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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일본어강제보급책동과 그 반동성​

2018-05-15   김일성종합대학 전경송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우리 민족을 <황민화>하기 위하여 일본말사용을 강요하였다.》

세계력사에는 침략자들이 다른 나라와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고 강점지역들에서의 지배와 략탈을 위해 저들의 언어를 공용어로 선포하고 리용하였던 례는 있었지만 일제침략자들처럼 조선인민의 민족성을 완전히 말살하고 우리 민족을 《황민화》할 목적으로 일본어를 강제로 보급하고 그 사용을 강요한것과 같은 례는 일찌기 없었다.

일제는 지난날 우리 나라를 강점한 첫날부터 조선을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 야망밑에 조선인민의 민족성을 말살하려고 책동하였으며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더욱 로골화되였다.

일제가 조선강점시기 우리 나라에서 감행한 일본어강제보급책동은 본질에 있어서 조선사람이 자기의 민족어인 조선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고 일본어를 학교와 일터 심지어 가정에서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조선민족을 완전히 없애버리기 위한 민족말살책동이였다.

이 글에서는 일제가 우리 나라에서 전대미문의 파쑈테로통치를 감행하던 1930년대후반기부터 패망전까지 감행한 일본어강제보급책동과 그 반동성에 대하여 밝히려고 한다.

 

일제는 우선 우리 나라에서 간악한 조선민족말살정책인 《황국신민화》정책실현의 한 고리로 일본어강제보급책동을 감행하였다.

1930년대부터 일제가 내세운 《황국신민화》의 본질은 조선사람들을 일본《천황》에게 충실한 《신민》으로, 일제의 영원한 노예로 만들기 위한 민족말살책동이였다.

 

당시 《조선총독부》학무국장 시오바라라는 자는 《황국신민은 <천황페하>를 충심으로 받들고 그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절대순종은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떠나 오로지 <천황>에게 봉사하는것이다. 이러한 충성스러운 길을 가는것이 우리들, 국민의 유일한 생존의 길이며 모든 힘의 원천이기때문에 …자기를 잊고 <천황>을 위하여 웃으면서 순국하는 인간》이 바로 《황국신민》이라고 떠벌였다.

 

일제의 《황국신민화》정책에서 기본은 조선민족을 특징짓는 중요한 징표인 조선어사용을 금지시키고 일본어를 사용하도록 하는것이였다.

그것은 언어가 사람들사이의 사상과 감정의 중요한 전달수단일뿐아니라 거기에는 력사적으로 형성된 해당 민족의 민족정신이 담겨져있기때문이였다.

우리 나라에서 일제의 일본어강제보급책동이 《황국신민화》정책실현의 한 고리로 벌어졌다는것은 총독 미나미 지로가 1942년 4월 《조선총독부》국장회의에서 떠벌인 사실을 보아도 잘 알수 있다.

 

그는 회의라는데서 《국어(일본어)는 국민의 사상정신과 절대로 떼여놓을수 없다. 또한 국어를 떠나 일본문화는 없다. 반도인의 진정한 <황국신민화>는 반도민중으로 하여금 국어를 리해하게 하고 국어를 사용하게 함으로써 효과가 커지리라고 믿는다. 국어보급이야말로 내선일체를 실현하는데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이다.》고 하였다. (《경성일보》1942년 5월 15일부 석간, 《매일신보》1942년 4월 24일부)

 

이것은 일제가 우리 나라에서 일본어강제보급과 그 사용을 식민지통치의 주요정책으로 내세웠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일제의 일본어강제보급책동이 《황국신민화》정책실현의 중요한 고리로 벌어졌다는것은 1942년 5월 6일 제44차 국민총력조선련맹지도위원회에서 채택한 《국어보급운동요강》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일제는 여기에서 《황국신민으로서 국어로 말할수 있는 자랑을 느끼게 하는것, 일본정신을 체득하는데서 국어상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것이라는것을 리해시키는것, 대동아공영권의 중핵으로 되는 황국신민으로서 국어의 습득, 상용이 필수적인 자격, 요건이라는것을 자각시키는것》이라고 규정하였다.(《경성일보》1942년 5월 7일부 조간)

 

이와 같이 일제는 조선인민의 민족성을 완전히 말살하고 《황국신민화》하려는 목적밑에 일본어강제보급책동을 감행하였다.

