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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독도《령유권》론의 반동성​​

2018-02-27    박철만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지금 일본반동정부는 독도를 저들의 땅이라고 주장하고있습니다. 이것은 미제의 비호밑에 되살아난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우리 나라에 대한 재침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뻔뻔스럽게 행동하고있는가 하는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입니다.》

독도는 예로부터 조선의 고유한 령토이다.

고대시기 동해를 개척한 고조선, 진국사람들은 울릉도, 독도에까지 진출해서 물고기잡이를 비롯한 생업활동을 하였다. 당시 일본은 원시사회말기 혹은 고대문명의 첫 문어귀에 있었으므로 이 수역에 얼씬도 하지 못하였다.

 

《삼국사기》에는 512년에 신라가 우산국으로 불리우는 울릉도와 그 주변의 섬들을 귀속시켰다고 기록되여있다. 이시기 조선동해안을 차지한 고구려, 신라사람들이 5~6세기초에 독도주변에서 어로활동을 하며 생활하였다. 또한 《고려사》에는 우산도와 무릉도에 대하여 비교적 정확히 기록하여놓았는데 그에 의하면 두 섬은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보인다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무릉도는 울릉도이고 우산도는 독도이다.

 

조선봉건왕조시기인 1900년에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승격시키면서 그에 독도를 포함시켰다. 독도라는 이름은 울릉도사람들이 조선동해안의 고독한 섬이라고 부른데서 유래되였다.

이처럼 울릉도와 독도는 오랜 옛날부터 우리 나라의 섬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은 독도가 저들의 섬이라고 하면서 독도《령유권》론에 집요하게 매달리고있다. 우심해지는 일본반동들의 독도《령유권》론은 력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하나의 망설이며 가장 악랄한 령토강탈야망으로 일관된 반동적인 침략론이다.

 

일본반동들의 독도《령유권》론의 반동성은 첫째로, 그것이 조선에 대한 가장 악독한 식민지정책의 직접적산물이라는데 있다.

일본반동들이 독도《령유권》문제를 집요하게 들고나오는것은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침략정책의 산물이다.

 

아는바와 같이 조선을 침략하여 식민지화할것을 국가정책으로 정하고 이것을 《정한론》으로 표명한 일본군국주의자들은 19세기중엽에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각종 사건들을 조작하고 침략의 발판을 닦았으며 20세기초에는 우리 나라를 저들의 식민지로 전락시켰다.

 

이미 지적된바와 같이 지금까지 일본이 들고나오는 독도《령유권》주장의 가장 《신빙성》있다는 근거는 1905년 2월 22일에 발포한 《시마네현고시 제40호》이다. 《시마네현고시 제40호》가 조작공포된 전과정을 따져보면 그것은 철저히 조선에 대한 침략책동의 한 고리였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

 

문제의 이 공문서가 조작되기 5년전인 1900년에 조선봉건정부는 근대법적요구에 기초한 법령(칙령 41호)으로 독도가 울릉도에 속한 우리 나라의 신성한 령토임을 명백히 재확인하고 《관보》(정부기관지)에 그 내용을 공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이러한 사실을 고의적으로 외면하고 독도가 저들의 령토임을 주장하는 《시마네현고시 제40호》라는 낮은 급의 지방행정기관공시문을 발포하였다.

 

여기에는 그들나름의 음흉한 타산이 있었다. 

 

이시기 일제는 조선에 대한 독점적지배권을 둘러싸고 짜리로씨야세력과 정치군사적으로 첨예한 대립상태에 있었다. 이로부터의 출로가 짜리로씨야를 군사적으로 제압하는데 있다고 판단한 일제는 1904년 2월 8일 침략적인 《로일전쟁》을 도발하였으며 그해 2월 23일에는 조선봉건정부를 위협공갈하여 《한일의정서》를 강압적인 방법으로 체결하였다. 6개 조로 된 이 《협정》에서는 전쟁기간 일본군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우리 나라의 임의의 지역을 군용지로 사용할수 있다는것을 못박았으며 그러한 지점의 하나로서 울릉도, 독도를 지정하였다.

 

이로부터 일제는 울릉도와 독도에 해군망루를 건설하며 독도주변에 해저전선을 늘여 조선반도의 북부와 울릉도-독도-일본령토를 련결하는 전선망가설을 계획하였다.

이렇게 되여 당시까지 일본인들에게 어로적《가치》만 인정되여오던 독도가 일약 군사적요충지로 되였으며 일제는 그 지정학적가치가 새롭게 부각된 독도를 아예 일본령토로 편입하려고 책동하였다.

