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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씨야 연해변강일대에서 발견된 고대조선의 돌관무덤과 고인돌무덤​

2018-02-24   김일성종합대학 정봉찬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력사에는 아직 새롭게 해명하여야 할 문제도 많고 바로잡아야 할 문제도 많습니다.》

원시시대로부터 고대, 중세에 이르는 오랜 력사적기간 우리 선조들의 활동무대로 되여있었던 중국 동북지방과 로씨야의 연해변강일대에서 조사발굴된 력사유적과 유물들에 대한 연구에서는 아직도 과학적으로 해명하여야 할 문제들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서 현재 학계의 이목을 끌고있는것은 우리 나라에서 고대시기에 널리 쓰인 무덤형식들이 최근에 로씨야의 연해변강일대에서도 새로 알려지고있는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인류력사의 려명기부터 오늘의 조선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넓은 지역에 퍼져살면서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창조하였으며 력사발전과정을 추동하여왔다.

우리 선조들의 슬기와 재능, 독자적인 발전을 전하여주는 귀중한 력사유적들가운데는 돌관무덤과 고인돌무덤도 있다.

 

돌관무덤과 고인돌무덤은 대동강류역을 중심으로 한 우리 나라에서 이미 청동기시대에 발생하여 고조선전기의 전기간에 걸쳐 보급되였다. 특히 고조선시기의 돌관무덤은 그 존속기간이 1 500여년이라는 오랜 력사적시기를 포괄하고있다. 돌관무덤과 고인돌무덤은 고조선뿐아니라 우리 나라 고대국가들이였던 구려, 부여, 진국에서도 다같이 많이 쓰인 무덤형식이였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 고대시기에 널리 쓰인 무덤형식들이 최근에 로씨야의 연해변강일대에서도 새로 알려짐으로써 이에 대한 견해를 바로 세우는것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된다.

그럼 먼저 로씨야 연해변강일대에서 지금까지 조사되고 연구발표된 돌관무덤과 고인돌무덤들에 대하여 보기로 하겠다.

지난 시기 로씨야 연해변강남부일대에서 고대시기의 돌관무덤에 대한 자료는 일부 단편적으로 소개되였지만 고인돌무덤은 없는것으로 인정되여왔다.

고인돌무덤은 고대조선사람들의 슬기와 재능, 문화와 풍습의 특성을 가장 뚜렷이 반영하고있는 대표적인 유적의 하나로서 고대조선사람들이 퍼져살던 오늘의 조선반도와 중국 동북지방에 널리 분포되여있다.

고인돌무덤이 우리 민족의 슬기와 재능, 유구한 력사와 우수한 문화전통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는데서 가지는 중요성으로 하여 고인돌무덤에 대한 연구는 오래전부터 내외의 학자들속에서 적지 않게 진행되여왔다.

 

지금까지 고인돌무덤은 제주도와 울릉도를 포함한 오늘의 조선반도와 중국 동북지방 료하의 동쪽으로부터 북류송화강(제2송화강)류역에 이르는 지역에 있는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제2송화강동쪽지역에서도 고인돌무덤이 알려질수 있는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하면서 그 실례로 로씨야 연해변강의 우쑤리쓰크구역 끄로우노브까마을의 산기슭에서 조사된 거북등형태로 가공한 판돌을 들었다. 고인돌무덤의 분포범위는 고대조선사람들이 퍼져살던 지역이라는것을 대략적으로 시사해준다.

 

자료에 의하면 로씨야의 연해변강일대에서 돌관무덤이 처음으로 알려진것은 1950년대말부터이다.

1959년에 연해변강남부 슈꼬또브구역 마이헤촌에서 발견된 돌관무덤이 그 대표적실례로 된다.