 

일제는 또한 우리 나라에서 각급 식민지교육기관과 파쑈단체들과 같은 모든 수단들을 총동원하여 전체 조선인민을 대상으로 일본어강제보급책동을 악랄하게 감행하였다.

일제는 각급 학교들에서 여러가지 교활한 수법을 통하여 일본어교육만 실시하도록 하였다.

 

일제의 《조선총독부》는 1937년 5월 각 도지사와 사범학교 교장들앞으로 《학교에서 국어교육의 쇄신철저에 관한 건》(학비 제88호)이라는 문건을 내려보내여 무조건 집행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각급 학교에서 《국어》의 회화는 물론 쓰기, 표현능력을 훨씬 높여 《…황국신민화된 자각을 확고히》하는 《국어》교육을 강화하도록 하였다.

 

일제는 1938년이후 간이국어강습회를 조작하고 11살부터 30살까지의 범위에서 학교교육을 받지 못하여 일본어를 모르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일본어교육을 실시하였고 1941년부터 간이국어강습회를 국어보급강습회로 명칭을 고치고 일본어교육을 더욱 강화하였다.

 

일제는 국어보급강습회를 해마다 농사일이 바쁘지 않은 겨울철에 60일정도 운영하며 교과서는 반드시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것을 리용하도록 규정하고 조선에서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진행한다고 하였다.

 

일제는 1942년 5월부터 조선사람들의 모든 가정에서 일본어보급을 강요하기 위하여 《일일일어운동》이라는것까지 벌려놓았다.

《일일일어운동》은 학생들에게 매일 집에 돌아가서 하루에 1개씩의 일본어단어를 일본말을 모르는 부모들에게 배워주게 함으로써 일본어강제보급의 효과를 높이고 일본어사용을 반대하는 조선인민의 민족자주의식을 짓눌러버리려는 목적에서 벌어진것이다.

 

일제는 《일일일어운동》을 통하여 하루에 1개씩, 1년에 300개 정도의 일본어단어를 습득하게 하려고 하였다. 《일일일어운동》에서는 인사말을 비롯한 일상회화용어나 가정용품, 가족친척들에 대한 호칭 등과 관련한 단어들을 먼저 습득하게 하고 그것을 조선말과 섞어쓰게 하였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정도씩 교원이 가정방문을 진행하여 부모들의 일본어습득정형을 료해하고 그것으로 해당 학생의 학업성적평가를 고려하였다.

 

일제는 각급교육기관들만이 아니라 조선에서 침략전쟁에 필요한 인적 및 물적자원을 총동원하기 위한 파쑈단체인 국민총력조선련맹(1938년에 조작된 국민정신총동원조선련맹을 1940년 10월에 국민총력조선련맹으로 개편)을 통하여서도 일본어강제보급책동을 벌렸다.

국민총력조선련맹은 각급 식민지통치기관과 도, 부, 군, 면, 리, 동을 비롯한 행정구역을 단위로 하여 조작되였으므로 우리 나라에서 살고있는 모든 조선사람들은 누구나 다 반드시 이 파쑈단체의 통제속에 들어가게 되여있었다.

 

일제는 국민총력조선련맹을 통한 일본어강제보급을 강화하기 위하여 1942년 6월 이 련맹의 말단조직인 애국반의 성원들이 집행해야 할 실천사항으로 만든 《국어생활의 철저》라는 문건에서 《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국어를 배우라. 조금이라도 알고있는 사람은 반드시 국어를 사용하라. 이와 같이 하여 우리의 생활을 국어화하자.》는 조항까지 설정해놓고 전체 조선인민에게 일본어를 배우도록 하고 그것을 철저히 사용하도록 강요하였다. (《매일신보》1942년 6월 7일부, 《조광》1942년 7월)

 

일제는 이와 같이 각급 학교를 통하여 학생들을, 간이국어강습회를 통하여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대상들을, 학생들을 통하여 부모들을, 국민총력조선련맹을 통하여 전조선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여 일본어강제보급책동을 벌리였다.

이것은 일제가 조선강점초기와 중기에 비하여 일본어강제보급책동을 매우 악랄하게 벌리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일제는 또한 우리 나라에서 교활하고 악랄한 상벌제도까지 배합하여 일본어보급책동을 강압적으로 벌리였다.

일제는 조선에서 일본어보급을 폭력적인 방법에 의거하여 강압적으로 진행하였다.

