적극적인 군사정치활동을 벌리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파견하신 소부대들은 주체23(1934)년 2월 경원군 웅기동경찰관주재소습격전투, 3월 온성군 장덕나루경찰관파출소습격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들을 진행하고 인민들속에서 힘있는 정치사업을 벌리였다.

 

반일인민유격대의 계속되는 국내진출과 적극적인 군사정치활동은 일제침략자들에게 커다란 정치군사적타격을 주고 우리 인민들에게 필승의 신념과 용기를 안겨주었으며 국내에서의 혁명운동발전을 적극 추동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시기 두만강연안유격근거지에 의거하여 항일무장투쟁을 강화하시면서 당조직을 확대하기 위한 사업과 반일대중단체들을 확대강화하는 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반일인민유격대의 기본전투단위인 중대에 당의 기층조직인 세포를 내오시고 중대당세포밑에는 당분조를 조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유격대의 력량이 장성하여 대대들이 나옴에 따라 세포들의 활동을 통일적으로 지도할 사명을 지닌 대대당위원회를 내오며 주체22(1933)년 가을부터는 대대를 련대로 개편하는 실정에 맞게 부대안의 모든 사업을 조직집행하는 집체적지도기관으로서 련대당위원회를 조직하도록 하시였다.

 

반일인민유격대안에 각급 당조직들이 결성됨으로써 당창건준비사업이 항일무장투쟁의 벅찬 실천과 밀접히 결부되게 되였으며 종전에 지역적단위로만 벌어지던 당조직건설사업이 우리 혁명의 주도적력량인 유격대를 기본으로 하여 폭넓게 진행되게 되였다. 그리하여 유격구들에는 현당위원회로부터 구당위원회와 당세포, 당분조에 이르기까지 정연한 조직지도체계가 서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와 함께 반일대중단체들을 확대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공청사업을 개선강화하기 위한 사업과 대왕청, 소왕청, 사수평일대의 대중단체들의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면서 로동자, 농민, 청년들과 녀성들속에 반일대중단체들을 조직확대하는 사업을 이끄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정력적인 활동에 의하여 유격구와 적통치구역의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광범한 군중은 반일대중조직에 굳게 결속되고 보다 혁명적으로 각성되여 일제를 반대하는 여러 형태의 투쟁에 떨쳐나서게 되였으며 적들의 삼엄한 감시속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유격대를 물심량면으로 적극 원호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이처럼 반일대중단체들을 넓은 지역에 조직확대하는 사업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심으로써 항일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은 더욱 튼튼히 꾸려질수 있었으며 반일민족해방투쟁에서는 새로운 혁명적전환이 일어날수 있었다.

 

               일화; 손수 파주신 샘터​, 다시 만든 군복​,

                        ❖ 마을사람들과 함께 드신 국수​, ❖ 음식점주인에게 남기신 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