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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침략을 위한 미일공모결탁의 력사적진상​

2017-07-31   김일성종합대학 오순희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 미제와 일제는 조선을 침략하기 위하여 력사적으로 공모결탁하여왔다는것을 똑똑히 알려주어야 합니다.》

식민지지배와 략탈은 제국주의자들의 기본생존방식이다.

미일제국주의자들은 19세기 중엽부터 조선에 침략의 마수를 깊숙이 뻗치고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침략책동을 로골화하였다.

이 글에서는 1880년대 중엽이후 조선에서 청나라와 짜리로씨야세력을 구축하고 우리 나라를 저들의 독점적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미쳐날뛴 미일간의 공모결탁과정을 까밝히려고 한다.

 

조선침략을 위한 미일공모결탁의 력사적진상은 무엇보다먼저 미국의 적극적인 지지, 조종밑에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이김으로써 조선을 저들의 독점적식민지로 만들수 있는 전제를 마련한데서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우선 미제의 비호조장밑에 청일전쟁을 일으킬수 있는 명분을 마련하였다.

일본침략자들은 식민지지배를 둘러싸고 렬강들사이에 날로 첨예화되는 대립관계를 교묘하게 리용하여 조선을 저들의 독점적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침략책동에 매여달렸다. 그런데 이 침략적목적을 달성하는데서 제일 큰 난관이 바로 당시 조선봉건왕조내에 지배하던 친청관계였다. 이것을 제거하고 조선에 친일정권을 조작할 때만이 일본이 이미 오래전부터 갈망해오던 조선을 지배하려는 침략적목적을 실현할수 있었던것이다.

미제는 1894년 5월 2일 《거류민보호》의 구실밑에 저들의 함대를 조선에 입항시킨데 이어 2척의 포함을 또 인천에 파견하여 조선에 대한 무력간섭행위를 감행하였다.

미제침략자들이 취한 이 조치는 철저히 저들의 조선침략의 충실한 주구로 내정한 일본을 조선에 진출시키는 한편 그의 무력간섭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주어 청나라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감행한 계획적인 행위였다.

 

미국의 지지에 힘을 얻은 일본침략자들은 1894년 5월 중순~6월 중순에 이르는 한달남짓한 기간에 무려 1만 2 000여명에 달하는 침략무력을 조선에 들이밀었다. 일본의 무력간섭행위를 놓고 조선주재 미국공사 씰은 미국무장관 그레샴에게 일본의 출병은 전적으로 옳은 조치, 조선에 와있는 일본인거류민과 공사관《보호》를 위한 극히 정당한 조치라고 찬양하면서 그를 적극 비호해나섰다. 그후 일본은 조선에 강압적인 《내정개혁》을 들고나왔다. 일본이 들고나온 《내정개혁》안이라는것이 기만적이고 침략적인것이였다는것은 당시 일본정부의 외무대신 무쯔가 조선에서의 《내정개혁》이 가령 실행될수 없다할지라도 청나라가 이 개혁에 동의하지 않는것을 전쟁개시의 리유로 삼아 그 책임을 그에게 전가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한 망발을 통하여 잘 알수 있다.

 

미국은 일본의 《내정개혁》안에 대해서 적극적인 지지성원을 보내면서 조선봉건왕조의 통치배들이 그를 무조건 받아들이도록 최선을 다할것을 씰에게 명령하는 한편 중재조정을 요청하는 청나라정부의 요구에 대하여 모두 거절해버렸다. 그리고 각종 어용출판물을 동원하여 일본의 침략행위를 조선을 세계상업시장에 소개하는 좋은 일로 묘사하면서 그의 강도적인 침략행위, 《내정개혁》안의 실행을 극구 찬양해나섰다.