 

총독 미나미는 1942년 5월 4일 각도 경찰부장회의에서 《내선일체, 황국신민화방침에 어긋나는것은 단호한 철추를 내리며 그러나 황국신민다운것에 대해서는 사랑스럽게 애무해주라.》, 《내선일체의 지름길은 국어보급에 있으며 …이 방침에 배치되는 언동을 감행하는 도배들에 대해서는 추상렬일의 위세로 단호히 처리한다.》고 조선에서 일본어보급을 강압적인 방법으로 실시할데 대하여 언명하였다. 이것은 조선말을 쓰지 않고 일본말을 쓰면 살수 있지만 조선말을 쓰면 모두 죽여야 한다는 로골적인 폭압지령이였다.

 

미나미의 이러한 폭압지령에 따라 조선에서 일제의 일본어보급책동은 폭력적성격을 강하게 띠였으며 방방곡곡에서 조선어사용을 탄압하고 금지하는 광기가 차고넘쳤다.

일제는 조선어의 사용을 막고 일본어사용을 강요하는 각종 정책들을 실시하였다.

 

당시 일제는 조선어사용을 막기 위하여 조선어레코드의 제작, 판매를 제한금지하였고 연극과 가요, 영화 등에는 반드시 《국어》연극과 일본말로 된 가요를 포함시키도록 하였다. 그리고 관공서, 회사, 은행, 우편국에서 반드시 일본어로 말할것을 강요하였으며 기차, 배, 전차, 승용차와 같은 공공교통수단도 일본어를 사용하여야만 리용할수 있게 하였으며 정책을 위반하는 대상들에 대하여서는 엄한 처벌조치를 취하였다.

 

일제는 각급 학교들에서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고 조선어를 쓰는데 대한 처벌조치를 제일 많이 취하였다.

일반적으로 《국어상용》이라고 씌여진 카드를 월요일에 모든 학생에게 10개씩 나누어주고 토요일에 학생들이 가지고있는 카드의 개수를 검열하는 방법으로 조선어를 사용한 학생들을 골라내서 처벌하는 방법을 적용하였다.

 

서울의 한 학교에서 종이카드를 모든 학생이 10개씩 가지고있게 하고 조선말을 사용하였을 때에는 이것을 발견한 학생에게 하나씩 넘겨주어 결국 빨리 없어진 학생에 대해서는 학업성적평가를 고려하는 처벌조치를 취한것을 들수 있다.

 

일제는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고 조선어를 쓰는 대상들에 대하여 폭력과 벌금조치도 적용하였다.

 

경성의 한 경찰서에서 고등계형사가 고문을 할 때 조선인《죄인》이 일본어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아이고》라고 조선말로 비명소리를 질렀다고 하여 10전의 벌금을 받아낸 사실, 평양의 어느 한 회사에 일본말을 할수 없는 로인 한명이 찾아와 10전을 내밀면서 벌금 10전에 해당한 조선말을 할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한 사실 등은 당시 일제의 조선어사용에 대한 처벌조치가 얼마나 가혹하고 악독하였는가를 잘 보여주고있다. (《경성일보》1942년 7월 8일부, 《아사히신붕조선판》1942년 5월 17일부)

 

일제는 조선어를 사용한 직원이나 학생에 대해서는 해고, 퇴학조치도 취하였다.

 

청진의 한 학교에서 조선어를 사용한 직원은 사표를 제출하게 하며 4학년이상의 학생은 퇴학처분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처럼 일제의 일본어강제보급책동은 우리 인민들에게 참을수 없는 고통을 강요한 민족말살책동이였다.

1930년대후반기부터 우리 나라에서 일제가 더욱 악랄하게 감행한 일본어강제보급책동의 반동성은 조선민족임을 특징짓는 중요한 징표의 하나인 조선어사용을 금지하고 일본어만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우리 인민을 《황국신민화》하기 위한 조선민족말살책동이였다는데 있다.

일제의 악독한 일본어강제보급책동은 우리 나라에서 수많은 문맹자를 산생시킨 비참한 결과를 남긴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되였다.

력사적사실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은 과거 일제가 조선민족을 없애버리려고 책동한 모든 범죄행위들을 부정하고있으며 력사교과서들까지 수정해가며 저들의 과거죄악을 합리화해보려고 교활하게 날뛰고있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강산이 변한다 해도 조선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일제가 감행한 특대형범죄행위들은 절대로 감출수도 가리울수도 없다.

일본은 과거력사를 외곡하는 파렴치한 행위에 매여달릴것이 아니라 저지른 죄행에 대하여 사죄하고 배상하여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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