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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민회결성은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발전에서
획기적인 전환의 계기를 열어놓은 력사적사변​

2018-03-22   박준혁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의 고귀한 혁명생애와 업적을 보여주는 사적자료

 

❖ 남산의 푸른 소나무

주체6(1917)년 3월 23일은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이시며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신 뜻깊은 날이다.

력사의 이 뜻깊은 날을 맞으면서 김형직선생님께서 나라의 독립과 무산민중의 해방을 위하여 험난한 력사의 새벽길을 줄기차게 헤치시는 길에서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심으로써 이룩하신 고귀한 업적을 되새겨보는것은 참으로 큰 의의를 가진다.

조선국민회결성이 가지는 력사적의의는 한마디로 말하여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발전에서 획기적인 전환의 계기를 열어놓았다는데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국민회는 전체 조선민족이 일치단결하여 조선사람자체의 힘으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며 참다운 문명국가를 세울것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로서 3.1인민봉기를 전후한 시기 조선의 애국자들이 무은 국내외의 조직들가운데서도 가장 규모가 큰 반일지하혁명조직의 하나였다.》

 

조선국민회가 결성됨으로써 무엇보다도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은 민족자체의 조직화된 힘에 의하여 확신성있게 전진할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게 되였다.

자기 나라와 자기 민족의 운명을 자체의 실정에 맞게 자주적으로 개척해나가는것은 매개 나라 인민의 신성한 권리이다.

1910년대 후반기 일제침략자들은 우리 인민의 반일투쟁을 말살하고 조선강점을 영구화할 목적으로 중세기적공포정치인 무단통치를 더욱 악랄하게 강행하였다. 일제의 무단통치체제는 세계력사가 일찌기 알지 못했던 가혹한 식민지파쑈폭압통치체제였다.

우리 인민은 일제의 조선강점을 반대하여 여러가지 형태의 반일투쟁을 벌렸으나 독립운동단체 상층의 계급적제한성과 정치적락후성,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분렬리간책동으로 말미암아 사분오렬되고 실패만을 거듭하고있었다.

 

《한일합병》후 조직된 독립의군부나 대한광복단, 조선국권회복단과 같은 단체들은 일제의 탄압에 의하여 이무렵에 와서 모조리 해산되였다. 세계적으로 볼 때에도 그 당시는 식민지민족해방투쟁문제가 크게 성숙되지 않았을 때였으며 독립운동의 방식이나 방법도 아직 개척되지 못하고있던 암담한 시기였다.

 

엄혹한 현실은 인민대중에게 옳바른 투쟁방략을 밝혀주고 반일민족해방운동을 활성화하며 통일적으로 지도할수 있는 강력한 혁명조직을 내올것을 절실히 요구하고있었다.

이 현실적과제는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께서 조선국민회를 조직하심으로써 빛나게 실현되게 되였다.

몸이 찢겨 가루가 될지언정 조선독립의 새봄을 안겨주시려는 비장한 각오와 불굴의 투지를 안으시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오로지 나라의 독립과 무산민중의 해방을 위하여 조직결성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봉화리를 활동거점으로 정하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여러 지역에 나가시여 인민들의 동향과 독립운동의 실태를 여러모로 더 깊이 료해하시였다. 그리고 동지들을 만나 조직결성의 필요성을 강조하시고 그 준비사업을 다그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으며 당면하여 핵심들을 장악하고 키우도록 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주체6(1917)년 2월 지하혁명조직을 결성하기 위한 예비회의를 소집하시였다. 회의에서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지하혁명조직을 결성하기 위한 회의에 참가할 대상자문제, 련락방법에 대하여 가르치시고나서 조직의 명칭은 《조선국민회》로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력사의 그 나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내 몸이 찢기여 가루가 될지언정 일본놈들과 싸워이겨야 하겠다고, 내가 싸우다 쓰러지면 아들이 하고 아들이 싸우다 못하면 손자가 싸워서라도 우리는 반드시 나라의 독립을 성취하여야 한다는 《지원》의 사상을 간직하시고 조직결성을 위한 투쟁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이렇듯 《지원》의 숭고한 뜻을 품으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험난한 총검의 숲을 헤치시고 마침내 주체6(1917)년 3월 23일 평양 학당골에서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시였다.

 

조선국민회는 전체 조선민족이 일치단결하여 조선사람자체의 힘으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며 참다운 문명국가를 세울것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로서 3.1인민봉기를 전후한 시기 조선의 애국자들이 무은 국내외의 조직들가운데서도 가장 규모가 큰 반일지하혁명조직이였다. 조선국민회는 그 지위와 견인력, 영향력에 있어서 지역적인 조직이나 계층별에 국한되였던 선행한 모든 반일단체들과는 달리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을 힘있게 밀고나가는 중추적혁명조직, 주도적위치에 있는 혁명조직이였다.

