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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9세기 우리 나라 유물론철학의 발전에 대한 리해​

2017-03-06   김일성종합대학 박문성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에서의 철학의 발전과정을 보면 중세기에도 유물론과 변증법이 관념론과 형이상학에 맞서있었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17–19세기 우리 나라에서는 신분적인 억압과 착취에 기초한 봉건제도자체가 가지고있던 모순으로 인하여 사회의 부패성이 더욱 증대되는 한편 자본주의적관계가 형성발전되면서 봉건사회가 밑뿌리채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 쇠퇴몰락하여가는 조선봉건국가의 위기를 수습하기 위하여 통치배들은 사상분야에서 어용철학인 성리학적관념론을 더욱더 반동화하였다. 

이 시기 우리 나라 철학에서는 이미 15–16세기에 유물론적으로 해결되였던 리기호상관계문제가 의연히 중심문제의 하나로 제기되였으며 이를 둘러싸고 유물론과 관념론이 심각하게 대립되게 되였다.

 

성리학적관념론이 종교신비적으로 윤색되고 반동화되여가는 조건에서 당시 진보적인 사상가들앞에는 유물론에 기초하여 성리학적관념론을 폭로비판하여야 할 과제가 제기되였다.

 

17–19세기 우리 나라 유물론철학의 발전에서 중요한것은 무엇보다먼저 성리학적관념론의 공격과 비난으로부터 선행한 기일원론적철학사상을 옹호하고 보다 발전시킨것이다.  
 이 시기 유물론철학자들인 장유, 임성주, 최한기는 종교신비적으로 개악된 성리학적관념론을 반대하고 서경덕의 기일원론적견해를 고수하고 발전시켰다.

 

 장유(호는 계곡, 1587–1638)는 서경덕의 견해를 옹호하면서 리기문제해결에서 유물론적견해를 보다 심화시켰다. 그는 《<기>는 본래 그 본체가 지극히 허한것으로서 시초도 종말도 없으며 그 크기에 있어서 한계가 없고 작기에 있어서 끝이 없다. …  천지만물은 모두 <기> 아닌것이 없다. 이것이 모이면 사물의 형체를 이루고 흩어지면 형체가 파괴된다.  형체가 이루어지면 <기>는 형체가운데 있고 형체가 파괴되면 <기>는 태허(시원적인 <기>의 시공간적무한성과 무정형상태를 의미)로 돌아간다. 사람들은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것은 알지만 그 본체는 유무가 없다는것을 알지 못한다.》(《계곡집》3권 잡저 잡기) 라고 하였다. 그는 서경덕과 마찬가지로 <기>를 지극히 허하면서 시초와 종말이 없고 크기와 작기에 있어서 무한한 특성을 가진 물질적실체로, 천지만물을 이루는 시원적존재로 보았다.

 

장유는 를 무극자라고 하였다. 그가 말하는 무극자란 무한히 작으면서도 무한히 크고 시초와 종말이 없이 영원하며 천지만물이 생성하기 이전에는 혼돈한 상태로 존재하나 음양이 내포되여있어 그 작용에 따라 천지만물을 생성하는 존재이다. 그는 즉 무극자는 사람의 눈으로 볼수도 없고 손으로 잡을수도 없으나 도리여 실재하여 천지만물을 생성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그가 세계의 시원, 본질문제에서 물질적인 의 일차성과 보편성을 강조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임성주(호는 록문, 1711–1788)도 국내외의 여러 학설들에 대한 깊은 연구를 통하여 서경덕의 기일원론철학의 진리성을 확신하고 그의 유물론사상을 계승하고 심화시켰다.  

 

 임성주의 《기일분수》설과 자연처사상은 서경덕이 제기한 《태허》설과 기외무리》(기밖에 리가 없다.)사상을 계승한것이다. 그가 제기한 영원불멸한 가 세계의 유일한 시원이며 일기의 운동과정에 만물이 이루어졌다는 기일분수》설은 서경덕의 태허》설의 발전적계승이며 사물()의 운동이 자기스스로의 운동에 불과하다는 자연처사상은 서경덕의 《기외무리》사상을 옹호하면서 제기한것으로서 그의 유물론적립장을 반영한것이다. (《록문집》19권 록려잡식)


 

최한기(호는 패동 혹은 명남루, 1803–1879)는 선행한 기일원론적철학사상을 최후로 종합집대성한 대표적인 유물론철학자이다.