 

이 유적은 마이헤촌을 감돌아 흐르는 아르쩨모브까강 우안의 이즈베쓰뜨꼬바언덕에서 건설을 목적으로 채석작업을 하는 과정에 파괴된 상태로 드러났다. 때문에 그 짜임새에 대하여 자세히 알수는 없지만 넙적한 판돌들을 조립하여 만든 무덤으로서 주검칸의 길이가 70㎝정도 되는것이였다. 이 돌관무덤에서는 사람뼈와 함께 좁은놋단검 2개, 좁은놋창끝 1개, 놋비수 1개, 돌도끼 1개, 청동거울 1개 등 유물들이 알려졌다.

 

그후 1994년에 연해변강남부 우쑤리쓰크구역 끄로우로브까마을의 수림속에서 보존상태가 좋은 돌관무덤이 또다시 발견되였다.

이 무덤은 면적이 약 1만 5 000㎡되는 끄로우노브까유적(철기시대 부락터유적)의 북쪽에 있는데 긴 축이 북남향이며 넙적한 판돌들을 조립하여 만든것이였다.

 

무덤짜임새를 보면 넙적한 판돌들을 리용하여 길이 70㎝, 너비 60㎝, 높이 40㎝되는 장방형의 주검칸을 만든 다음 그우에 길이 94㎝, 너비 65㎝, 높이 14㎝되는 뚜껑돌을 올려놓은 형식이다. 뚜껑돌밑의 판돌들인 북쪽과 남쪽, 서쪽의것은 본래의 모습대로 수직으로 세워져있었고 동쪽의것은 넘어져 땅속에 묻혀있었다. 주검칸 북쪽벽의 판돌 크기는 길이 74㎝, 너비 38㎝(지상우에 드러나있음), 두께 14㎝이고 남쪽벽의 판돌 크기는 길이 69㎝, 너비 38㎝, 두께 20㎝이며 서쪽벽의 판돌 크기는 길이 68㎝, 너비 61㎝, 두께 19㎝정도였다. 동쪽벽의 판돌은 2개의 작은 판돌을 잇대여 세워놓았던것이 넘어져 땅속에 묻혀있었는데 판돌 1개의 크기는 길이 53㎝, 너비 49㎝이고 다른 판돌 1개의 크기는 길이 51㎝, 너비 32㎝, 두께 8㎝되는것이였다. 뚜껑돌이 중압으로부터 주검칸의 벽체들의 수직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벽체밖으로 보강돌들을 놓았다. 보강돌은 북쪽과 남쪽벽체밖에 각각 2개씩 놓았고 서쪽벽체밖에 3개가 놓여있었는데 주검칸벽체쪽을 향하여 수평으로 또는 경사지게 기대여놓았다.

 

이 돌관무덤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1.9m정도 떨어진 곳에 또 1개의 돌관무덤이 파괴된 상태로 있었고 서쪽으로 0.9m떨어진 곳에도 넙적한 판돌쪼각들이 놓여있었다.

이곳에는 모두 8~10기 정도의 돌관무덤들이 있었다고 보고있다.

 

이 돌관무덤떼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20m떨어진 곳에는 크기가 각각 길이 120㎝, 너비 100㎝, 두께 25㎝, 길이 100㎝, 너비 90㎝, 두께 20㎝되는 넙적한 판돌들이 수평으로 놓여있는데 이 판돌들밑에는 잔돌들이 깔려져있었다. 끄로우노브까마을의 숲속을 조사한데 의하면 넙적하고 육중한 판돌들이 이밖에도 많으며 어떤 판돌들은 가장자리들에 가공흔적들이 뚜렷하게 나타나있기도 하고 또 거북등모양으로 가공한것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자료는 로씨야 연해변강일대에서도 고인돌무덤이 보급되였다고 볼수 있는 가능성을 주고있다.

실지로 연해변강의 남부일대에서는 돌관무덤과 함께 고인돌무덤으로 인정되는 돌구조물들이 조사되였다.

