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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은 유적, 유물을 통해 고증된 고조선의 정치적중심지, 수도

2018-01-12   리영남

평양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의 성지이며 우리 민족은 평양을 중심으로 하여 형성되고 발전하여왔다.

우리 나라 력대 국가들의 수도문제를 력사적으로 해명하는것은 력사학분야에서 중요하게 해명하여야 할 문제이다. 그것은 이 문제가 해당 나라의 정치, 문화적중심지의 면모와 그것을 중심으로 사회경제발전, 민족의 정통성을 밝히는 중대한 문제이기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 나라의 첫 고대국가 고조선의 수도였던 평양의 력사적지위를 밝히는것은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

론문에서는 평양지방에서 발굴된 고조선관계 유적유물들을 통하여 평양이 고조선의 정치적중심지, 수도였다는것을 다시금 명백히 밝히려고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평양은 유구한 력사를 가진 유서깊은 도시이며 여기에는 우리 선조들이 남긴 귀중한 문화유적과 유물들이 많습니다.》

고조선이 존재한 근 3 000년간 시기에 따라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자기의 정치적중심지이며 수도로서의 평양은 그대로 유지되여있었다.

평양일대에서 발굴된 많은 고고학적유적유물자료들은 평양이 고조선의 중심지, 수도였다는것을 기록으로 남긴 옛문헌자료를 물질적으로 확증해주고있다.

 

지난시기 고조선의 중심지가 료동반도에 있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었다. 이러한 견해는 료동지방에 고조선의 수도인 왕검성이 있었다고 볼수 있게 하는 자료들과 발굴된 고고학적자료들에 대한 해석에 그 근거를 두고있었다. 그러나 평양지방에서 진행된 고고학적발굴결과는 이 지역이 료동지방보다 고대문화가 더 일찍 발전하였다는 사실들을 여러모로 실증해주고있다.

 

평양이 고조선의 정치적중심지, 수도였다는것은 무엇보다도 고조선의 건국시조 단군의 무덤이 발굴되고 지배계급의 무덤이라고 볼수 있는 고인돌무덤들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여있는것을 통하여 명백히 알수 있다.

우리 나라의 첫 고대국가 고조선은 중앙집권적인 노예소유자국가였다.

 

국가는 땅이 비옥하여 백성들이 사는데 적합하고 산세가 좋아 방어에 유리한 지역에 먼저 세워지고 또 그러한 지역을 도읍으로 정한다. 고대국가의 정치적중심지, 그 국가의 도읍지는 어디에서나 이러한 지역적특징을 찾아볼수 있다.

 

우선 조선민족의 원시조 단군의 무덤이 평양에 있는것은 평양이 고조선의 정치적중심지, 수도였다는것을 보여주는 가장 위력한 물질적증거이다.

단군은 국가를 세우는데 유리한 모든 조건이 잘 갖추어진 평양일대에서 태여나 여기에서 국가를 세워 건국시조로 되였다. 단군은 첫 고대국가 고조선의 도읍을 평양에 정하고 국력을 강화하여 북남방의 광활한 지대로 령토를 넓혀 민족의 슬기를 떨치였다. 그는 평양일대를 국토확장의 발판, 기지로 삼았다.

평양은 단군이 태여난곳일뿐아니라 한생을 마치고 죽어서 묻힌 곳이기도 하다.

평양시 강동군 문흥리 대박산기슭의 릉선마루에 우리 민족의 원시조 단군의 무덤이 있다.

 

단군릉이 발굴됨으로써 우리 민족은 원시조를 찾게 되였으며 우리 나라는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오랜 력사국이며 우리 민족은 단군을 원시조로 하는 하나의 혈통을 가진 단일민족으로서 동방에서 처음으로 선진문명에 들어선 문명한 민족이라는것이 밝혀지게 되였다. 그리고 평양이 우리 민족의 성지이며 우리 민족은 평양을 중심으로 하여 형성되고 발전하여왔다는것을 립증할수 있게 되였다.

 

또한 평양이 단군이래 고조선의 정치적중심지, 수도였다는것은 고조선시기의 지배계급의 전형적인 무덤인 고인돌무덤들이 평양지방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여있는것을 놓고서도 잘 알수 있다.

평양을 중심으로 사방 40km내에 1만 4 000여기의 고인돌무덤들이 분포되여있고 다른 지역들에서는 볼수 없는 초기형의것을 비롯하여 중기형, 말기형에 이르기까지 련면한 계승관계를 보여주는 여러 류형의 고인돌무덤들이 집중분포되여있다.

 

1만 4 000여기라는 이 엄청난 수자는 100기미만의 고인돌무덤이 발견된 함경남북도와 약 20기밖에 안되는 량강도일대의 고인돌무덤, 100여기정도에 달하는 강화도일대의 고인돌무덤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겨우 108기밖에 알려지지 않은 료동지방의 고인돌무덤에 비하면 그 분포에서 너무도 대조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남부조선일대에서는 영산강류역에 많이 분포되여있다고는 하지만 거기에는 늦은 시기의 고인돌무덤만이 있을뿐이다.

 

뿐만아니라 평양에는 왕을 비롯한 특권층들이 묻히였다고 볼수 있는 특대형고인돌무덤, 대형고인돌무덤들이 다른 지역에 비할바없이 많다.

특대형고인돌무덤이라고 할 때 흔히 뚜껑돌의 넓이가 50m²이상이고 그 무게가 50~60t에 달하는 고인돌무덤을 말한다.

