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세건축의 우수성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고 대를 이어 전해오는 가치있는 창조물들과 미풍량속을 귀중히 여기고 시대적요구에 맞게 계승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력사유적과 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민족의 재보이며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와 발전된 문화를 전해주는 귀중한 유산이다.

조선민족이 중세시기에 창조하고 발전시켜온 건축유산들은 우리 민족건축문화의 독특한 풍격과 발전된 면모를 훌륭히 갖춘것으로 하여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이 글에서는 조선민족이 창조한 중세건축의 우수성에 대하여 론증하려고 한다.

 

조선민족이 창조한 중세건축의 우수성은 우선 우리 선조들이 건설한 중세건축물들이 웅건하고 장쾌한 감을 줄수 있게 품위있게 축조되여있는데서 찾아볼수 있다.

중세건축물들가운데서 왕궁건축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데 고구려시기 안학궁, 발해 상경룡천부의 궁성, 고려시기의 만월대와 대화궁들에는 넓은 부지에 웅장하고 화려한 왕궁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있었다.

 

고구려의 왕궁이였던 안학궁의 중궁1호궁전건물은 정면너비가 87m로서 우리 나라 력대 왕궁건물들가운데서 제일 큰 건물일뿐아니라 세계목조건축물들가운데서도 가장 큰것에 속한다. 안학궁에는 52채의 궁전건물들이 남궁, 중궁, 북궁, 동궁, 서궁 등 5개의 건축군으로 나뉘여져있으며 회랑으로 련결되여 하나의 대건축군을 이루고있었다. 안학궁에서는 중심축선우에 있는 중심건물들을 앞으로부터 뒤로 들어가면서 점차 높아지게 하였다. 안학궁에서 남궁터와 북궁터사이의 높이차는 거의 15m나 된다. 앞부분에 비해 뒤부분을 높게 함으로써 안학궁전체가 대강국 고구려의 왕궁으로서의 지위에 맞게 장중하면서도 깊이가 있어보이고 립체감이 살아나도록 하였다.

 

고려시기 왕궁이였던 만월대는 개성 송악산을 배경으로 그 남쪽에 자리잡고있다. 고려왕궁은 궁성과 황성을 합하여 125만㎡, 궁성만은 약 39만㎡의 면적을 차지하고있었다. 이곳에서는 돌로 축대를 높이 쌓고 그우에 건물들을 계단식으로 배치함으로써 여러개의 건물들이 하나의 건축군으로 묶어지고 건물들의 지붕이 층층으로 나타나 웅장하게 돋보이도록 하였다.

 

평양에 있는 고려시기의 왕궁 대화궁에도 규모가 큰 궁전건물들이 축조되여있었는데 그중 2궁전구역 1호궁전건물터는 높은 축대우에 정면길이 71m, 측면너비 40m정도의 규모로 웅장하게 세워져있었다. 대화궁의 궁전건물들도 중심축선우에 층층으로 높은 단을 쌓고 그우에 기본건물들을 배치함으로써 멀리서 왕궁을 바라보면 웅장한 여러 왕궁건물들이 겹쳐서 하나의 큰 건축구조물로 장중하게 보이도록 하였다.

 

우리 선조들은 고구려시기에 왕궁을 웅장하게 건설하는것과 함께 실지 규모보다 크고 웅장하게 보이도록 하는 수법도 적용하였다.

고구려의 안학궁성이 그 대표적실례이다.

 

안학궁성은 평면이 평행사변형으로서 그 형태가 특이하다. 안학궁성의 네성벽은 각각 한변이 622m인데 동쪽성벽, 서쪽성벽은 남북방향으로 평행을 이루었고 남쪽성벽, 북쪽성벽은 동서방향으로 평행을 이루었다. 그러나 궁성 성벽의 동남쪽모서리와 서북쪽모서리는 직각보다 10°넓게, 서남쪽모서리와 동북쪽모서리는 10°좁게 함으로써 약간 삐뚤어진 네모난 형태 즉 평행사변형을 이루게 하였다. 한변의 길이가 622m인 안학궁성 성벽을 정사각형으로 보면 두 대각선의 길이는 각각 870m이다. 그러나 현재의 안학궁성과 같이 그것을 평행사변형으로 만들었을 때에는 동북쪽과 서남쪽모서리성벽사이의 대각선은 950m이고 서북쪽과 동남쪽모서리성벽사이의 대각선은 약 800m이다. 결국 안학궁성 성벽을 평행사변형으로 쌓음으로써 정사각형으로 만든 경우보다 동북쪽모서리와 서남쪽모서리성벽사이의 거리는 80m정도 늘어났고 동남쪽모서리와 서북쪽모서리성벽사이의 거리는 70m정도 줄어들었다. 이것은 안학궁성 성벽과 성안건축물들을 동남쪽모서리에서 보면 정사각형으로 성을 쌓을 경우보다 80m더 넓어보이게 하고 서남쪽에서 보면 종심이 80m더 깊어보이게 하기 위한것이였다.