 

조선국민회는 튼튼한 대중적지반우에 선 조직으로서 여기에는 로동자, 농민, 교원, 학생, 군인(독립군), 상인, 종교인, 수공업자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이 다 망라되여있었으며 그 조직은 국내는 물론 중국의 베이징, 상해, 길림, 무송, 림강, 장백, 류하, 관전, 단동, 화전, 흥경 등 외국에까지 널리 뻗어있었다. 이처럼 조선국민회는 튼튼한 대중적지반을 가지고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을 힘있게 선도하였다.

특히 조선국민회는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을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무산혁명에로 방향전환시켜나가는데서 선봉적역할을 수행하였다.

 

일찍부터 부르죠아민족주의운동을 비판적으로 대하시며 옥중에서 무산혁명에 대한 구상을 무르익혀오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주체8(1919)년 7월 청수동회의에서 무산혁명의 력사적필연성을 론증하신데 기초하여 그해 8월 관전회의에서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을 무산혁명에로 방향전환할데 대하여 정식 선포하시였다.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의 지도밑에 조선국민회가 자력독립, 민족단합의 기치를 높이 들고 민족해방운동의 자주적이며 통일적인 발전을 힘있게 추동하며 무산혁명의 길을 새롭게 개척한것은 우리 인민의 반제투쟁사에 특기할 업적으로 된다.

조선국민회의 결성으로 우리 인민은 모든 반일력량을 하나로 묶어세워 전국적범위에서 민족해방운동을 통일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위력한 혁명조직을 가지게 되였다.

 

조선국민회가 결성됨으로써 다음으로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이 반제자주의 길로 전진해나갈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게 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결성하신 조선국민회는 3.1인민봉기를 전후한 시기 우리 나라의 애국자들이 무은 조직들가운데서 가장 규모가 크고 반제자주적립장이 강한 반일지하혁명조직이였습니다.》

민족자주에 관한 문제는 나라와 민족의 생사존망과 관련된 가장 중대한 문제이다.

 

자주를 떠나서는 민족의 존재와 발전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다. 자주의 길이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수호하고 존엄을 빛내이며 부강번영을 이룩하는 길이라면 사대와 외세의존은 망국의 길, 노예적굴종의 길이다. 사상의 진보성을 론의할 때 그것이 나라와 민족의 자주적발전의 길을 얼마나 정확히 밝혀주는가 하는것을 중요한 척도로 삼는 리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우리 인민은 그 누구보다도 열렬한 애국심을 간직하고 반일민족해방투쟁에 일떠섰지만 실패와 좌절의 쓰라린 아픔만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 원인은 바로 민족운동을 지도한다고 하던 상층부의 사대주의와 외세의존적립장에 있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시기에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의 경험과 교훈, 국제혁명운동의 실태를 전면적으로 분석총화하신데 기초하여 나라의 독립은 오직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달성하여야 한다는 민족자주사상을 드팀없는 신념으로 간직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민족자주, 자력독립에 관한 자신의 신념에 대하여 조선독립은 누구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력사는 외세의존이 곧 망국의 길이라는것을 가르쳐주었다, 우리는 그 어떤 외세의 힘도 바라지 말고 우리 2천만민중의 단합된 힘으로 일제침략자들을 쳐물리치고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여야 한다고 피력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세계적으로 식민지민족해방문제가 크게 성숙되지 않았고 더우기 민족자주, 자력독립에 대하여서는 감히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고있던 당시에 민족자주를 핵으로 하는 《지원》의 사상을 제시하신것은 반제민족해방투쟁에서의 커다란 사상적전환이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결성하신 조선국민회는 반제자주적인 립장이 투철한 혁명조직이였다.

 

조선국민회의 취지서에는 장차 유미세력이 동양에 부식되고 일본이 그들과 패권을 다투게 될 시기가 닥쳐올것은 명백하므로 그 기회에 조선사람자체의 힘으로 조선독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동지들의 결속을 도모하며 그 준비를 진행하여야 한다고 밝히고있다.

 

취지서를 통해 알수 있는바와 같이 조선국민회는 외부세력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과는 달리 조선독립은 조선사람자체의 힘으로 이룩하여야 한다는 자주적인 립장을 취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국민회의 결성은 외세의존을 배격하고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나라의 독립을 성취하시려는 김형직선생님의 견결한 반제자주사상과 그 실현을 위한 간고한 투쟁의 결실이였으며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발전에서 획기적인 전환의 계기를 열어놓은 력사적사변이였다.

《지원》의 높은 뜻을 지니시고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신 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김형직선생님께서 이룩하신 업적은 오늘도 우리 혁명의 고귀한 사상정신적유산으로 빛을 뿌리고있다.

온 겨레는 반제민족해방투쟁사에 뚜렷이 새겨진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의 고귀한 혁명생애와 업적을 길이 빛내이며 하루빨리 이 땅우에 존엄높고 부강번영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기 위한 투쟁에 적극 떨쳐나서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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