이러한 대규모의 특대형고인돌무덤이 강동군과 상원군을 비롯하여 룡강군, 연탄군, 은률군, 안악군 일대의 여기저기에서 발굴되였는데 이러한 특대형고인돌무덤이 평양일대에는 무려 15기이상 분포되여있다.

이것은 특대형고인돌무덤을 비롯한 고인돌무덤의 분포중심이 평양일대라는것을 고증해주고있다.

이처럼 평양은 단군이 출생한곳이고 특대형고인돌무덤이 밀집되여있는 고조선의 정치적중심지, 수도였다.

 

평양이 고조선의 정치적중심지, 수도였다는것은 다음으로 고조선시기의 성곽과 집자리 및 제단시설들의 집중적분포지가 다름아닌 평양이였다는것을 놓고서도 명백히 알수 있다.

평양일대에는 우선 고대성곽들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여있다.

 

성곽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도시나 기타 주민지 또는 일정한 지역에 여러가지 재료로 높이 쌓은 방어시설물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옛 도시들에서 방위시설로서의 성곽은 해당도시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구성요소였다.

 

고조선의 수도 평양은 왕궁성을 중심으로 한 위성방위체계를 갖춘 정치적중심지, 수도였다.

 

평양지방과 그 일대에 분포되여있는 고조선시기의 성곽들인 황대성(평양시 강동군)과 청암동토성 아래성(평양시 대성구역), 덕산토성 아래성(평양시 은정구역), 성현리토성 아래성(남포시 온천군), 지탑리토성 아래성(황해북도 봉산군)은 청암동토성을 중심으로 하여 각각 100여리를 사이에 두고 동쪽(황대성)과 서쪽(성현리토성), 남쪽(지탑리토성)과 북쪽(덕산토성)에 배치되여있다.

 

국가적성격을 뚜렷이 보여주는 이러한 성곽들이 평양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여있는 사실은 평양이 고조선의 정치적중심지였으며 청암동토성 아래성이 고조선시기의 수도성인 왕검성일수 있다는것을 시사해주고있다.

평양일대에는 또한 큰 규모의 고대시기 집자리들도 많이 분포되여있다.

 

평양지방과 그 주변일대에서는 평양시 삼석구역 호남리 남경유적과 표대유적, 사동구역 금탄리유적, 황해북도 송림시 석탄리유적과 황주군 고연리유적, 평안남도 덕천시 남양리유적을 비롯하여 100~150호에 달하는 큰 부락터유적들이 조사확인되였다.

 

이것은 고조선의 성립을 전후한 시기에 팽이그릇을 쓰던 주민들이 도시를 방불케 하는 큰 부락을 이루고 살았으며 평양지방이 그 어느 지역보다도 주민들이 많이 모여살던 고조선의 중심지였다는것을 보여준다.

평양일대에서는 또한 대규모의 제단시설들도 발견되였다.

평양시 룡성구역 화성동에서 조사발굴된 화성동 1호, 2호 제단시설을 대표적으로 들수 있다.

 

화성동 1호제단은 동서 20m, 남북 18m, 2호제단은 동서 17m, 남북 14.5m의 너비로 돌을 둘러놓은것이였다. 그러나 현재까지 알려져있는 오덕지구 고인돌무덤떼의 3개 제단시설들은 그 크기가 대체로 길이 12m, 너비 8m정도로서 화성동 1호제단의 ⅓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화성동 제단시설발굴자료는 이 제단시설이 다른 지역들에서 알려진 제단시설들보다 훨씬 큰것이며 또 청암동토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1km미만)에 자리잡고있는 사실로 보아 평양이 고조선의 정치적중심지였다는것을 보여주는 근거로 된다고 볼수 있다.

 

이밖에도 고조선시기의 대표적인 유물인 비파형창끝과 비파형단검, 청동활촉을 비롯한 청동제유물과 조롱박 1류형(미송리형)단지와 같은 이시기의 특징적인 유물들이 평양일대의 고인돌무덤과 돌관무덤, 집자리들에서 많이 발굴된것은 평양일대가 고조선의 특권상층귀족들이 집중되여 살고있던 정치적중심지, 수도였다는것을 명백히 알수 있게 한다.

 

이처럼 평양은 원시조 단군에 의해 고조선이 성립된 후 수도, 정치적중심지였다.

평양은 단군이래 조선민족의 모체가 마련된 민족의 발상지, 고대문화의 발원지, 중심지였으므로 그후 그 후손들에 의하여 세워진 우리 나라 력대 봉건국가들의 수도 또는 부수도로 되여왔다.

 

고조선을 뒤이은 고구려는 247년과 343년에 평양을 부수도로 삼았고 427년에는 정식 수도로 정하였으며 마지막까지 정치적중심거점으로 삼았다. 그후 우리 나라 력사상 첫 통일국가였던 고려는 평양을 부수도로 중요시하였고 한때 이곳에 수도를 정하려고 하였다. 특히 고려태조 왕건은 서경(평양)은 수덕이 순조로와 우리 나라 지맥의 근본이라고 하면서 12차례나 직접 평양에 가서 서북지방을 순찰하였으며 그의 유언에 따라 고려의 왕들이 평양에 특별한 관심을 돌리였다. 조선봉건왕조 500여년간 평양은 평안도소재지로서뿐아니라 서북조선의 중심지로 중시되였으며 수도 한성 다음가는 가장 큰 도시였다.

 

이러한 고고학적유적유물들은 평양이 우리 민족의 원시조 단군이 태여나 나라를 세우고 생애를 마친 민족의 성지인 동시에 고조선의 수도, 정치적중심지일뿐아니라 5 000여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세계적으로도 오랜 도시라는것을 뚜렷이 실증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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