 

※ 최한기는 세계의 다양한 천지만물은 오직 하나의 로부터 발생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천지에 꽉 차있고 만물에 침투되여있으며 모이고 흩어지는것이나 모이지도 흩어지지도 않는것이나를 막론하고 <기> 아닌것이 없다. 내가 나기 전에는 천지에 <>만이 있었을뿐이였는데 내가 나자 비로소 형체의 <기>가 생겼으며 내가 죽은 뒤에는 이것이 천지의 <기>로 다시 돌아간다. 천지의 <기>는 크고 오래며 형체의 <기>는 작고 인차 없어진다. … 만물의 <기>에 이르어서도 다같이 천지의 <기>에서 출발하여 우주공간에 차있는것이다.》(《기측체의》신기통 1권 체동 천인지기)라고 하였다.


 

최한기는 자연과 사회, 인간사고의 모든 현상들에 대한 온갖 관념론적해석을 반대하면서 당시 널리 사용되던 철학범주와 개념들에 대한 종교신비적이며 관념론적인 견해들을 반대하였다.
 최한기는 《기》로부터 천지만물의 형성과정이 사람의 주관에 의존하지 않는 객관적자연법칙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보면서 하나의 《기》로부터 지구를 비롯한 천체와 생명체, 무생명체가 발생발전하는것에 대해서도 력사적인 진화과정으로 설명하였다. 이를 통하여 그는 선행한 기일원론적철학사상에서 제기되였던 《기》에 의한 세계의 물질적통일성과 객관성, 시공간적인 무한성과 영원성, 《기》불멸론–물질불멸론을 확고히 주장하였다.

 

17–19세기 우리 나라 유물론철학의 발전에서 중요한것은 다음으로 근대자연과학의 성과에 기초하여 유물론철학의 진리성을 확증하려고 한것이다.
 이 시기 진보적인 철학자들은 기일원론적철학사상의 기본으로 되는 《기》불멸사상을 진리로 인정하고 이것을 근대적인 자연과학지식으로써 근거지으려고 시도하였다. 그 대표자는 홍대용, 최한기 등이였다.
 홍대용(호는 담헌, 1731–1783)의 천문리론은 천원지방설, 천동지정설, 지구중심설과 같은 중세기적인 천문리론에서 벗어나 근대적인 천문리론에 가깝게 접근한것이였다.
 홍대용은 지구지전설을 확고히 주장하였다.

 

※ 그는 지구가 둥근것은 원래 발생할 때부터 둥근 모양을 가지고있으며 월식때 그림자가 둥근것을 통하여 알수 있다고 하였다.(《담헌서》내집 4권 의산문답)  그는 지구, 달, 별을 비롯한 모든 천체는 회전하는것이 법칙이라고 보면서 《지구는 하루에 한번씩 회전하는데 지구의 둘레는 9만리이고 하루는 12시간이다. 9만리를 12시간동안에 회전하니 그 속도가 번개나 총알보다 더 빠르다.》라고 하였다. (우와 같은 글)

 홍대용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전통적인 중세기적인 리론을 부정하고 지구는 우주공간에 분포된 무한한 별세계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이것을 다른 천체들과의 관계, 천체들의 운동과정을 통하여 증명하였다. 이에 대하여 그는 《하늘에 가득찬 별들도 세계 아닌것이 없으며 별세계로 보면 지구도 역시 한개의 별이다. 한량없는 세계가 공간에 흩어져있는데 오직 지면세계가 한복판에 있을 그러한 리치는 없다. … 지구가 모든 별의 중심이라고 하면 이것은 우물안에 앉아서 하늘이 작다는 소견과 같은것이다.》(우와 같은 글)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우주공간에 무수히 널려있는 천체들이 각각 자기의 중심을 가지므로 지구도 태양도 우주의 중심으로 될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홍대용은 이러한 리해에 기초하여 근대적인 천문리론인 다은하계설로써 물질적인 《기》로 이루어진 우주의 공간적인 무한성과 시간적인 영원성을 확신하였다. 그는 남극과 북극은 하늘(우주)의 극이 아니라 지구의 회전으로 생긴 지구의 극에 지나지 않으며 천체에는 별밖에 또 별이 있어 멀기에 있어서 끝이 없다고 하였다.
 홍대용과 마찬가지로 최한기도 근대적인 자연과학지식에 기초하여 기일원론적철학사상의 진리성을 확신한데로부터 세계의 본질, 시원에 관한 문제, 인식론적문제들을 보다 심화발전시켰다.