 

교활한 일제는 독도탈취를 위한 마당에 정부가 공개적으로 나서는 경우에 일어나게 될 국제적물의를 피하기 위하여 이미 독도수역에서 어업활동을 벌리고있던 민간인어로기업가를 추동하여 《어업독점권》을 신청하게 하고 그것을 농상무성, 해군성, 내무성, 외무성 등이 《심의》하도록 하였다. 1905년 1월 28일 일본내각은 독도를 일본령토로 편입한다는것을 결정하고 2월 15일에는 내무대신《훈령》으로 시마네현지사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고 현내에 고시할것을 지시하였다. 이렇게 되여 1905년 2월 22일 《다께시마편입》에 대한 《시마네현고시 제40호》가 조작되였으며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시킨다는것과 섬을 《다께시마》로 부른다는것을 내용으로 하는 고시문이 《현보》에 게재되고 이 사실이 2월 24일부 《산잉신붕》에 자그마한 보도기사로 실렸다.

 

이러한 음모에 뒤이어 일본 해군성의 지휘밑에 독도와 일본본토를 련결하는 해저전선부설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였으며 이것은 국제사회나 조선봉건정부도 전혀 모르게 진행되였다.

 

음모적인 방법으로 독도를 저들의 령토에 《편입》시킨 일제는 이 사실을 조선에 대한 식민지지배를 확립한 다음해인 1906년 3월 28일에야 조선봉건정부에 알렸으며 그것도 정부급에서 공식적으로가 아니라 지방관리인 오끼도 도사로 하여금 울도(울릉도)군수 심홍택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하게 하였다. 일제의 이러한 책동은 조선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통치를 위하여 이미 작성된 《시간표》에 따라 취해진 계획적인것이였으며 전조선령토를 강점하기 위한 침략의 전주곡이였다.

 

이처럼 일본의 독도《령유권》주장은 20세기초 조선에 대한 침략책동의 한 고리로 벌어진 독도강탈책동의 연장이며 식민지강점정책의 산물로 절대로 허용될수 없는 현대판식민지강탈론, 침략론이다.

 

일본반동들의 독도《령유권》론의 반동성은 둘째로, 그것이 미일공모결탁에 의한 범죄의 산물이라는데 있다.

조선과 아시아를 침략하는데서 서로 《지지》하고 《협조》하는 형식으로 나타난 미일제국주의자들의 공모결탁관계는 이미 1870년대에 시작되여 오늘까지 계속되고있다.

현시기 독도《령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책동은 력사적으로 형성된 미일간의 공모결탁의 산물로써 그것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패권주의적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미일반동들의 극히 위험한 침략책동의 한 고리이다.

해방후부터 감행된 독도강탈을 위한 미일제국주의자들의 공모결탁은 세기와 세기를 넘어 오늘에도 계속되고있으며 더욱 엄중한 단계에 이르고있다. 

 

최근 일본반동들이 독도를 저들의 땅이라고 우겨대면서 독도《령유권》을 주장해나서고있는 리면에는 미국의 보이지 않는 마수가 뻗쳐있다. 독도문제를 둘러싸고 남조선과 일본사이의 대립이 날카로와지자 미국은 겉으로는 중립적인 립장을 취하는척 하면서 뒤에서는 일본의 독도강탈야망을 은근히 비호두둔하고 부채질하고있다. 미국은 일본의 해외팽창야망을 부추기는데서 주요한 주패장의 하나가 독도문제라고 보고있다. 것은 독도가 조선강점과 함께 일제가 강탈하였다가 패망과 함께 《련합국총사령부》의 결정에 따라 《령유권》을 포기한 섬이라는 사정과 관련된다.

 

음모적인 방법으로 강탈하였다가 빼앗긴 이 섬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일본의 령토팽창야망을 자극시켜 일본군국주의자들을 저들의 대조선, 대아시아지배전략실현의 돌격대로 써먹으려는것이 바로 미국의 속심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후부터 1950년대와 60년대 그리고 랭전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한 1980년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는 기간 언제나 일본이 독도를 넘겨다볼수 있는 기회를 조성하려고 음흉하게 책동하였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령유권》을 지지해주는 미국의 입김이 있었기때문에 부당한 일본의 독도《령유권》주장이 오늘까지 계속되고있으며 독도탈취야망이 더욱 로골화되고있는것이다.

