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진행된
고구려의 유적유물을 옳게 평가처리하기 위한 투쟁​ 

2017-03-03   김일성종합대학 백용남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민족문화유산과 지난날의 력사적사실들에 대하여 언제나 계급적립장에서 비판적으로 대하여야 하며 그것들을 우리 혁명의 리익에 맞게 평가하고 처리하여야 합니다.》 

고구려의 유적유물들을 정확히 평가처리하는것은 고구려의 천년강국사는 물론 중세초기 우리 나라 력사를 과학적으로 정립하며 중세 우리 나라 력사와 문화발전의 기본흐름을 바로 잡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문제이다.

 

※ 그러나 고구려와 관련한 력사기록이 얼마 남아있지 못하고 유적유물들도 많이 파괴된데다가 그것마저 지난 시기 대국주의사가들이 써놓은 사료와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옮겨놓은 자료들만 있다보니 일련의 중요한 문제들이 외곡되였거나 공백으로 남아있어 고구려의 력사와 문화를 옳게 정립체계화하는데서 여러가지 문제들이 제기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러한 실정들을 깊이 헤아리시고 고구려와 관련하여 그릇되게 전해오는 문제들을 력사적사실그대로 바로잡아놓을데 대한 과업을 력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에게 맡겨주시였다.

공화국의 력사학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고구려의 유적유물들을 옳게 평가처리하기 위하여 문헌연구 및 조사발굴사업을 힘있게 벌리였다.

 

고구려의 유적유물을 옳게 평가처리하기 위한 투쟁에서 중요한것은 무엇보다먼저 고구려시조왕의 무덤인 동명왕릉의 성격을 정확히 고증한것이다.

지난 시기 일제반동사가들과 사대주의, 대국주의사가들의 력사외곡책동에 의하여 고구려시조왕의 무덤인 동명왕릉문제는 옳바른 해명을 보지 못하고있었다.

 

 《삼국사기》, 《고려사》,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우리 나라의 중세력사자료들에서는 동명왕릉이 평양부근의 룡산땅에 있으며 이곳에서 동명왕을 숭배하는 제사의식이 있었다고 기록하고있으나 어떻게 되여 동명왕릉이 평양부근에 있게 되였는가에 대하여서는 밝히지 못하였다.

일제는 조선을 강점하고 우리 민족의 자랑인 고구려의 천년강국사와 애국전통을 말살할 목적으로 동명왕릉을 도굴파괴하였으며 반동적인 어용사가들을 부추겨 동명왕은 전설에서나 나오는 신화적인 인물이고 동명왕릉도 실지 무덤이 아니라고 력사를 외곡하였다.

해방후에도 일부 학자들은 동명왕을 허구의 인물로 보는데로부터 그 무덤의 존재를 부인하였고 또 일부 학자들은 동명왕이 실재한 인물이라고 하여도 수백년전에 고구려의 첫 수도 졸본지방에서 죽었으므로 그의 무덤도 졸본에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평양부근에 동명왕릉이 있다는 사실자체를 부인하였다.

그리하여 룡산리의 동명왕릉은 오래동안 고구려시조왕의 무덤으로 인정되지 못하고있었으며 력사학계의 관심속에서 조차 점점 밀려나 세월의 망각속에 사라져가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실태를 깊이 헤아리시고 천리혜안의 통찰력과 주체적인 방법론에 기초하시여 동명왕릉문제를 옳게 해명할수 있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역땅에서 살다가 고국으로 돌아오는 자식들도 자기 부모의 유골을 안고오는데 하물며 강대한 국력과 전통을 자랑하던 고구려가 멀리 평양으로 수도를 옮겨오면서 시조왕의 릉을 그곳에 그냥 두고왔겠는가, 고구려사람들도 수도를 옮기면서 틀림없이 자기의 시조왕릉을 옮겨왔을것이라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 력사(고려시기)에는 전란이 일어나 수도를 옮길 때 시조왕의 무덤을 파가지고 천도하였다가 혼란이 수습된 후 다시 옮겨온 전례가 있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로 력포구역 룡산리의 동명왕릉은 고구려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길 때 시조왕의 무덤도 같이 옮겨 현재의 위치에 만들어놓은것으로 보는것이 정확할것같다고 하시면서 동명왕릉을 잘 발굴하여야 하겠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왕릉발굴사업에 떨쳐나선 김일성종합대학 교직원, 학생들은 주체63(1974)년 봄과 가을에 100여일에 걸쳐 동명왕릉과 그 부근의 20여기의 고구려고분들과 1개의 못, 약 3만㎡에 달하는 절간건축도를 발굴하였다.