고인돌무덤으로 보는 돌구조물은 2002년 10월에 연해변강남부 빠르찌쟌스크구역 브란겔마을에서 처음으로 5기나 조사되였다. 그가운데서 1기는 브란겔마을에서 동쪽으로 30°미만의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뻗어나간 암반지대에 자리잡고있다. 이 돌구조물이 위치하고있는 곳은 북위 42° 43' 11", 동경 133°9' 40.3"이며 해발고는 165m이다.

 

이 돌구조물의 짜임새를 보면 1개의 크고 두터운 뚜껑돌과 그것을 받치는 2개의 고임돌로 이루어졌고 길이축은 북남향이며 뚜껑돌이 북쪽으로 얼마간 치우쳐 놓여있었다. 뚜껑돌의 크기는 길이가 4.6m, 너비 4m이며 밑면은 평탄하고 웃면은 둥근 지붕모양을 이루었다. 뚜껑돌밑에 거의 수직으로 세워져있는 2개의 고임돌들가운데서 1개의 고임돌 크기는 길이 2.5m, 너비 2.3m이고 다른 1개의 고임돌 크기는 길이 2.7m, 너비 2.2m정도였다. 고임돌들의 거의 대부분이 지상에 드러나있는 상태이다.

 

발견당시 뚜껑돌과 고임돌들사이에는 복도모양의 공간을 이루었고 남쪽은 막음돌이 없이 개방되여있었다. 남쪽으로 멀리 떨어져 시내물이 가로질러 흐른다.

이 돌구조물에서 주목되는것은 뚜껑돌의 앞면 밑부분에 동쪽으로 치우쳐 크기가 각이한 홈구멍들이 있는것이다.

 

홈구멍들은 평면이 원형인것과 타원형의것이 있는데 우에는 평면이 원형인 홈구멍 2개가 수평으로 나란히 놓여있고 그밑으로는 평면이 타원형인 홈구멍 2개가 련달아 놓여있다. 우에 나란히 놓인 홈구멍들의 크기를 보면 왼쪽 홈구멍의 크기가 직경 17㎝, 깊이 11㎝이고 오른쪽홈구멍의 크기가 직경 19㎝, 깊이 10㎝정도였다. 평면이 타원형인 홈구멍들의 크기를 보면 우에 있는 첫번째 홈구멍의 크기가 최대직경 20㎝, 최소직경 11㎝, 깊이 6㎝이며 그밑에 련달아있는 홈구멍의 크기는 최대직경 26㎝, 최소직경10㎝, 깊이 5㎝이다.

 

조사당시 홈구멍들이 있는 곳의 돌표면은 상대적으로 보드랍고 돌가루들이 손바닥에 묻어난다고 하였다.

조사자들은 이 돌구조물의 짜임새가 자연적으로는 이루어질수 없는것이며 특히 뚜껑돌의 앞면에 있는 홈구멍들은 고대사람들의 예술적상징물이라고 주장하면서 로씨야 연해변강일대에서 처음으로 알려진 고인돌무덤이라고 소개하고있다.

브란겔마을의 다른 곳에도 고인돌무덤으로 인정되는 4개의 돌구조물들이 분포되여있으며 그가운데서 1개의 돌구조물에는 평면이 원형인 홈구멍들이 있다고 한다.

공화국학계에서는 고인돌무덤에 새겨져있는 홈구멍들이 하늘의 별이나 별자리들을 새긴것이라고 보고있다.

로씨야 연해변강일대에서 지금까지 조사되고 연구발표된 돌관무덤과 고인돌무덤들에 대한 자료는 이상과 같다.

다음으로 로씨야 연해변강일대에서 발견된 돌관무덤과 고인돌무덤들의 형식과 우리 나라에서 고대시기에 널리 쓰인 무덤형식과의 관계에 대하여 보기로 하겠다.

로씨야 연해변강일대의 돌관무덤과 고인돌무덤들의 짜임새는 우리 나라에서 고대시기에 널리 쓰인 무덤형식과 비슷한것들이다.

