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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전 광주학생사건의 력사적의미​

2017-11-03    김증손

 

11월 3일은 지금으로부터 88년전 광주의 의로운 청년학생들이 일제의 파쑈적탄압만행에 항거하여 대중적투쟁에 궐기해나선 날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광주학생사건은 조선인민이 식민지노예살이를 원치 않으며 우리 민족을 멸시하고 억압착취하는 포악무도한 일제에 견결히 항거해 싸운다는것을 전세계에 힘있게 과시한 력사적인 사건이였습니다.》

세월은 흘러 88년전의 일이지만 일제의 피비린 살륙만행을 용납하지 않으려고 용약 떨쳐나섰던 광주청년학생들의 불굴의 애국함성은 우리 인민의 가슴에 맺힌 일제에 대한 치솟는 적개심을 더해주며 오늘도 삼천리에 메아리치고있다.

그 메아리를 들으며 광주청년학생사건의 력사적의미를 새겨본다.

 

광주학생사건은 1929년 10월 30일 광주-라주사이의 기차칸에서 일본인중학생이 한 조선녀학생을 희롱하며 모욕적인 행동을 한데서부터 발단되였다. 일본인학생은 점잖게 행동할것을 요구하는 조선학생들에게 식민지노예의 처지에 있는 주제에 어디에 대고 삿대질이냐는 식으로 주먹을 휘둘러대며 횡포한짓을 하였다.

민족적모욕에 격분한 조선학생들은 일본인학생에게 응당한 보복을 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현장에 달려온 일제경찰은 응당 처벌해야 할 일본인학생을 비호하는 반면에 조선학생들을 폭행하고 체포구금하는 폭거를 감행하였다. 11월 1일에는 일본중학교의 교직원, 학생 수백명이 군사교원의 지휘밑에 광주역에서 조선인통학생들을 불의에 습격하였다. 조선학생 200여명은 격전끝에 습격자들을 물리쳤다.

그러자 일본경찰들은 조선학생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행을 감행하였다. 이에 격분한 광주시안의 전체 조선학생들은 11월 3일 일제의 민족적차별과 부당한 탄압행위에 항거하여 일제히 동맹휴학을 단행하고 대중적인 반일시위에 떨쳐나섰다.

 

광주학생사건의 력사적의미는 첫째로, 그것이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여 일떠선 광주청년학생들의 의로운 대중투쟁으로서 광범한 조선청년들에게 반일사상을 고취하는데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는데 있다,

 

당시 투쟁에 떨쳐나선 청년학생들은 《일제를 타도하자!》, 《식민지노예교육을 철페하라!》, 《조선독립 만세!》라는 구호를 웨치며 일본인학생들과 그들을 비호하는 일제경찰을 반대하여 들고일어났다. 그들은 광주학생사건을 조선학생들의 《소요》로 외곡보도한 일제의 어용보도기관을 포위하고 인쇄기를 파괴해버리는 등 대중적투쟁을 벌렸다.

 

이에 질겁한 일제는 광주근방에 계엄상태를 선포하고 광주시내 및 전라남도의 각지 경찰은 물론 일본인들로 조직된 무장《자위대》, 소방대와 《재향군인》, 《청년단원》, 일본인학생, 교원들까지 총동원하여 시내 요소요소에 배치하고 시위자들을 닥치는대로 체포구금하였다. 이러한 파쑈폭거는 11일까지 계속되였다.

 

일제의 발악적인 탄압에도 불구하고 광주학생들의 투쟁은 서울, 평양, 신의주, 함흥, 개성, 대구, 부산 등 전국도처에서 료원의 불길마냥 세차게 타번지면서 급속히 확대되였다. 학생들의 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일제의 파쑈폭거는 극도에 달하였다. 일제는 광주는 물론 전국의 경찰무력을 총동원하다싶이 하여 조선각지의 학교들을 봉쇄하고 조선학생들의 대중적봉기를 진압하는 한편 그들을 체포처형하는 극악무도한 탄압작전을 벌렸다. 일제는 조선학생들이 길거리에 나다니거나 몇명씩 모여서있기만 하여도 봉기자들이라고 하면서 닥치는대로 잡아가두고 사격을 가하여 집단적으로 학살하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그리하여 온 나라가 애국적청년학생들의 붉은 피로 물들었다.

 

이처럼 광주학생사건은 광주를 중심으로 하여 광범한 조선청년학생들이 한목숨을 바쳐서라도 일제의 야수적인 식민지통치를 기어이 끝장내고 말리는 불굴의 기개를 남김없이 과시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광주학생사건의 력사적의미는 둘째로, 그것이 일제가 표방한 《문화통치》의 진면모를 여지없이 까밝혀놓는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는데 있다.