이처럼 일본은 미국의 적극적인 비호조장밑에 《공사관 및 거류민보호》의 구실을 턱대고 조선에 대한 무력간섭을 감행하였으며 《내정개혁》을 표방하여 1894년 6월 21일 조선왕궁을 습격하고 더 나아가서 남의 나라땅에서 청나라와의 침략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은 또한 미국으로부터 물심량면의 지원을 받으며 청일전쟁에서 승리를 이룩하고 조선을 독점적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전제를 마련하였다.

일본의 전쟁도발이 눈앞에 박두한 절박한 정세에서 국왕 고종은 주미공사 리승수에게 미국에 평화조정을 의뢰할것을 지시하였으나 조선봉건정부의 이 요구는 미국정부의 랭대를 받았다. 미국무장관 그레샴은 주일미국공사 에드윈 던에게 훈령을 보내여 일본의 조선침략을 절대로 방해하지 않을 정부의 립장을 지키도록 독촉하였다.

미국정부의 친일적인 태도는 청일전쟁에 대한 공동간섭을 제기한 주미영국공사에게 《우리 정부는 호의적중립의 태도가 아니면 간섭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한 그레샴의 발언을 통해 더욱 명백해졌다.

미국의 지원에 더 큰 힘을 얻은 일본은 무쯔를 통해 조선침략을 목적으로 한 청일전쟁발발결심을 던을 통해 미국정부에 암시하였고 이에 대하여 미국정부 역시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겠다는 자기들의 의사를 그레샴을 통해 다시한번 확증하였다.

일본은 드디여 청나라를 조선에서 밀어내기 위한 침략전쟁을 도발하였으며 전쟁전기간 미국으로부터 물심량면의 지원을 받았다.

 

미국은 전쟁도발후 두달 남짓한 기간에 해상운수수단의 부족으로 난관을 겪고있는 일본침략군에 1 500~3 000t급군함 여러척을 넘겨주었으며 9월에 또다시 1만t급이상의 군함 6척을 준것을 비롯하여 전쟁기간 군함은 물론 막대한 무기와 총포탄 및 군수물자를 주어 군력이 쇠약한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일본은 평양성전투를 계기로 청나라군대를 압록강이북으로 완전히 구축하였으며 련이어 료동 및 산동반도를 침입하였다. 일본의 군사행동범위의 확대가 청나라에 세력을 뻗치고있던 로씨야와 그의 동맹국들인 도이췰란드와 프랑스의 간섭으로 이어질수 있다는데 큰 우려를 느낀 미국은 그 방지대책에 급급하였다.

미국은 중재자로 둔갑하여 청나라통치배들이 스스로 조선에 대한 지배를 포기할것을 독촉하였다. 

 

미국은 《유럽의 어떤 강국이 강압적인 간섭으로 일본측에 불리하게 전쟁을 종결짓게 할지도 모른다.》라고 하면서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청일 두나라의 명예를 다같이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중재자로 나설 결심을 일본측에 제기하여 걱정거리를 덜어주었다.

 

결국 미일간의 은밀한 공모결탁이 이루어진 속에서 일본침략자들은 1895년 3월 23일 시모노세끼강화조약에서 청나라정부로부터 조선에 대한 독점적지배권을 차지할수 있는 권한과 함께 대만과 료동반도 등 많은 령토와 막대한 배상금을 강탈해냈다.

한편 미국도 일본의 조선침략의 가능성을 확고히 해주는 대가로 아시아침략에서 서방렬강들보다 더 유리한 조건을 확보할수 있게 되였다.

이처럼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조선을 저들의 독점적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전제를 마련한것은 미일간의 공모결탁이 낳은 침략적인 산물이였다.

 

조선침략을 위한 미일공모결탁의 력사적진상은 다음으로 미국이 일본으로 하여금 로일전쟁에서 승리하도록 함으로써 조선을 일본의 독점적식민지로 만든데서도 나타났다.

 

청일전쟁에서의 승리를 계기로 일본은 조선에서 청나라세력을 밀어제끼고 우리 나라를 저들의 독점적식민지로 만들수 있는 확고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하지만 1895년 8월에 있은 명성황후살해사건은 일본에 대한 조선인민의 반일감정을 최대로 폭발시켰으며 이를 계기로 고종황제는 물론 봉건정부내의 대다수의 관료들도 반일적립장을 취하였다.