 

이처럼 조선과 아시아침략에서의 공통적인 리해관계로부터 이루어진 미일공모결탁의 산물이 바로 일본의 독도《령유권》주장이며 여기에 일본반동들들의 독도《령유권》강탈야망의 반동성이 있다.

 

일본반동들의 독도《령유권》론의 반동성은 셋째로, 그것이 현시기 일본이 처한 심각한 정치군사적 및 경제적위기를 해소해보려는 극히 모험적인 침략론이라는데 있다.

일본반동들의 독도《령유권》론에는 그들식의 정치적목적이 은페되여있다.

 

극성스러운 대미추종정책으로 하여 국제사회로부터 《정치난쟁이》, 《외교미숙아》로 불리우고있는 일본은 미국의 대조선정책, 대아시아태평양전략에 대한 적극적인 추종으로 하여 주변나라들로부터 분노와 저주, 조소와 비난의 대상으로 되고있다. 때문에 일본은 《미국에 끌려가는 아시아나라》, 《아시아에서 멀어져가는 아시아나라》로 불리우고있다. 일본의 체질화된 대미추종은 저들의 《정치대국화》를 실현하는데서 가장 큰 흠집으로 되고있다. 이 근본적인 약점을 감추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일본반동들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끊임없는 령토분쟁을 야기시키고있으며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하여 자기의 《위상》을 높이려고 책동하고있다.

 

중국의 조어도문제, 로씨야의 남부꾸릴렬도문제와 함께 우리 나라의 독도문제를 만들어놓고 그 무엇을 《해결》해보려는 일본의 속심이 바로 여기에 있는것이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의 파렴치한 독도《령유권》론은 새 세기 그들의 침략적인 생존전략과도 깊이 련관되여있다.

21세기에 들어와 여러 나라들이 벌리고있는 여러가지 형태의 경쟁은 본질에 있어서 에네르기쟁탈경쟁으로 되고있다. 현시기 누가 더 많은 에네르기를 개발하거나 쟁취하는가에 따라 나라와 민족의 생존과 번영이 결정된다는것이 지배적인 견해로 되고있다.

 

일본은 자연부원이 매우 부족한 나라이며 에네르기를 비롯하여 원료, 연료자원의 수입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이다. 이러한데로부터 그들은 21세기 생존경쟁에서 이길 방도를 주변나라들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서 찾고있다. 인공지구위성을 비롯한 현대적인 탐측결과에 의하면 독도주변을 비롯한 조선동해에 풍부한 자원이 매장되여있다는것이 이미 알려졌다. 현시기 일본이 독도에 대하여 더욱 탐욕을 부리는 리유의 하나가 여기에도 있다. 독도주변해역의 풍부한 수산자원과 고급어족도 역시 그들의 탐욕대상에서 례외로 되지 않는다. 결국 일본의 독도《령유권》론의 밑바탕에는 에네르기문제를 포함한 심각한 경제적리권쟁탈야망이 짙게 깔려있는것이다.

 

일본의 독도《령유권》론에는 또한 군사적목적이 보다 중요하게 깔려있다. 

일본은 결코 경제적가치때문에 독도를 탐내는것이 아니다. 해외팽창을 우선적인 국시로 여기고있는 일본에 있어서 독도는 동북아시아의 큰 연안국들을 끼고있는 넓은 조선동해에 위치하고있으며 조선반도에서 가까운것으로 하여 그 지정학적의의가 크고 군사전략적으로 중요시되고있다.

 

일본반동들은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집어삼키려 하고있을뿐아니라 독도문제를 조선재침의 도화선으로 삼으려 하고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독도《령유권》문제는 우리 나라에 대한 재침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구실로 되고있다. 때문에 일본반동들은 일본인들의 호적을 독도로 옮겨주는 강도적인 행정조치를 취하는가 하면 독도주변수역의 《수로측량》이니, 《탐사》니, 정밀지도제작이니 하면서 잔꾀를 부리고있다. 또한 독도에 침략무력을 들이밀어 군사적방법으로 섬을 빼앗으려 하고있으며 실제적인 《독도접수》를 위한 군사훈련까지 벌려놓고있다.

 

총체적으로 볼 때 일본의 독도《령유권》론은 지난날 일제의 강도적침략론이였던 《정한론》의 현대판개정이라는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있다.

일본이 아무리 잔꾀를 부려도 독도는 과거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영원히 조선민족의 신성한 령토로 남아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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