 

 동명왕릉은 한변의 길이가 22m나 되는 평면정방형에 2단으로 된 기단석을 쌓고 그 우에 8m높이의 무덤무지를 쌓아올린 비교적 규모가 큰 무덤이다. 무덤에는 금관에 달았던 순금제보요를 비롯하여 100여개의 보요들이 나왔는데 그것들은 백제, 신라의 무덤들에서 나온 금관에 달아맸던 보요와 신통히도 같은것이였다. 동명왕릉에서는 무덤칸의 네 벽과 천정전면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질서정연하게 배렬된 도안화된 련꽃무늬주제의 벽화도 알려졌다. 무덤의 구조형식과 거기에서 드러난 유물들은 이 무덤이 다름아닌 왕의 무덤이라는것을 실증해주었다. 동명왕릉을 중심으로 20여기의 고구려무덤들이 동명왕릉을 앞뒤로 옹위하듯이 배렬되여있으며 동명왕릉앞 120m되는 곳에서는 대규모의 고구려절간인 정릉사터가 드러났다.

 

이것은 동명왕릉이 력대 고구려왕릉들가운데서도 특별히 중요시된 시조왕의 무덤이라는것을 말해주었다.

동명왕릉에 대한 발굴정리를 통하여 그것이 고구려사람들이 평양천도와 함께 민족적풍습에 따라 평양으로 옮겨 축조한 고구려의 시조릉이라는것이 확증됨으로써 고구려의 건국과정과 그 발전의 진면모, 그 시기에 창조된 슬기로운 우리 민족의 력사와 문화전통을 더욱 빛내이게 되였으며 지난 시기 동명왕릉을 가짜무덤으로, 동명왕을 전설적인 인물로 보고 고구려력사의 첫 시기를 부인한 내외반동사가들의 력사외곡행위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수 있게 되였다.

고구려의 유적유물을 옳게 평가처리하기 위한 투쟁에서 중요한것은 다음으로 장수산일대에서 성과 도시유적을 새롭게 발굴고증함으로써 고구려 남평양의 위치를 확증할수 있게 한것이다.

지난 시기 력사학계에서는 고구려의 남평양이 대체로 5세기말~6세기초부터 551년까지 오늘의 서울근방에 있었던것으로 인정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평양의 위치를 밝히는 문제가 고구려의 력사와 문화를 과학적으로 밝히며 안악3호무덤의 성격을 비롯한 여러가지 력사적문제들을 해명하는데서 중요한 고리로 된다는것을 통찰하시고 남평양의 위치를 확정하기 위한 고고학적발굴사업을 힘있게 벌릴데 대한 과업을 고고학자들에게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문헌자료와 지난 시기의 발굴기록들에 기초하여 고구려시기의 유적들을 조사답사하는 과정에 황해남도 신원군 장수산일대에서 고구려시기의 큰 도시유적을 발굴하였다.

 

 장수산일대 도시유적의 규모는 동서남북으로 각각 10리 남짓한것으로서 당시의 유적으로서는 대단히 큰것이였다. 도시유적에서는 고구려의 전형적인 붉은기와와 회청색기와들이 여러곳에서 많이 나왔다. 이밖에도 유약을 바른 물결무늬단지, 옥도장, 쇠보습, 쇠말모형 등 수많은 유적들이 나왔다. 이 도시유적 바로 뒤에 있는 장수산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되여있고 그 둘레는 약 10.5㎞에 달하는것인데 성안에서는 행궁터(왕이 림시로 거처하는 궁전)로 인정되는 건축지를 비롯하여 많은 집자리들과 우물터, 쇠부리터, 못자리 등 고구려시기의 유적들이 발굴되였다. 뿐만아니라 이 도시유적부근에서 고구려시기의것으로 판명되는 1 000여기이상 되는 무덤떼가 발견되였다. 이것은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드문 유적이다.

 

공화국의 고고학자들은 주체73(1984)년부터 주체78(1989)년까지 여러해에 걸치는 고고학적발굴을 통하여 장수산일대가 고구려의 부수도 남평양이 자리잡고있던 곳이라는것을 확증하였다.

남평양의 위치가 확증됨으로써 고구려시기의 력사와 문화를 과학적으로 체계화하는데서 또 하나의 공백이 메워지고 우리 나라의 력사와 문화와 관련된 여러가지 학술적문제들을 옳게 해명할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마련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고구려의 유적유물을 옳게 평가처리하기 위한 투쟁에서는 이밖에도 안악 3호무덤과 덕흥리벽화무덤의 성격을 과학적으로 해명한것을 비롯하여 많은 성과들이 이룩되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비범한 령도가 있었기에 지난 시기 잘못 평가처리되였던 고구려의 수많은 유적유물들이 민족의 재보로 만방에 빛을 뿌리고 력사의 망각속에 묻혀버릴번한 력사적사실들이 새롭게 고증되여 우리 조국의 유구한 민족사와 우수한 문화를 빛내이는데 적극 이바지하게 되였다.

우리 민족의 력사에서 제일 강대한 나라였던 고구려의 귀중한 유적유물들을 옳게 해명하고 빛내여나가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업적은 강성번영할 우리 조국의 창창한 래일과 더불어 영원히 빛을 뿌릴것이다.

이름:   직업:   주소:  내용:   보안문자: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