 

조선중세건축물들의 웅장하고 방대한 모습은 고구려를 비롯한 중세봉건국가들이 지니고있는 주권국가로서의 당당한 지위와 우리 인민들의 높은 자부심, 웅건한 기상을 반영하고있는것이다.

 

조선민족이 창조한 중세건축의 우수성은 또한 우리 선조들이 건설한 중세건축물들이 정교하면서도 견고하게 축조되여있는데서 찾아볼수 있다.

중세시기 조선민족이 건설한 건축물들이 얼마나 정교하면서도 견고하게 만들어졌는가 하는것은 지금까지 원래의 모습대로 남아 전해지는 대표적인 력사유적들을 실례들어 이야기할수 있다.

남포시 강서구역 삼묘리에 위치하고있는 강서세무덤은 고구려사람들이 무덤을 얼마나 정교하게 축조하였는가를 생동하게 보여준다.

 

강서세무덤의 큰무덤은 벽면에 사신도를 그린 외칸무덤으로서 잘 다듬은 화강석판돌로 만들었다. 무덤내부는 정밀하게 가공한 큰 화강석석재로 무덤벽을 규모있게 축조하였으며 벽면의 웃부분은 안으로 약간 기울어지게 다듬어 쌓아올렸다. 무덤벽의 네모서리에는 5각형의 구석돌들을 끼워넣어 자연스럽게 모를 죽였고 평행고임 2단, 삼각고임 2단으로 된 평행삼각고임식의 천정부분에는 약간 곡선이 진 고임돌들을 얹었다. 천정부분의 매 고임돌들은 직선직각이 아니라 완만하면서도 알릴듯말듯한 기울임과 휘임을 주었다. 이로 하여 무덤칸의 내부 천정에 맺힌 물방울이 바닥에 직접 떨어지는것이 아니라 천정과 벽면 웃부분의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네벽체로 흘러내리게 하였으며 무덤칸의 내부전체가 부드러운 곡선미로 가득차게 하였다.

 

이와 같이 강서큰무덤의 내부 무덤칸은 당시로서는 높은 과학기술적타산에 기초한 치밀한 설계와 능숙한 시공, 세련된 돌가공기술에 의하여 완성된 정교한 하나의 예술품이라고 말할수 있다.

신라 경주첨성대는 7세기 전반기에 건설된것으로서 세계적으로 보아도 건설될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있는 천문대들가운데서 제일 오랜것이다.

 

경주첨성대는 잘 다듬은 360여개의 화강석으로 쌓아올렸는데 그 겉모양이 꽃병과 같은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고있다. 이 첨성대는 밑부분이 거의 직선으로 올라가고 전체 높이의 3분의 2까지는 겉면이 쌍곡선으로 점차 좁아지다가 그우는 직선으로 된 정교한 차례줄임과 자그마한 틈도 없는 조화로운 돌쌓기로 하여 부드럽고 우아한 모양을 이루고있으며 균형이 잘 잡히고 안정된 감을 준다. 첨성대를 높이 쌓아올리면서 많은 돌들을 접착제를 전혀 쓰지 않고 축조하였으며 그것을 세운지 천수백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처음의 모습그대로 남아있다는것은 우리 선조들이 뛰여난 건축술을 지니고있었음을 말하여준다.

 

발해의 상경돌등 역시 우리 민족의 우수한 건축술을 실물그대로 전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8각평면의 받침대, 배부른형식으로 처리된 묵직한 기둥, 8각정자를 본딴 불집, 우아한 곡선으로 이어지며 륜모양의 고리가 층층으로 뻗어오른 머리치레 등으로 하여 상경돌등은 발해건축의 정교함을 잘 보여준다.

 

고려의 왕궁터들인 개성만월대와 평양의 대화궁터는 견고하면서도 정교하게 축조된 고려시기 우리 민족건축의 우수성을 잘 보여준다.

우리 선조들은 고구려시기부터 발해, 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까지 이어오면서 목조건물을 건설할 때 지붕곡선을 매우 정교하게 처리하였다.

조로곡선과 안우리곡선으로 표현되는 조선식건물의 지붕곡선은 부채살모양의 서까래들만이 우로 약간 들리는 중국식지붕과 또 서까래를 평행으로 걸면서 끝부분을 가볍게 들어주는 일본식지붕처마선과 구별된다.

조선식건물의 지붕곡선은 예로부터 날아가는 기러기에 비유하고 휘늘어진 그네줄에 비교하여왔다.