당시 광주학생들에 대한 일제의 폭압은 1919년 3. 1인민봉기후에 있은 가장 큰 대중적탄압학살사건으로서 일제가 표방한 《문화통치》의 진면모를 적라라하게 드러내놓았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통치는 종래의 헌병경찰제도에 기초한 야만적인 무단통치로부터 이른바 《문화통치》로 넘어갔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그 어떤 우연적인 요인이나 계기에 의하여 일어난것이 아니였다. 그것은 당시 일제가 처한 국내외적조건과 함께 중세기적이며 야만적인 무단통치방식으로는 더이상 조선을 지배하기 어렵게 된 사회력사적요인에 의하여 일어난 《변화》였다. 이러한 사회력사적요인들가운데서도 가장 결정적이고 근본적인 작용을 한것은 일제의 식민지파쑈통치에 치명적타격을 준 조선인민의 반일투쟁이였다.

 

1919년 3. 1인민봉기는 그 대표적실례의 하나였다. 당시 일제군경들은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궐기한 조선인민들에게 무차별적인 총포사격을 가하고 도시와 마을들을 싸다니면서 닥치는대로 불지르고 략탈하였으며 부녀자들을 릉욕하고 애국적인민들을 대량적으로 검거, 투옥, 학살하는 류혈참극을 빚어냈다.

 

일제야수들은 그해 3월 1일부터 5월말까지의 3개월기간에만도 4만 6 700여명의 애국자들과 인민들을 체포, 투옥하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상을 입히고 수천여명을 학살하였다.

 

3. 1인민봉기는 비록 일제야수들의 가혹한 탄압으로 말미암아 실패하였지만 이 운동에서 우리 인민은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존엄을 유린하는 외래침략자들과는 어떠한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불굴의 투지와 기개를 시위하였다. 특히 3. 1인민봉기는 일제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함으로써 포악한 무단통치에 커다란 위기를 조성하였다.

 

심각한 사회정치적위기에 맞다들 때마다 《정책변화》를 운운하면서 《타협》과 《양보》라는 허울좋은 간판을 내드는것은 제국주의자들의 상투적인 통치수법이다. 이러한 수법은 일제에게 있어서도 례외가 아니였다.

 

일제는 포악한 무단통치를 기만적인 《문화통치》로 바꾸었다. 1920년대에 일제는 우리 나라에서 《문화통치》를 표방하면서 조선인민에 대한 그 무슨 《관용》과 《인간적인 동정》에 대하여 철면피하게 떠벌이였다. 그러나 민족적독립과 자유를 위한 조선인민의 반일운동에 대한 일제의 탄압은 보다 교묘한 방법으로 악랄하게 감행되였다. 일제는 조선인민의 반일투쟁을 무자비하게 탄압말살하는 방법으로 저들의 악독한 식민지통치를 유지강화하려 하였다.

날강도 일제의 피묻은 탄압만행은 이 시기 세차게 일어나고있던 청년학생운동에도 뻗치였다.

 

1920년대에 우리 나라 청년학생들은 로동자, 농민들의 투쟁에 고무되면서 반일투쟁을 줄기차게 벌리였다. 1926년부터 1928년까지의 3년동안에만도 수많은 동맹휴학이 있었다. 일제의 식민지노예교육을 반대하여 일떠선 청년학생들의 투쟁은 우리 인민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며 반일감정을 높여주었다.

 

일제는 반일학생운동의 영향을 두려워하면서 그것을 탄압하려고 미쳐날뛰였다.

광주학생봉기에 대한 일제의 야만적인 탄압은 그에 대한 뚜렷한 립증으로 된다. 광주학생사건은 자유와 독립, 민족적존엄을 위한 조선학생들의 정의로운 애국투쟁으로서 그 발단으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절대로 범죄시될수 없었다. 그러나 일제는 조선학생들의 대중적인 봉기로 저들의 식민지통치에 위기가 조성되자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파쑈적폭거로 전국의 거의 모든 조선학교들을 피의 란무장으로 전변시켰다.

 

조선청년학생들의 반일애국운동을 야수적으로 탄압한 일제의 만행은 1920년대에 《민의창달》과 《교육의 쇄신》을 표방하면서 식민지통치를 미화분식하려고 한 그들의 《문화통치》의 기만성과 범죄적성격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입으로는 《일시동인》을 줴치면서 실제로는 적수공권의 우리 학생들, 우리 인민들을 총칼을 휘둘러 야수적으로 탄압학살하는것이 바로 일제의 《문화통치》의 진면모였다.

 

력사는 흐르고 세대와 세기가 바뀌였지만 일제의 총칼에 피흘리며 쓰러지면서도 침략자들과 맞서 용감히 싸운 88년전 광주학생봉기자들의 피타는 절규는 오늘도 우리 천만군민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주며 일제에 대한 적개심을 더욱 치솟게 하고있다.

과거 우리 인민에게 끼친 일제의 극악무도한 죄행은 절대로 묻어버릴수도 지워버릴수도 없다. 일본은 우리 민족앞에 저지른 과거죄악에 대하여 반성하여야 하며 우리 나라의 통일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천만군민은 불구대천의 피맺힌 원쑤 일제의 천추에 용서못할 죄행을 반드시 결산하고야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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