※ 최한기는 자기가 쓴 책인 《기측체의》서문에서 《대개 우주만물의 발생이 모두 <기>의 작용에 의한것으로서 후세의 경험에 의하여 <기>가 점점 명백하여졌다. 이리하여 <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표준을 가지게 되였고 <리>와 <기>의 론쟁이 끝나게 되였으며 도덕수양을 하는자도 뚜렷한 경계가 있어서 거의 어그러짐이 없게 되였다. 그러므로 나는 <기>의 본질을  론하는 <신기통>과 <기>의 작용을 규명한 <추측록> 두 책을 저술한다.》라고 하였다.
 최한기는 《기》
의 존재성을 론증하면서 《태양이 땅에 가까이 항상 쪼이면 지면의 <기>는 무겁게 되고 그우의 양기는 가벼워진다.》(《기측체의》추측록 추기측리 기수승강)라고 하였다. 그는 이와 같은 《기》는 《희박과 조밀, 무거운것과 엷은것, 가벼운것과 무거운것》과 같은 차이가 있으며 모든 물체와 빛, 냄새에까지도 침투되여있는 물질적실체라고 인정하였다.(《기측체의》신기통 1권 체통 기지공용)


 

그는 《기》가 허나 무가 아니라 형질을 가진 실재라고 인정하였다.

 

※ 그는 《바리를 동이의 물가운데 엎어놓으면 물이 바리안에 들어가지 않는바 그것은 바리안에 <기>가 차서 물이 들어가지 않기때문이다. 이것은 <기>가 형질을 가지고있다는 첫째 증거이다.》, 《한 방안의 동쪽과 서쪽에 창문이 있는데 동쪽창문을 급히 닫으면 서쪽창문이 스스로 열리는데 그것은 <기>가 방안에 차있어서 풀무처럼 충동하기때문이다. 이것은 <기>가 형질을 가지고있다는 둘째 증거이다.》라고 하면서 이러한 리치를 뽐프의 원리, 기포발사의 원리, 온도계의 원리로써 해석하였으며 결국 《기》가 《허》 또는 《공》이 아니라 형질을 가지고있는 물질적실체라는것을 론증하였다.(《인정》10권 기지형질)


 

《기》에 대한 최한기의 견해에서 특출한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근대자연과학의 성과를 받아들여 《기》의 물질적성격을 밝힌것이다.

※ 최한기는 《천하의 사물은 원질이 56가지인데 만가지 사물이 모두 여기로부터 발생한다.》(《신기천험》 8권 수질론)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원질이란 원소를 말하며 원소가 56개라고 한것을 보면 그가 화학원소에 대한 지식을 소유하고있었다고 볼수 있다.


 

최한기는 전통적인 《기》개념에 근대자연과학적인 원소개념을 도입하여 보다 새롭게 전진시켰다.

 

※ 그는 《기》를 우리 나라 유물론철학자들이 전통적으로 인정하던것과 마찬가지로 우주공간에 가득찬 대기, 공기로 보면서 《기》가 양기(산소), 경기(수소), 담기(질소), 탄기(탄소)의 화합물, 물질적실재이며 빛, 맛, 냄새, 밀도, 중량과 같은 물리적성질을 가진다고 리해하였다.

 

최한기는 근대과학지식을 관심밖에 두고있는데로부터 《기》의 물질성을 부인하는 관념론적견해를 반대하면서 《허무라고 하지만 이것은 고기가 물속에서 살면서도 물을 잊어버리는것과 같이 사람들은 《기》속에서 살고있으면서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근고이래 《기》에 대한 학설이 점차 발전하고 여러가지 기계의 실험이 갖추어졌으며 물체를 창조하는 작용도 여기에 있게 되여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자는 보고 알기에 어렵지 않게 되였다.》(《인정》 8권 제교)라고 하였다.


 

근대적인 자연과학지식의 성과를 도입하여 기일원론철학의 유물론적성격과 진리성을 두드러지게 부각시킨 최한기의 기일원론적철학사상은 《리》를 천명, 조물주의 지위에까지 끌어올리고 성리학적관념론을 극도로 신비화한 봉건통치배들의 사상을 비판하는데서 의의를 가지였다.
 이와 같이 17–19세기 우리 나라 유물론철학은 봉건사회의 모순과 불합리성을 변호하고 합리화하려는 봉건통치배들의 온갖 관념론적궤변을 비판부정해나섬으로써 사회적진보에 긍정적영향을 주었으며 우리 나라 중세철학을 유물론의 승리로 결속짓게 하는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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