한편 련이은 춘생문사건으로 일본은 물론 미국에 대해서도 강한 위구심을 느낀 조선봉건왕조는 로씨야에 큰 기대를 걸고 점차 친로적인데로 기울어졌다. 바로 이러한 때 아관파천사건을 계기로 로씨야공사관안에 친로정권이 조작되면서 일본은 조선에서의 자기의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할 위험에 빠졌다.

한편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결속되도록 왼심을 써온 미국으로서는 짜리로씨야가 저들의 극동침략정책실현에서 적수로 등장하는것을 방관시할수 없었다. 따라서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한것을 기화로 조선에 많은 침략무력을 주둔시킨 불리한 조건에서 미국은 조선에 대한 침식을 포기하는 대가로 일본의 힘을 빌어 저들이 독점적딸라수출대상지로 지정한 중국의 3성에 대한 로씨야의 침투를 배제할 정책을 세웠다. 이와 함께 미국의 군사기지인 필리핀에 대한 강점의 안정성도 보장받으려고 획책하였다.

즉 일본을 짜리로씨야를 반대하는 전쟁에로 적극 부추겨 놈들의 조선강점을 실현시켜줌으로써 어부지리를 얻자는것이 미국이 내세운 대조선침략정책이였다.

미제는 우선 일제를 로씨야와의 전쟁에로 부추기는 한편 조선에서 놈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각방면에 걸치는 유리한 조건을 지어주었다.

미제는 1903년 12월말 일본측에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엄정중립을 준수》할 의사를 은밀히 표명하였으며 1904년초에 와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로씨야와의 전쟁에로 일본을 부추겼다. 이에 힘을 얻은 일제는 1904년 2월 8일 불의에 조선에서 짜리로씨야세력을 밀어내기 위한 로일전쟁을 도발하였다.

미제는 이와 때를 맞추어 만주와 로씨야령토내에 있는 일본인거류민들을 적극 보호해주었다. 반면에 일본군함의 불의공격을 받아 침몰된 2척의 로씨야군함 승무원들에 대한 구출문제가 제기되였을 때에 인천에 정박하고있던 미국군함 《위크브르그호》는 이를 단호히 거절해버림으로써 미국의 량면성을 다 드러내놓았다.

미국의 적극적인 후원밑에 일제는 중립을 선포한 조선령토에 무려 10만명이상의 침략군을 상륙시킨데 이어 2월 23일에는 조선봉건왕조에 침략적인 《한일의정서》를 강박하여 조선을 저들의 전쟁수행에 철저히 복종하는 군사기지로 전락시켰다.

미국은 《한일의정서》가 공포되기 바쁘게 조선주재 미국공사 알렌을 통해 일본정부에 《이번의 <한일의정서>는 여러 나라들 특히 미국이 예상한것보다는 온화한것》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조선침략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지위는 더욱더 여러 나라들의 큰 동정을 받는데 이를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를 적극 환영하였다.

이에 더욱 큰 힘을 얻은 일제는 미국의 묵인밑에 같은 해 8월 22일에는 또다시 《한일협정서》를 체결하여 조선의 내정권을 엄중히 위협하였다.

 

※ 일제는 이 협정서에 따라 미제와의 사전토의밑에 조선의 외교부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외무성과 미국주재 일본공사관에 고용되여 통역관으로 있던 미국인 스티븐스를 파견하였다. 일제가 일본인이 아닌 미국인 스티븐스를 조선에 외교고문으로 파견한데는 그가 조선을 둘러싼 각국 렬강들과의 대외관계에서 야기될수 있는 복잡한 사태를 미국의 힘을 빌어 수습하며 더 나아가서 그의 지지밑에 조선을 저들의 독점적식민지로 만드는데서 중재자적역할을 수행할수 있다는 교활한 속심이 깔려있었다.