돌관무덤은 구조형식으로 볼 때 주검을 넣는 돌관을 장방형으로 조립한 수혈식무덤으로서 평양시 삼석구역 호남리와 평안남도 북창군 대평리, 자강도 강계시 공귀리, 황해북도 신평군 선암리, 서흥군 천곡리, 사리원시 등 우리 나라의 여러곳에서 알려졌다.

 

실례로 평안남도 북창군 대평리에서는 짜임새가 서로 비슷한 7기의 돌관무덤이 발굴되였는데 이 무덤들은 대체로 2개의 큰 판돌들을 마주세우고 그사이에 작은 판돌 두장을 마주세워 장방형의 평면륜곽을 이루게 만든것들이며 돌관안의 길이는 대체로 어른을 굽혀야만 묻을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다. 대평리돌관무덤들은 이처럼 넙적한 판돌들을 조립하여 평면륜곽이 장방형인 주검칸을 만들었고 돌관안의 크기가 어른을 굽혀야만 묻을수 있는 짜임새로서 로씨야 연해변강의 마이헤촌과 끄로우노브까마을의 수림속에서 알려진 돌관무덤들과 비슷하며 차이가 있다면 돌관안의 길이가 117㎝이상으로서 약간 길뿐이다. 그리고 마이헤촌 이주베쓰뜨꼬바언덕의 돌관무덤에서 나온 2개의 좁은놋단검은 검몸이 좁고 길며 검몸의 한가운데에 세로 등대가 두드려져있고 등대량쪽의 검날아래부위에 안으로 약간 오무라든 감이 있는데서 서흥군 천곡리 돌관무덤에서 나온 좁은놋단검과 크게 다를바가 없다.

 

이즈베끄뜨꼬바언덕의 돌관무덤에서 나온 청동거울도 우리 나라의 고대무덤들에서 흔히 좁은놋단검과 함께 발견되는 잔줄무늬거울과 같은것이였다.

로씨야 연해변강일대에서 알려진 고인돌무덤들도 아직 과학적인 발굴이 진행되지 않아 그 짜임새에 대하여 자세히 론할수는 없지만 소개된 조사자료와 사진자료에 의하면 브란겔마을에 분포되여있는 돌구조물들은 오덕형고인돌무덤형식으로 인정된다.

 

최근 우리 나라의 고대고인돌무덤들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켜 그 류형을 새로 침촌형, 오덕형, 묵방형, 선천산형, 제주형의 다섯가지 류형으로 구분하였는데 오덕형고인돌무덤은 1970년대에 황해북도 연탄군 오덕리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고인돌무덤으로부터 명명된 류형이다.

 

오덕형고인돌무덤은 땅우에 판돌들을 세워 주검칸을 만들고 그우에 뚜껑돌을 덮은 형식으로서 로씨야 연해변강의 브란겔마을에서 조사된 고인돌무덤의 짜임새가 오덕형고인돌무덤과 같은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연해변강일대에서 알려진 돌관무덤과 고인돌무덤들이 다름아닌 고대조선사람들에 의하여 남겨진 유적이라는것을 실증해준다.

연해변강일대에서 돌관무덤과 고인돌무덤들을 조사하고 연구한 학자들은 이 유적들을 연해주지역에서 창조된 끄로우노브까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주장하고있다.

연해변강일대의 남부지역에서 얀꼬브쓰끼문화에 뒤이어 창조된 초기 철기시대 문화인 끄로우노브까문화가 고대조선사람들에 의하여 창조된 문화라는데 대하여서는 이미 론의되였다.

연해변강일대에서 알려진 돌관무덤과 고인돌무덤을 비롯한 끄로우노브까문화의 유적과 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고대시기에 조선반도는 물론 연해변강일대의 넓은 지역에서 독자적이며 고유한 문화를 창조하였다는것을 뚜렷이 실증하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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