이처럼 조선중세건물들은 섬세하고 부드러우며 진취적인 우리 인민의 고상한 정신도덕적풍모에 잘 어울리는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중세 조선민족건축의 우수성은 또한 우리 민족의 기호와 생활풍습에 맞는 고유한 건축물들을 창조하고 끊임없이 발전시켜온데서 찾아볼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전통적으로 8각형을 즐겨 리용하였는데 중세 우리 민족의 옛 건축물들이나 터들가운데는 8각형의 구조물들이 적지 않다. 실례로 정릉사, 금강사, 상오리절터, 토성리절터 등에서 알려진 고구려의 8각탑터들과 덕화리 1호무덤, 2호무덤의 8각고임천정, 정릉사우물과 고산동우물의 8각단면, 발해 상경돌등의 8각형불집, 팔보류리정으로 불리우는 발해 궁성의 8각돌우물, 보현사13층탑을 비롯한 고려시기의 8각탑들을 들수 있다.

 

중세건축물들에 놓여있는 구들시설에도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생활풍습이 반영되여있다.

구들은 고대시기부터 중세 전기간 그리고 오늘까지도 우리 선조들이 대를 이어 써오는 난방형식이다.

 

고구려시기의 시중군 로남리집자리유적에서 알려진 구들시설, 동대자유적과 정릉사 1구역 10호건물터의 구들시설, 백제 몽촌토성의 굴뚝고래시설, 발해 상경룡천부의 궁성 서구침전터와 신포 오매리 절골에서 발견된 구들시설, 고려시기 동창군 학성리 구들시설과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여러 건물들에 보편적으로 남아있는 구들시설들은 조선민족의 고유한 난방형식으로서 우리 선조들이 전통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켜온것이다.

 

조선민족이 독자적으로 창조하고 발전시켜온 구들형식의 난방시설은 우리 나라의 기후풍토와 방바닥에 편안히 앉아서 생활하는 조선민족의 생활풍습에 맞는것이며 여기에는 민족적색채가 짙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생활모습이 그대로 비껴있다.

조선민족이 창조한 중세건축의 우수한 발전면모는 삼국시기부터 발해, 고려, 조선봉건왕조에 이르는 중세 전기간에 걸쳐 계승되여왔다.

6세기 중엽에 고구려사람들이 건설한 평양성은 산성과 평지성이 결합된 평산성형식의 도성이였으며 이러한 도성형식은 백제의 마지막수도성이였던 사비성(충청남도 부여)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고려시기의 수도성이였던 개성성은 송악산일대에 있는 궁성, 황성과 도시전체를 둘러막으면서 20여Km의 길이를 가지고있는 라성이 결합되여 이루어진 평산성이며 평양에 건설하였던 대화궁성도 산릉선과 평지가 련결되여있는 곳에 축조된 평산성이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수도성인 한양(서울)성도 북쪽의 높은 산을 등지고 평산성형식으로 쌓아졌다. 이러한 평산성형식의 수도성들은 고구려 평양성의 수도성형식이 우리 민족의 력대 국가들에 의하여 그대로 계승되여왔다는것을 말하여준다.

 

개별적인 궁전건물들이 본채와 나래채가 결합된 형식의 건물들로 건설된것은 조선중세궁전건축에서 찾아볼수 있는 중요한 내용의 하나이다.

 

고구려의 안학궁에서 중궁1호궁전건물터를 비롯한 적지 않은 건물들이 본채와 나래채가 결합된 형식으로 되여있으며 개성의 만월대 장화전터와 서부건축군의 일부 왕궁건물터들은 본채와 나래채로 구성되여있다. 평양의 대화궁에 있는 1궁전구역 2호건물터, 2궁전구역 1호건물터, 3호건물터들이 모두 본채와 나래채가 결합된 건축구조를 가지고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경복궁에서 교태전과 자경전, 창덕궁의 대조전, 창경궁의 양호당은 본채와 나래채가 결합되여있는 형식의 건물들이다.

 

조선식건물들에서 본채와 나래채가 결합되여있는 건물구성형식은 해당 건물의 립체성과 장중함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낼수 있게 하는것으로서 중세 우리 민족건축의 우수성을 잘 보여주고있다.

중세건축물들의 지붕형식도 우리 민족고유의 특성을 살리면서 대를 이어 계승되여왔으며 그러한 전통은 현대건축물들에도 이어지고있다.

 

고구려의 쌍기둥무덤벽화에 그려진 합각지붕과 백제의 산경치무늬벽돌에 새겨진 건물의 합각지붕 등을 보면 건물지붕의 조로곡선과 안우리곡선들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삼국시기 건물들에서 나타나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지붕형식은 그후 발해나 고려에 그대로 계승되였으며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여러 목조건물들에서 충분히 찾아볼수 있다.

 

이처럼 민족적인 건축형식은 오랜 력사적과정을 통하여 형성되고 공고화된것으로서 거기에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심리정서적특징과 생활풍습, 생활감정, 기술과 재능이 집중적으로 반영되여있다.

우리는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민족문화유산들을 귀중히 여기고 계승발전시켜 우리 민족의 력사와 문화, 미풍량속을 대를 이어 빛내여나가야 할것이다.

김일성종합대학 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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