 

일본의 교활한 계략에 따라 《한일협정서》가 조인되기 하루전날인 8월 21일 일본외무상 고무라는 주미 일본공사 다까히라를 통하여 스티븐스에게 정식취임요청을 전보로 발송하였으며 또 8월 22일에는 《스티븐스 한국 외교고문 수락 및 부임시기 문의의 건》에 관한 공문이 고무라에게 발송되였다. 고무라는 11월 7일 스티븐스에게 한 비밀훈령에서 《제국정부는 20여년간 계속 제국을 위하여 힘쓴 귀하의 재능과 충실성에 대하여 십분 신용하고 귀하를 외교고문으로 한국정부에 추천》한다고 하면서 그를 통해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에 철저히 예속시킬 정부의 립장을 명백히 드러내놓았다.

일본의 조선침략정책실현의 현지사환군으로 선발된 스티븐스는 12월 27일 조선봉건정부와 《외교고문용빙계약서》를 체결함으로써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에 철저히 예속시킬수 있는 통제권, 집행권을 장악하였으며 일본, 영국, 미국 등에 주재하고있던 조선공사들을 완전히 소환하였다.

미국은 또한 로일전쟁기간 일본이 승리를 거둘수 있게 물심량면의 원조를 주었다.

 

미제가 일제에게 차관의 명목으로 준 원조는 모두 4차례에 걸쳐 1억 5 000만 US$에 달하였다. 일제는 로일전쟁기간 미국으로부터 전동기 74%, 기관차 36%, 발동기 34%, 동 74%, 연 42%, 면화 32%, 휘발유 63% 등 많은 전략물자를 수입하였다.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로일전쟁상황에 대하여 《미국의 원조가 없었더라면 일본의 재정계획은 파탄되였거나 전쟁수행자체가 불가능하였을것이다.》라고 론평한 사실은 로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가 미제의 적극적인 재정적, 군사적원조를 떠나서 상상할수 없는것이였음을 똑똑히 보여준다.

 

미제는 전쟁 1년기간에 막대한 병력의 소모와 국고의 완전고갈로 인해 궁지에 몰린 일본을 패망에서 건져줄 목적밑에 로일간의 강화담판의 중개자로 나섰다. 미국대통령 루즈벨트는 1905년 1월 영국으로부터 일본의 조선지배권을 지지한다는 약속을 받아낸데 이어 2월 《영일조약》까지 체결하게 하였다.

한편 미국은 같은 해 7월 29일 미륙군장관 타프트와 일본내각총리대신 가쯔라사이에 비밀협정을 체결하도록 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지배권을 정식 승인해주었다.

 

조선강점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준 미제의 공모결탁행위는 8월 9일부터 시작된 포츠머스강화담판에서 여실히 증명되였다. 미국의 중재밑에 진행된 강화담판에서는 로씨야가 일본이 조선을 독점적으로 지배하는데 방해나 간섭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것이 약속되였으며 담판에서의 일본의 승리를 축하하는 미국의 축전까지 전달되였다.

 

이처럼 일본이 10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두차례의 전쟁을 치르고 《을사5조약》의 강압날조로 조선을 저들의 독점적식민지로 만든것은 철저히 미국과의 공모결탁과정에 마련된 침략적산물이였다.

1880년대 중엽이후 조선을 지배하기 위한 미일간의 공모결탁은 미일제국주의자들이야말로 저들의 리익추구를 위해서는 남의 나라의 자주권도 마구 짓밟고 온갖 흉악한 범죄만을 일삼는 가장 포악하고 악랄한 침략자, 승냥이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우리의 천만군민은 끊임없는 핵전쟁연습으로 조선반도정세를 격화시키고있는 미일반동들의 공모결탁행위에 언제나 높은 경각성을 가지고 대하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의 선군혁명령도를 받들어 이 땅우에 기어이 주체의 사회주의강국을 일떠세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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